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호

‘고난의 행군’ 끝낸 신세계·롯데·현대百, 역습 시작하다

“한물갔다”던 맏형의 귀환…‘초대형화’ 속도전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1-09-28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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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몰리며 반전 드라마 탄생

    • 올해 상반기 매출 상승률 26.2%

    • 호실적의 동력, ‘보복 소비’

    • 일시 호재냐 역발상의 성공이냐

    • 과거 전성기와 결이 다른 순항기

    최근 백화점 업계는 초대형화 전략에 발맞춰 신규 매장을 개장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동탄점(왼쪽), 더현대 서울. [롯데백화점 제공, 더현대 제공]

    최근 백화점 업계는 초대형화 전략에 발맞춰 신규 매장을 개장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동탄점(왼쪽), 더현대 서울. [롯데백화점 제공, 더현대 제공]

    대전신세계 Art&Science. [신세계 제공]

    대전신세계 Art&Science. [신세계 제공]

    “백화점의 시대는 갔다.”

    지난 수년간 유통업계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말이었다. 과거 질 좋은 제품을 구매하려면 시내 한복판에 들어선 백화점을 찾아야만 했다. 백화점은 유통업계를 이끄는 맏형이었다. 하지만 백화점은 점차 다른 채널에 자리를 내줘야 했다. 사람들은 TV홈쇼핑에서 신발과 옷을 사기 시작했고, 동네 대형마트에서 식료품과 전자제품, 가구를 구매했다.

    무엇보다 최근 유통업계의 무게중심이 온라인으로 급격히 쏠린 것이 백화점에는 가장 큰 타격이었다. 백화점을 비롯한 오프라인 유통 채널 대부분 온라인에 밀려 새로운 생존 전략을 찾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백화점의 침체는 숫자로 확인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하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국내 유통시장에서 백화점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해 줄었다. 2016년 백화점 매출은 전체 유통업계에서 23%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해는 15%를 기록했다. 그사이 온라인 채널이 차지하는 비중은 32%에서 48%로 증가했다. 이제 온라인 채널은 국내 유통시장 매출의 절반을 담당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상반기 영업이익 전년 대비 2배

    백화점에 2020년은 어느 때보다 고난의 시기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사람들은 외출을 자제해야 했다. 지난해 롯데와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주요 백화점 3사의 실적은 일제히 추락했다. 매출은 물론 영업이익도 뒷걸음쳤다.



    그런데 올해 반전이 벌어졌다. 대형마트도, 편의점도 아닌 백화점에 사람이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8월 내놓은 올해 상반기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국내 유통 채널 중 백화점의 매출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백화점의 상반기 매출은 전년보다 26.2% 늘었다. 대형마트(0.3%)나 편의점(6.2%)은 물론 온라인(16.1%)을 훌쩍 뛰어넘은 수치다. 백화점이 지난해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탓에 기저효과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높은 수준이다. 전체 유통업계 매출에서 백화점이 차지한 비중도 지난해 15%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16.9%로 반등했다.

    시장에서는 백화점이 올해 호실적을 기록하는 가장 큰 이유로 ‘보복 소비’를 꼽는다. 코로나19로 잔뜩 움츠러들었던 소비심리가 명품 등 고가 제품 구매로 터져 나왔다는 의미다. 실제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명품(유명 브랜드) 매출은 전년보다 45% 증가했다.

    김호성 산업통상자원부 유통물류과 과장은 “지난해 코로나19 영향에 대한 기저효과와 소비심리 회복으로 백화점 매출이 큰 폭으로 성장했다”며 “해외여행에 대한 제약이 지속되며 명품을 비롯한 전 상품군 매출이 호조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주로 집에만 있던 데다가 해외여행도 가지 못하면서 꾹 눌렸던 소비심리가 ‘보복 소비’로 나타난 셈이다.

