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에 민원 전화, 가가호호 방문…주민 불만에 즉각 반응
- 업자 유착된 비리 공무원 경찰에 고발해 일벌백계
- ‘물 좋은’ 서초구청에서 61명 “힘들다” 전출 희망
- “수준 높이지 않으면 주민 욕구 못 따라가”
그런데 인터뷰 후반으로 갈수록 대화는 당초 계획한 인터뷰 주제로 향하고 있었다. 퍼즐 조각을 맞추면 그림이 완성되듯, 각각의 ‘얘기 조각’은 큰 그림을 만들어 갔다.
6월 11일 서울 양재동 서초구청장실에서 만난 진익철(61) 구청장은 티셔츠에 마사이 워킹슈즈 차림이었다. “관내를 한 바퀴 돌고 막 왔다”며 씩 웃는 그의 미소가 경쾌했다.
▼ 행복지수 1위 구청장은 패션부터 다르군요.
“뛰어다녀야죠.”
▼ 뛰어다닌다고 다 되나요?
“그럼요. 됩니다.”
Door to Door Visit
▼ 예?
“구청장이 ‘도어 투 도어 비지트(Door to Door Visit·DDV·가가호호 방문)’하면 주민들의 어려운 점을 알게 됩니다. 저만 하는 게 아니라 관내 18명 동장도 각각 방문하죠. 그러면 구민들의 불만을 곧 알 수 있죠. 불만 속에 구정(區政)의 길이 있으니까요.”
서울시는 5월 16일 시민 4만5605명을 대상으로 한 ‘2011 서울 서베이 도시정책지표’분석결과를 발표했다.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중 서초구가 행복지수 1위(10점 만점에 7.24점)였다. 2005년 조사에서 7위였던 서초구가 행복지수 1위가 된 비결, 그리고 최근 우면산 산사태 현장을 찾은 박원순 서울시장 앞에서 “서울시 간부가 시장 눈을 가리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린 사연이 이번 인터뷰를 하게 된 계기였다. ‘행복지수’로 인터뷰를 시작하려던 의도와 달리 얘기는 ‘DDV’로 흘렀다.
“지난해 7월 우면산 산사태로 주로 지하층에 사는 어려운 분들이 많은 피해를 보았어요. 그분들을 만나며 어떤 불만이 있는지 알게 됐고, 본격적으로 DDV를 시작했어요.”
진 구청장과 동장들은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간 모두 8200여 가구를 방문했다고 한다. 복지와 청소, 주차 문제 등 다양한 불만이 쏟아졌고, 동장들은 이에 대한 처리 결과를 매주 월요일 구청장에게 직접 보고했다.
“주민들은 골목도로 빗물받이에서 지독한 냄새가 난다고 불만입니다. 내시경 로봇을 넣어 보니 모래와 생활쓰레기가 수북이 쌓여있더라고요. 사당천 복개도로에도 흙이 1m 이상 쌓여 있었어요. 흙이 물 흐름을 막고 있으니 냄새가 난 거죠. 고압살수차를 이용해 깨끗이 쓸어냈어요. 현장에 가보면 이러한 불만들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 구청장 명함에 휴대전화 번호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인가요?
“선거운동 할 때부터 휴대전화 번호가 담긴 명함을 뿌렸어요. 전화를 받고 현장에 달려가면 잘못된 구정으로 피해를 보는 주민이 허다합니다. 구청의 잘못도 커요.”
▼ 민원 전화가 많이 오나요?
“예. 새벽에도 와요.”
▼ 보여주시죠.
“….”
그는 주섬주섬 바지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발신인이 입력되지 않은 민원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꽤 많았다. 새벽 2시에도 문자가 오갈 정도였다.
그는 2010년 취임하자마자 주민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구청장실 옆 국장실을 옮기고 그 자리에 신문고(申聞鼓)인 ‘직소민원실’을 만들었다. 구청 홈페이지 ‘구청장에게 바란다’ 코너에는 매일 20여 건의 민원이 들어온다. 보통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면 담당자부터 구청장까지 6단계를 거치지만 이 과정도 없앴다.
