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롱(戱弄)은 손아귀에 넣고 제멋대로 가지고 놂을 가리키는 한자어다. 사람을 성적으로 갖고 노는 게 성희롱. 여럿이 성적 언동을 일삼으며 서로 즐기면서 놀리거나 노는 예도 있다. 이 몹쓸 행동을 주제로 성희롱 예방 교육 전문가인 장윤경 갈등경영연구소 소장과 대화를 나눴다.
성희롱 예방 교육 전문가 장윤경.
아저씨들의 주된 간섭 대상은 주로 젊은이와 여자, 더 좁게는 젊은 여자에게 쏠리는데 그 관심 영역도 의상과 몸매, 취미 등 다양하다.
“아가씨들 옷차림 리버럴하네~.”
“하체가 축구선수 해도 되겠어, 관리 좀 하지.”
물론 여동생 같고 딸 같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을 터다. 그러나 과유불급. 관심이 지나치면 상대는 원래 없던 정까지 다 떨어진다.
게다가 이건 좀 비겁하다. 아저씨들의 간섭은 솔직히 ‘만만한’ 대상에 쏠리지 않는가. 상사에게 “요즘 갈수록 머리가 휑해지시네요”라거나 “상무님, 오늘 넥타이는 좀 촌스러운데 바꾸시는 게 어떨까요” 같은 말을 스스럼없이 뱉을 수 있을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보시라.
“None of your business.”
당신의 기준이 진리는 아니며, 배려와 고민 없이 뱉은 충고는 상대의 반감만 살 뿐이다. 더불어 이런 간섭은 당신의 ‘꼰대’ 이미지를 완성하는 데 한몫할 터다. “너나 잘하세요”란 말이 괜히 유행했던 게 아니다.
“옷차림 리버럴하네~”
성희롱을 즐기는 남자들은 “여자들도 좋아한다”고 우긴다. 음담패설은 삶의 윤활유며, 몸에 대한 농담은 유머란다. 가슴에 손 얹고 한번 생각해보자. 상사와 함께 목욕한 뒤 “물건이 참 깜직하시네요” “엉덩이가 앙증맞으세요”라고 내뱉을 용기가 있는지, 머리칼이 벗겨진 상사에게 “대머리는 정력이 좋다던데, 갈수록 휑해지시네요”라면서 키득거릴 수 있는지.
▼ “옷차림 리버럴하네~” “축구선수 해도 되겠어” 같은 말도 성희롱이라고 봐야 하나요?
“1999년 성희롱 관련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성희롱은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입니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성적인 말이나 행동으로 성적 굴욕감 혹은 혐오감을 느끼게 했고, 합리적인 사람의 관점에서도 피해자가 굴욕이나 혐오를 느꼈으리라고 판단되면 성희롱이라고 볼 수 있어요. ‘옷차림이 리버럴하네~’ ‘축구선수 해도 되겠어’라는 말에 성적인 의미가 담겼고, 이 말을 듣는 상대방이 수치심을 느꼈다면 성희롱이 될 수 있어요.”
▼ 성희롱의 정의는 뭔가요?
“성희롱은 직장에서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해서 성과 관련한 말 혹은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굴욕적 느낌을 갖게 하는 행위와 그와 관련해 고용상의 불이익 등 유무형의 피해를 주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성희롱은 불법행위란 걸 꼭 명심하셔야 해요.”
다음은 숙지하면 좋을 법조문 2개다. 다소 딱딱하더라도 읽어보시라.
‘남녀고용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2항 : 사업주, 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해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인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그밖의 요구 등에 대한 불응을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5항 : 업무, 고용 그밖의 관계에서 공공기관 종사자,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그 직위를 이용해 업무 등과 관련해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그밖의 요구 등에 대한 불응을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 성희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뭔가요?
“앞서 설명했듯 상대방이 원치 않는 성적 언동을 해서 그 사람이 성적 굴욕 혹은 혐오를 느꼈다면 그것이 성희롱입니다. 합리적인 사람의 관점으로 사안을 들여다본 뒤 성희롱 여부를 판단합니다.”
▼ 기준이 너무 막연한 것 아닌가요. 스타일리시한 치마를 입은 후배에게 “다리가 늘씬한 게 어트랙티브하다”란 말도 못 하나요. 이런 표현은 객관적 평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남자들이 그렇게 주장하곤 하죠. 성희롱 예방교육 때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아요. 어떤 사람들은 객관적 평가라고 주장하면서 그런 말을 하지만 강조했듯 듣는 사람이 성적인 굴욕감을 느꼈다면 성희롱일 수 있어요. 기자 분도 그런 발언에 성희롱적 측면이 있다고 여겨서 질문한 것 아닌가요? 상황에 따라 상대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언행이라면, 또 대상이나 장소, 그리고 때에 따라 성희롱 성립 여부가 불분명한 언행이라면 하지 않는 게 좋겠지요.”