    백화점에 사람이 몰리면서 명품뿐만 아니라 다른 상품군도 덩달아 잘 팔리기 시작했다. 아동·스포츠 제품은 전년보다 매출이 35.1% 늘었고, 가정용품(28.8%) 역시 상승세를 나타냈다. 사실 명품은 백화점 업체의 매출을 늘리는 데에는 좋지만 마진이 낮아 수익성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 품목이 고르게 성장하면서 백화점의 수익성도 좋아졌다.

    롯데와 신세계, 현대 등 주요 백화점 세 곳 모두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특히 신세계의 경우 연결 기준으로 상반기 영업이익 2198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백화점은 앞으로도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보복 소비 덕에 일시적인 호황을 맞은 게 아닐까. 아니면 백화점이 그 나름의 생존 전략을 찾으며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것일까.

    역발상 전략…크게 더 크게!

    전망은 엇갈린다. 우선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되고 해외여행 수요가 늘어나는 등 일상으로 돌아갈수록 백화점의 실적은 다시 위축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김명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해외여행의 점진적 정상화에 따른 여행 관련 소비 발생과 입주 물량 증가 폭 둔화로 가전 매출 감소 등이 예상된다”며 “백화점의 (지속적인) 고성장을 예상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반면 백화점의 반등을 일시적인 호재 덕분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그간 백화점 업체들이 생존을 위해 추진해 온 전략이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백화점 업체들은 지난 수년간 일부 점포를 대형화·고급화하면서 지역의 랜드마크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 백화점 내부 공간을 더욱 여유롭게 만들거나 식품관을 대형화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일단 사람들을 백화점으로 끌어들여 놓겠다는 것이다.

    물론 점포 대형화는 백화점 업체들의 오랜 생존 전략이긴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단순히 대형화를 넘어 지역 최대 규모의 점포를 선보이고 있다. 건물만 크게 짓는 게 아니라 내부 동선 너비를 기존보다 많게는 두 배가량 여유 있게 만드는 등 이전과 다른 시도도 하고 있다. 점포 내에 ‘정원’을 만들어놓거나 대형 미술품을 설치하는 등 마치 야외에 온 듯한 느낌을 주도록 하는 식이다. ‘온라인 시대’에 오프라인 점포를 더욱 화려하게 만들겠다는 역발상의 전략이다.

    이런 전략은 일부 성과를 내고 있다. 대표 사례가 신세계 서울 강남점이다. 강남점은 지난 2016년 대거 리뉴얼해 확장 개장했다. 당시 강남점은 기존보다 점포 연면적을 3만㎡가량 늘려 총 8만6500㎡ 규모로 구성해 서울지역 최대 면적의 점포가 됐다.

    강남점은 다음 해인 2017년 매출 기준으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을 넘어서며 전국 1위 점포로 올라섰다. 2019년에는 국내 백화점 업계 처음으로 단일 점포 연 매출 2조 원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전 세계적으로 연간 매출이 2조 원을 넘는 백화점 점포는 일본의 이세탄과 한큐 우메다, 프랑스 라파예트, 영국 해롯 등으로 극히 적다. 신세계 강남점 연 매출은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지난해에도 2조 원을 넘어섰다.

    현대백화점이 지난 2015년 오픈한 경기 성남 판교점도 좋은 사례로 꼽힌다. 판교점 역시 수도권 최대 규모 점포로 지어졌다. 판교점은 인근 지역 랜드마크로 각인되면서 문을 연 지 5년 4개월 만에 연 매출 1조 원을 올려 최단기간 ‘1조 클럽’ 달성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백화점의 ‘초대형화’ 전략은 올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롯데와 현대, 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 3사가 공교롭게도 올해 줄줄이 신규 점포를 개장한 데다가 일제히 지역 최대 규모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다. 백화점 3사가 한 해에 일제히 신규 점포를 연 건 지난 2012년 이후 9년 만이다.

    올해 때마침 백화점 실적이 상승세를 타면서 업체들은 더욱 의욕을 내비치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문을 연 현대백화점의 ‘더현대 서울’이 흥행몰이에 성공하면서 경쟁사들도 분주해졌다.