“공무원은 더 피곤해도 됩니다”
“주요 민원이 제기되면 부구청장과 부서 직원들이 구청장과 직접 머리를 맞대는 ‘현안회의’를 해요. 취임 직후부터 했는데 600건 정도 했을 겁니다. 그 자리에서 결정하니 피드백도 빠르죠.”
현안회의에서는 주민들 삶의 질과 관련된 모든 민원이 주제가 된다. 도서관 건립 문제가 회의 주제라면 문화행정과와 재무과, 토목과 등 관련 부서 직원들이 한 자리에서 논의하고 구청장이 최종 결정하는 일종의 ‘원스톱 행정’. 한자리에 모여 결정하니 부처이기주의나 책임 떠넘기기도 없다고 한다.
▼ 구청 공무원들이 피곤하겠군요.
“피곤요? 더 피곤해도 됩니다. 제가 5기 민선 시장인데요, 진정한 민선 자치시대는 아직 멀었다고 봐요. 주민이 요구하는 행정 수준은 꾸준히 높아가는데 공무원들의 행정 서비스는 제자리예요. 관행과 전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법은 여전해요. 얘기해볼까요? (배석했던 직원을 보며) ‘청렴 대책’ 띄워보세요. 감사 담당자도 오시라 하세요.”
컴퓨터에 연결된 대형 TV 화면에는 경찰의 기자회견 자리에서나 등장할 법한 범죄 개요가 떴다. 구청 1300여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그의 청렴 강의 자료였다.
“25개 자치구에서 근무하는 기술직은 서울시장이 5년마다 순환근무를 시킵니다. 그런데 일반직은 본인 동의 없으면 다른 구청으로 보낼 수 없어요. 20년 넘게 서초구청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수두룩해요. 3년마다 부서를 바꾸어도 토착세력과의 유착은 심각합니다. 이걸 해결해야 해요.”
그가 보여준 화면에는 자체 감사에서 공사 관련 비위사례를 적발한 내용이 떴다. 내용은 이렇다. 지난해 말 사회복지과의 한 담당자가 복지관 시설개선공사를 하면서 수의계약을 통해 아는 업체에 일감을 줬는데, 500만 원어치 공사를 1900만 원에 시공했다. 이를 알게 된 진 구청장이 공사현장인 복지관에 간부를 불러 모았다. 비위사실을 지적하며 일벌백계할 요량이었다.
“담당자가 비위사실이 없다고 펄펄 뛰니까, 일단 철수했어요. 이후 시공업체 사장을 불러 조목조목 지적하니 사실을 인정했어요. 그때 담당자도 잘못을 인정하더라고요. 전체 100m 수도관을 바꾼다고 해놓고 10m만 바꾼 겁니다. 어떻게 알았느냐. 제가 조순 서울시장 시절에 총무과장을 했어요. 수도관 공사를 하면 보온을 위해 스티로폼을 수도관에 대는데, 10m만 새로 돼 있고 나머진 뽀얗게 먼지만 쌓여 있고 교체 흔적이 없어요. 자체 감사를 시키고 나서 현장에 간부들을 모은 겁니다.”
수도관 10m 교체하고 100m 공사비 챙겨
▼ 부당 지급한 공사비 1400만 원은요?
“사장에게 뱉어내라고 했죠. 1400만 원 환수했어요.”
올해 1월에는 브로커와 짜고 공사 물량 등을 30% 부풀린 변조 견적서를 제출해 모두 1억3000만 원의 차액을 챙긴 공무원 2명을 서초경찰서에 고발했다. 서초서는 브로커의 차명계좌 거래내역을 바탕으로 리베이트를 받은 다른 공무원이 있는지 수사 중이다. 위법 건축물에 대해 이행강제금을 부과하지 않거나 노지불법전용을 묵인해준 공무원 30여 명도 엄중 문책했다. 서초구는 지난 2월부터 모든 계약을 공개 입찰하도록 했다.
