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풍한송이란 이름을 간직한 통도사의 들머리 솔밭.
통도사를 ‘한국의 3대 사찰’ 혹은 ‘불보사찰(佛寶寺刹)’로 한정한다면, 이 절집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물론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간직한 불보사찰로서 이 절의 가치와 중요성은 말할 수 없이 크다. 하지만 통도사를 찾는 평범한 방문자에게 일생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기는 것은 무풍교에서 시작되는 들머리 솔숲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이 솔숲을 일컬어 무풍한송(舞風寒松)이라고 하며 통도팔경(通度八景)의 으뜸으로 치는데, 실제로 불자가 아닌 방문자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그래서 통도사의 또 다른 보물이라고 감히 주장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오늘날 점차 사라져가는 전형적인 농경문화의 옛 풍광을 통도사 솔숲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솔숲은 절집의 숲도 적절히 관리하면 한국성(韓國性)을 잘 드러내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 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어 더욱 각별하다.
몇 해 전 소나무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소나무 사진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배병우 서울예술대학 교수를 청해 소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은 특유의 농담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매년 엄청남 금액의 나무를 수입하지만, 나는 나무 한 그루 베지 않고, 나무를 외국에 수출하고 있다.” 이야기인즉슨 우리나라가 외국의 목재 수입에 한 해 약 6억달러를 지출하고 있는 데 반해 배 교수는 한 점당 수천만원을 받고 소나무 사진 작품을 외국의 소장가들에게 팔고 있다는 것이다. 배 교수의 작품은 굽고 쓸모없는 나무라며 천대받았던 토종 소나무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소나무 예찬이 있을까.
“우리 미술의 연약함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다이내믹하고 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 그 일환으로 시작한 것이 소나무 작업이다. 소나무 작품을 흑백으로 제작하는 이유는 극동아시아에 전해 내려오는 수묵화 느낌을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한국을 상징하는 풍경이 소나무 숲이기 때문이다.”(솔바람통신 14호, ‘소나무와 나’ 중에서)
소나무 숲이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풍경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배 교수와 나는 의견이 일치했고, 그 사실이 나는 기뻤다. 다만 배 교수가 경주 왕릉 주변의 소나무 숲을 대표적 풍경의 사례로 드는 데 반해, 나는 절집의 들머리 솔숲을 한국의 대표적 풍경으로 상정하는 점이 좀 다르다.
절집 들머리 솔숲의 유래
내가 한국을 대표하는 풍경이라고 상정한, 이 절집 들머리 솔숲은 과연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우리의 옛 선조들이 한 곳에 정착해 농경(農耕)을 시작하면서 당면한 과업 중 가장 우선하는 것은 농작물을 키워낼 만한 지력(地力)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화학비료가 없던 그 옛날, 땅의 힘을 향상시킬 수단은 퇴비뿐이었다. 농사의 성패가 퇴비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퇴비는 인가 주변의 숲에서 자라는 활엽수의 잎과 가지, 그리고 풀을 채취해 가축과 사람의 분뇨와 함께 썩혀서 만들었다.
농경사회가 유지되던 50여 년 전만 해도 농경에 필요한 퇴비를 생산하고자 인가 주변의 활엽수를 끊임없이 벌채하고, 숲 바닥에 떨어진 가지와 낙엽 등 유기물도 계속해서 거둬들였다. 활엽수 벌채와 임상 유기물 채집이 계속되면서 인가 주변 활엽수 숲의 지력은 차츰 악화되어 활엽수가 더는 살아갈 수 없는 불량한 상태에 이르렀다. 불량한 토양 조건 때문에 활엽수가 점차 사라진 반면, 좋지 못한 토양 조건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생명력 강한 소나무들이 점차 득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