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호

사(寫)를 통한 진(眞)의 완성

[책 속으로] 한국사진사

  • 박해윤 기자 land6@donga.com

    입력2022-02-2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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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석 지음, 592쪽, 문학동네, 5만5000원.

    박주석 지음, 592쪽, 문학동네, 5만5000원.

    1839년 8월 19일 프랑스인 루이 다게르가 사진술을 발명한 뒤 사진은 전 세계 인류 모두가 향유하는 대중문화가 됐다. 서양에서 사진은 어엿한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100년의 긴 역사에도 여전히 미술사 한 켠에 박혀 있다. 한국 사진의 미적 연구가 부족한 환경에서 등장한 박주석(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의 ‘한국사진사’는 우리 사진의 진면목을 찾기 위한 사진계의 움직임 중 하나다.

    한국 사진을 발굴하고 알리는 큐레이터와 아키비스트로 활동해 온 박 교수가 최근 출간한 ‘한국사진사’는 집필에서 완성까지 30년의 시간이 걸렸다. 수록 도판만 300여 점에 달한다. 방대하고 생생한 자료를 통해 조선의 사진 도입 과정부터 현대미술의 중심에 선 현재까지 우리의 사진 역사를 사료(史料)와 함께 기술하고 있다.

    ‘한국사진사’는 온전히 우리 삶을 토대로 한국 사진의 역사를 풀어헤친 역사서이자 자료집이다. 한국엔 언제 사진술이 도입됐고, 최초의 사진관은 어떻게 차려졌으며, 사진이란 말은 어디서 나왔을까. 저자는 흩어져 있던 조각을 모아 역사적 배경과 의미에 살을 붙이고 먼지 쌓인 구한말 사진가들의 역사를 되살려 온전한 한국사진사를 완성했다. 조선시대 진경산수화와 풍속화에 사진이 숨겨져 있었고, 실사구시 사조가 사진 도입의 배경이 됐다는 독자적 존재론을 역사적 고증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저술한 부분은 저자의 독특한 접근법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베낀다는 뜻의 사(寫)와 참된 모습이라는 진(眞)의 결합어인 사진(寫眞)을 동양미술의 전신사조 미학과 연결 짓는다. 사진이 포토그래피의 번역어가 아니라 고려의 이기이원론과 조선의 사실주의 정신에서 온 낱말이라고 주장한다. 사(寫)는 모사와 같은 것으로 사진 찍는 행위, 즉 포토그래피와 같은 뜻이지만 진(眞)은 마음의 상태를 말하며 형이상학적 동양철학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고려시대에 초상화를 ‘사진’으로 부르기도 했다.

    책은 한국사진 미학에 영향을 준 선각자들과 사건을 12개 주제로 나눠 통시적으로 배열해 역사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특히 제6장은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신낙균의 사진 인생을 다루고 있다. 경기 안성에서 만세운동 사건에 참여했으며 일본으로 도피 후 동경사진전문학교를 졸업하고 YMCA 사진과 교수로 부임한 신낙균은 근대 사진 교육의 기초를 마련한 한국사진사의 주요 인물이다. 1934년 민족주의와 문화주의를 지향하던 동아일보에 사진부장으로 임명돼 포토저널리즘의 실무적 기초를 정립했고, 사진기자로서 업적도 뛰어났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을 주도했다. 동아일보 기자들과 함께 일제의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며 그가 이끌던 경성사진사협회까지 탄압을 받아 언론계를 떠났다.



    요컨대 ‘한국사진사’는 한민족 고유의 정신이 담긴 역사서이며 사진가론이다. 우리가 찍은 사진 한 장에서 사(寫)를 통한 진(眞)의 의미를 새기며 사진의 가치를 새삼 돌이켜보게 한다.

    박 교수의 ‘한국사진사’ 발간을 기념해 ‘사진컬렉션 지평’에서 제공한 빈티지 프린트 전시를 서울, 광주, 대구의 갤러리에서 관람할 수 있다. 사진컬렉션 지평은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역사적, 미학적, 사회적 가치를 지닌 1300여 점의 빈티지 사진과 150여 점의 유리원판을 소장하고 있다. 고(故) 최인진 선생과 박주석 교수가 평생을 바쳐 수집한 한국사진사 연구의 귀중한 보고다. 전시 장소와 일정은 다음과 같다.

    서울: 언주라운드(1.15~2.26)
    광주: 갤러리 혜움(3.5~3.25)
    대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4.2~5.1)

    한국사진사에 수록된 주요 사진들

    고종 어사진. 지운영. 1884년.

    고종 어사진. 지운영. 1884년.

    고종 어사진. 김규진. 1905년.

    고종 어사진. 김규진. 1905년.

    대한매일신보 천연당사진관 광고.

    대한매일신보 천연당사진관 광고.

    최승희. 1930년. 신낙균. 1934년.

    최승희. 1930년. 신낙균. 1934년.

    손기정 일장기 말소. 1936년.

    손기정 일장기 말소. 1936년.

    정해창. 1929년.

    정해창. 1929년.

    한국사진사를 펴낸 박주석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박해윤 기자]

    한국사진사를 펴낸 박주석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박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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