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가 오르자 대주주들 대량 매도…리서치 시작
- CNK 조사하던 금감원 국장은 김은석 대사 후배로 교체
- “외교부가 한나라당 의원에게 국회 감사 저지 로비했다”
- 조직적 축소 은폐 시도…“굉장히 큰 힘이 작용”
- ‘사사건건 나댄다?’ 쇄신에 실패했기 때문 아니겠나
한나라당을 탈당해 무소속이 된 정태근(48) 의원은 18대 국회 내내 쇄신을 외쳤다. 언론은 항상 그에게 ‘쇄신파’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너무 나댄다’는 비아냥거림도 있었다. 이명박(MB) 정부 출범에 큰 역할을 한 만큼, 혁명이나 쿠데타를 시도할 명분과 세력도 없는 그에게 어쩌면 쇄신은 고육지책일 수도 있겠다. 쇄신파 정태근은 지난해 말 단식이라는 마지막 쇄신 투쟁을 벌이고 분골쇄신했다. 쓸쓸히 당을 떠났으니 말이다.
카메룬 다이아몬드 추정 매장량이 과장된 것을 알고도 두 차례 보도자료를 내 주가를 올린, 이른바 씨앤케이인터내셔널(이하 CNK) 주가조작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이도 정 의원이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MB 정부의 실세를 겨냥한 이러한 정치활동도 쇄신이다.
“CNK 사건 때문에 지역구 선거활동을 제대로 못했다”며 허탈해하는 그와 2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마주 앉았다.
▼ CNK 사건에 대한 문제 제기를 처음 했는데….
“그동안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서 많은 활동을 했다. 지경위 초기 에너지협력외교 관련 활동도 많이 했고, 광물자원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러던 중 2010년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외교부가 공시되지 않은 내용(매장량)을 포함해 장중에 보도자료를 냈다. 그런데 2010년 12월 말부터 주요 주주들이 주식을 대량 매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리서치하게 됐고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전자공시 앞서 정부가 투자정보 발표
그의 말처럼 2010년 12월 17일 김은석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대사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보도자료 내용을 설명했고, 회사 측은 그날 오후 3시경 한국거래소 전자공시시스템에 개발권 획득 사실을 공시했다. 투자자들에게 상장기업에 대한 투자정보를 제공하는 공시에 앞서 정부 부처가 관련 내용을 장중에 발표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1월 26일 감사원 감사 결과부터 살펴보자. 감사원에 따르면 김 대사는 2010년 12월 CNK가 최소 4억2000만 캐럿에 달하는 카메룬의 다이아몬드 개발권을 획득했다는 보도자료의 작성·배포를 주도했다. 1차 보도자료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CNK가 카메룬 동남부 요카도마 지역 다이아몬드 개발 사업을 추진해 2010년 12월 16일 개발권을 획득했다. 추정 매장량은 최소 약 4.2억 캐럿(1995~97년 UNDP 조사 및 2007년 충남대 탐사팀 탐사 결과)으로 세계 연간 생산량은 약 1.7억 캐럿이다. 민간이 선도하고 정부가 뒷받침하는 민관 자원개발협력의 성공모델을 만들었다.”
보도자료에서 추정 매장량은 유엔개발계획(UNDP) 조사와 충남대 탐사 결과를 근거로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 “이는 CNK 자체 탐사 결과이며, 발파조사 결과 평균 품위는 당초 추정 매장량의 17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김 대사는 알고 있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그러나 2011년 6월 언론이 “확인되지 않은 추정 매장량을 섣불리 공표해 회사 주식을 매수한 개인이 피해를 보았다”고 보도하자, 외교부는 6월 28일 2차 보도자료를 냈다.
