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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의 질 저하? 환자 선택권 박탈?…문제는 ‘돈, 돈, 돈’

의협이 포괄수가제를 반대하는 진짜 속내는?

의료의 질 저하? 환자 선택권 박탈?…문제는 ‘돈, 돈,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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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의 질 저하? 환자 선택권 박탈?…문제는 ‘돈, 돈, 돈’

대한의사협회(회장 노환규)는 5월 2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포괄수가제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의사들이 단단히 성이 났다. 아니 정확하게는 대한의사협회(회장 노환규)가 화가 났다. 의료정책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를 탈퇴한 데 이어 대규모 결의대회를 열더니 이젠 수술조차 거부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정부가 7월 1일부터 국내 모든 병원과 의원에서 ‘포괄수가제’를 전면 실시키로 한 데 따른 반발이다. 일부 언론에선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일어났던 의료대란(의사파업)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의협의 맹공 앞에서도 보건복지부는 의약분업 때와는 반응이 완전히 다르다. 조금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의사들의 수술 거부는 명백한 불법 행위다. 강력한 법적 제재를 가하겠다”고 벼른다. 현행 의료법 15조는 ‘의료인은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해당 규정을 어길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포괄수가제’, 말이 너무 어렵다. 포괄은 뭐고 또 수가는 무엇인가. 수가는 어떤 질병을 치료한 데 대해 정부나 개인이 병의원에 지불하는 금액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진료비를 포괄적으로 병의원에 내는 제도쯤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언제는 안 그랬나? 일반 환자들은 지금껏 병의원으로부터 전혀 해독이 불가능한 청구서를 받은 뒤 ‘포괄적으로’ 진료비를 내왔다. 무엇에 얼마가 들었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못했다. 행여나 밉보일까봐.

7개 수술에만 실시

의료의 질 저하? 환자 선택권 박탈?…문제는 ‘돈, 돈, 돈’

독일의 한 병원 내부. 독일은 2003년 시범사업에 이어 2004년부터 정신과 진료와 특수병동을 제외한 모든 입원진료에 포괄수가제를 도입했다.

포괄수가제는 수정체수술(백내장수술), 편도수술, 충수절제술(맹장염수술), 탈장수술, 항문수술(치질수술), 자궁적출술(자궁근종, 난소 혹 제거술 포함), 제왕절개술 등 7가지 질환군 수술에 대한 입원진료비를 정부가 미리 정한 가격만 내게 하는 일종의 ‘입원비 정찰제’다. 영어로는 ‘Diagnosis Related Group Payment System’으로 진단명 기준 환자군 지불제도로 번역되지만 의료계에선 통칭 ‘DRG’로 부른다. 치료과정이 비슷한 입원환자를 한 묶음으로 분류해 일련의 치료행위를 합쳐 하나의 가격을 매기는 의료비 지불 방식이다.



1997년 2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5년간 4차례에 걸쳐 시범사업을 했고, 2002년부터는 선택하는 병의원에 한해 적용해왔지만 환자들은 자신이 포괄수가제 병의원에서 치료를 받았는지 잘 모른다. 이 제도는 감기나 배탈 등 일반적인 외래 진료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우리 생활 속에서 흔히 하게 되는, 앞서 나열한 7개 질병군 수술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수가 제도다. 현재까지는 그렇다.

포괄수가제 아래에서는 진찰, 검사, 처치, 주사, 입원 등 치료과정에 투입되는 각각의 의료 서비스에 대해 비용을 따로 계산하지 않고 정부가 정한 가격으로, 속된 말로 퉁 쳐서 한방에 내면 끝이다. 환자가 아무리 많은 검사를 받고, 수술을 여러 번 하고, 입원 일수가 많아도 진료비를 더 내지 않는다. 병원 입장에선 아무리 많은 의사를 투입하고, 검사를 자주 하고, 고급 재료와 최첨단 의료장비를 썼다 하더라도 돈을 더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병의원 측은 꼭 필요한 치료행위만 하게 된다. 진료를 더하면 할수록 손해가 나기 때문이다.

반면, 행위별수가제는 ‘Free for Service’라는 영어명에서 알 수 있듯, 진료 행위 하나마다 따로 가격을 매겨 계산하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의사가 진찰을 자주 할수록, 검사를 많이 하면 할수록, 붕대나 거즈를 많이 쓰면 쓸수록, 수술이나 처치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그만큼 돈을 더 내야 한다. 병의원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받는 모든 서비스에 일일이 가격이 매겨진다.

이 행위별수가제는 1977년 의료보험제도 도입 이후부터 지금껏 쓰고 있는 지불방식으로 7월 1일 이후에도 7개 질병군 수술 외의 모든 질병군에 그대로 적용된다. 이때 환자가 내는 진료비용은 각 진료행위 곱하기 받은 횟수의 총합이 된다. 이런 점에서 행위별수가제는 의료서비스가 행해진 만큼 소비자가 돈을 지불한다는 점에서 좀 더 자본주의적이고 정확한 계산법이라고 할 수도 있다.

환자부담 평균 21% ↓, 총진료비 평균 18% ↑

하지만 행위별수가제에 대한 보건복지부와 시민단체의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진료행위량을 늘리면 늘릴수록 의사의 수입이 늘어나는 행위별수가제 아래에서는 병의원이 꼭 필요한 만큼을 넘어서 과잉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불필요한 진료행위만큼 건강보험재정이 낭비되고 환자와 그 가족의 호주머니는 얇아지며, 쓸데없는 검사로 인한 방사선 과다노출, 항생제 오남용의 가능성이 커져 종국에는 환자의 건강에도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복지부는 이번 포괄수가제 도입으로 환자의 입원진료비 부담이 평균 21% 줄어든다고 밝혔다. 7월 1일 이전에 100만 원을 주고 수술을 받은 환자라면 7월 1일 이후에는 평균적으로 79만 원만 내면 된다는 얘기다. 질환별로 환자부담금이 줄어드는 폭은 제각각으로 탈장수술(-27%), 제왕절개술(-25.7%), 백내장수술(-25.4%), 치질수술(-15.1%), 편도수술(-11.2%), 맹장수술(-8.9%) 등의 순이다.

예를 들어 6월에 기존 행위별수가제 아래에서 환자부담금 명목으로 30만 원을 주고 탈장수술을 한 환자는 7월에는 8만1000원 싼(-27%) 21만9000원만 내면 된다. 복지부는 이렇게 줄어든 환자부담액이 연간 1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환자부담액이 이처럼 줄어든 것은 행위별수가제에서 환자부담금으로 잡혀 있던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 가운데 평균 20%가량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험급여로 전환해 부담키로 한 데다 그간 병의원에서 환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뤄졌던 불필요한 진료행위(과잉진료 부분)를 총 진료비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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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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