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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어깨 위로 날아오른 새

2017 방탄학 개론

  • 미묘|‘아이돌로지’ 편집장 tres.mimyo@gmail.com, 조영철 기자

거인의 어깨 위로 날아오른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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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인’ 서태지가 선택한 아이돌은 방탄소년단이다. 왜 빅뱅이, 엑소가, 워너원이 아닐까. ‘컴백홈’을 다시 부를 자격이 오로지 방탄에게만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9월 2일, 서태지의 데뷔 25주년 콘서트가 열렸다. 콘서트가 열리는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 갔던 한 지인은 “여기서는 ‘아미밤’ 꺼내면 안 된대”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아미밤’은 방탄소년단의 응원봉 이름이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서태지 팬과 방탄 팬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이날 특별 게스트로 출연해 서태지와 함께 ‘Come Back Home’ 등 서태지와 아이들의 대표적인 6곡을 무대에 올렸다. 팬들은 ‘전설과 대세의 만남’이라며 이 무대를 주목했다. ‘시대의 아이콘을 물려주는 자리’라고 논평한 이도 있다. 서태지라는 ‘거인’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어쩌면 방탄소년단은 조금 낯설지도 모른다. ‘거인과 나란히 설 자격이 있는 아티스트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볼지도 모르겠다.



국내 先주문만 100만 장 초과

방탄소년단은 현재 케이팝(K-Pop)의 정상에 있는가?

그렇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그렇지 않다. 그 이상이다. 우리가 통상 기대하는 ‘케이팝 정상’의 의미가 방탄소년단을 통해 줄곧 경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그룹은 9월 현재 유튜브 조회 수 1억 회 이상 뮤직비디오를 7편 보유한다. 그중 두 편은 2억 회를 넘어섰다. 트위터 팔로어도 방탄소년단 공식 계정(@bts_bighit)이 약 560만 명, 멤버들이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별도 계정(@BTS_twt)은 약 820만 명이다.



9월 18일 발매되는 새 미니앨범 ‘Love Yourself 承 Her’는 국내 선주문만 100만 장을 넘겼다. 예약 상품임에도 아마존(Amazon.com)의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다. 방탄소년단은 이 미니앨범에서 현재 주류 팝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EDM(Electronic Dance Music) 아티스트인 체인스모커스(Chainsmokers)와 협업했다고 한다.

방탄소년단의 정점(頂點)은 빌보드와 떼어놓고 말하기 어렵다. 지난해부터 ‘빌보드 200’ 차트를 꾸준히 치고 올라가더니, 지난 5월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Top Social Artist)’ 상을 수상하며 레드카펫을 밟았다. 이 뉴스는 국내에서는 물론 미국 현지에서도 광범위하게 보도됐다.

톱소셜 아티스트 상은 팬덤의 크기와 열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지표다. 지난 6년간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가 독점해왔다. 작년부터 크게 성장하긴 했지만 방탄소년단의 국내 팬덤이 매우 강한 편은 아니었기에 이들의 수상은 자연히 세계 무대에서 크고 강한 팬덤을 구축했다는 방증으로 해석됐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2012)과 결정적인 차이가 나온다.

강남스타일이 인터넷 문화와 맞물려 세계적 화제가 되면서 히트했다면, 방탄소년단은 강력한 팬덤의 지지에 힘입어 좀 더 지속가능한 성공을 일구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그저 한국어로 노래할 뿐, 실질적으로는 케이팝의 프레임을 넘어선 기록을 만들어내고 있다. 


逆수입된 케이팝

대중음악에서 좋은 음악이 팔리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없지만, 잘 팔리는 것에는 대체로 이유가 있다. 방탄소년단의 경우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데뷔 3년차인 2015년까지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음악평론가 김영대는 북미 최대 규모의 케이팝 컨벤션 ‘케이콘’ 현장에서 방탄소년단이 2014년에 이미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냈음에 주목한다. 엑소가 2013년 ‘으르렁’의 국민적 히트로 100만 장 판매 기록을 세운 뒤 ‘중독’을 통해 인기에 쐐기를 박던 시기였다. 당시 해외의 케이팝 팬덤을 지켜본 사람들은 방탄소년단이 엑소와 해외 팬덤을 양분하는 거대 세력이 됐음을 인정했다. 방탄소년단의 국내 팬덤이 2015년 ‘화양연화’ 시리즈를 기점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으므로 이들은 해외에서 먼저 성공한 뒤 역수입된 케이팝이라 할 수 있다.

해외시장 성공을 세일즈 포인트 삼아 소위 언론플레이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방탄소년단은 다르다. 이들의 해외 인기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했다. 또 빌보드 수상 이전까지는 국내 언론이 이를 크게 다루지도 않았다.