“카메룬 정부도 탐사과정에서 ‘엄격한’ 대조검토(Cross-Check)를 했다. CNK는 개발협약 체결 협상 시 매장량이 명시된 탐사종합보고서를 카메룬 정부에 제출했고, 카메룬 정부가 개발권을 부여한 것은 이 보고서를 공식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결국 1차 보도자료 배포 전일(2010년 12월 16일) 주당 3465원이던 CNK 주가는 2011년 1월 10일 1만6100원으로 4배 이상 급등했고, 2차 보도자료 배포 전날(2011년 6월 27일) 주당 7400원이던 주가는 8월 19일 1만8500원으로 2.5배 상승했다. 오덕균 CNK 대표는 주식을 팔아 51억 원의 이익을 봤다. 이 과정에서 김 대사의 동생과 측근, 광물자원공사 팀장 등도 상당한 이득을 얻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박 차장은 곧 경질될 것”
이에 앞서 오 대표는 여러 차례 총리실을 방문해 박영준 당시 총리실 국무차장과 조중표 국무총리실장 등을 상대로 탐사개발 사업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민간기업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고, 조 실장은 2009년 1월 퇴임 직후 CNK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박 전 차장은 2010년 5월 에너지협력외교 아프리카 대표단 단장 자격으로 카메룬 총리를 만나 다이아몬드 개발권 심사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이미 정 의원이 제기한 의혹이었다. 이어지는 정 의원의 말이다.
“CNK의 카메룬 사업은 자원개발의 정상적 코스도 아니었고, 매장량도 확인된 것이 전혀 없었다. CNK 주가 급등이 총리실의 자원외교와 관련돼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다.”
▼ 총리실 자원외교? 박영준 전 차장을 염두에 둔 말인가.
“그렇다. 감사원 감사에도 나오지 않았나. 박 전 차장은 2010년 2월 오 대표를 만나 사업추진현황을 보고받고, 에너지협력외교 단장 자격으로 카메룬 총리를 만나 다이아몬드 개발권 심사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예정에 없던 (다이아몬드 개발권 부여를 위한 관계부처 협의인) ‘마이닝 컨벤션’에 참석해 축사도 하지 않았나.”
그러나 감사원은 “김 대사가 허위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박 전 차장과 일부 협의한 정황을 포착했지만 직접 개입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특정 민간회사 다이아몬드 개발사업에 전문기관 확인 없이 지원활동을 하고 홍보를 해 특혜를 주고, 정부 신뢰를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결국 공을 넘겨받은 검찰이 박 전 차장의 연루의혹을 밝히는 게 수사의 최대 관심사가 됐다.
▼ 최근 라디오에 출연해 지난해 2월 이미 청와대가 CNK 사건을 조사했다고 했다.
“2011년 1월 내가 직접 청와대에 문제 제기를 했다. 이 문제는 1만3000여 명에 달하는 소액주주가 있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특별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누구에게 문제 제기를 했나. 민정수석인가?
“아니다.”
▼ 그럼 누구인가.
“그건 밝힐 수 없다. 다만 고위직 인사임은 분명하다.”
그는 이마에 오른손을 가져다대며 잠시 고민하는 듯했지만 끝내 말하지 않았다.
▼ 그래서 연락이 왔나?
“나중에 (연락이) 왔다. 민정수석실에서 광범위하게 이 문제를 조사했고, 대통령에게도 보고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박 전 차장(당시는 지식경제부 차관)이 곧 경질될 것이라고 했다. 민정수석실에서 조사한 것은 분명하다.”
정 의원은 지난해 8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총리실과 외교부 고위 공무원이 CNK 주가조작 의혹 사건에 연루돼 있다”고 처음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곤 권재진 법무부 장관에게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있을 때 보고를 들었느냐”고 물었고, 권 장관은 “그런 문제점이 있다고 해서 물의를 빚지 않도록 조치했다”고 답했다. 청와대가 공무원들이 CNK 주가 조작 의혹에 관련됐다는 사실을 파악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그런데 박 전 차장은 지난해 5월 총선 출마를 위해 사임하지 않았나?
“3월이 지나도 박 전 차장 경질과 관련해 아무 소식이 없었다. 일단은 참았다. 박 전 차장이 5월에 사임하고, 6월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하니까 외교부는 2차 보도자료를 냈다. ‘이건 아니다’ 싶어 국회에서 따져 물었다.”
정 의원은 “참 이상했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외교부의 거짓말
2011년 11월 13일 한미 FTA 합의 비준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정태근 의원 . 정 의원은 다음달 김성식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 자료가 없다? 그럼 어떤 근거로 추정매장량을 명기한 보도자료를 냈단 말인가.
