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송해는 49세 나이로 동아방송, 동양방송, MBC 등 여러 방송국의 라디오프로그램 진행자를 맡았다. [동아DB]
동아방송으로 MC 데뷔
1970년대 동아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송해&이순주 쇼’ 방송 녹음 앨범. [동아DB]
고인을 전국구 스타로 만든 프로그램은 1974년 시작한 동양방송의 생활 정보 프로그램 ‘가로수를 누비며’였다. 이 프로그램은 운전자들에게 특히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986년 당시 스무 살이던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하자 그는 방송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고인은 KBS 전국노래자랑 MC를 맡으며 방송계로 복귀했다. 1984년 전국노래자랑 담당 PD가 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진 고인을 찾아왔다. 당시 그 PD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바람이나 쐬러 다니자”며 전국노래자랑 MC를 제안했다. 이후 1988년 이한필, 이상용, 고광수, 최선규에 이어 전국노래자랑의 다섯 번째 MC를 맡았다. 이후 올해까지 34년간 전국노래자랑 MC로 전국을 돌며 각 지역의 시민을 만났다. 전국노래자랑으로 만난 시민만 1000만 명이 넘을 정도. 오랫동안 시민들과 소통한 공을 인정받아 2014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올해 5월에는 ‘최고령 TV음악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까지 했다.
전국노래자랑은 남북 교류의 장이 되기도 했다. 2003년 평양 모란봉 공원 평화정 앞에서 전국노래자랑 특집 무대를 꾸렸다. 이후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마다 고인은 고향인 황해도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해 보고 싶다는 의사를 수차례 표명했다.
올해부터 건강 악화
송해는 2017년 MBC 예능프로그램 ‘세상에 모든 방송’에 이상벽, 허참, 임백천(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과 함께 고정 출연했다. [동아DB]
송해 일대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송해 1927’ 시사회에 참석한 송해. [동아DB]
올해 들어 고인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 1월 건강 이상으로 입원했으며 3월에는 코로나19에 감염되기도 했다. 4월부터 다시 전국노래자랑 녹화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으나 5월 14일 서울 아산병원에 다시 입원했고 사흘 뒤 제작진에게 “더 이상 진행을 맡는 게 어렵지 않겠느냐”며 하차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첫 현장 녹화가 열린 6월 4일 고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고인 측은 “건강에 큰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있다 보니 지방까지 장시간 이동이 부담스러워 현장 녹화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로부터 나흘만인 6월 8일 고인은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두 딸이 있다. 아내는 2018년 별세했다. 고인은 아내의 고향인 대구 달성군에 부부가 함께 묻히고 싶다는 바람을 생전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장례는 대한민국코미디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3호실. 발인은 6월 10일이다.
송해는 2018년 아내 석옥이 여사를 먼저 떠나보냈다. 사진은 당시 동아일보에 실린 부고기사를 읽고 있는 모습. [동아DB]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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