2022년 9월호

尹 대통령, 정치인 ‘같잖게’ 보지 마라

[봉달호 편의점 칼럼]

  • 봉달호 편의점주

    입력2022-09-0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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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인 밟고 올라선 아이러니

    • “자신의 잘못인데도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

    • ‘같잖다’는 말에 드러나는 잠재의식

    • 정치 초보 윤석열, 정치 게이머 이준석

    • 지금은 정치 혐오 버리고 고개 숙일 때

    7월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20%대로 추락한 지지율에 대해 “묵묵히 하면 (국민이) 진정성을 다시 생각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1]

    7월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20%대로 추락한 지지율에 대해 “묵묵히 하면 (국민이) 진정성을 다시 생각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1]

    사람은 흔히 정치를 ‘큰 흐름’으로만 기억하게 마련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예로 들자면 ‘강직한 특수부 검사이던 윤석열이 검찰총장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이 됐다’는 굵직한 과정만 알고 있지, 그 안에 들어 있는 ‘이런’과 ‘저런’의 선후관계를 가지런히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당연한 일이다. 생업에 바쁘고 세상에 신경 쓸 일이 많은데 정치의 세세한 이면까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정치에 지극히 관심 많은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정치 고(高)관여층일수록 왜곡된 기억을 갖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정치 성향에 따라, 결과를 바탕으로, 과정을 재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선택적 기억이랄까. 자신과 입장이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인내심을 갖고 자꾸 들어봐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장문의 글을 읽기 싫어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사회적 관심을 끄는 이슈가 하루가 다르게 휙휙 바뀌는 요즘 같은 세상에, ‘신동아’ 같은 시사 월간지를 찾아 읽어야 할 이유 또한 거기 있을 것이다.

    김종인 ‘헤어질 결심’

    시점을 과거로 돌려보자. 1월 5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기존 선거대책위원회를 해체하고 ‘선거대책본부’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면 선거캠프 재구성은 윤 후보 본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 앞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이른바 ‘선대위 폭파’를 선언한 것에서 비롯했다.

    김 위원장이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을 맡기 전부터 ‘슬림하고 기동성 있는’ 선대위 구성을 제안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11월부터 한 달 넘도록 윤 후보와 김 위원장 간에 ‘밀당’이 계속되고 김 위원장의 선대위 결합이 늦어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윤 후보는 김 위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총괄선대위원장이 있고, 거기에 2명의 상임선대위원장이 있고, 다시 10명의 공동선대위원장이 있고, 또 별도로 여러 위원회와 위원장이 있고, 6개 본부와 특보단이 존재하고, 다시 전국 지역별 선대위까지 구성한 매머드급 선대위를 출범시켰다. 어떻게 보면 김 위원장과 윤 후보 간 ‘고집 싸움’에서 김 위원장이 밀린 것이다. 윤 후보 판단으로는 ‘감투를 씌워주면 김 위원장도 그럭저럭 따라오지 않겠나’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김 위원장이 합류하고 선대위가 공식 출범한 날짜는 지난해 12월 6일. 그로부터 한 달 가까이 김 위원장은 선대위가 돌아가는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는 쪽을 택한 듯하다. 그러나 역시 국민의힘 선대위는 민주당과 달랐다. 민주당은 경선 과정에서 거칠게 싸워도 일단 선대위가 꾸려지면 기본적인 사상 경향과 진영 논리를 기반으로 뭉친다. 반면 보수정당 선대위는 다양한 정치세력이 ‘권력을 차지하겠다’는 일념으로 집결하기에 화학적 결합이 상대적으로 더 어렵다. 지난 대통령선거는 더욱 그랬다. 어떻게 이들이 한 울타리 안에 모였을까 싶을 정도로 복잡한 혼종(混種) 집단이었다. 그러면 선대위 각 부문의 호흡이 맞지 않고 제가끔 튀어보려고 경쟁하다 여기저기 실수가 돌출하기 마련이다. 당선 이후 논공행상을 기대하며 후보에게 눈도장 찍기에만 바쁜 ‘자리 사냥꾼(job hunter)’들도 판을 친다. 당시 국민의힘 선대위는 꼭 그렇게 흘러갔다. 무슨 저런 오합지졸이 다 있나 하면서 국민들은 끌끌 혀를 찼다. 설상가상, 후보자 본인의 말실수와 배우자 의혹까지 겹치면서 윤 후보의 지지율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런 상황에서 해가 바뀌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김 위원장 나름대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 선대위 해체 및 재구성이다. 이 승부수에 오히려 김 위원장이 물러나게 됐으니 돌아보면 웃지 못할 해프닝이지만, 국민에겐 ‘윤석열은 김종인마저 내칠 수 있다’는 뚝심을 보여주는 징표가 됐다. 김 위원장이 원하지 않았더라도 “나를 밟고 올라서라”는 식으로 흘러간 아이러니한 사건이기도 하다. 결과를 놓고 보자면 돌고 돌아 김 위원장의 애초 주장대로 선대위가 슬림하게 재구성됐으니 이 점 역시 아이러니하다.

