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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33인 한용운과 박희도

“독립의 영(榮), 변절의 욕(辱), 모두 산 자들의 짐인 것을…”

민족대표 33인 한용운과 박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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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우리공원에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으로 끝까지 지조를 지킨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1879~1944)과 일제 말기의 친일 행적으로 속죄의 말년을 보낸 박희도(朴熙道 1889~1951)가 함께 묻혀 있다. 그들이 살아서 남긴 족적과 영욕은 무엇인가. 또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짐은 과연 얼마만큼인가.
민족대표 33인 한용운과 박희도

망우리공원 만해 한용운(왼쪽 위 원 안) 묘 전경

망우리공원 관리사무소 인근 순환로를 기점으로 좌측 방향으로 가면 동락천 약수터가 나오고 다시 5분 정도더 걸으면 오른쪽에 만해 한용운의 묘가 보인다. 독립지사이며 시인으로 유명한 만해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을 터. 하지만 그의 삶을 온전히 아는 이는 드물다. 그 때문일까. 만해의 묘소를 찾는 많은 이는 묘소의 비석을 보고 깜짝 놀란다. 승려인 만해의 묘 옆에 부인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만해의 묘비에는 ‘만해한용운선생묘 부인유씨재우(夫人兪氏在右)’라고 씌어 있다. 여기서 ‘부인유씨재우’는 ‘유씨 부인이 만해의 오른쪽에 묻혀 있다’는 의미인데 혹자는 만해의 부인을 ‘유재우(兪在右)’라고 잘못 읽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박장대소할 일이지만 그런 사람이 실제 적지 않다. 여기서 ‘오른쪽’은 바라보는 자의 위치에서가 아니라 고인이 묻힌 자리를 중심으로 해석해야 한다.

승려의 결혼을 許하라

2006년 5월7일자 오마이 TV 인터뷰 기사에서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는 ‘자신의 부친이 대처승이 된 것은 일본이 종교마저 황국화하기 위해 승려들을 대처승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여기에는 이설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 만해는 조선총독에게 “대처승을 허(許)해달라”고 ‘건백서’를 보낸 바 있다. “조선 불교의 부흥을 위해, 승려가 거지 행각을 하면서 돌아다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고, 보통 사람처럼 결혼도 하고 가정도 가져 안정된 바탕에서 승려생활을 해야 불교가 발전할 수 있다”는 소신에서였다.

그는 ‘조선불교유신론’(1913)에서, “육체를 타고나서 식욕이나 색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헛소리일 뿐이다. 억제할수록 더욱 심해질 뿐이고 오직 어지러운 상태에 이르지만 않으면 군자다. 그 욕망을 억지로 억누른다면 은근한 음행을 범하게 돼 풍속을 어지럽힐 가능성이 높다. 불교를 아내 삼아 평생 독신으로 살 영웅이 있다면 그를 존경하지만, 평범한 이의 수준에 맞추자면 관세음보살이 미인으로 몸을 나타내 음탕한 사나이를 제도했다는 고사대로 하나의 방편으로 수행자에게 결혼을 허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만해의 언사를 기초로 “당시 만해를 따르던 청년 조종현(조정래의 부친)은 만해의 뜻에 감화돼 스스로 대처승이 되었다”(‘만해 한용운’, 임중빈. 범우사, 2000)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만해는 총독부에 승려의 대처(帶妻)를 청원한 자신의 행위를 친일이라고 비난한 불교계 인사들의 주장에 대해 현실적 논리를 들어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것은 당면 문제보다도 30년 이후를 예견한 주장이다. 앞으로 인류는 발전하고 세계는 변천하여 많은 종교가 혁신될 텐데 우리 불교가 구태의연하고 그 서열에 뒤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금제를 할수록 승려의 파계와 범죄는 속출하여 도리어 기강이 문란해질 것이 아닌가. 후세 사람들은 나의 말을 옳다고 할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한 나라로서 제대로 행세를 하려면 적어도 인구는 1억쯤은 되어야 한다. 인구가 많을수록 먹고사는 방도가 생기는 법이다. 우리 인구가 일본보다 적은 것도 수모의 하나이니 우리 민족은 장래에는 1억의 인구를 가져야 한다.”(‘한용운 평전’, 고은, 향연, 2004)

만해는 또 불교의 진흥을 위해선 “절이 산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했는데, 결국 절이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대처도 하지 않아서일까, 지금의 불교는 기독교에 비해 위세를 떨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최근 일본이 인구를 1억명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1000만명의 이민을 받아들일 계획이라는 뉴스를 접하고 보니, 만해의 탁견과 예언이 새삼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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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수필가, 번역가 japanli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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