性的 소문 유포도 성희롱
▼ 외모에 대한 평가나 비유도 맥락에 따라서 성희롱이 될 수 있다는 거네요?
“그렇죠. 전체적 상황이나 총체적 맥락으로 판단해서 그런 경우도 성희롱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성희롱은 가해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언행했는지가 아니라 피해자가 어떻게 느꼈는지, 즉 피해자의 관점에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신체의 특정부위와 관련해 성적 비유를 했다면 굴욕감을 느낄 수 있겠죠”
▼ ‘탱탱하다’ 같은 표현이 그럴 수 있겠네요. 하지만 기준이 더욱 명확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법조문 자체가 모호해요.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는 합니다. 기준이 주관적이라는 얘기도 있고요. 성희롱은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입니다. 또 여성 고용을 불안하게 하고 노동권을 침해하는 사안이죠. 직장에 그런 문화가 만연해 있었기 때문에 각계에서 법제화를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희롱 관련 조항을 만들 때 말씀한 것처럼 성희롱을 판단하는 기준의 예시나 유형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남녀고용평등법 시행규칙에 추가로 성희롱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거기에 언급된 성희롱 유형은 ‘언어적 성희롱, 육체적 성희롱, 시각적 성희롱, 그리고 그 밖에 사회통념상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언어나 행동’입니다. 예컨대 언어적 성희롱은 음란한 농담, 음탕한 얘기를 하거나 앞서 언급한 외모에 대해 성적인 비유나 평가를 하는 행위가 대표적이죠. 성관계를 강요하거나 회유하는 말을 하는 건 두말 할 나위도 없고요. 상대방의 성적인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는 것도 잘못이고요. 회식자리에서 옆에 앉혀 술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도 안 돼요.”
▼ 남녀가 섞인 회식자리에서 음담패설을 하면 절대로 안 되겠군요?
“그렇죠. 남녀가 함께 있는 회식자리뿐 아니라 여성만 있거나 남성만 있는 회식자리에서도 특정인이 원하지 않는 음담패설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남성, 여성 구분 없이 특정인이 성적 혐오감이나 굴욕감을 느꼈다면 성희롱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불쾌하게 여길 음담패설은 하지 않는 게 성희롱을 예방하는 길이 되겠지요. 또 부적절한 장소에서 회식을 해서도 안 되고요.”
A사 직원들은 외국인 엔지니어 접대 목적으로 회식을 가졌다. 식사를 마친 뒤 ‘섹시 바’에서 2차로 술을 마셨는데, 여자 종업원들이 검정색 속옷만 입고 술, 안주를 날랐다. 트랜스젠더 여성들의 스트립쇼 공연도 있었다. 이 회사 직원 B씨는 “섹시 바 술자리는 성희롱”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했고, 인권위는 A사가 B씨에게 손해배상금으로 200만원을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 야한 농담을 좋아하는 여자도 있는 것 같던데요.
“그건 너무나 자의적인 해석이 아닐까요? ‘여자들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게 대표적으로 잘못된 성문화예요. 여자는 만져주면 좋아한다, 남자는 만져주면 좋아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자의적 해석이죠. 남자후배가 여자선배의 농담을 듣고 성적 굴욕감을 느꼈다면 그것도 성희롱이 될 수 있어요.”
회식자리에서 술을 따르라고 권유하는 것은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2004년 나온 적이 있다. 2002년 9월 경북의 한 초등학교 교감이 회식자리에서 여교사 3명에게 “교장 선생님께 술을 따르라”고 권유한 일과 관련한 재판에서다.
성희롱적 술문화
▼ 회식자리에서 ‘술 따르라’고 권유하는 것은 성희롱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법의 해석은 판례로 남아 성희롱의 판단 기준을 제시하면서 성희롱에 대한 가치 기준을 만듭니다. 따라서 그 파급 효과는 엄청나죠. 사례 하나 하나에 의미가 부여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례는 성희롱을 근절해 ‘일할 맛 나는 직장’을 꾸리고자 한 성희롱 관련법의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회식자리에서 술 따르는 것이 성희롱인지, 아닌지에 집중했을 뿐이지 회식자리에서 성희롱이 발생하는 맥락이나 문화를 들여다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 판결만 보고 회식자리에서 술 따르라 요구하는 게 성희롱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 그건 한국의 술문화 아닌가요? 남자후배에겐 술 따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보시면 안 되죠. 술문화도 모든 이가 즐길 수 있는 건전한 문화가 있는 반면 많은 이를 불쾌하게 하는 문화도 있는 겁니다. 모든 술문화가 문화로서 인정받는 건 아니지요. 성희롱 논의의 중심에 선 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술문화예요.”