“나중에 UNDP의 95~97 보고서를 보니 다이아몬드 매장량에 관한 자료는 없었다. 자원개발에 관한 환경개발 관련 내용이었다. 그래서 (외교부에) ‘왜 없느냐’고 했더니 85~87 보고서에 있다고 하더라. 역시 거짓말이었다. 거기에도 관련 내용은 없었다. 박석환, 민동석 (외교부 1,2) 차관에게 자료를 요구했더니 역시나 ‘구하고 있다’고 하더라. 앞뒤가 맞는 말인가. 이미 외교부가 자료에 근거한 보도자료를 내놓고, 근거 자료를 요구하니까 ‘구하고 있다’니….”
정 의원은 인터뷰 나흘 뒤 외교부 김경수 국제경제국장(현 주중 경제공사)의 2011년 1월 브리핑 동영상을 입수해 기자에게 보내왔다. 다음은 그 요약.
“매장량이 최소 4.2억 캐럿인데, 최소는 진짜 최소로 잡아서 그렇다더라고요. 이게 2배, 3배가 될지 모른다고 하던데 매장량은 UNDP 조사 결과랍니다…국내 산업용 다이아몬드는 수입하는 게 매년 5000~6000캐럿인데, 수입대체 효과 같은 게 기대되고 여기서 끝이 아니라 개발하는 데 우리 기업들의 진출과 연관될 수 있습니다. 박영준 (전) 국무차장이 그쪽 방문도 하고 좋은 민관협력 파트너십으로 해서 광권을 따내는 결과가 있었고….”
▼ 외교부가 왜 그랬다고 보나.
“외교부 역시 권력 실세의 눈치를 보면서 이 사건을 묵인, 동조한 거 아니겠나. 이해는 간다.”
정 의원은 2월 13일 추가 전화 인터뷰에서도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
“외교부는 카메룬 정부가 (추정 매장량을) 인정했다고 했지만, 이는 CNK 자체 보고서 내용이다. 김 대사 역시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었는데도 이런 행동을 한 것은….”
▼ 그래서 국회 감사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고 했나.
“그것도 참 우습다. 국회 차원에서 감사를 청구하려고 하니 외교부가 발 빠르게 일주일 앞서(2011년 8월 23일) 감사를 청구했다. 그러고는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결산위원들에게 로비를 하더라. ‘외교부가 감사 청구했는데 국회에서 또 감사를 청구할 필요가 있느냐’면서…. 그런데 국회의 감사 청구는 조사 결과를 보고하는 시한이 정해져 있다. 외교부 감사와 다르다.”
그의 말대로 국회 감사는 국회법 127조2항에 따라 감사요구일로부터 3개월 안에 감사 결과를 작성해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불가피할 경우 2개월 내에서 연장해 최장 5개월 내에 감사를 마쳐야 한다. 지난해 9월 1일 국회는 “외교부 보도자료가 배포될 때마다 CNK의 주가가 급등했는데, 박영준 전 차장은 해외방문을 통해 CNK를 간접 지원하고 외교부 공무원은 주식 매매차익을 거둔 불법적 거래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며 감사를 요구했다.
외교부 감사에는 이런 규정이 없다. 정 의원은 “국회가 감사 요구를 하는 대신 외교부가 했다면 감사를 끌면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국회 감사 막기 위한 로비
앞서 정 의원이 말한 95~97 보고서는 1995~97년에 작성된 보고서라는 의미다. 85~87보고서도 연도를 뜻한다. 그러나 감사원은 보고서 기재 연도가 정확하지 않아 ‘80년대 보고서’ ‘90년대 보고서’라고 지칭했다. 감사원은 80년대 보고서 검토 결과 “CNK가 주장하는 4.2억 캐럿의 99.94%가 함유된 역암층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 여부에 대해선 기록이 없다”고 했고, 90년대 보고서에 대해서는 “카메룬 환경부가 국가 환경관리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매장량 4.2억 캐럿의 직접적인 근거로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근거 자료를 찾고 있다’는 외교부의 답변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정 의원은 금융감독원 조사 행태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오기 직전에 금융감독원이 조 전 실장과 오 대표를 검찰에 고발한 것도 타이밍이 참 기가 막히다. 통상 주가조작 조사는 3개월 정도면 끝나는데 1년여를 끌었다. 더욱 의심스러운 일은 지난해 5월에 이 사건을 담당한 금감원 자본시장 조사1국장이 김은석 대사의 고등학교 2년 후배로 교체됐고, 7월에는 담당 조사팀장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교체된 것이다.”