“고이면 썩기 마련이에요. 아직도 이런 생각으로 공무원을 하고 있어요. 업무추진비를 부서장이 격려금으로 직원에게 지급한 것처럼 해놓고는 자신이 챙긴 사례도 있고요. 불만이 쌓인 직원들이 구청장 임기 말이 되니까 실명으로 고발을 해요. ‘눈 가리고 아웅’해서 되는 시대가 아니에요.”
▼ 구청장이 몰라서 넘어가는 경우도 허다하겠군요.
“그럼요. 밀폐된 거대 관료제, 법적 근거도 잘 모르고 전례를 답습하거나 ‘철밥통’만 믿고 일하는 공무원들은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구청장도 공부를 해야죠. (레바논 출신 시인이자 철학자인) 칼릴 지브란은 아이와 부모 관계를 화살과 활에 비유합니다. 활은 화살이 목표점으로 잘 나가도록 버팀목 역할을 하는 거죠. 가장은 가족이, 구청장과 공무원은 구민이 잘 살도록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존경받아야 하고, 청렴해야죠. 구민 중심의 행정이 싫으면 저는 공무원 그만두라고 합니다.”
기자가 인사팀에 확인한 결과, 2010년 6월 진 구청장 취임 후 타 기관으로 전출을 희망한 공무원은 61명이었다. 진 구청장과 일하기 힘들다는 이유가 많았다. ‘물 좋은’ 서초구에서 이처럼 대거 전출을 희망한 전례가 없다는 게 구청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진 구청장은 지난해 7월 집중호우 당시로 시곗바늘을 돌렸다.
“지난해 7월 27일 오전 7시 50분에 반포빗물펌프장에 갔어요. 집중호우가 오면 낙뢰를 동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현장에 가보니 펌프장의 고성능 펌프 17대가 낙뢰로 ‘올 스톱’ 상태였어요. 반포천은 막 범람하려고 하고, 인근 고속터미널에는 물이 무릎까지 차오는 긴박한 상황이었어요. 펌프장 옆에는 빗물 14만t을 모을 운동장이 있어요. 도수로(물 댈 도랑) 벽에 설치된 고무보 바람을 빼 운동장으로 하천 물을 옮겨야 했어요. 비상상황인데도 직원 1명뿐이에요. 제가 빗발치는 전화를 받았는데, 주민들은 ‘고무보의 바람을 빼라’고 난리를 쳤어요. 그런데 이 공무원은 하천수위가 6.8m(EL)가 되어야 바람을 뺄 수 있다는 겁니다. 낙뢰로 펌프 작동도 안 되고, 주민들은 아우성치는데 수십 년 된 매뉴얼을 붙잡고 있더라고요. 당장 바람 빼라고 했죠.”
구청장과 구민은 활과 화살
▼ 그래서요?
“다행히 하천이 범람하지 않았어요. 문제는 말이죠, 낙뢰방지기를 설치할 생각도, 집중호우 등 기후변화에 따라 매뉴얼을 새로 바꿀 생각도 하지 않은 겁니다. 구청 담당자도 잘 몰라요. 이래서 되겠습니까?”
구청 담당자는 “그 일이 있은 후 제어용 낙뢰방지기로 교체했고 상주 직원도 3명으로 늘렸다”고 했다. 펌프장 건물에 직접 낙뢰를 맞으면 피뢰침으로 예방이 가능하지만, 전원선이나 통신선을 통해 뇌전류(雷電流)가 들어오면 속수무책이라고 한다.
▼ 마침 빗물펌프장에 가셨네요.
“염보현, 고건 서울시장의 수행비서를 했는데, 그분들이 비만 오면 가는 곳이 펌프장입니다. 뭘 해야 하는지, 뭘 짚어야 하는지 아는 분들이었어요.”
▼ 최근 우면산 산사태 원인을 놓고 목소리를 높였죠?
“복구 현장을 방문했으면 현장을 꼼꼼히 살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그래서 마이크를 잡았죠.”
