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전기차 도입 목표 2년 사이 2만 대 축소
- “전기차 구입 보조금은 공공부문에만”
- 수요 확대 가로막는 충전 인프라
- 배터리 혁신, 친환경 발전 등 장기 전략 세워야
기아자동차의 레이 전기차.
6월 13일 서울시가 발표한 ‘대기 중 질소산화물 저감 대책’의 일부다. 오염물질이 나오지 않는 전기자동차(전기차) 수를 늘려 도심의 공기 질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1만 대’라는 규모. 서울시는 지난해 7월 27일 ‘전기차 마스터플랜 2014’를 내놓으면서 “2014년까지 서울시내에 전기자동차 3만 대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11개월 만에 슬그머니 목표치를 2만 대 줄인 것이다. 배경 설명은 없다. 언론 역시 서울시가 전기차 도입을 새로 결정한 것처럼 보도했다.
이번 발표의 실상이 “전기차 1만 대 도입”이 아니라 “전기차 도입 대수, 당초 계획의 3분의 1로 축소”라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서울시 친환경교통과 그린카정책팀의 권민 팀장은 “서울시 전기차 도입 정책이 기존의 마스터플랜에 비해 후퇴한 건 사실”이라며 “전기차 보급 속도가 예상보다 느려서 3만 대 도입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이번 발표로 머지않아 서울에 ‘전기차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한 이들을 머쓱하게 만드는 해명이다.
새로 밝힌 ‘1만 대 도입’ 계획도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권 팀장은 “서울시 예산으로 전기차를 수만 대씩 구입할 수는 없다. 공공과 민간의 전기차를 합쳐 2014년이면 이 정도 수준이 되지 않겠는가 전망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는 구체적으로 전기버스 80대를 포함한 전기차가 올해 401대, 2013년 1240대, 2014년 8278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저속 전기차의 부침
AD모터스의 저속전기차 체인지(CHANGE).
환경부가 4월, 올해 정부기관에 전기차 2500대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믿지 않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환경부가 관공서를 대상으로 수요 조사를 한 결과 전기차 구입 희망 대수가 전국적으로 1000대 수준에 그쳤다고 들었다”며 “정말 2500대를 구입할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장밋빛 구상을 내놓는다고 전기차 산업이 성장하는 건 아니다. 현실은 생각지도 않고 몸집만 키우다 몰락한 회사도 있지 않나. 전기차 시장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오히려 산업을 망칠 수 있다”고도 했다. 4월 18일 코스닥에서 상장폐지된 전기차 제조업체 CT·T에 대한 얘기다.
골프장용 전동카트를 생산하다 2008년 전기차 사업에 뛰어든 CT·T는 이듬해 5월 저속 전기차 ‘이존(e-Zone)’을 개발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명박 대통령 부부가 시승식에 참석했고, 청와대가 3대를 임차해 경내에서 사용해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국회는 최고 시속 60㎞인 ‘이존’이 도로를 다닐 수 있도록 자동차관리법을 개정했고,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도로 곳곳에 ‘이존’만을 위한 ‘저속 전기차’ 전용 표지판까지 세웠다. 당장 전기차가 도로를 질주할 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2010년 우회상장으로 코스닥에 진입한 CT·T에 개미투자자의 자금이 쏟아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청와대에서 전기차를 직접 운전하고 있다.
