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집들이 늘어선 미코노스 ‘리틀 베니스’ 근처의 카페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
화려하고 활기찬 밤풍경
여객선이 시원하게 바다를 가르는 소리를 들으며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 ‘섬’을 펼쳐 든다.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갑판에서 책을 꺼내 드니 이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다는 감상에 젖는다.
‘그르니에가 그리고 있는 여행은 상상의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속으로의 여행, 섬에서 섬으로 찾아 떠나는 순례이다.’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어린 남매의 모습이 정겹다. 미코노스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화려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바닷가에는 어부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듯한 교회도 있다. ‘파라다이스 비치’는 푸른 바다를 앞에 둔 멋진 백사장이 자랑거리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바다 저편 언덕에 미코노스의 명물 풍차들이 멋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부드럽게 미끄러져가는 배의 운항 속도에 맞춰 느린 호흡으로 글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경쾌한 아코디언과 기타 소리가 들려온다. 약간은 지루해진 승객들을 위함인지 2명의 연주자가 흥겨운 그리스 음악을 연주한다. 졸거나 긴 침묵 속에 잠겨 있던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이 예기치 않은 여흥에 새삼 반색을 한다.
연주가 끝나고 두 개의 작은 섬을 지나 미코노스에 도착하니 이미 늦은 저녁이다. 벨벳의 윤기를 닮은 어둠이 섬을 감싸고 있다.
호텔 근처의 그리스식 레스토랑인 ‘taverna’에서 식사를 마치고 미코노스의 시내로 가보았다. 작은 섬이라 별 기대 없이 나선 길이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이곳이 정말 인구 6000명의 작은 섬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섬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미코노스의 밤이 역동적이란 것은 이미 여행책자에서 본 적이 있지만 이처럼 화려하고 활기찬 밤풍경이 펼쳐질 줄은 몰랐다. 온갖 종류의 가게들과 레스토랑, 술집, 카페, 나이트클럽까지 마치 어느 대도시의 유흥가에 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골목에는 특히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띄지만 딱히 남녀노소의 구별 없이 많은 여행객이 미코노스의 밤을 즐기고 있다. 옷가게, 신발가게 같은 곳도 밤늦은 시각까지 문을 열고 있다. 몇 시에 문을 닫는지 물어보니 “보통은 밤 1시 정도에 문을 닫는데 손님이 있으면 더 늦게까지도 연다”는 태평한 대답이 돌아온다. 지나칠 정도로 정확하게 문을 여닫는 유럽의 가게들과 너무 다른 모습에 그리스인의 느긋함이 느껴져 한결 여유가 생긴다.
바닷가 근처의 노점에서 꽃과 채소를 파는 할아버지와 손자.(좌) 아테네 피레우스 항구를 출발해 미코노스로 가는 여객선의 갑판 풍경.(우)
펠리컨을 만나다
아침에 잡아온 생선을 파는 작은 어물전에서는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호텔을 나와 낮에 다시 미코노스를 돌아보기로 했다. 해안가를 따라 걷다가 마침 길가에 늘어선 노점들을 발견했다. 채소, 꽃, 생선 등을 파는 가게들인데 대부분 비대한 몸집의 그리스 남자들이 가게를 지키고 있다. 사진촬영을 청하자 하도 경험이 많아선지 몰라도 다들 선선히 응해준다. 새삼 이들의 격의 없음이 느껴진다. 여행객들도 이 가게들을 이용하겠지만 주로 주민들이 이 시장을 이용할 것 같다. 여기서도 삶은 이렇게 지속되고 있다.
간이시장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자 전혀 예상치 못한 것과 마주쳤다. 바로 펠리컨이다. 동물원에서 본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직접 야외에서 마주치니 입 밑에 길게 늘어진 주름이 더욱 신기하다. 이 펠리컨은 사람과 무척 친해서인지 주민들이 지나가면서 슬쩍 건드려도 아무 내색을 않는다. 덩치는 꽤 큰데 언뜻 보기에 아주 순해 보여 나도 재미 삼아 한 번 머리를 만져보았다. 역시나 별 반응이 없다.
펠리컨이 있는 바닷가에서는 어부들이 아침 일찍 나갔다가 돌아오는 풍경도 쉽게 볼 수 있다. 근처에는 작은 교회가 있어 이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해주는 듯하다.
해수욕장 해변에는 나무와 파라솔, 의자 등이 잘 어우러져 있다. (좌) 미코노스의 밤거리에는 노인들도 함께하며 활기를 더한다.(우)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따온 이름의 가게 앞을 젊은이들이 지나가고 있다.
거대한 풍차들을 떠나 미코노스의 또 하나의 명물인 해변가로 발길을 옮긴다. 시내 중심가에는 택시 정류장이 있고 표지판에는 친절하게도 요금까지 안내해놓았다. 그중에 적당한 거리의 ‘파라다이스 비치’를 찾아가본다. 택시 기사는 좁은 길을 잘도 달린다. 10분쯤 지났을까. 작은 정류장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니 멋진 해수욕장이 나타난다. 나무와 파라솔, 긴 의자 등이 잘 정돈된 곳인데 푸른 바다를 앞에 둔 하얀 백사장은 이름에 걸맞게 정말 낙원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제 바닷가에 누워 당신에게 보내는 미코노스에서의 편지를 마치려 한다. 푸른 기운을 잔뜩 머금은 해풍이 눈꺼풀을 간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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