지난해 7월 폭우로 16명이 숨진 우면산 산사태. 사고 원인을 놓고 논란은 여전하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 사고 원인을 천재(天災)로 규정한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비판이 일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보강 조사를 지시해 민관합동 TF팀이 재조사에 나섰다. 박 시장은 6월 1일 우면산 산사태 복구현장을 찾아 복구 진척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이때 현장에 있던 진 구청장은 “시장님의 눈을 멀게 하는 시 간부들이 있다. 시장이 서초터널을 직접 방문해보면 발파가 산사태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시 간부 누구도 터널 방문을 건의하는 사람이 없다”고 쏘아붙였다.
▼ ‘시장 눈을 멀게 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였나요?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공사를 하면서 우면산을 관통하는 서초터널을 만들고 있어요. 물론 폭우가 1차 원인이겠지만 다이너마이트 발파작업도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봐요. 그래서 시장이 서초터널 공사 현장을 가서 보라고 한 겁니다. 시 간부 누구도 터널을 방문한 사람이 없어요.”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는 영등포구 양평동과 강남구 수서동을 잇는 도로다. 이 중 우면산을 관통하는 서초터널은 7공구 구간인데, 총 연장 2.63㎞, 왕복 6차로로 2016년 완공 예정이다.
서초터널 발파도 산사태 원인
“산 밑으로 긴 터널을 뚫는데 하루에도 수차 사이렌이 울리면서 다이너마이트 폭파를 해요. 그리고 대형 산사태가 발생한 지역 대부분은 공사 중인 터널 출입구에서 가까운 곳이에요. 방배동 전원마을과 우면동 송동·형촌마을이 모두 서초터널 출입구 아닙니까. 주민들은 공사가 시작된 2008년부터 16차례에 걸쳐 발파공사와 관련한 민원을 제기했고요. 시공사는 공사로 피해를 당한 주택을 수리해주기로 합의했고 피해보상금도 지급했어요. 그런데 조사를 않으면….”
▼ 막장에 들어가 보셨나요?
“그럼요. 땅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 규모와 깊이를 경험해보면 산사태 원인 규명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집중호우가 내린 지난해 7월 26, 27일 서초구에 내린 비의 양은 총 476㎜였다. 이로 인해 우면산은 49.5ha가 유실됐다. 우면산은 흙 아래가 단단한 편마암 덩어리로 이뤄져 있어 암반폭파용 대형 다이너마이트가 많이 사용될 수밖에 없다. 계속된 장마로 빗물이 지하 수맥으로 흐르지 못해 토양에 있다가 토석류와 함께 흘러내렸다는 게 인근 주민들의 주장이다. 주민들은 발파 당시 느낀 진동이라면 충분히 산사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서초구는 서울시에 발파공법을 무진동공법으로 변경해줄 것을 공문으로 요청하는 한편 발파공사와 산사태 상관관계에 대한 용역을 전문기관에 의뢰했다.
▼ 앞서 2010년 9월에도 산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그땐 차량파손과 주택 침수피해가 있었죠. 자연도 메시지를 보내옵니다. 갑자기 (산사태가) 나는 게 아니에요.”
▼ 산사태 예방 책임은 서울시에 있지만, 서초구 역시 ‘자연의 메시지’를 간과한 거 아닌가요?
“그렇게 지적하면 솔직히 저도 할 말 없습니다. 구청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만, 기록적인 폭우 앞에서….”
그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산사태 당시 구청장 주민소환 얘기도 나왔지만 저로서는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화난 주민들 앞에서 ‘산사태 원인을 놓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먼저냐, 복구가 먼저냐’고 외쳤습니다.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현장에 와서 사진만 찍고 가는데 구청장 아니면 누가 복구합니까. 10일간 현장에서 복구 지휘를 했더니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더라고요. 화를 내던 주민들도 고맙다고 인사를 해요. 산사태 원인 조사 결과, 구청의 책임이 있다면 책임지면 됩니다.”
▼ 현장 복구가 쉽지 않았을 건데요.
“또 공무원 얘기 나오네요. 그때는 당장 토사를 치워야 하는데 그 많던 덤프트럭이 안 보여요. ‘어디 갔느냐’고 했더니 김포매립지에 쏟아 붓고 온대요. 왔다갔다 하룹니다. 말이 됩니까. 그래서 직원들에게 ‘머리를 집에 놓고 왔느냐’며 크게 화를 냈어요. 당시가 여름방학이었어요. 학교 운동장에 먼저 토사를 쌓아놓고 응급복구를 끝내고 치우면 되잖습니까?”