전기차는 말 그대로 전기를 이용해 움직이는 차를 가리킨다. 전기에너지의 사용 비중에 따라 하이브리드차(H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 순수 전기차(BEV)로 나뉜다. 하이브리드차는 기존 내연기관을 갖춘 차량에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추가 장착한 뒤 주행 상태에 따라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적절히 작동시켜 연비를 높이는 차를 가리킨다. 일본 도요타의 프리우스와 혼다 시빅, 우리나라의 쏘나타 하이브리드와 K5 하이브리드 등이 이에 속한다. 기존 자동차에 비해 연비가 높고 공해물질 배출이 적지만, 내연기관이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전기차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주행거리 23㎞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는 전기를 주동력원으로 사용하지만, 배터리가 방전될 때 화석연료로 주행하는 차량이다. 2010년 출시된 GM의 볼트 등이 여기 속한다. 일반 자동차가 주유를 하듯, 전기 충전을 통해 동력을 공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플러그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순수 전기차는 내연기관 없이 모터와 배터리로만 구성된다. 흔히 ‘전기차’라고 할 때 해당되는 차로, 주행 시 이산화탄소와 대기오염물질이 배출되지 않아 세계 각국이 차세대 승용차로 주목하고 있다. 주행 성능에 따라 다시 최고 시속이 60㎞ 이하인 저속전기차와 그 이상인 고속전기차로 분류하는데, CT·T의 ‘이존’은 저속전기차였다. AD모터스의 ‘체인지’도 이에 해당된다. 반면 2009년 9월 출시된 미쓰비시의 아이미브와 닛산의 리프, 지난 4월 국내 판매를 시작한 기아자동차의 레이 EV와 곧 출시될 르노삼성의 SM3 Z.E. 등은 고속전기차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전기차 산업의 총아로 주목받은 저속전기차가 이 중 가장 상용화 가능성이 낮은 종류라는 점. 최고 시속의 한계와 더불어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짧은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2010년 국립환경과학원이 실시한 주행시험에서 ‘이존’은 1회 충전 후 30㎞ 안팎을 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자동차의 하루 평균 주행거리(약 54㎞)의 절반 수준이다. 출발 지점에서 15㎞가량 운행하면 복귀를 위해 반드시 한 번은 충전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완속충전기를 이용할 경우 충전에만 4시간 이상이 소요되고 급속충전기를 이용해도 20~30분이 걸리기 때문. 충전기를 찾는 것도 어렵다. 2011년 말 현재 서울에 설치된 급속충전기는 25대, 완속충전기를 포함해도 178대에 불과하다.
또 다른 문제는 가격이 비싸다는 점. 고가의 리튬이온배터리를 장착한 ‘이존’은 2200만 원, ‘체인지’는 2100만 원에 시중에 판매됐다. 웬만한 중형차 가격 수준이다. 이에 대해 강태진 서울대 공대 교수는 “현실적으로 이 차를 구입해 타고 다닐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런데 이 차를 위해 관련법을 개정하고, 전국 도로에 표지판을 만드느라 막대한 비용을 들였다. 당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이미 이쪽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고속전기차 기술 개발에 몰두한 상태였는데, 정부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과정에서 관련 산업의 발전을 기대하고 사업 규모를 확대한 기업과 소액 투자자는 큰 피해를 보았다. CT·T 주주들은 소액주주모임을 만드는 등 공동 대응을 준비하고 있지만, 투자 실패를 보전받을 방법은 요원하다. 4년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인 AD모터스의 주주들도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2010년 3월 1만2300원에 달하던 이 회사의 주가는 6월 14일 현재 190원으로 곤두박질친 상태. AD모터스는 최근 주주총회를 열고 광물 수출입 및 판매 등을 사업 분야에 추가하는 등 기업 회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AD모터스 홍보팀 배기행 씨는 “정부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저속전기차가 제한속도 60㎞ 이상의 도로에는 진입하지 못하도록 한 자동차관리법만 개정해도 ‘체인지’의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씨에 따르면 ‘체인지’는 원칙적으로 도로를 달릴 수 있지만, 올림픽대로, 남부순환로, 양재대로처럼 제한속도가 높은 주요 도로에는 진입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정상적인 차량 운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그러나 정부는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차량의 안전성이 일반 차에 비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사고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도로에 진입하면 안 되는 차다. 당시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 차원에서 운행을 허용하면서, 차량 안전기준을 30개 가까이 면제 또는 완화해줬다. 제한속도가 높은 도로에 진입하려면, 이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했다.
서울-부산 1박 2일
반면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가 기술 개발에 뛰어든 고속전기차의 경우 안전성 면에서 내연기관이 있는 차량과 차이가 없다. 4월부터 판매 중인 기아차 레이 EV의 경우 가솔린 모델과 동일한 차체를 쓴다. 최고 속도도 130㎞/h에 이른다. 400㎞가량인 경부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에서 부산 톨게이트 사이의 거리를 최고 속도로 쉬지 않고 달릴 경우 3시간 30분에 완주할 수 있다. 문제는 주행거리다. 이 차의 1회 충전 시 최장 주행거리는 139㎞. 에어컨이나 히터를 틀면 더 줄어든다. 기아차에 따르면 각각 주행거리가 20%와 39% 감소할 정도로 영향이 크다. 출발할 때 배터리를 100% 충전한다 해도 중간에 최소한 3번 이상 추가로 충전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역시 충전 시간과 인프라가 문제다.
