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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밭 일구는 호미’ 소설가 박상우

“글 구속 벗어나니 창작 리듬이 배어나오더군요”

‘글밭 일구는 호미’ 소설가 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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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의 작가 박상우가 오랜만에 문단으로 돌아왔다. 한결 자유로운 영혼이 느껴지는 그에게서 잃어버린 자아를 찾기 위한 낯익은 여행과 10년 동안의 침묵을 통해 한층 원숙해진 문학세계를 들었다.
‘글밭 일구는 호미’ 소설가 박상우
요즘 서점가에 작가들의 여행과 관련된 탁월한 산문집이 눈에 띈다. 우선 김연수의 ‘여행을 할 권리’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나온 김인숙의 ‘제국의 뒷길을 걷다’가 눈에 밟혔다. 박상우를 만나게 된 것도 서점에서 그의 산문집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머물다가 떠난다. 그리고 머문다. 작가들은 떠돌다가 머물러 쓴다. 그들은 어디를 어떻게 떠돌았을까. 오랜만에 소설가 박상우(朴相禹·50)를 만나게 된 것도 그가 오랫동안 떠돌다가 이젠 쓰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쓰는 순간 그 정체성이 환해진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이 문장은 박상우가 맘먹고 낸 산문집 제목이다. ‘맘먹고’라는 표현을 한 이유가 있다. 그간 그는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사람에게서 떨어져 있다는 건,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향수’의 작가 쥐스킨트는 대인기피증 환자처럼 사람들에게서 멀리 있고자 했다. 그러한 마음이 그의 작품 ‘좀머 씨 이야기’의 ‘제발 나 좀 그냥 내버려둬’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어쩌면 소설을 쓰기 위해서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상우는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진 기간에 작품과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럼 소설가가 소설을 쓰지 않고 뭘 하고 있었나 싶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산문집은 그동안 침묵의 기간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지요.”

박상우는 이어서 말했다. 1999년에 그는 ‘이상문학상’을 수상한다. 등단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등단 후 10년간 그는 많은 작품을 썼다.



“1988년에 등단한 후 1999년 문학상을 수상할 때까지는 소설을 쓰면서 소설에 시달린 시절이었어요. 뭔가 끊임없이 써대는 바람에 바닥을 하도 긁어 흙탕물이 나오는 우물처럼 되어버린 거죠. 그래서 공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밑천이 떨어진 장사꾼처럼 정신적인 위기감을 맞은 겁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더 이상 쓰는 행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 10년 정도 공부에 집중해야겠다는 각성을 한 것이다.

여행과 카메라

하지만 그 역시 힘든 시절이었다. 그것을 견디게 해준 것이 여행과 카메라였다. 그의 여행은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었다. 어떤 곳은 조금 과장해서 수백번을 다녀왔다. 즉 자신의 마음자리가 머문 곳을 찾아다니면서 그는 잃어버린 자신을 찾으려 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러한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풍경을 담았다.

“이 기간에 문학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작품을 열심히 쓰던 시절은 문학에 대한 광신도적인 시절이었지요. 누구들처럼 평범하게 문학청년 시절도 거치고 등단하고 그렇게 살았던 겁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학에 대한 신념이 강했는데, 왜 쓰는 일이 고통스러운가?’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된 겁니다.”

문학과 자신의 관계가 마치 주종관계처럼 수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싶었다고 한다. 주인을 섬기는 우직한 종처럼 과도한 열정과 신념, 그것이 오히려 구속이었고 고통이었다. 그래서 그는 길 위에서 대답을 얻었다.

“문학이 내 인생에 1%밖에 안 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것은 의사에게는 청진기이고, 축구선수에게는 축구공일 따름입니다. 나는 글쟁이니까 글이라는 호미 하나 가지고 글밭에 나가 밭을 일구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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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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