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2027년까지 6차 발사, 지속 성공 통해 신뢰성↑
3차까지 항우연 주도, 4~6차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韓, 세계 6위 인도 맹추격 중
2032년 달 착륙, 2045년 화성 착륙
민간주도 발사체·발사장 구축 향해 精進
한국의 첫 번째 달 궤도탐사선 다누리가 보내온 달 표면과 지구 사진. [항우연]
세 번째 단계는 지구 밖 위성이나 행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것이다. 2022년 12월 26일 달 궤도탐사선 다누리가 달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지구를 떠난 지 144일 만에 이룬 쾌거다. 다누리가 달 궤도에서 찍은 지구는 우주 강국으로 가는 길의 항로표지와 같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유럽, 인도의 뒤를 잇는 7번째 우주개발 강국 반열에 올랐다.
2024년부터는 한국형 무인 달착륙선 개발에도 착수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는 지난해 9월 1일 한국형 무인 달착륙선 개발 사업 계획을 공개했다. 과기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2031년 발사를 목표로 총 6184억 원을 투입해 무인 달착륙선을 개발해 달로 보낼 계획이다. 현재 무인 달착륙선을 달에 보낸 국가는 미국, 중국, 러시아뿐이다.
1년 사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지만 우주개발 관련 업계와 학계에서는 “축포를 터뜨리기는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률 항우연 원장도 지난해 8월 10일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한국 우주 개발 실적이) 세계 7위 문턱에 올라섰다”며 “6위(인도)와의 격차가 크지만, 이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누리호 반복 발사로 신뢰성 쌓겠다”
5월 누리호의 3차 발사가 예정돼 있다. 이번 발사는 위성모사체가 아니라 진짜 위성을 탑재한다. 이 위성을 궤도에 올리면 3차 발사는 성공이다. 총 9대의 위성이 누리호에 탑재된다. 차세대소형위성 2호와 한국천문연구원의 날씨 관측 위성 도요샛 4기, 민간 우주기업 루미르·저스텍·카이로스페이스의 위성 각각 한 기씩이다. 성공한다면 이 위성들은 최초로 순수 국내 기술 발사체에 탑재돼 우주에 가게 된다.2025년에는 4차, 2026년과 2027년에는 각각 5, 6차 발사가 예정돼 있다. 성공한 발사체를 계속 쏴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한국형 발사체의 신뢰성 확보다. 방효충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여러 차례 발사를 성공시켜 신뢰성을 확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반복 발사는 외국에 상업용 발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이유는 기술이전이다. 항우연 측 설명에 따르면 3차 발사까지는 항우연이 발사를 주관한다. 4, 5, 6차는 체계종합기업으로 선정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맡는다. 항우연은 기술이전과 발사대 운용을 맡는다. 민간기업과 수차례 발사해 보며 안정적으로 기술이전에 나서겠다는 의도다. 추후에는 발사대 운영까지 민간에 맡기는 것이 항우연의 최종 목표다.
오승협 항우연 발사체추진기관개발부장은 “일부 기업은 누리호 사업 참여로 해외 발사체 사업에 참여가 가능할 정도로 능력을 확보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앞서의 인터뷰에서 “우리(항우연)끼리 하면 올해 2월이면 3차 발사가 가능하다”며 “지난해 12월 선정된 체계종합기업(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기술 전수할 시간이 필요해 올해 5월로 발사를 늦췄다”고 말했다.
민간에 기술 이전하는 이유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지난해 6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이는 그간 한국 우주개발사업의 고질적 문제였다. 한국의 첫 인공위성인 ‘우리별’ 사업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우리별 1호 개발은 1989년 시작됐다. 체신부(현 과기부) 장관을 지낸 최순달 당시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KAIST 학부생 5명을 영국 서리대에 보낸다. 이들은 인공위성 기술을 배워오라는 특명을 받았다. 최 교수는 이들에게 “너희가 공부하는 데 들어간 비용 일부는 시장에서 채소나 생선을 파는 할머니의 전대(纏帶)에서도 나왔음을 기억하라”며 “(인공위성 기술을 습득하는 일에) 실패한다면 도버해협을 건너오지 말라”고 엄포를 놨다.