▼ 여성의 종아리를 쳐다보는 것도 성희롱인가요?
“쳐다보는 것만으로는 성희롱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특정 신체부위를 빤히 쳐다보거나 전신을 훑어보면 문제가 될 수 있죠. 당사자가 불쾌하다고 말했는데도 반복적으로 쳐다보면 시각적 성희롱이고요. 외설적인 사진, 그림, 낙서, 동영상, 출판물을 보여주는 것도 그렇고요. 자신의 특정 신체부위를 노출하거나 상대가 보는 앞에서 특정 부위를 만지는 행위도 시각적 성희롱입니다. 포르노그래피를 혐오스러워하는 남자직원에게 상사가 ‘함께 보자’고 강요하는 행위도 성희롱이고요.”
남성을 상대로 한 성희롱은 여성 비율이 높은 기업에서 주로 발생한다.
▼ 남자가 남자에게, 여자가 여자에게 하는 성적 언동도 성희롱이 될 수 있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성적 굴욕감을 줄 수도 있죠. 그런 경우는 실제로 잘 일어나지 않지만요.”
▼ 여자가 여자를 성희롱한 사건으로는 어떤 사례가 있나요?
“2006년 인권위가 성희롱이라고 판단한 사건이 있습니다. 어떤 여직원이 다른 여직원이 누구와 잠자리를 했다는 식의 소문을 유포한 사건이었죠.”
장 소장이 언급한 사건에서 가해자는 회사 인터넷 게시판에 수년 전 성희롱 사건 때 피해자가 그 사건의 가해자를 협박해서 내쫓았다는 글을 올렸다. 이 가해자는 또 피해자가 “남성과 모텔에 들어가는 걸 봤다. 수년 전 성희롱 사건의 당사자들과도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인권위는 이 사건을 성희롱이라고 판단했다.
▼ 성적 소문을 퍼뜨리는 것도 성희롱이군요.
“‘그 여자는 내 거니까 건드리지 마라’ 같은 말을 동료에게 했는데, 둘의 대화내용을 그 여성이 알았다면 성희롱이 될 수 있습니다. 남에게 말한 게 당사자에게 전해진 경우죠.”
▼ 남성이 남성에 대한 성적 소문을 퍼뜨리는 것도 마찬가지겠군요.
“그렇죠. 동성 간이라도 피해를 입었으면 신고할 수 있어요.”
▼ 술에 취해 가슴을 만지거나 춤추자고 팔을 잡아채는 행동은 당연히 성희롱이겠죠?
“그건 성추행이 될 수도 있죠.”
MBC 드라마 ‘늑대 사냥’.
“춤추자고 제안할 수는 있죠. 그러나 상대가 싫다고 답했는데, 팔을 잡아당기거나 강요하면 안 되죠.”
육체적 성희롱은 입맞춤, 포옹, 뒤에서 껴안는 행위, 가슴 혹은 엉덩이를 만지는 행위, 안마나 애무를 강요하는 행위가 해당한다. 대화 도중 허벅지에 손을 얹거나 툭 치는 행위도 성희롱이 될 수 있다.
▼ 어깨를 주물러주는 것도 잘못인가요?
“상대가 성적 굴욕을 느꼈다면 잘못이죠.”
▼ 여자상사가 남자후배의 어깨를 주무르는 경우는요?
“남자가 성적 굴욕을 느꼈다면 그것도 성희롱이 될 수 있죠.”
같은 행동이라도 맥락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다르게 마련이다. 그는 성희롱 관련법의 판단기준, 성립요건에 의거해 성희롱 여부를 판단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한다. 법이 명시한 사항은 기본적인 것이고, 그 법을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시각의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를 다르게 판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는 “지금은 법을 통해 성희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사랑하는 것도 죄?
▼ 여성을 ‘아줌마’ ‘○○양’‘야! ’ 등으로 부르는 것도 성희롱이 될 수 있나요.