한국거래소가 오덕균 대표의 주가조작 혐의를 포착해 지난해 3월 2일 금감원에 통보했다. 하지만 오 대표와 조 전 국무총리실장 등을 검찰에 고발, 통보한 것은 2012년 1월 18일이었다. 감사원 감사결과 발표(1월 26일) 직전이었다.
“전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 사건은 상당히 큰 힘이 작용했기에 가능했다. 조그만 코스닥 벤처회사 주가조작 혐의를 조사하는데 금융당국이 10개월이 지나서야 결과를 내놓았다. 생각해보라. 외교부는 보도자료를 내고나서 UNDP 보고서를 찾고 있다고 하고, 청와대는 이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조직적으로 축소 은폐하려는 시도 외에는 설명할 수 있나. 검찰이 밝혀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 잘못은 권력사유화를 방치한 것이었는데, CNK 사건에도 ‘보이지 않는 힘’이 또 작용했다.”
정태근과 박영준. 둘 사이의 권력사유화 논쟁은 한나라당 소장파와 대통령 형인 이상득(SD) 의원계가 집권 초부터 벌인 논쟁이었다. MB정부 1기 내각이 ‘강부자 내각’으로 비판받고, 당내 공천 잡음이 커지자 2008년 3월 18일 18대 총선 출마자 55명이 SD의 공천 반납을 요구한 이른바 ‘55인 항명 파동’이 빚어졌다. 이 사건 이후 정 의원과 남경필·정두언 의원 등은 ‘반(反)SD 라인’ 상징으로 떠올랐고, 정두언 의원은 SD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당시 기획조정비서관을 향해 “권력을 사유화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후 반SD 의원과 가족들이 공직윤리지원관실 사찰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측 대립은 최고조에 달했다. 인터뷰는 권력사유화 쪽으로 흘렀다.
▼ SD의 19대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에도…(기자의 질문은 그의 빠른 답변에 묻혔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 잘못 아닌가. 공적 권력 위에 또 다른 권력이 존재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했으니 국정의 중심을 잡아나가지 못했다. 결국….”
▼ 그래서 18대 국회에서 그렇게 쇄신을 외쳤나.
“박영준과의 악연 때문만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탄생에 열심히 참여한 사람이 정부가 잘 가도록 얘기하는 건 당연하다. 쇄신은 그런 차원에서 당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류가 핵심 당직을 독식하고 청와대와는 종속 관계로 시작했다.”
“문제 제기하면 의원들이 청와대 편들어”
▼ 예를 들면?
“인사를 보라. 도저히 국민 상식과 기대수준에 벗어난 인사로 조각(組閣)하지 않나. 대통령이 권한 행사할 때 자신의 ‘생각대로’만 하고 국민 생각을 고려하지 않으니 괴리가 생긴 거다. 큰 표차로 당선됐다고 해도 이 정부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을 인정해야 한다.”
그는 MB의 ‘생각대로’라는 말의 의미를 묻자 “군 미필이든, 투기를 하든 일만 잘하면 된다는 MB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사찰 파동도 마찬가지다. 나를 포함해 정치적 문제 제기를 한 사람(정두언, 남경필 등)에게 정상적이지 않은 형태로 압력을 행사하거나 사찰을 진행한 건 이 정부가 민주주의에 충실하지 못한 거다. 굉장히 후진적인 방법을 썼다.”
▼ 그 또한 권력사유화의 결과였다?
“SD 역시 ‘사찰(한 것)을 알고 있다’고 시인했고,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자기들이 한 게 아니라 국정원이 했다’고 나에게 직접 말했다. 청와대 인사들과 의원 몇몇이 모여 우리(사찰당한 의원들)에게 ‘시정하겠으니 그만 얘기하라’고 했다.”
‘민간인 불법사찰’은 2008년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사찰한 사건이다. 이 대통령을 폄훼하는 동영상을 올렸다는 이유로 김종익 당시 KB 한마음 대표의 사찰을 신호탄으로 쇄신파 의원들이 사찰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 불법사찰 관련자 7명이 형사처벌받았다.
▼ 어쨌든 쇄신의 결과는 실패인가. 탈당했으니.