    더현대 서울은 올해 상반기 국내 백화점 업계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일단 코로나19가 지속한 가운데 서울 한복판인 여의도에 대규모 오프라인 점포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렸다. 더현대 서울은 서울에서 가장 큰 백화점으로 만들어졌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개장 100일 만에 매출 2500억 원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하반기 들어서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돼 다소 주춤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현대백화점이 내놓은 연간 목표액 6300억 원은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 백화점이 ‘경기 남부’로 간 까닭

    안지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백화점의 신규점은 상권 내 랜드마크로 급부상하며 2분기에도 시장 기대치를 상회했다”며 “더현대 서울의 2021년 총매출액은 6500억 원을 충분히 상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랜만에 신규 점포를 선보인 롯데와 신세계도 강한 의욕을 보였다. 일단 두 기업 역시 점포를 지역 최대 규모로 지었다. 롯데백화점 동탄점은 경기 지역 최대 규모, 대전신세계 아트&사이언스는 충청 지역에서 가장 큰 점포다.

    롯데백화점 동탄점의 경우 최근 백화점 업계의 격전지로 여겨지는 ‘경기 남부’에 자리 잡았다. 이 지역은 서울 강남 지역과 인접해 있고 인구수가 많다. 경기 남부의 인구는 서울에 육박하는 1000만 명 수준이다. 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사업장과 판교 테크노밸리 등이 자리 잡고 있어 소비 여력이 큰 것으로 여겨진다.

    동탄 역시 판교나 분당 못지않게 소득수준이 높다. 지난 2018년 기준 화성시의 지역 총생산은 77조 원으로 경기도 내에서 1위를 차지했다. 롯데가 동탄점을 경기도 최대 규모로 선보인 것도 이런 점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신세계가 대전에 둥지를 튼 이유도 비슷하다. 대전은 백화점 시장이 비교적 잠잠한 편이었다. 이 지역 백화점 터줏대감은 갤러리아였다. 갤러리아백화점 타임월드점은 1997년 개장 뒤 오랜 기간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이후 2000년에 롯데백화점 대전점이 문을 열어 시장을 양분하는 분위기였다. 대전신세계 아트&사이언스는 이 지역에서 20년 만에 문을 여는 점포다.

    대전 상권 역시 매력적이다. 대전 인구수는 올해 7월 기준 146만 명가량으로 서울과 부산, 인천, 대구에 이어 다섯 번째다. 소득수준도 2019년 기준 1인당 2050만 원으로 전국 네 번째로 높은 편이다. 여기에 인근인 세종시에 정부청사가 들어서면서 상권으로서의 매력은 더욱 커졌다. 세종시의 소득수준은 같은 기간 1인당 1979만 원으로 대전에 육박한다. 신세계가 이 점포를 충청권 최대 규모로 만들며 공을 들인 이유다.

    8월 20일 개장한 경기 화성 롯데백화점 동탄점은 전체 면적의 50%를 예술 문화 식음료 체험 공간으로 채웠다. [롯데백화점 제공]

    8월 20일 개장한 경기 화성 롯데백화점 동탄점은 전체 면적의 50%를 예술 문화 식음료 체험 공간으로 채웠다. [롯데백화점 제공]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

    물론 백화점 업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고 해도 과거와 같은 전성기를 다시 구가할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 온라인 시장 성장세는 거스르기 어려운 대세다. 다만 백화점으로 대표되는 ‘오프라인 매장’의 존재감이 유지될 거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은 최근 백화점 형태의 대형 매장을 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존은 유통업의 미래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형태로 진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의 편의성에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프라인 매장만의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많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내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온라인 쇼핑은 소비자가 제품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없는 등의 분명한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에 앞으로 온라인 업체는 오프라인으로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가능성이 크고, 오프라인 업체는 기존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온라인 사업을 확장하며 서로 경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백화점 #유통업계 #보복소비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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