“성희롱이 아닙니다. 직책이 있는 여성에게 ‘아줌마 서류 좀 가져와’ ‘아줌마는 역시 안 돼’ 같은 말을 하면 그건 성차별이죠. ‘장양 복사 다 됐니?’ 식으로 묻는 것도 성차별이겠고요. 그런데 성차별이 심한 직장일수록 성희롱 발생 빈도가 높아요. 여성을 비하하는 문화가 도사린 조직에서 성희롱이 발생하기 쉽다는 겁니다. 성희롱을 예방하는 지름길은 직장의 성차별적 문화를 바꾸는 거예요”
▼ 직장 상사가 “데이트 한 번 하지?” “영화 보러 갈래”라는 식으로 따로 만날 것을 요구하는 것도 성희롱인가요?
“여성이 원하지 않는데 지속적으로 그랬다면 성희롱이라고 봐야겠죠. 또 상사의 그런 행동에 거부 의사를 나타냈는데도 계속됐다거나 제안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했다면 성희롱이라고 봐야 합니다.”
▼ 실제로 짝사랑할 경우에도 그런가요?
“가해자가 짝사랑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상대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느냐에 따라 성희롱이 성립될 수 있어요.”
C씨는 입사 직후부터 부장 D씨에게서 구애를 받았다. “콘서트 보러 가자” “별거 상태다. 외롭다. 다시 사랑하고 싶다”는 말도 들었다. C씨는 “내년에 결혼할 사람이 있다” “따님이 두 분이라고 들었는데, 따님이 부장님 같은 분과 결혼한다면 어떤 기분일 것 같으세요”라고 거절의 뜻을 밝혔다. C씨가 만남을 거절하자 부장은 일에서 그를 소외했다. 여성부는 “D씨가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의 거부 의사를 알면서도 지속적으로 데이트를 요구했다. C씨가 D씨의 언동에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꼈다고 본다”고 판단했다.
▼ 이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사랑할 때는 다르다고 여겨지는데요?
“사랑하는 사이더라도 듣거나 보기를 원하지 않는 성적 언동은 불쾌하게 느껴질 겁니다.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강할수록 그런 언행이 더 불쾌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사랑하는 대상에겐 성희롱하기보다는 배려하고 아껴주고 싶지 않을까요? 제 석사 논문 주제가 ‘데이트 성폭력’입니다. 당시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랑이 깊을수록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성적 행동, 즉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상대가 자신을 성적 대상화했다고 느끼거나 성희롱 피해를 당했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상대를 희롱한 거라고 볼 수 있겠지요.”
“젖꼭지 꼬집힌 순간 죽고 싶었다.”
▼ 총각이 처녀에게 앞의 직장상사처럼 행동했을 때는요?
“지위와 업무를 이용해서 그런 식으로 접근했다면 마찬가지로 성희롱이죠. 성희롱을 판단하는 데 결혼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혼이든지, 미혼이든지 상대에게 굴욕감, 혐오감을 갖게 하면 성희롱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쁜 여성이 와서 혹은 잘생긴 남성이 와서 성적 언동을 하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녀인데 서로 좋겠지 뭐’라고도 하고요. 이런 생각이 바로 성희롱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사람의 관점에서 상대방의 불쾌한 성적 행동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 여성상사가 남성 부하직원에게 비슷하게 접근했을 때도 성희롱이겠군요.
“그렇죠. 하지만 그런 일은 별로 안 일어나죠. 대부분의 성희롱은 남성이 가해자입니다. 하지만 여성 상사가 많거나 여성직원 비율이 높은 기업에서 남성이 피해를 당하는 예도 보고됩니다. 여성 상사가 친동생 같다거나 귀엽다면서 남성 부하직원의 엉덩이를 토닥거리면 성희롱이죠. 남자는 성희롱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은 잘못된 거예요. ‘남자답게’ 혹은 ‘사나이답게’ 넘어가라는 주위의 반응 때문에 피해자가 더 큰 후유증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성희롱을 당한 남성이 배상받은 것은 2004년 5월 E씨 재판이 처음이다. E씨는 여자 200명, 남자 7명으로 이뤄진 기업에서 일했다. 여자 선배들은 “야, 몸 야한데, 끝내주겠다” “얘는 내 꺼야” “영계 같아서 좋다”고 희롱했다. 그는 선배들에게 불쾌감을 드러냈으나 성희롱 빌미 제공자로 몰려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는 “젖꼭지 꼬집힌 순간엔 죽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E씨와 비슷한 일을 겪는 여성은 수없이 많아요. 성희롱 피해자가 빌미를 제공했다거나 유혹했다는 식으로 몰아세우는 거죠. 성희롱 관련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그런 일이 벌어져요. 신고한 여성이 두 번 고통 받아서는 안 됩니다.”