“나 자신을 포함해 쇄신을 요구한 사람들이 많이 부족했다. 인정한다. 그리고 한나라당 풍토가 쇄신 흐름에 대해 견제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새로운 한나라’ 모임을 만들고 나니 ‘너희들만 새로우냐’는 반응이 그 방증이다. 청와대에 문제를 제기하면, 오히려 그(청와대) 입장에 서서 공격하는 의원이 많았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한나라당 DNA도 큰 벽이었다.”
▼ 그래서 재창당을 요구했나.
“당시 재창당에 많은 의원이 공감했지만 새로운 주류가 분위기를 끌어가면서 재창당은 좌절됐다. 그러면 누군가는 책임지고 희생해야 하지 않나. 그게 나였다. (지난해) 12월 13일 탈당한 이유였다.”
▼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탈당을 만류한 것으로 안다.
“탈당 선언 며칠 뒤 전화가 왔다. ‘의원총회를 하니까 정 의원의 빈자리가 큰 것을 알게 됐다. 돌아와달라’고 했다.”
▼ 뭐라고 답했나.
“복당은 어려울 거 같다. 정말 한나라당은 재창당해야 한다, 그게 다였다.”
▼ 박 비대위원장과는 당을 쇄신할 수 없다고 생각했나?
“비대위원 여러분이 노력했지만 국민에게 감동 주는 변화는 못했다고 본다. 이름(당명) 바꾼 걸로는 감흥도, 호소력도 없다.”
‘생선 장수’ 아버지의 길
▼ 감동 주는 변화?
“국민은 새누리당의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저것 공약을 꺼내는데, 지난 과정에서 잘못한 것에 대해 인정하고 솔직한 반성을 해야 변화 방향도 제대로 나온다.”
▼ 사사건건 ‘너무 나댄다’는 비아냥거림도 있다.
“그건, 쇄신을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실은 있었다.”
▼ 결실?
“‘여야 바로세우기 모임’을 만들지 않았나. 의안 자동 상정제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도입을 꾸준히 주장해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쇄신파들의 공동 국회법 개정안이 마련됐다. 2월 국회에선 일부 진전이 있을 것 같다.”
▼ 무소속이 득표에 도움 되겠다는 계산은 없었나. 탈당 말이다.
“수도권에서 새누리당은 굉장히 어렵다. 그러나 선거 자체만 보면 무소속 선택은 더 큰 모험이다. 새누리당 후보로 나서는 게 훨씬 유리하다. 고정표가 있지 않나. 무소속은 새로운 지지층을 끌어 모아야 한다. 바른 소리를 한 만큼 외로워도 바른 길로 갈 수밖에. 이미 아버지 모습에서 그 길을 배웠다.”
그러고 보니, 2시간 넘는 인터뷰 동안 정 의원은 아버지 얘기를 자주 꺼냈다. 정 의원의 아버지는 1955년부터 서울 보문동에서 생선 장사를 하며 5남매를 키웠다고 한다. 새벽 4시면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그날 팔 생선을 사왔고, 밤 10시가 되면 팔고 남은 생선을 구워 시장 사람들에게 내놓았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가 16대에 이어 2004년 17대 총선에서 아들이 낙선하자 그동안 숨겨왔던 이야기를 그에게 꺼냈다. 정 의원이 1985년 연세대 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을 주도할 때 안기부에 끌려가 조사관으로부터 “자식이 있는 곳을 대라”는 추궁과 함께 알몸으로 마구 맞았다는 얘기였다.
“생선 팔아 번 돈을 도망 다니는 자식에게 주던 아버지 마음은 오죽했겠나. 지난주 아버지 7주기 때 제사를 올리며 약속드렸다. 많이 가지지 못해도 당당하게 살겠다고, 나누는 삶을 살겠다고 말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의원회관을 나설 때 ‘쇄신을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정 의원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체 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는 답변은 의외였다. 정 의원은 이날 자정 가까운 시간에 기자에게 문자메시지(SMS)를 보내왔다.
“지난 4년간 MB 정부에 대한 책임감, 미련이 너무 지나쳤습니다. 그 힘을 쇄신세력을 제대로 만드는 데 썼다면 지금처럼 김성식, 정태근의 외로운 탈당으로 귀결되지 않고 한나라당의 제대로 된 변화를 위한 토대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큽니다. 자기 전에 생각나 문자드립니다.”
그도 기자처럼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머릿속을 맴돈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