케이팝 해외 진출의 예전 ‘정석’은 방탄소년단의 경우와 달랐다. 보통 국내 팬덤 기반을 탄탄히 다진 다음 해외 활동을 개시했다. 해외 활동 시기 발생하는 국내 공백기를 버텨내려면 충분히 강한 팬덤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시대가 바뀌어 국내에선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는데, 동유럽이나 남미 등 특정 지역에서 집중적인 인기를 얻는 경우가 나타났다. 국내에선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 각지에서 행사 무대를 돌며 제법 수익을 올리는 아이돌 사업모델도 한동안 많이 활용됐다. 어느 경우든 해외 팬덤은 국내 팬덤의 부가물, 또는 별개로 인식됐다. 방탄소년단처럼 그 인기가 국내로 역류해 들어올 만큼 해외 팬덤이 강한 동시에 국내와 긴밀하게 연결된 적은 없다.

이는 다분히 해외 케이팝 팬덤의 성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통칭 ‘학교 3부작’이라고 하는 방탄소년단의 초기 활동은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반향을 얻긴 했지만 지금과 같은 파란(波瀾)의 수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해외에서 강한 팬덤을 일군 것은 해외 팬덤이 갖는, 국내와는 다른 취향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케이팝 팬덤은 빅뱅과 유튜브를 시발점 삼아 2006년부터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10여 년 세월은 이들을 일본 애니메이션 팬덤 같은 서브컬처(subculture) 집단으로 발전시켰다. 사회 주류와는 좀 다른, 독자적 취향의 공동체다. 자신들만의 행동 양식과 담론을 내부적으로 공유하고, 외부적으로는 취향의 차별화를 확인한다. 2012년 강남스타일이 히트하자 해외 팬들 사이에서 “나는 강남스타일 이전부터 케이팝을 좋아했다”는 고백(?)이 쏟아진 것은 무척 상징적인 일화다. 자신이 속한 사회 주류와 ‘구별 짓기’를 시도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방탄소년단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것은 케이팝 ‘본류’라 할 국내와도 또 다른 취향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화양연화’ 시기의 활동 전략에서 이러한 국내외 취향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두 장의 미니앨범과 한 장의 리패키지 더블앨범으로 구성된 이 연작에서 방탄소년단은 두 가지 대조적인 노선을 동시에 추구했다. ‘I Need U’와 ‘Run’은 드라마적 서사가 엿보이는 뮤직비디오, 한껏 감성적인 멜로디, 인상적으로 치고 들어가는 후렴 등 소위 ‘국내 취향’을 상당히 반영했다. 가요로서 손색없는 곡들이었다. 반면 ‘쩔어’와 ‘불타오르네’는 강렬하고 공격적이면서 유쾌한 음악에 다채로운 의상, 폭발적인 에너지의 군무를 조합했다. 이러한 특성은 해외 팬덤이 가장 사랑하는 케이팝의 요소다.

전략의 차이는 결과의 차이를 가져왔다. ‘쩔어’와 ‘불타오르네’는 각각 2억 회 이상이라는 유튜브 최고 조회 수를 기록했다. 해외에서 유독 큰 반향을 얻었기에 가능한 수치다. 이 시기 곡 중엔 주류 팝 시장의 트렌드와 서정성, 역동적인 안무를 조합해 국내외 팬덤을 동시에 노린 ‘Save Me’도 있었다. 역시 대단한 반응을 얻었지만, 조회 수가 1억3000만 뷰로 2억 뷰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그만큼  ‘쩔어’와 ‘불타오르네’는 해외 팬덤을 강하게 ‘취향저격’해 성공한 사례다.



“난 좀 아닌 것 같어”

방탄소년단의 또 다른 두드러진 강점은 콘셉트다. 케이팝에서 콘셉트는 그저 외연(外延)만 뜻하지 않는다. 각 작품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방탄소년단은 데뷔 초부터 ‘10대의 대변자’를 자처했다. 이른바 ‘학교 3부작’으로 불리는 초기 석 장의 음반이 그러하다. 사랑 노래에서도 학교를 배경으로 호르몬 넘치는 10대의 격정을 다뤘다.

