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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열전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 아름답다 할 수 있나

백이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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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은 잠깐 ‘쪽’ 팔리더라도 실리를 챙기고, 욕을 좀 먹더라도 돈 되는 일을 마다하면 바보가 되는 시대인가? 멀고 먼 옛날이야기라지만, 굶어 죽더라도 소신을 포기하지 않고 불에 타 재가 되는 한이 있어도 절개를 굽히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사기열전’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백이와 숙제는 익명성으로 감추고 돈으로 덮어버린 현대인의 부끄러움을 반성하게 한다.
백이열전

일러스트레이션·이우정



‘사기열전’의 인물은 먼 고대 사람이다. ‘사기열전’의 첫 인물 백이와 그의 막냇동생 숙제는 공자보다 더 먼 시절 사람이다. 생활방식이며 음식문화, 정치적인 견해 모두 지금과 달랐다. 백이와 숙제의 고사가 역사적 사실인지조차 의문스럽다고 한다. 만리장성 밖 요서 지방에서 고죽(孤竹) 기후(箕侯) 등의 문자가 새겨진 동으로 만든 그릇이 출토돼 화제가 된 적이 있지만, 그것이 백이의 실재를 증명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시대에 따라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가치관도 변화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의 세포처럼 변하면서 변하지 않는 가치관도 있다. ‘백이열전’에서 사마천은 무엇을 쓰고자 했을까? 사마천은 역사가이기에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과거를 쓴다. 백이와 숙제는 정치적인 치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천재적인 학자나 예술가도 아니었다. 작은 나라 고죽국의 왕자로 태어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길을 포기하고 나라를 떠난 사람들이다.

사마천은 ‘시경에 실려 있지 않은 시’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인용했다. ‘채미가’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 군주의 두 아들인데, 그들의 아버지는 아우인 숙제에게 뒤를 잇게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자 숙제는 왕위를 형 백이에게 양보하려고 했다. 그러자 백이는 ‘아버지의 명령이다’면서 나라 밖으로 달아나버렸고, 숙제 또한 왕위에 오르려 하지 않았다. 백이와 숙제는 서백장(문왕)이 늙은이를 잘 모신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서 몸을 맡기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이 주나라에 이르렀을 때, 서백장은 이미 죽고 없었다. 그의 아들 무왕은 선왕의 시호를 문왕이라 일컬으며 나무로 만든 아버지의 위패를 수레에 싣고 동쪽으로 가 은나라 주왕을 치려 했다. 백이와 숙제가 무왕의 말고삐를 붙잡고 간언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도 치르지 않고 바로 전쟁을 일으키다니. 이것을 효라고 할 수 있습니까? 신하가 군주를 죽이는 것을 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무왕 곁에 있던 신하들이 무기로 자신들의 목을 베려고 했다. 이때 태공이 말했다.

“이들은 의로운 사람들이다.”

이에 그들을 보호하여 돌려보냈다. 그 뒤 무왕이 은나라의 어지러움을 평정하니, 천하 제후들은 주나라를 주종으로 삼았다. 그러나 백이와 숙제만은 주나라 백성이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지조를 지켜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 먹으며 배를 채웠다. 그들은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러 노래를 지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저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뜯네/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었건만/ 그 잘못을 모르는구나/ 신농(神農), 우(虞), 하(夏)나라 시대는 홀연히 지나갔으니/ 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아아! 이제는 죽음뿐/우리 운명도 다했구나!

세상에 대한 원망

수양산에서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에 대해 사마천은 그들이 죽을 지경에 이르러 지었다는 시를 인용함으로써 공자와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백이와 숙제가 인(仁)을 이룬 사람들로서 세상에 원망이 없었을 것이라고 한 공자의 말에 반문한 것이다. 이런 시를 지었는데 원망이 없었다고요?

백이와 숙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건 공자 덕분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백이와 숙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한다. 제자 자공이 “백이와 숙제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공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공동체의 통합을 추구(仁)해서 공동체의 통합(仁)을 얻었는데 무엇 때문에 원망을 했겠는가?” 최근에 출간된 신정근의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에 나오는 번역문이다. 다른 책에선 같은 문장을 ‘인이란 구하는 대로 얻어지는 것인데 또한 무엇을 원망하였겠는가’라고 번역했다. 인을 인간의 자유로 해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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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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