레이 EV를 급속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5분. 완속충전 시엔 6시간이 소요된다. 급속충전을 반복할 경우 전기차 배터리의 수명이 단축되기 때문에 하루 2회 이상 급속충전은 삼가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 충전시간만 12시간 25분이다. 충전시설을 오가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주행 거리 등까지 감안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레이EV로 갈 경우 최소 1박 2일은 잡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개발된 전기차는 기존의 차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 ‘세컨드 카’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것도 매우 비싼 ‘세컨드 카’다. 레이EV의 판매가격은 4500만 원으로, 가솔린 모델 레이(1335만~1985만 원)의 두 배가 넘는다. 6월 말 판매되는 중형 전기차 SM3 Z.E.의 가격은 6391만 원에 달한다.
전기차에 대한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판매 대수가 보잘것없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처럼 명확한 기술적 한계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세계에서 가장 큰 차 시장인 미국에서 2011년 판매된 전기차는 1만7000대에 불과하다. 자동차 총판매량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2010년 말 개발된 GM의 전기차 ‘볼트’의 경우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 후 구입하겠다”며 찬사를 보냈음에도 극심한 판매 부진을 겪다가 지난 3월 19일부터 4주간 생산을 중단하기도 했다.
중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중국 정부는 2009년 ‘十城千輛(10개 도시 차 1000대)’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2012년까지 전국 10개의 시범도시에 신에너지차를 1000대씩 보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한국무역협회(KOTRA)의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대표적인 전기차 회사 ‘BYD’가 있는 선전(深土川)시의 경우 관내 2000여 곳에 전기충전시설을 설치하는 등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했지만, 판매 대수가 400여 대에 그쳤다. 이 보고서는 베이징 시가 2008년 올림픽에 맞춰 도입한 전기버스 50대는 이미 운행이 중단됐고, 텐진(天津)시가 도입한 전기버스 20대 중 17대도 고장 났을 정도로 중국의 전기차 정책이 난관에 봉착해 있다고 소개했다.
친환경 미래 기술
그럼에도 세계 각국이 전기차에 거는 기대는 크다. 대기 오염을 줄이고 지구 환경을 보호하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기존의 자동차 기술과 전혀 다른 미래 기술로 향후 자동차업계 재편의 키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는 전기차 시장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앞 다퉈 내놓고 있다. 가장 보편적인 것은 비싼 구입비를 낮춰주는 보조금 지급과 세제 혜택이다. 전황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산업분석연구팀 책임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2015년까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를 포함한 전기차 구매자에게 대당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보험료 10% 감면, 구입비 100% 세금 공제 등의 혜택도 준다. 2020년까지 전기차 50만 대 보급을 목표로 삼고 있는 일본도 전기차 한 대당 최대 139만 엔을 지원한다. 전기차를 운전하면 자동차세 50% 감면 혜택도 받는다. 중국의 경우 취득세 50% 감면과 보조금 6만 위안 지원을 내세우고 있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도 보조금 정책이 있다.
황창규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장(앞)이 기아자동차의 전기차 ‘레이EV’를 충전하고 있다.
기아차와 르노삼성은 이미 레이 EV와 SM3 Z.E.의 양산 준비를 마쳤지만 일반 판매는 하지 않고 있다. 현재는 공공부문만을 대상으로 영업을 진행 중이다. 높은 가격과 부족한 인프라 때문에 어차피 구입이 많지 않을 상황에서 굳이 마케팅 부담을 질 필요가 없다는 속내다. 내년부터 일반인 대상 판매도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르노 삼성 홍보팀 조영민 씨는 “보조금 지급과 세금 혜택, 충전 인프라 구축 등 정부의 정책 진행 방향을 지켜본 뒤 판매시기를 정해도 늦지 않다”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반인이 구입할 수 있는 국산 전기차는 체인지가 유일하다.
기술 국제표준화
이 때문에 정부가 거창한 비전만 내놓을 것이 아니라 전기차 생산과 판매를 확대할만한 현실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2003년부터 무공해차량 의무판매제를 실시해, 자동차업체가 관내에 판매하는 자동차 대수의 일정 비율 이상은 전기차를 판매하도록 하고 있다. 무인자전거 대여시스템 ‘벨리브(velib)’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 시는 2011년 10월부터 전기차 대여시스템 오토리브(autolib)도 시범운영하기 시작했다. 1년에 144유로인 가입비를 내고 회원이 되면, 시내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전기차를 30분당 4~8유로의 이용료만 내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파리시는 2012년 말까지 시내 전역에 1000여 개의 정류소를 세우고 3000대 이상의 전기차를 배치해 대기오염농도를 30% 이상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이러한 인프라가 없는 상태다.
