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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페이소스’ 최정화

“촌스러움을 흉보면서도 꼼짝없이 좋아하게 되는 아이러니”

‘불편한 페이소스’ 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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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치하고 촌스러운 일상 생활용품은 최정화를 통해 작품 소재이자 주제로, 때론 작품 그 자체로 재탄생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기성관념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물신숭배와 정신의 간극 사이에서 방황하는 관객의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찌른다.
‘불편한 페이소스’  최정화

◇1961년 서울 출생 ◇ 홍익대 미대 회화과 졸 ◇계원조형예술대 건축디자인과 겸임교수, 가슴시각개발연구소 소장 <br>

어수선한 재래시장 또는 시골장터 같은 번잡스러운 풍경이 고상한 미술관에 펼쳐진다면 아연실색할 일이다. 최정화(崔正化·47)는 이렇듯 예술에 대한 우리의 허위의식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번쩍거리는 우승 트로피, 울긋불긋한 플라스틱 바구니, 흔히 ‘이발소 그림’으로 불리는 유치찬란한 그림, 마네킹과 풍선, 변두리 극장 간판, 울긋불긋한 비닐 차양막, 이태리타월, 시골 장터의 양복점 쇼윈도에 내걸린 촌스러운 양복 또는 유니폼, 조잡하지만 성심껏 쓴 간판…. 유치하고 촌스럽고 때로는 폭력적인 이런 일상의 생활용품들은 그의 작품 소재이자 주제이며 때론 작품 그 자체로 재탄생한다.

최정화의 작품은 대개가 그의 손으로 만들어지기보다는 그의 머릿속에서 조합되고, 그를 도와서 작업하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구현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성을 간직한 채 존재한다. 최정화는 소재에 뭔가를 덧붙이거나 다듬어 고유한 속성을 제거하기보다는 그 존재를 인정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있는 그대로의 날것, 마치 상추에 된장을 넣어 싸 먹는 ‘막회’ 같다.

감추고 다듬고 치장해서 세련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생긴 그대로가 최정화의 매력이다. 때론 그도 치장을 한다. 하지만 그건 ‘생얼’을 더욱 ‘생얼’답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여타의 치장과는 거리가 있다.

날것들의 조합



그의 작품을 대하는 관객은 불편하다. 그렇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아련한 추억과 씁쓸한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페이소스를 느낀다. ‘페이소스’는 일시적인 격정 또는 예술에서 작가의 주관적 감정 요소를 의미하는데, 한편으로는 ‘비애’와도 통한다. 전통 미학적 입장에서 예술품에 담긴 도덕적, 이성적인 특성을 의미하는 에토스(ethos)와는 상반된 의미를 갖는다.

최정화의 예술은 그리스어 파토스(pathos)를 식자층인 척하는 사람들이 영어식 발음인 ‘페이소스’로 발음하는 것처럼, 문화적 차이를 드러낸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의 예술은 문화예술계에서는 외면당하면서도 일상에서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아이러니다. 유치하다고 외면당하던 사물들이 ‘최정화’라는 이름표를 달면 세련된 청담동의 부티크나 고급 카페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는 1986년 중앙일보사가 주최하는 중앙미술대전에서 ‘드로잉-Ⅱ’라는 작품으로 장려상을 수상한 데 이어 이듬해인 1987년 같은 공모전에서 ‘체(體)’라는 작품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그것도 대학 재학 중에. 이는 그의 순수회화, 그림 실력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지만, 오늘날 그의 행보로 봐서는 이런 행동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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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미술비평가,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curatorj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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