    尹 대통령 마이너리티 콤플렉스

    선대위 해체 직전 김 위원장이 윤 후보에게 “(후보는) 연기만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사실이 화제가 됐다.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은 주로 이 발언을 통해 당시를 기억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정치권에서 김 위원장은 특유의 ‘원포인트 발언’으로 유명하다. 사태의 본질을 파악해 짧은 단어나 문장으로 압축해 표현하는 데 익숙하고, 그것으로 언론의 기사 제목을 장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정제된 표현을 사용하는 김 위원장이 왜 그때는 그렇게 과격한(?) 표현까지 동원하며 윤 후보를 몰아세웠던 것일까. 누가 봐도 후보가 기분 나쁠 것이 뻔하고, “후보 위에 군림하는 상왕(上王)이 되려는 것이냐”는 내외의 비난이 쏟아질 것도 뻔한 데 말이다. ‘헤어질 결심’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더구나 그 ‘연기’ 발언은, 김 위원장이 사석에서 갑작스레 한 표현이 아니라 의원 총회에서 한 지극히 준비된 발언이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카메라 각도를 돌려보자. 이젠 대통령이 된 ‘윤석열’이라는 인물의 성격에 대해 살펴보자. 윤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겪어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소탈하다’다. 필자 역시 그랬다. 개인적으로 윤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누군가는 ‘건들건들하다’고 표현했지만, 행동과 말투에 꾸밈이 없다고 느꼈다. 좋게 말하자면 순박한 소년 같다고 할까. 약간 몽상가 같다는 느낌마저 있었다.

    윤 대통령과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어느 법조인에게 꽤 특이한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윤 대통령에게 마이너리티 콤플렉스(minority complex)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알다시피 윤 대통령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다. 그런 인물에게 무슨 ‘비주류’ 콤플렉스일까 했더니 “부유한 집안에서 풍족하게 자란 사람이 그 나름대로 괜찮은 성과를 내고 있는데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비교당할 때 그러한 성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있다”고 말해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의 잘못인데 원인을 자꾸 외부에서 찾는다”고 하던데, 사실 그때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 법조인은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정의의 표상처럼 행동한 건 물론 심성이 착하고 용감한 탓도 있지만 사법시험 9수 끝에 법조인의 길에 들어선 콤플렉스를 그런 방식으로 극복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윤 대통령에 상당히 우호적인 사람의 분석이라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대통령 곁에 정치인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성격을 나열하자면 이렇다. 일단 굉장한 다변(多辯)이다. 말이 많고 거침이 없다. 게다가 이것도 윤 대통령을 겪어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인데, 호탕한 듯하면서도 유난히 속 좁은 구석이 있다. 한번 싫어진 사람은 끝까지 싫어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은 끝내 굽히지 않는 ‘확신형 인물’이라는 사실은 여러 사람의 증언과 윤 대통령의 인생 행보를 통해 뚜렷이 확인되는 바다.

    다양한 평가를 들어보자. 어떤 이는 이렇게 회고했다. “윤 대통령은 본인이 굉장히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경향이 있어요.” 다른 이는 이렇게 말했다. “남의 말에 차분하게 귀 기울이기보다는,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고 그 정도는 익히 알고 있다는 태도로 자신의 생각을 일장 풀어놓기 바쁘더라.” 자신의 견해와 비슷한 사람을 발견하면 활짝 기뻐하고, 그런 감정이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나며, 자신의 생각과 조금이라도 달라지기 시작하면 뭔가 이상하다거나 불쾌하다는 감정 또한 바로 표정에 드러난다고 윤 대통령을 회고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이 그렇기는 하지만, 윤 대통령은 유독 그렇다고 말이다. 좋게 말하면 순박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감정 통제나 표정 관리를 못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시기 편했던 분”이라고 회고하는 법조인이 있었다. 기분만 잘 맞춰주면 되니까.

