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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연재 | 이기동 교수의 新經筵

“고고한 원추(鵷鶵)의 기상은 어디로 갔을까?”

  •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교수 kdyi0208@naver.com

“고고한 원추(鵷鶵)의 기상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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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 삶 지배하는 서구 가치관

그렇다면 사람들의 마음이 이렇게 된 원인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는 가치관은 서구 근세에 대두된 합리주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해 이루어진 것이다. 르네상스운동을 통해 신(神)으로부터 해방된 서구인들이 과학기술을 발달시키고 산업혁명을 일으켜 세계를 지배하게 되자, 서구에 침략당한 다른 지역 사람들은 서구인의 문화와 서구인의 삶의 방식을 모방하기에 바빴다. 그리하여 서구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현대인 공통의 것이 되었다.

그러면 ‘신으로부터의 해방’에서 구축된 서구인의 가치관과 그 특징은 무엇일까. 서구의 근세는 신을 부정하면서 출발한다. 르네상스는 신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의 삶을 추구하는 운동이었다. 이러한 운동은 과거 중세 때 교회의 횡포에 대한 반발로 시작됐다. 신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국 신을 부정하는 걸로 귀결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신은 원래 하늘이었다. 인내천(人乃天)이다. ‘하늘에서 천벌을 받을 것’에서의 그 하늘이다. 하늘은 나무의 뿌리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신(하늘)을 부정하고 나면 뿌리 없는 나무처럼 허전하고 외로워진다. 하늘은 지상의 대나무들을 지하에서 하나로 연결시키는 하나의 뿌리와 같다. 그러므로 원래의 신을 인정하고 그 신의 품에서 살면, 모두가 하나로 연결된다. ‘우리가 남이가’하면 좋아하고, ‘너와는 이제 남남이다’고 하면 서운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하에서 하나로 연결되는 대나무의 뿌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남는 것은 지상에 뻗어나 있는 줄기와 가지와 잎뿐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에게 공통으로 연결되어 있는 신을 인정하지 않으면, 인간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육체적 존재일 뿐이다. 서구의 개인주의는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성립되었다.

개인주의가 성립되고 나면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세포는 개인이다. 가정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도 개인이고,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단위도 개인이다. 부모와 자녀도 개인과 개인의 관계이고, 부부도 개인과 개인의 관계다. 인간을 독립적인 개체로 이해하면 인간에게는 ‘우리는 같은 뿌리’라는 한마음이 들어갈 곳이 없어진다.

개인주의는 몸이라는 물질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므로, 개인주의는 물질을 중시하는 물질주의로, 물질주의는 또 자본을 중시하는 자본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개인주의, 물질주의, 자본주의가 현대문화를 떠받치고 있는 바탕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인주의에 익숙해진 현대인은 끝없는 경쟁을 벌인다. 경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발전을 이끄는 것은 없다. 현대의 과학이 이처럼 발전하고, 산업이 이처럼 발달한 근본원인은 경쟁 덕분이다. 이러한 발전 덕분에 현대인은 과거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롭게 살게 되었다.

서로 연결된 대나무 뿌리

그렇다면 현대인은 행복한가. 현대인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몸의 삶’에 국한된다. 마음의 문제로 들어가보면 현대인의 삶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그 문제점들은 지금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생각해보라. 현대인은 몹시 불안하다. 삶이 경쟁이고 투쟁이기 때문이다.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쟁자를 죽여 없애는 것이다. 독일인들이 유대인들을 죽인 것이나, 일본인들이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을 죽인 것, 그리고 영국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죽인 것도 그 때문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경쟁자를 다 죽이고 혼자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찾아낸 방법이 바로 규칙과 법을 만들고, 그것을 다 함께 지키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규칙과 법을 지킬 때 비로소 현대인은 안심한다. 현대인에게 규칙과 법은 삶을 보장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현대인의 삶의 특징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욕심을 채우는 것이다. 현대인의 삶의 바탕은 경쟁이므로 현대인이 생각하는 마음은 경쟁심이고 욕심이다. 그러므로 현대인에게는 욕심을 제거한다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현대인의 삶은 욕심을 채우는 삶이고, 욕심을 채우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끊임없이 돈과 명예를 향해 달린다. 동시에 인간의 온갖 욕심을 채우는 향락문화는 꽃을 피운다. 현대인은 진귀한 음식을 먹고, 명품 옷을 입으며, 고급 주택에서 살며, 성적(性的) 향락을 최대한 추구하는 것을 바람직한 삶으로 생각한다.

욕심은 채울수록 커진다. 그러므로 욕심을 채우는 사람에게는 만족이란 없다. 아무리 성공을 하더라도 더 큰 욕심을 채우기 위해 허덕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온 세상이 시끄럽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못하는 짓이 없다.

유엔에서 ‘불가’하다는 결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선택이나, 국제적인 규약이 있는 데도 그것을 무시한 채 탈북자들을 북한에 돌려보내는 중국의 처리도 이러한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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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교수 kdyi02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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