▼ 성희롱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보통 때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성희롱은 주로 직책이 높고, 나이가 많은 상사가 직위가 낮고 나이가 어린 직원을 상대로 저지릅니다. 내가 통제한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잘못을 행하는 거죠. 평상시 의사표현을 정확하게 해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끔 하는 게 예방을 위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성적 언동이 있을 때는 이의를 제기해야 합니다. 성희롱 가해자는 자신이 한 언행이 친밀감의 표시라거나 해도 되는 행동이라고 주장합니다. 피해자가 가만히 있으면 좋아한다고 오해하기도 하고요. 그러므로 성적 언동이 있을 때는 정확하게 지적해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해자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희롱 피해가 발생했다면 세 가지 통로를 통해 해결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거부의사를 표시하고 중단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소속 회사나 기관에 의뢰해 해결을 요구하는 게 또 다른 방법이고요. 성희롱 관련법에 의거해 모든 회사, 기관은 성희롱을 예방하고, 해결할 법적 책임, 의무를 가졌어요. 끝으로 법적 구제를 요청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노동부나 인권위에 진정해 해결책을 찾는 방법이 그것입니다.”
▼ 가해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회사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문제예요. 가해자는 가벼운 처벌을 받고 피해자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누명을 쓰는 예가 아직도 있어요. ‘네가 꼬셨지?’ 하는 식으로요. 술 핑계를 대는 경우도 많고요. 가해자 처벌이 굉장히 미약합니다. 회사 재량껏 벌하게 돼 있어요. 회사가 해고했는데 부당해고라고 회사를 역고소해서 면죄부를 받은 사례도 있습니다. 많은 가해자가 ‘나는 억울하다’고 그러죠. 별로 잘못한 게 아닌데 재수 없게 말려들었다는 식으로요. 여러 번 강조했듯 성희롱은 분명히 불법행위입니다. 가해자는 사건을 숨기거나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희롱 문제를 제기해서 괜스레 회사가 시끄러워졌다며 피해자를 비난하는 곳도 있죠. 성희롱 사건을 처리할 때 회사나 기관의 인식 수준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성희롱에 대한 기관, 회사의 인식 수준을 높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소름 끼치도록 싫은 기분
장 소장은 1993년 발생한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때 공동대책위원회에서 실무책임자로 일했다. 2002년 발간한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백서는 분량이 1500쪽에 달한다. 그는 1993년부터 2003년까지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면서 이 사건을 처리했다.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은 성희롱 관련법이 만들어지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만연해 있지만 드러나지 않던 성희롱이 그 사건을 계기로 사회문제로 부각됐죠. 성희롱을 막으려면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했고요.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1999년 남녀고용평등법과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에 직장 내 성희롱 규제조항이 신설됐습니다. 그 결과 성희롱이 불법행위로 받아들여졌고 직장 내 성희롱 예방과 관련해 사업주의 책임도 강조됐습니다. 법정교육으로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도록 의무화했고요.”
▼ 혹시 성희롱을 직접 당한 적이 있나요?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성희롱을 당한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회식자리의 분위기를 고조하겠다는 생각으로 음담패설을 외워와 듣는 사람 기분 고려하지 않고 신나게 말하던 어떤 선배를 보면서 불쾌하던 기분, 한두 번 개인적 이야기를 나눴다고 친밀감을 느꼈는지, ‘요새 사는 게 힘들지 않아?’ 하면서 어깨를 토닥이면서 등을 쓸어내릴 때 소름 끼치도록 싫었던 기분. 성희롱 관련법이 만들어진 지 10년이 됐는데도 성희롱이 친밀감의 표현이라거나 장난 삼아 그랬다거나, 술에 취해서 기억이 없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정도 행동을 성희롱이라고 하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여기는 풍조도 있습니다. 그 누구도 성희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어떻게 하면 성희롱이 줄까요?
“무척이나 어려운 질문이면서 정답이 보이는 질문입니다. 정답이 보이는 까닭은 누구도 성희롱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성희롱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고, 직장에서 마음 놓고 일할 수 없도록 하는 노동권의 문제라는 걸 누구나 ‘머리’와 ‘마음’으로 인정한다면 단 한 건의 성희롱도 용납하지 않는 사회가 될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어렵다는 겁니다. 성희롱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려면 법의 실효성을 높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법 조항 개정이 이뤄져야 하고요. 또 성희롱이 발생하지 않게끔 예방 활동을 강화해야 합니다. 특히 여성을 차별하는 분위기가 사라져야 해요. 성희롱 예방은 가해자만 처벌해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사회, 조직의 구성원 모두가 노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