    “의외로 이론형”이라는 평가도 있다. 특정한 기준에 따라 논리가 정교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보편적 원리로 설명하기를 즐긴다고 윤 대통령을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윤 대통령이 특정한 경제학, 사회학 이론서 몇 권을 ‘인생의 책’처럼 수시로 강조하는 것에서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추가하지 않을 수 없는 성향이 있다. 일종의 ‘정치 혐오’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취임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실과 내각을 구성한 결과를 보자. 정치인 출신이 거의 없다. 비서실장과 국무총리를 모두 관료 출신으로 임명한 것도 그렇고, 심지어 수석비서관과 선임 행정관 중에도 정치인 출신이 별로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여의도 정치판’이라고 일컫는, 현실 정치 경험을 쌓은 측근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내각에서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을 제외하고는 의회 경험을 쌓은 사람이 없다시피 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있지만 정치인이 아니라 관료에 가깝고,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있지만 초선이라 정치 경험은 전무하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윤 대통령의 주위가 온통 법조인(특히 검찰), 관료, 학자 출신뿐이라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바이다.

    내각에는 노련한 정치인 출신이 장관을 맡아 의회를 상대로 정치력을 행사하는 것이 좋은 부처가 있고, 관료 출신이 내부 승진하는 형태로 장관직을 맡는 것이 좋은 부처가 있다. 학자나 시민운동가를 장관으로 모셔와 관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방식으로 부처를 혁신해야 하는 경우 또한 있다. 이번 내각 구성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확실한 것은 ‘어느 부처에 어떤 사람을 써야 하는지’ 윤 대통령이 전혀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다. 교육부를 예로 보자. 교육 문제는 세금과 더불어 국민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분야이기 때문에 정치인을 임명하거나 대학 총장 정도를 지낸 원숙한 경험자들이 맡는 것이 지금껏 정석이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고집 끝에 임명한 박순애 전 장관은 행정학자 출신으로 교육정책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차관은 국무조정실 출신, 차관보는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교육부 고위직 3명이 모두 비(非)교육자 출신. “대체 뭘 하자는 의도인지 모르겠다”는 비난을 받아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정말 같잖습니다”

    1년여 전만 해도 대통령이 되리라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준비와 구상이 부족한 것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정치적으로 능숙한 사람을 곁에 둬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대통령실 구성조차 ‘검찰총장실을 그대로 옮겨놓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정치권과 동떨어져 있다. 정치권에서 데려왔다는 대통령실 직원을 보면 하나같이 현실 정치와는 거리가 먼 책상형 인물, 극단적 정치 유튜버 수준의 인물, 대선 시기에 잠깐 실무를 익힌 사람이다. 윤 대통령이 기성 정치권에 철저한 혐오가 있거나 ‘정치는 아무나 해도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다.

    기억나는 풍경이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9일 경북 안동시에서 열린 경북지역 선거대책위 출범식에서 이런 연설을 한 적 있다.

    “(정치인들은) 전문가가 들어오면 자기들 해먹는 데 지장이 있죠. 그러니 이 무식한 삼류 바보들을 데려다가 정치를 해서 나라 경제를 망쳐놓고 외교, 안보 전부 망쳐놓고….”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말이었지만 필자는 이 연설을 들으면서 윤 대통령이 기성 정치판을 상당히 혐오·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수부 검사로서 수많은 정치인을 조사하면서 생긴 감정 아닐까 싶다. ‘알고 보니 온통 썩었더라’ 하는. 하지만 ‘검사 윤석열’ 때와 정치인이 된 ‘대통령 윤석열’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당시 선대위 출범식에서 윤 후보는 이재명 후보에 대해 이런 말도 했다. “제가 이런 사람하고 국민 여러분 보는 데서 토론해야겠습니까. 어이가 없습니다. 정말 같잖습니다.” 공당의 후보로서 전혀 적절치 않은 발언이었다. 이 발언에도 이재명 후보뿐 아니라 기성 정치인을 바라보는 윤 대통령의 시각이 담겨 있지 않을까 싶다. 모두 ‘같잖다’고 생각하는 잠재의식 말이다.