1992년 8월 11일 남미의 기아나 쿠루우주과학기지에서 우리별 1호를 실은 아리안스페이스의 로켓이 발사되고 있다. [동아DB]
성공의 열매가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일부 언론에서 우리별 1호에 ‘남의별’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100% 외국 부품으로 제작된 위성에 ‘우리별’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정부의 치적 사업일 뿐 실용성은 없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 같은 비판을 막기 위해 1년여 만인 1993년 9월 26일 우리별 2호를 개발, 발사에 성공했다. 우리별 2호는 설계, 제작, 시험까지 전 과정을 KAIST에서 맡았다. 1999년 5월 26일에는 우리별 3호 발사에 성공했다. 우리별 3호는 순수 국내 기술만 사용해 만든 첫 인공위성이다.
‘남의별’이라는 오명은 확실히 떼어냈지만 인공위성 연구센터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1999년 12월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발표한 ‘한국의 국제공동연구 현황 및 전략 방향’ 보고서에 이 같은 내용이 나온다.
“인공위성 연구센터는 그들의 활동이 항우연의 활동과 중복 투자라는 일부 비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선 인공위성 연구센터는 항우연이 사용하는 예산의 100분의 1도 되지 않는 적은 예산을 사용한다. 인공위성 연구센터가 만드는 위성은 상업용이 아닌 실험용이며 인공위성 자체 개발 능력을 축적하는 단계다.”
2000년 1월 과기부는 인공위성연구센터의 연구 기능을 축소하고 구조조정에 돌입해 일부 인원을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별 1호 개발부터 인공위성연구센터와 함께했던 박성동 전 쎄트렉아이 의장은 지난해 8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정부는 인공위성연구센터를 정부출연연구기관에 편입시키려 했다. 그런데 당시 우리 연구소 직원 중 절반은 연구기관의 학력 조건에 미치지 못했다. 우리는 학력보다 ‘인공위성에 미친’ 직원을 뽑았으니까.”
결국 박 의장을 포함한 7명의 연구원은 인공위성연구센터를 떠났다. 2000년 2월 조선일보 기사 ‘추락하는 과학도의 꿈’은 연구원들의 사직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이들의 표면적인 사직 이유는 10년간 축적한 소형위성 개발 노하우를 사업화해 벤처기업을 창업하겠다는 것이지만 실상은 구조조정에 대한 반발로 해석되고 있다.”
인공위성연구센터를 떠난 연구원들은 쎄트렉아이를 창업, 국내 유일 인공위성 수출 회사로 키워냈다. 쎄트렉아이는 2021년 자회사를 포함한 매출이 730억 원을 기록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수출로 발생한 매출이다.
올드 스페이스→뉴 스페이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과기부는 민간에 기술이전을 확대하고 있다. 2013년 항우연이 개발한 나로호에는 150여 개 기업이 참여했다. 누리호 개발에는 300여 개 기업이 참여했다. 예산도 늘렸다. 우리별 1호 발사 당시 한국의 인공위성, 발사체 관련 예산은 각각 55억 원과 25억 원에 불과했는데 올해 관련 예산은 4135억 원(75.2배)과 2144억 원(85.7배)으로 증가했다.민간 주도의 우주개발은 세계적 추세다. 2020년 6월 항우연 주관 ‘2020우주포럼’에서 기조 강연자로 나선 댄 핸드릭슨 애스트로보틱스 부사장은 “그동안의 우주탐사는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국가가 주도하던 ‘올드 스페이스’였다”며 “미래는 민간기업이 적극적으로 우주탐사에 뛰어드는 ‘뉴 스페이스’가 주류를 이룰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스트로보틱스는 달 착륙선을 개발하는 우주로봇 개발 업체다.
댄 부사장의 설명대로 우주개발 선진국은 관련 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항우연은 지난해 9월 ‘주요국의 우주개발관련 민간참여 현황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우주개발 강국 6개국의 우주개발 민간 참여 현황을 살핀 것. 이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미국은 2011년 10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정부기관 기술이전 촉진을 요구했다. 이후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개발 기술을 기업과 학교에 적극 이전하고 있다. 이외에도 우주개발 관련 스타트업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유럽은 2013년 3월 우주산업 육성정책을 발표하고 우주개발 관련 중소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일본은 2007년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주관하던 발사체 사업을 미쓰비시 중공업으로 이관, 민간사업으로 완전 전환했다.
