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500억달러 예상
전쟁 직전에 전비 규모는 ‘별것 아닌’ 수준으로 추정됐다. 부시 대통령의 경제 고문이었던 래리 린제이는 2000억달러로 예상했다. 그러자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500억~600억달러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한술 더 떠 “전후(戰後) 재건 비용은 이라크 석유 수입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터지자 비용은 급증했다. 2008년의 경우 전쟁 자체 비용인 군사작전비에만 월 평균 125억달러가 들었다. 2003년의 월 비용 44억달러보다 세 곱절로 늘어났다.
비용 증가 요인을 살펴보자. 먼저 인건비가 크게 늘었다. 신병 모집, 전투수당, 위험수당, 보너스 등이 급증했다. 참전 지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당근’을 쓸 수밖에 없었다. 군과 계약한 민간업체에 지급되는 돈도 엄청났다. 2006년의 경우 이라크에 약 10만명의 민간업체 직원이 고용돼 있었다. 1991년 걸프전 때 참가한 민간인 직원에 비해 10배 이상 규모다. 이는 정규군을 늘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민간인 직원들은 미군 부대와 함께 이동하며 일하므로 위험하기는 엇비슷하다. 2003년 이후 민간인 계약직원 1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민간인 직원을 경호하는 업무에도 돈을 써야 했다. 연합국임시행정처(CPA)의 폴 브레머 행정관을 경호하는 데에만 2700만달러가 들었다. 보안 전문기업인 블랙워터는 2003~ 2007년에 12억달러의 경호 계약을 따내 경호원 845명을 고용했다.
보안 업체 경호요원의 1인당 평균 연봉은 연간 44만5000달러라는 고액이었다. 반면 정규군 하사관은 5만~6만달러여서 정규군인들은 불평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수당을 인상했다. 인건비 증가의 악순환으로 나타났다. 의무 복무기간을 마친 군인 여럿은 줄지어 보안업체에 입사했다. 보안업체 직원들은 이라크 국민에게 가혹한 행위를 서슴지 않음으로써 미국에 대한 이미지를 흐리는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다.
군 시설 공사에서 도급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 비리가 만연한 것도 비용증가요인이다.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명분 아래수의 계약이 횡행했다. 군 관련 전문기업인 핼리버튼은 종횡무진 누비며 193억달러의 ‘좋은 조건’의 공사를 따냈다. 핼리버튼은 공화당에 114만달러, 민주당에 5만달러의 기부금도 냈다.
연료비 상승도 주요 요인이었다. 전투에 드는 기름 물량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개전 초기에 유가는 배럴당 25달러였지만 2008년엔 100달러로 치솟았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각종 장비와 무기를 개체하는 데도 막대한 돈이 들었다.
미군, 신속히 철수해야
저자들은 전비와 관련해서 미국 정부가 얼버무리는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폭로했다. 전사자 4000명에 대한 보상, 수십만 부상자의 치료비 및 연금, 참전용사 수십만에 대한 의료 및 사회보장비 등을 전쟁 비용에 포함시켰다. 그 결과 3조달러라는 계산이 나왔다. 이런 거액은 미국 정부의 부채로 남을 것이며 두고두고 미국 재정을 부실화하는 암적 존재가 될 것이다.
이 책이 미국에서 출판됐을 때는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이다. 저자들은 새 대통령이 미군의 신속한 철수를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차가운 머리’와 ‘따스한 가슴’을 가져야 진정한 경제학자라는 경구(警句)를 저자들은 절감한 듯하다. 이 책의 제8장에는 그들의 깊은 내공이 담겼다. 구체적인 개혁안 18개를 제시했다. 이 가운데 이목을 끄는 것은 ▲전쟁자금이 긴급 추가경정예산으로 조성돼서는 안 된다 ▲1년 이상 지속되는 전쟁의 비용은 전쟁 특별부과세를 징수해서라도 현재의 납세자들에 의해 충당돼야지 후대에 떠넘겨져서는 안 된다 ▲재향군인의 의료보장은 재량권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로 인정돼야 한다 ▲재향군인의 교육혜택을 늘려야 한다 등이다.
책이 나오자 전세계적으로 뜨거운 호응이 일어나고 있다. 제임스 갈브레이스 박사(평화와 안보를 위한 경제학자모임 회장)는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전쟁에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드는지,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전쟁이 유가와 경제성장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전쟁 때문에 급박한 국내 과제가 어떻게 무시되는지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상식을 위한 재향군인회’의 폴 설리반 사무총장은 “미국 재향군인 병원에는 이미 부상자 25만명이 입원해 있는데 전쟁이 끝나면 5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면서 “이들을 치료하는 장기 계획을 지금 세우지 않는다면 사회적 영향은 파괴적인 수준이 될 것”이라 우려했다.
이라크에 자이툰 부대를 보낸 한국도 이 책의 가치를 진지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다소 막연히 반전(反戰)을 외치는 평화주의자의 목소리와는 달리 이 책은 전쟁이 관련자의 비극뿐 아니라 자원 낭비라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이 책은 미국 권력층의 부패 구조를 적시함으로써 미국이 의외로 허술한 나라임을 들춰냈다. 하지만 사회과학자의 지성과 양심으로 이런 치부를 파헤친 저자들과 같은 지식인 학자가 있다는 점에서 ‘미국 병(病)’이 불치 단계에 이르지는 않은 듯하다. 개전 이유에 관한 진실을 찾지 못한 점은 아쉽다. 冬
‘오바마의 과제-3조 달러의 행방’조지프 스티글리츠, 린다 빌메스 지음/ 서정민 옮김/전략과문화/ 372쪽/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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