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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들머리 솔숲, 한국의 상징적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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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히 인위적이라고 하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데, 솔숲을 놓고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멋들어진 솔숲이 유지되려면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활엽수를 베어내고 꾸준히 낙엽을 채취해 소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통도사를 비롯한 몇몇 절집이 아름다운 솔숲을 자랑하는 것은 퇴비를 만들기 위해 활엽수 가지를 꺾고 낙엽을 주워 모았던 조상들의 생활방식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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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풍한송이란 이름을 간직한 통도사의 들머리 솔밭.



통도사를 ‘한국의 3대 사찰’ 혹은 ‘불보사찰(佛寶寺刹)’로 한정한다면, 이 절집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물론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간직한 불보사찰로서 이 절의 가치와 중요성은 말할 수 없이 크다. 하지만 통도사를 찾는 평범한 방문자에게 일생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기는 것은 무풍교에서 시작되는 들머리 솔숲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이 솔숲을 일컬어 무풍한송(舞風寒松)이라고 하며 통도팔경(通度八景)의 으뜸으로 치는데, 실제로 불자가 아닌 방문자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그래서 통도사의 또 다른 보물이라고 감히 주장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오늘날 점차 사라져가는 전형적인 농경문화의 옛 풍광을 통도사 솔숲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솔숲은 절집의 숲도 적절히 관리하면 한국성(韓國性)을 잘 드러내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 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어 더욱 각별하다.

몇 해 전 소나무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소나무 사진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배병우 서울예술대학 교수를 청해 소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은 특유의 농담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매년 엄청남 금액의 나무를 수입하지만, 나는 나무 한 그루 베지 않고, 나무를 외국에 수출하고 있다.” 이야기인즉슨 우리나라가 외국의 목재 수입에 한 해 약 6억달러를 지출하고 있는 데 반해 배 교수는 한 점당 수천만원을 받고 소나무 사진 작품을 외국의 소장가들에게 팔고 있다는 것이다. 배 교수의 작품은 굽고 쓸모없는 나무라며 천대받았던 토종 소나무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소나무 예찬이 있을까.

“우리 미술의 연약함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다이내믹하고 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 그 일환으로 시작한 것이 소나무 작업이다. 소나무 작품을 흑백으로 제작하는 이유는 극동아시아에 전해 내려오는 수묵화 느낌을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한국을 상징하는 풍경이 소나무 숲이기 때문이다.”(솔바람통신 14호, ‘소나무와 나’ 중에서)



소나무 숲이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풍경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배 교수와 나는 의견이 일치했고, 그 사실이 나는 기뻤다. 다만 배 교수가 경주 왕릉 주변의 소나무 숲을 대표적 풍경의 사례로 드는 데 반해, 나는 절집의 들머리 솔숲을 한국의 대표적 풍경으로 상정하는 점이 좀 다르다.

절집 들머리 솔숲의 유래

내가 한국을 대표하는 풍경이라고 상정한, 이 절집 들머리 솔숲은 과연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우리의 옛 선조들이 한 곳에 정착해 농경(農耕)을 시작하면서 당면한 과업 중 가장 우선하는 것은 농작물을 키워낼 만한 지력(地力)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화학비료가 없던 그 옛날, 땅의 힘을 향상시킬 수단은 퇴비뿐이었다. 농사의 성패가 퇴비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퇴비는 인가 주변의 숲에서 자라는 활엽수의 잎과 가지, 그리고 풀을 채취해 가축과 사람의 분뇨와 함께 썩혀서 만들었다.

농경사회가 유지되던 50여 년 전만 해도 농경에 필요한 퇴비를 생산하고자 인가 주변의 활엽수를 끊임없이 벌채하고, 숲 바닥에 떨어진 가지와 낙엽 등 유기물도 계속해서 거둬들였다. 활엽수 벌채와 임상 유기물 채집이 계속되면서 인가 주변 활엽수 숲의 지력은 차츰 악화되어 활엽수가 더는 살아갈 수 없는 불량한 상태에 이르렀다. 불량한 토양 조건 때문에 활엽수가 점차 사라진 반면, 좋지 못한 토양 조건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생명력 강한 소나무들이 점차 득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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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연재

전영우, 절집 숲에서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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