중국은 2014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혁신이 필요한 핵심 분야’로 우주개발을 꼽으며 민간자본이 우주개발에 투자할 수 있도록 시장을 개방했다. 반면 러시아는 러시아우주공사(ROSCOMOS)라는 공기업을 설립해 우주개발을 전담하도록 했다. 인도 역시 ‘인도우주개발기구(ISRO)’가 우주개발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윤영빈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사실 과거에는 ‘우주에서 민간이 경제적 이익을 만들어갈 수 있겠느냐’는 답을 찾지 못해 뉴 스페이스가 제한적이었다”며 “앞으로는 우주개발 수요도 늘어나고 무엇보다 민간이 우주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에서 뉴 스페이스가 중요해지고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발사체·인공위성은 ‘입장권’
한국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세계 우주산업의 규모는 3710억 달러(460조 원). 이 중 위성산업의 규모가 2706억 달러(335조 원)로 전체 우주산업의 73%를 차지한다. 위성 산업은 △지상 장비 △위성서비스 △위성체 제조 △발사체로 나뉜다. 이 중 위성항법 장비 등 지상 장비가 위성산업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 뒤를 잇는 것이 위성 서비스(43.5%) 분야다.박성동 전 의장은 쎄트렉아이의 창업을 다룬 책 ‘쎄트렉아이 러시’에서 지금의 우주개발 산업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세계 우주개발 산업 규모는 약 400조 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인공위성과 발사체가 차지하는 시장은 5%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95%의 시장은 통신 단말기나 영상 데이터 서비스 및 활용 분야다.”
5%의 시장이지만 발사체와 인공위성 개발은 우주개발의 입장권 역할을 한다. 업계 관계자는 “인공위성 관련 산업이 규모가 크지만, 결국 인공위성을 띄우려면 발사체가 필요하다”며 “현재 세계 각국은 더 싸고 빠르게 인공위성을 우주로 보낼 발사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주발사체의 발사 횟수는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조너선 맥도웰 미국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센터 연구원은 1월 6일 지난해 전 세계의 우주활동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186회의 우주발사체의 발사가 시도됐고, 그중 180회가 성공했다.
2015년 84회이던 성공 횟수는 2018년 112회로 늘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19~2020년 발사 시도와 성공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2021년 136회, 지난해 180회로 최근 급격히 다시 늘고 있다
국가별 우주발사체의 성공 횟수는 미국이 76회로 가장 많았다. 이 중 민간기업인 스페이스X가 쏘아 올린 발사체만 61개다. 중국도 기업과 정부가 협력해 총 62개의 발사체를 성공시켰다.
민간산업 육성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러시아는 성공 횟수가 21회에 그쳤다. 중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맥도웰 연구원은 “중국이 제2의 우주 강국으로 러시아를 대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은 지난해 우주발사체를 5회 쏘아 올리며 2021년 15회보다 급감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며 ESA(유럽우주국)가 러시아에서 개발한 로켓 발사를 중단한 것이 원인인 것으로 지목된다.
발사체 개발 나선 韓 민간기업 등장
우주 발사체 스타트업 이노스페이스가 자체 개발한 우주발사체 ‘한빛-TLV’. 왼쪽에 김수종 이노스페이스 대표와 직원들이 서 있다. [동아DB]
이미 발사체 개발을 시작한 한국 기업도 있다. 우주 발사체 스타트업 이노스페이스는 지난해 12월 자체 개발한 우주 발사체 ‘한빛-TLV’의 시험발사에 실패했다. 점검 결과 발사장 안전관리 시스템과 한빛-TLV 점화 시스템 간 동기화 오류가 원인인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이노스페이스는 올해 상반기 내로 다시 시험발사에 도전할 계획이다.
오태석 과기부 1차관은 지난해 12월 20일 브리핑에서 “(국내에는) 아직 민간 발사장이 없다. 관련된 발사 허가와 규제가 많이 정비돼야 한다”며 “이 밖에도 민간의 우주개발 참여를 위한 여러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어머니 사랑 안에서 지구촌의 화합과 평화 구현할 것”
선한 말, 행동, 마음으로 행복을 일구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