    중도 포기하고 갈라치기 선택하다

    7월 8일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윤리위원회에서 소명을 마친 후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뉴스1]

    7월 8일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윤리위원회에서 소명을 마친 후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뉴스1]

    다시 시점을 올해 1월 초로 옮겨보자. 김종인 위원장은 왜 하필 “연기만 하라”는 극단적 발언까지 했던 것일까. 당시 추락하는 지지율이 선대위 문제가 아니라 ‘후보’의 태도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별의 순간”이라는 표현으로 윤 후보를 띄웠지만 겪어보니 이런저런 성향과 문제를 파악했고, 후보를 이대로 두고서는 선거를 이기기 힘들겠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그걸 후보에게 깨우쳐야 했다. 짧은 선거운동 기간에 후보를 변화시킬 가장 극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당시 발언 배경에 대해 필자가 김 위원장에게 직접 물었을 때 “후보가 받아들이면 좋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라는 답을 들은 기억이 있다.

    어쨌든 김 위원장의 발언 이후 윤 후보가 변한 것은 사실이다. 김 위원장과 갈라섰고, 대신 이준석 당시 대표를 끌어안으며 연대의 뜻을 표했다.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의 눈에는 기성 정치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김종인과 선을 긋고, 젊고 역동적인 정치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이준석과 손잡은 행위로 해석되는 진풍경이었다. 그러곤 자신만만하던 태도를 잠시 내려놓고, 이 전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여 출근길에서 시민들에게 말없이 허리 숙여 인사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선거 메시지도 중구난방 장황하게 늘어놓던 것에서 요약형으로 바뀌었다. 국민의 눈에는 그것이 ‘윤석열의 겸허한 변화’처럼 보였다. ‘윤석열이 저렇게 수그릴 줄 아는 측면도 있구나 하는 신선함’을 느끼게 했다. 그 뒤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어퍼컷 세리모니 등을 하면서 다시 ‘윤석열다움’을 보여줌으로써 정치에 입문한 지 8개월밖에 되지 않은 초보가 대통령이 되는 초유의 기적을 만들었다.

    말이 나왔으니 짚고 넘어가자. 김종인 위원장과 이준석 전 대표를 유사한 진영으로 파악하는 사람이 있는데, 정치의 내면을 전혀 모르는 분석이다. 이 전 대표가 김 위원장을 정치적 스승이자 멘토인 것처럼 종종 앞세우니 그렇게 오해하지만 이 전 대표의 영악한 앞가림일 따름이고, 두 사람은 정치·사상적 합일점이 거의 없다. 호남을 껴안는 김종인의 서진(西進) 정책을 이준석이 계승했다고 하지만 이 전 대표는 정책의 본질적 의미를 잘 모르고 그저 ‘정치적 기술’로서 대하는 느낌이다. 이준석의 이른바 ‘능력주의’가 김종인식 ‘약자와의 동행’과 완전히 결이 다르다는 것은 설명할 것도 없다. 반(反)페미니즘에 입각한 남녀 갈라치기라든지, 사회적 양극화를 대하는 태도, 경제 분야에 대한 정책 등에서 김종인과 이준석은 오히려 상극 관계라 해도 무방하다.

    상대를 조롱하고 비상식적 일탈을 일삼으며 정치를 마치 게임처럼 여기는 이준석 대표의 벼랑 끝 전술은 현실 정치의 역학 구도를 이해하면서 승부수를 던지는 김종인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이 전 대표는 김종인식 정치를 지극히 곡해하고 잘못 배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전 대표가 김 위원장을 계속 ‘정치적 스승’이라고 표현한다면, 김 위원장을 능멸하는 태도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김종인을 내치고 이준석을 끌어안았다. 중도를 포기하고 갈라치기를 선택한 것이다. 황당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지만, 선거 국면이 깊어갈수록 현실적으로 융합하기 쉽지 않았을 양 갈래 가운데 하나를 취사선택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정치적 도박이라고 할 만한 위험한 행위였지만 어쨌든 그것이 0.7% 차이 아슬아슬한 승리를 이끌었다.

