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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과 춤, 혁명의 도시들이여, 올라(Hola(안녕)) 꾸바!

정열과 춤, 혁명의 도시들이여, 올라(Hola(안녕)) 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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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몇 해 전부터일까. 꾸바 혁명과 예술을 다룬 TV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체 게바라 전기와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등이 뒤죽박죽 나를 흔들었다. ‘설렘’이었다. 불안만이 영혼을 잠식하는 건 아니다. 감동 없는 일상에 끼어든 그 ‘설렘’은 맹렬히 자가분열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집어삼켰다. 책상 뺄 각오로 휴가를 얻어 무작정 꾸바 여행길에 올랐다.
정열과 춤, 혁명의 도시들이여, 올라(Hola(안녕)) 꾸바!
버스 종점에서 잠을 깼다. 차에 불이 꺼진 걸 보니 막차인가? 빈속에 마신 술로 휘청대는 몸을 가누며 돌아봤다. 한글 노선표가 선명한 버스들…, 꾸바에 한국산 중고버스가 이렇게 많았던가?

“돈데 에스따모스(여기가 어디죠)?” “꼬모 푸에도 볼베르 아 센뜨로 아바나?(센뜨로 아바나에 어떻게 돌아가죠)?”

머릿속으로 스페인어 작문을 하며 한 남자에게 다가갔다. 헉, 한국인 버스기사. 여긴 서울 모래내 버스종점, 꾸바가 아니었다. 몸은 이미 한국에 돌아온 지 오래이나, 마음은 아직 꾸바의 거리를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4월, 한 달 일정으로 꾸바를 여행했다. 경유지(캐나다 토론토·밴쿠버)에서 보낸 이틀을 빼면 꼭 4주일. 지난해 크리스마스 무렵 꾸바 아바나행 에어캐나다 ‘얼리버드 항공권’을 샀다. 빼도 박도 못하게 저질렀다. 6개월간 ‘서바이벌’ 스페인어도 익힌 터였다. 15년 근속휴가 3주에 정기휴가 열흘을 붙여 대장정에 나서기로 했지만 걱정부터 앞섰다. ‘책상을 확 빼버리면 어쩌지?’ 그래도 직장상사, 동료들이 응원해주니 난 복 받은 자란 생각이 들었다.

정열과 춤, 혁명의 도시들이여, 올라(Hola(안녕)) 꾸바!

뜨로바의 전통음악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관광객들.

3월29일. 도심 뒷골목엔 잔설이 쌓여있고, 인천공항에는 봄비가 내렸다. 면세구역에서 에세이와 소설 두 권씩을 샀다. 그리고 기원했다. 이 책들을 읽지 않고 돌아올 수 있기를, 늦은 밤일지라도 책 읽을 짬 따위는 없기를, 더 깊은 밤엔 꿈도 꾸지 않고 잠에 빠질 수 있기를….



오후 5시20분 에어 캐나다 64편이 이륙했다. 10시간의 비행. 밴쿠버는 29일 오후 2시. 시간을 거슬러 날아왔다. 토론토 행 국내선에 다시 짐을 부쳐야 한다. 4시간 후 토론토 피어슨 공항. 29일 오후 9시가 넘어 깜깜하다. 아직도 남은 겨울의 냉기. 공항에서 12시간을 버텨본다던 호기는 단박에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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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동아일보 오피니언팀 차장 jh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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