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호

벼룩시장

  • 일러스트·박진영

    입력2008-02-04 1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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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룩시장
    흐린 날엔 물건들도 몸살을 앓는다

    양편으로 오른쪽 굽만 닳은 구두는

    비척비척 길 바깥으로 미끄러지고

    물먹은 시계는

    바늘을 안개 속으로 실종시켜버린다



    물건들이

    나를 시장으로 내몬다

    물건들도 늙는다

    늙은 물건들 앞에서 그들의 젊은 날을 상상하는 것은

    잔인하지만 재미있는 취미다

    어느새 내게도 이미 추억이 있다

    골동에의 취미로 인도하는 후회들

    축축한 공기 속으로 곰팡이의 포자가 퍼진다

    때를 벗겨낸 장물에서 오색의 기름막이 빛난다

    늙은 물건들도 가끔은 사람을 홀릴 만큼 아름답지만,

    하지만

    두 번 이상을 팔린다는 것은 가혹하지 않은가

    팔 거 있어?

    무엇인가 내 옆구리를 치고 지나간다

    벌써 저만치 앞에 푸른 전갈 문신이 기어간다

    그제서야 옆구리가 뜨끔하다

    누군가 어디선가 나를 훔쳐다

    헐값에 팔아넘겼던 것인지도 모른다

    흐린 날에 물건들이 나를 시장으로 보낸다

    물건들이 나를 구경하고

    아주 싼값에 나를 산다

    이미 너무 싸구려가 되어버렸다

    결국 시장에 비가 내린다

    쓸 데도 없는 후회거리를 또 하나

    싼맛에 사들인다 녹슨 회중시계

    벼룩시장
    조병준

    1960년 서울 출생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시 ‘평화의 잠’으로 등단

    現 시인, 문학평론가, 여행작가

    저서 : 에세이집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사진작가집 ‘나를 미치게 하는 바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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