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1월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가운데)을 비롯한 승려들에게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설명하는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
“학교 예산이라는 게 뻔하잖아요. 오랫동안 고려대박물관장을 지내다보니 스폰서가 필요하더군요. 또 정책결정을 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후원도 필요했습니다. 많은 분이 수강했는데 부부가 같이 듣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 대통령 부부도 그랬지요. 당시 이 대통령은 대선후보로 막 나서려는 참이었어요. 대통령 내외가 1기로 수강했습니다. 동아일보 김재호 사장도 1기였고요. 이후 언론인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6개월짜리인 이 과정을 이 대통령은 수료하지 못했다고 한다. 출석 성적이 좋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1기 졸업식이 (2008년) 1월인가 2월에 있었어요. 주변에서 대통령이 됐는데 졸업시켜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같이 수강한 분들도 대통령과 동기생 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그런데 내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원칙에 맞지 않기 때문이었죠. 최소한 몇 회 이상 출석해야 졸업한다는 원칙을 세웠거든요. 지금 이 과정이 11기째인데, 잘되고 있는 건 그때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 일이 대통령께 굉장히 깊은 인상을 남긴 것 같아요.”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은 3조7000억 원이다. 전체 정부 예산의 1.14%다. 최 장관은 “예산이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22조에 달하는 4대강 사업 예산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게 아니냐고 묻자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진 않고요. 요즘 복지가 화두니까 복지예산이 늘고 교육·국방의 비중이 높지요. 앞으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문화 예산을 늘려야 합니다.”
▼ 실제로 우수한 문화콘텐츠가 국부 창출에도 기여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요즘 한류만 봐도. 관광만 해도 그래요.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이 980만 명 왔어요. 일본도 800만 명밖에 안 돼요. 980만 명의 10%가 한류 때문에 온 거예요. K▼ POP과 드라마 등 한류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광을 포함해 한류와 관련된 사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도 중요합니다. 앞으로 관련 일자리도 많이 생길 겁니다. 이런 게 예산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 문화부 예산이 어느 정도 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이 2.2%예요. 최소한 2%는 돼야 해요.”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는 크게 문화예술, 콘텐츠, 관광, 체육 네 부문으로 나뉜다. 깊이 들어가면 인터뷰 시간이 무한정 길어질 것이기에 분야별로 한두 개의 질문만 던지기로 했다.
만월대 발굴과 아리랑사업 등재
▼ 프랑스 파리에 한국문화원이 있습니다. 파리가 유럽 문화의 중심지인데 지금 거기서 K-POP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신경숙 씨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도 인기를 끌고 있고요. 외국에서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곳이 한국문화원인데 파리의 한국문화원은 중국과 일본문화원에 비해 시설이나 예산이 너무 열악하다고 합니다.
“그렇죠.”
▼ 장소도 아파트 건물 반지하이고요.
“예. 가 봤습니다.”
▼ 문화인들이 그 얘길 많이 하던데, 왜 안 바꿔주느냐고. 그 예산이 얼마나 든다고.
“그렇지 않아도 바꿔보려고 노력했는데 예산에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 그런 게 왜 잘 안 되죠?
“이런 시각도 있어요. 일본에서는 그런 일을 정부 예산이 아닌 기업 후원으로 해요. 우리도 기업들이 그런 노력을 해주면 좋겠는데 쉽지 않아 보여요.”
▼ 기업에 맡길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아니, 우리도 하려고 했는데 기획재정부에서 난색을 나타내서. 하여튼 내년에 다시 해보려고 해요.”
▼ 지난해 12월 초 대학생들과 간담회 하면서 문화콘텐츠 일자리 2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말씀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요?
“콘텐츠 분야에서 아이디어, 제작, 유통에 관한 정보가 잘 모이지 않는 것 같아요. 문화부가 그런 걸 모으는 중개소 같은 역할을 하겠다는 거지요. 지금 일자리 없다고 하는데 콘텐츠 분야에는 젊은이들이 할 일이 많아요.”
최 장관은 취임사에서 북한과의 문화교류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 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 만월대 발굴사업이다. 유네스코에 아리랑을 공동 등재하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지난해 11월 그간 중단됐던 만월대 발굴작업을 재개했습니다. 실무자들끼리 만나 아리랑 공동등재 얘기도 했어요. 그러다 김정일 사망이라는 돌발상황이 생기면서 철수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