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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페이소스’ 최정화

“촌스러움을 흉보면서도 꼼짝없이 좋아하게 되는 아이러니”

‘불편한 페이소스’ 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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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페이소스’  최정화

1990 Sunday Seoul, Seoul. Korea

훗날 필자가 ‘왜 전시회에 출품했는가’라고 묻자 그는 “대상을 수상하면 작품을 매입해주고 부상으로 유럽여행을 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는 해외여행이 자율화되기 전이었으니 이해되기도 한다. 그의 답변에서는 수상을 자신하고 출품했다는 뉘앙스가 풍긴다. 다소 치기 어린 대답이라 하더라도 그는 어떤 그림을 그리면 소위 제도권, 미술권력가들의 눈에 들지를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아무튼 그는 꿈에 그리던 유럽 땅을 밟고 세상에 대해 눈을 떴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오자 그동안 제작했던 평면작품들을 모두 불사르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그에게 여행이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줍는 일이었다. 그는 해외여행이 어렵던 1985년, 일본과 홍콩을 다녀왔다. 일본 신주쿠의 화려한 거리는 그에게 충격이었다. 홍콩은 전통과 현대가 잘 버무려진 한 그릇의 비빔밥과도 같았다.

반면 중앙미술대전 수상으로 가게 된 유럽여행은 답답함뿐이었다. 거대한 미술관과 잘 짜인 진열장에 들어 있는 미술은 오늘과 미래는 보이지 않고 온통 과거뿐이었다. 그는 중앙미술대전 대상 수상으로 제도권 미술에 안착할 수 있는 입장권을 거머쥐었지만 ‘공식이 있는 그림’ ‘미술동네에서 통용되는 그림’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여행 후유증이 컸던 셈이다.

그는 인테리어 회사에 입사했다. 그에게 공사 현장은 꽤나 익숙한 곳이었다. 그가 대학에 다니는 동안 대한민국은 도처가 크고 작은 공사판이었다. 부수고 짓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던 시기였다. 그에게 공사 현장의 싱싱함, 생동감이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날것들이 서로 비비고 조합해 하나의 골조를 이뤄가는 과정의 ‘진함’을 즐기며 3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삐까번쩍함



그 와중에 그는 1987년부터 고낙범, 이불 등과 함께 ‘뮤지움’이란 그룹을 결성해 자유분방하면서도 실험적인 도발을 일삼았다. 그들은 모더니즘의 형식주의에 안주하고 있던 당시 한국 현대미술에 반역자이자 이단자였다. 그들은 죽음과 섹스, 쾌락, 환상, 헐벗음, 실존 같은 현실적이고 생생한 삶의 현장에 바탕을 두었다. 또한 가볍고 재기발랄한 키치적 감수성을 무기 삼아 기성세대의 허위의식을 비꼬았다.

그 중심엔 언제나 최정화가 있었다. 그는 고상하고 가치 있는 ‘뮤지움’이 아닌, 잡것들이 거센 숨을 내뱉고 들이쉬는 생생한 삶 속의 ‘뮤지움’을 지향했다. 이후 ‘선데이 서울’ ‘쇼쇼쇼’ ‘바이오 인스톨레이션’ 등의 전시를 기획하고 참여하면서 그간 화단의 중심을 이루던 ‘꼰대’들에게 ‘감자를 먹이기’ 시작했다.

그는 잰 척하는 기성세대와 속물근성으로 가득한 프티 부르주아에게 가면을 벗고 날것 그대로 나설 것을 요구했다. 기성 작가들의 눈에 그가 ‘막돼먹은 놈’처럼 보였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 다른 생생함이 넘쳐나는 오늘의 ‘뮤지움’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시장이다. 그것도 살 냄새가 묻어나는 동네장터, 시골장에 빠져들었다. 그곳엔 욕망은 있지만 위선은 없었다.

잘살아보기 위해 새벽 종소리를 들으며 일터로 나가던 시절, 우리들에게 재래시장의 싸구려 물건들은 욕망의 종착지이자 삶의 보람이었다. 울긋불긋한 플라스틱 소쿠리, 절대 깨지지 않는 고무대야, 플라스틱 바가지, 금빛 나는 알루미늄 주전자와 냄비들은 삶을 편하고 윤기 나게 해주는 도구였다. 그것들을 소유하고 사용한다는 것은 신식을 의미했다. 여기에 언제라도 뽕짝 가락을 공급해주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라도 하나 있으면 최고의 문화적 혜택을 누린다고 믿은 시절이 있었다. 최정화는 우리 국민의 건강했던 의식과 심층의 저변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조금 먹고살 만해지면서 우리는 격조 있는 모습으로 보이길 원하고, 그렇게 보이기 위해 꾸미고 치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외모를 바꾼다 하더라도 유전인자에 남아 있는, 1970년대의 ‘삐까번쩍함’에 환호하고 작약하던 미적 감각은 여전하다. 아무리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와 와인으로 ‘디너’를 즐겨도 집에 돌아가기 위해 오른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송대관이나 설운도의 유치한(?) 가사와 창법이 아련하게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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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미술비평가,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curatorj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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