특히 고등학생이 할 만한 표현을 예리하게 잡아낸 것이 눈길을 끈다. “여자들은 방정식 우리 남자들은 해” “나도 열여덟 알 건 다 알어”(‘호르몬 전쟁’), “대학까지도 너랑 간다면 참 잘 갈 것 같아”(‘상남자’)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는 “공부하는 기계”가 되었지만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불안(‘N.O’·2013), 학교에서 느끼는 빈부격차(‘등골브레이커’) 등 10대의 어두운 현실도 노래에 담아냈다. 무엇보다도 멤버 각자의 출신지 방언을 활용해 지역색을 드러내거나(‘어디에서 왔는지’ ‘팔도강산’), 학교에 갇혀 힙합 아티스트를 꿈꾸는(‘힙합성애자’) 등 멤버들의 실제 삶과의 접점을 노출했다. 이는 팬들에게는 더 깊은 이입을 유도하는 장치이며, 외부를 향해서는 진정성 있는 힙합 뮤지션으로 어필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기조는 이후의 음반에서도 유지됐다. 이어진 2015년 ‘화양연화’ 연작은 이제 막 성인이 된 청춘의 방황과 절망을 테마로 했다. ‘N.O’에서 예감한 불확실한 미래가 이번엔 현실이 되어 닥쳐온 것이다. ‘뱁새’는 양극화의 현실 속에서 일방적으로 노력을 강요당하는 데 대한 환멸을 표현했고, ‘쩔어’는 삼포세대, 오포세대 등으로 대상화되는 청춘을 비꼬았다. ‘Run’은 오직 거리를 달리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화자의 고백을 통해 청춘의 고통과 벅차오르는 혈기를 표현했다. 멤버들도 팬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성장하기에, 각 인생의 시점에서 가장 절박한 이야기를 솔직하고 절절하게 담아낸 것이다. 멤버들이 작사 및 작곡에 매우 주도적으로 직접 참여한다는 것도 메시지의 진솔함을 강화했다.

흥미로운 점은 방탄소년단의 ‘커리어 상승’을 따라가는 곡 역시 등장한다는 것이다. ‘Epilogue : Young Forever’는 화려한 무대를 마치고 난 뒤 느끼는 불안과 공허를 고백한다. ‘이사’는 더 큰 숙소로 이사 가는 심경을 구체적 평수와 지명까지 거론하며 노래한다. 더 나아가 다음 앨범인 ‘Wings’(2016)와 그 리패키지 앨범인 ‘You Never Walk Alone’(2017)은 화자의 시선이 유난히 두드러진다. ‘Am I Wrong’에 등장하는 “온 세상이 다 미친 것 같아” “You think it is okay?” “난 좀 아닌 것 같어” 같은 가사는 세상에 대해 판단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양태를 띤다.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Not Today’까지 이르면 그 시선은 더 넓어진다. 전에는 여러 상황에서 겪게 된 것을 노래하며 서사의 배경 속에 머무르던 화자가, 이제는 자신이 직접 보고 생각한 것을 말한다. 힙합의 진정성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있다. 주체성을 갖는 ‘입’, 즉 래퍼의 정체성이 점점 두드러진다. 이는 “학습지 사이 백지에” 가사를 쓰며 힙합을 꿈꾸던 ‘힙합성애자’(2014)와도 연결된다. 이러한 일련의 진행을 통해 방탄소년단이라는 아이돌 그룹이 음악가로서 점차 성장해나가는 큰 서사가 그려진다.

이는 무척 흥미로운 전략이다. 음악으로 현실 세계를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가 자연인으로서 실제의 삶과 강하게 맞물리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최소한의 가공만을 거친 ‘진짜 이야기’로 다가온다. 방탄소년단은 현실과 연결된 끈을 움켜쥐며 팬들에게 힙합의 진정성 여부 정도는 아득히 뛰어넘는 ‘몰입’의 기쁨을 제공한다. 나는 이것이 국내외 팬들을 사로잡은 방탄소년단의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한다. 해외 팬들도 방탄소년단 음악의 ‘메시지’를 매우 높게 평가한다. 외국 팬들에게 ‘방탄소년단’은 발음하기도 어렵고 가사 내용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언어 장벽을 뛰어넘어 그 메시지를 이해하고 나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사로잡힌다.


‘누구의 메시지인가’

그런데 공교롭게도 방탄소년단이 발휘하는 이 빛은 상당 부분 서태지와 아이들의 유산에서 비롯됐다. 방탄소년단의 초기 전략은 교육 현실을 비판한 ‘교실 이데아’(1994), 방황하는 10대들에게 손을 내미는 ‘Come Back Home’(1995)의 연장선 위에 있다. 광기로 치닫는 세계에 대한 비판(‘시대유감’·1996)도 방탄소년단의 최근작과 맞닿는다.

하지만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에서 사회적 메시지는 진지한 음악가의 표상(表象)처럼 여겨졌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계승한 H.O.T.나 젝스키스 등 수많은 아이돌 또한 음악에 곁들여 무언가를 어필하려고 했다. 그것은 팬들을 열광시키기는 했지만 대중을 납득시키진 못했다. 결국 피상적인 ‘남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전문 프로듀서들이 기획, 제작한 음악이기에 성인이 써준 이야기를 읽는 격이었다.