    여기서 고루한 질문이 다시 등장한다. ‘더 크게 이길 수 있던 선거를 이준석 때문에’ 그것밖에 이기지 못했던 것인가, ‘질 선거를 그나마 이준석 때문에’ 갈라치면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인가. 누구도 이에 대해 단언할 순 없다. 어쨌든 이긴 것은 이긴 것이다. 선거에서 이긴 쪽이 ‘적게 이겼다’는 이유로 당대표를 미워하고 내치는 것도 윤 대통령이 정치권에 등장한 후 처음 나타난, 기이한 풍경이다. 정치인 이준석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비판적 시각으로 보자면, 국민을 통합한다고 ‘국민통합위원회’까지 만들어 운영하면서 젊은 당대표 한 명을 끌어안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애석하고 한심한 일이다. 정치 초보 윤석열과 정치 게이머 이준석이 만들어낸 예고된 참극이다.

    고집 꺾고 고개 숙이라

    특이한 풍경이 또 하나 있다. 취임 100일차, 갓 3개월 임기를 지난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를 기록하고 부정 평가가 70%에 달하는 것도 과거에 볼 수 없던 풍경이었다. 흔한 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이것도 이준석 탓일까. 타개책은 없는 걸까.

    일개 시민 입장에서 감히 조언하자면, 윤 대통령이 갖고 있는 정치 혐오의 감정부터 걷어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시 강조하지만 특수부 검사로서 윤 대통령은 기성 정치판을 혐오하고 ‘같잖게’ 여기면서 정치인들의 뒤를 캐는 것이 임무였을지 모르지만, 대통령 윤석열은 달라야 하는 것이다. 정치권 외부에 있는 사람의 시선으로는 정치가 무척 쉬워 보인다. 정치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장 대통령이 된 윤 대통령으로서는 정치가 더욱 ‘같잖아’ 보이겠지만, 정치권을 껴안지 않고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부패한 기성 정치권과 결탁하라는 말이 아니다. 혁파할 것은 혁파하되, 기성 정치의 문법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의 정치권이 오늘날 이렇게 형성된 것은 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배경과 역학관계를 알고 있어야 현실에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 그저 ‘나쁜 놈들’이라는 시각으로는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다.

    그런데 윤 대통령 주변에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조언을 한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소셜미디어에 자기 자랑과 3류 정치 논평이나 올리는 ‘안방 책사’들이다. 현실 정치 경험이 별로 없고 열등감이나 기성 정치권을 무시하는 감정만 가득 찬 사람들이다. 이래서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선거운동까지는 ‘비주류’를 중심으로 움직일 수 있었을지 모르나 국가를 운영하는 일은 다르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정치적 변곡점에서 몇 번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어떤가.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세로 고개 숙이고,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무릎을 꿇어서라도 모셔야 할 텐데, 누군가의 표현대로 당선된 이후 윤 대통령은 “인생의 모든 목표를 다 이룬 사람처럼” 건들거리는 느낌이다. 이래서 어떤 국민인들 설득할 수 있을까.

    고집부릴 때가 아니다. 선대위를 해체하고 선대본부를 선언하던 심정으로 인적 쇄신을 해야 할 텐데 그때의 결기가 보이지 않는다. 김종인을 삼고초려하면서 찾아가고, 이준석을 끌어안기 위해 울산까지 내려가고, “숙제를 준다”는 이 전 대표의 모욕적인 표현까지 견디면서 출근길 인사를 했던 윤 대통령이다. 그것이 윤 대통령을 ‘강하게’ 만들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앞으로 5년간 더 고개를 숙이면 안 되나. 지난 100일 동안 윤 대통령 태도는 “대통령이 됐으니 이제 내 맘대로 하면 안 되나”라고 오히려 국민에게 따지는 듯한 모습이다.

    프랑스의 영웅 샤를 드골도 국민의 신임을 잃으니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 취임한 지 100일밖에 되지 않은 대통령에 대해 탄핵을 운운하는 정치적 반대파들의 발언은 지나치다. 거기에 적지 않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극단적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의 반반(半半) 대결은 안타깝다. 하지만 취임한 지 100일밖에 되지 않아 그런 말이 나오도록 만든 윤석열 대통령에게 커다란 책임이 있다. 8개월 전 난맥이 선대위 문제가 아니라 본질상으로는 후보의 문제였듯, 작금의 혼란도 오롯이 대통령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자세’부터 고치라. 겸손한 태도를 보이라. 고집을 꺾고 윤 대통령이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허심탄회하게 부탁할 때, 국민은 오히려 대통령에게 감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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