관료제 병폐 벗어나려는 몸부림
물을 마시던 그가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곧 물잔을 내려놓았다.
“옛 가야병원 부지에 방배종합행정문화센터를 건립하고 있어요. 설계 도면을 보니까 전기실, 기계실, 설비실 모두 지하 5층에 있더라고요. 당장 전기실을 지상 2층으로 옮기라고 지시했어요. 고건 시장 시절에 가로등·신호등 침수로 지나가던 행인 수십 명이 감전사한 게 불과 10년 전(정확하게는 2001년 7월)입니다. 수십 년 일한 공무원들도 잊어버리고 있어요.”
진 구청장은 1979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시 문화관광국장과 재무국장, 한강시민공원사업소장 등을 지내고 2009년 퇴직해 이듬해 6·2지방선거에서 구청장에 당선됐다. 그런 그의 30년 행정 경험은 ‘주민 중심 행정’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지만, 직원들에게는 세간 살림을 너무 잘 아는 시어머니 같았다. 3시간가량 인터뷰를 하면서 담당 공무원들은 수시로 구청장실로 올라와 답변을 했다. ‘전기 설비 기준’ ‘서울시내 빗물펌프장 수’ ‘법인카드 사용 기준’ 등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답변을 주저하면 이내 구청장의 질타가 이어졌다. 이런 식이었다.
“○○계장. 당신은 관내 전기 책임자예요. 당신이 모르면 관내에서 누가 압니까. 그걸 꼭 법규나 자료를 찾아야 알 수 있습니까. 대한민국 공무원 수준이 그 정도예요?”
흥미로운 것은 진 구청장은 정작 담당자 앞에선 날 선 시어머니였지만, 그들이 없는 자리에서는 다소 후한 평가를 한다는 점이다.
“2년 지나면서 행정편의주의와 관료제의 병폐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거 같아요. 이제 적응이 되는 거죠. 적잖은 갈등도 있었지만, 알을 깨고 나오는 몸부림으로 생각해요. 이런 변화가 없으면 품격 있는 행정 서비스는 요원합니다.”
서울시가 발표한 ‘2011 서울 서베이 도시정책지표’에서 행복지수는 △개인 건강 △재정상태 △주위 친지·친구와의 관계 등 인간관계 △가정·사회생활 만족도를 평균해 산출했다. 서초구에 이어 2위는 용산구(7.15점), 3위는 동작구(7.06점)였다. 양천구(6.83점)는 8위, 강남구(6.57점)는 16위였다. 서초구는 자치구 중 기대수명(남자 83.1세, 여자 88.1세)이 가장 높고, 대졸 가구주가 73.6%로 학력 수준도 가장 높다. 구민들의 행정 서비스 요구 수준도 그만큼 높고 다양하기 마련이다.
진 구청장이 따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기자는 “공무원이 바뀌지 않으려면 나가라”는 그의 말에서 ‘행복지수 1위’가 된 이유를 찾았다. 서초구가 권역별 노인종합복지관을 짓고 방문보건 서비스를 한 것이나, ‘둘째아이 돌보미 파견 사업’을 전국 최초로 실시해 합계 출산율을 1.07명(2009년 0.93명)으로 끌어올린 것도 따지고 보면 주민 불만을 현장에서 듣고 현안회의를 통해 실행파일을 만든 ‘작품’인 셈이다. 주민의 욕구에 맞는 행정서비스로 평가받는 입학정보센터 운영과 전자도서관 개관, 강남대로 금연거리 지정 등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취임 후 제가 ‘행복지수 1위 자치구’가 되자고 했을 때는 ‘하면 된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매주 현안회의 때 아이디어를 내놓다보니 행정그물도 촘촘하게 잘 짜인 거 같아요. 반신반의하던 직원들도 많이 바뀌었고요. 그래도 아직 멀었어요. 주민들 불만이 없어질 때까지 직원들을 독려하면서 끌고 나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