서태지의 곡 역시 어른의 시점에서 쓰였다. ‘교실이데아’는 “왜 (너희는) 바꾸지 않고” “젊은 날을 헤맬까”라며 “이젠 생각해봐, 대학”이라고 권한다. ‘Come Back Home’ 역시 “내 삶의 끝을 본 적 있”는, 지금은 어른이 된 화자가 “이제 그 차가운 눈물은 닦고” “집으로 돌아오라”고 한다. 이미 경험해본 성인이,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10대를 향해 발언하는 것이다.

H.O.T.의 ‘전사의 후예’를 쓴 유영진이나 젝스키스의  ‘Road Fighter’를 쓴 김영아 역시 10대 시절 서태지와 같은 경험을 했을 수도 있다. “너를 지켜보려 해”라며 가해자를 저주하거나 “아무것도 내겐 도움이 안 돼”라며 어른을 불신하는(‘전사의 후예’) 등 그들의 가사는 서태지보다 더 과격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개인사를 알지 못한다. 반면 교육 시스템에서 탈주해 꿈을 좇은 서태지의 삶은 매우 잘 안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하게 노래의 내용으로 맞물려 들어간다. ‘어떤 메시지냐’보다 ‘누구의 메시지냐’다. 다시 진정성이다.

최근 케이팝 관련 논문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아이돌’에서 제외하는 추세다. 한때 대표적인 아이돌로 거론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그가 아이돌이라는 원형(原型)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너에게’(1993)는 팬에게 유사연애의 감흥을 제공하고, ‘우리들만의 추억’(1993)은 팬들에게 헌정하는 송가로 오늘날 아이돌들의 통칭 ‘팬 송’과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 멤버 각자의 매력을 어필하거나, 음악의 흐름을 도중에 파격적으로 뒤집어놓는 등의 요소도 케이팝 아이돌의 근간을 제시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대중적으로 알려진 삶을 녹여 한층 깊이 몰입하게 하고, 이를 통해 아티스트의 커리어 그 자체를 ‘감상의 대상’으로 승화시키는 서태지의 전략은 아이돌 그 자체다. 심지어 서태지와 아이들은 은퇴하는 순간에도 ‘시대유감’과 ‘Good Bye’를 통해 ‘주류 사회의 핍박에 환멸을 느껴 떠나가는 외골수 천재’라는 이미지에 완벽하게 부합하며 작별을 고했다.

다시 방탄소년단. 이들은 현재 과거 빅뱅이나 소녀시대, 엑소처럼 ‘국민 아이돌’로 공인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런데 성인 팬들 중 유난히 방탄소년단을 ‘못 견뎌’ 하는 이들이 종종 목격된다. 1세대 아이돌이 저물고 2006년 이후 새로운 아이돌이 쏟아져 나왔다. 오늘날 아이돌은 성인 팬 또한 겨냥한다. 복잡한 현실을 잊고 예쁜 가공품을 즐기며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한참을 예쁘기만 한 아이돌을 봐왔기에 절절함이 넘치는 방탄소년단이 너무 무겁거나 또는 낡은 것으로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초기 ‘학교 3부작’이 유독 초등학생 사이에서 인기를 끌어 방탄소년단이 소위 ‘초통령’으로 불린 것도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방탄소년단과 서태지의 공통분모는 누군가에겐 향수를 자극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패스’하고 싶은 과거일 수도 있다.



‘서태지 모델’, 어떻게 현재화할 것인가

달리 말하면 방탄소년단이 그러한 ‘낡음’의 시선을 뚫고 지금의 자리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는 ‘서태지 모델’을 어떻게 현재화할 것인가 하는 질문과도 연결된다.

단적으로 SNS 활용이 있다. 아이돌이라면 누구나 SNS를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유독 SNS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이들은 SNS에서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를 노출하곤 하는데,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음악적 특성과 맞물린다. 음악 속 이야기가 누구에게서 어떤 정황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이들의 SNS는 음악에 대한 부가 콘텐츠라기보다는 차라리 원본에 가깝다. 완성도 높은 음악 속에 개인사를 담아 커리어를 하나의 서사로 만드는 게 서태지의 방법론이라면, 방탄소년단은 SNS를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보충해 제시한다.

여기에 더해 고도로 조직화된 케이팝 제작 시스템이 있다. 시스템은 방탄소년단이라는 커다랗고 복잡한 서사를 짜임새 있게 미학적으로 제시한다. 주류 팝 시장의 트렌드를 동시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21세기 케이팝에서만 가능한 것이며, 방탄소년단이 다른 아이돌보다 유난히 잘 해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앞서 살펴본 해외 팬덤이란 새로운 요소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1990년대 서태지가 도전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서태지라는 거인의 어깨에 앉은 새다. 이들은 거인은 보지 못한 기류를 영민하게 이용하며 한껏 날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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