전기차 충전시설이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일반인이 접근하기도 어려운 것도 문제다. 환경부가 지난 4월 만든 전국 ‘전기차 충전정보안내 시스템 홈페이지(http://evms.mecar.or.kr)’에는 서울시내에 전기차 충전기가 59대 있는 것으로 등록돼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관내 충전기가 2011년 말 현재 178대로 계속 늘고 있다고 밝혔다. 환경부 담당자는 이에 대해 “환경부 예산을 받지 않고 다른 부처나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충전기의 위치와 대수는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부 쪽으로 정보를 보내오면 정보를 업데이트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이와 관련한 업무 협조 등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우리나라의 전기차 관련 행정이 지식경제부와 국토해양부, 환경부 및 지방자치단체 등에 분산돼 있어 통일성 있는 정책 수립과 집행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가 주춤하는 사이 선진국은 달려가고 있다. 특히 친환경차 기술 개발에서 앞서 있는 일본은 이미 하이브리드카 시장을 선점했고, 2009년부터 정부 지원 아래 ‘전지 성능·안전성 평가기법의 국제표준화’ ‘충전커넥터·시스템의 국제표준화’ ‘민관협력 표준화 검토체제 강화’ ‘표준화 인재 육성’ 등의 국제 표준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박사는 “도쿄전력과 도요타, 닛산, 미쓰비시 등 주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업체 등 총 84개 일본 회사가 주축이 돼 만든 충전 표준 ‘차데모(CHAdeMo)’에 맞춰 이미 세계 각국의 제조사가 차량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래의 먹을거리
그러나 아직 기회는 있다. ‘그린카 콘서트’를 쓴 전기화학자 박철완 박사는 “전기차가 기존의 차를 대체하려면 주행거리가 최소 서너 배는 늘어나야 하는데 아직 어느 나라 어느 기업도 이걸 가능하게 할 배터리를 개발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마침 우리나라는 배터리 부문에서 앞서가고 있다. LG화학이나 SK이노베이션 등이 생산한 대용량 2차 전지가 세계 자동차업체에 공급된다. 여기서 기술 혁신을 이루고, 완성차 업체의 차량 제조 기술이 더해진다면 진정한 차세대 전기차가 탄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지난해 8월부터 현대차, 서울대, 만도 등 44개 자동차 생산업체, 연구기관, 부품업체 등이 컨소시엄을 결성한 상태다. 여기서 모터, 공조, 차량경량화, 배터리, 충전기 등 전기차 5대 핵심 부품의 성능 개선 프로젝트에 착수했고, 이를 통해 1회 충전으로 200㎞ 이상 주행, 최고 속도 145㎞/n 급속충전 시간 25분인 준중형급 전기차 생산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 남양연구소 이호민 팀장은 “배터리 용량을 혁신적으로 늘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5~6년은 지나야 현실적인 주행거리를 갖춘 전기차를 실험적인 수준에서라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아가 전기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감축해 좀 더 친환경적인 전기차를 개발하는 기술에서 앞서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미 일본은 가정에서 태양광발전 설비로 전기차를 충전하고 차에 저장된 전기를 다시 가정용 전기로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유럽에서도 풍력을 통해 생산한 전기를 전기차에 공급하는 충전 인프라 사업을 진행 중이다. 정동수 한국기계연구원 박사는 “현재의 기술 상황에서 전기차의 장점으로 무공해 및 온실가스 저감을 내세우는 것에는 어폐가 있다. 주행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되지 않을 뿐 일반 화력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사용할 경우 전기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경유차보다 30% 이상 많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전력난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전기차가 확대될 경우 또 다른 에너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내연성 승용차 1700만 대를 전기차로 바꾸면 원자력발전소 22기를 추가 건설해야 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향후 자동차 산업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한 연구와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다국적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가 2010년 11월부터 2011년 5월까지 세계 17개국 소비자 1만3000명을 대상으로 전기차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응답자 중 80%는 ‘전기차를 곧 사고 싶다’거나 ‘언젠가 살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전기차 선진국’으로 불리는 일본(48%), 미국(54%)의 경우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2년간 10명도 구입하지 않을 정도로 전기차를 도로에서 찾아볼 수 없다. 정책의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