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혹’은 빼어난 미모의 이혼녀로, 미대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예술경영 석사학위를 받은 대학 강사 오유미가 주인공이다. 성을 맘껏 즐기는 독립적인 여성 오유미를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욕망지형도를 파헤친 독특한 성애소설로 평가받는다.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타고난 미모와 매끄럽게 흘러내린 몸매를 지닌 오유미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유혹하지 않으면 유혹당하는 21세기 경쟁사회 속 현대인의 성과 욕망을 7인 7색으로 그려냈다.
작가 권지예는 이 소설을 쓰면서 남편보다 고3 아들 눈치를 더 많이 살폈다. 예술평론을 하는 남편은 소설 쓰는 아내를 예술가로 여기고 ‘쓰고 싶은 대로 쓰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에게만큼은 엄마가 쓴 성애소설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6월 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만난 그는 소설 속에 나오는 오유미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이 꼭 누군가를 유혹하는 듯했다.
“유미는 욕망의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자체가 하나의 욕망인지, 아니면 생에 대한 호기심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디로든 달리고 싶은 것만은 분명하다. ‘사랑해.’ 동진이 속삭였다. 그 말이 마치 당근이라도 되듯이, 아니 휘발유라도 되듯이 유미의 온몸이 다시 충전되었다. 동진이 다시 시동을 켜고 밀고 들어왔다. 그래, 달리는 거야. 온몸의 세포가 생생히 아우성치는 이 살아 있는 삶의 순간을 느끼는 거야. 사랑은, 생은, 다시 올 수 없는 순간들의 질주일 뿐이다.” ‘유혹’ 2권 83~84쪽
물욕을 채우기 위해 몸으로 유혹하는 오유미
“제1부인 1~3권에서는 섹스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렸어요. 신문 연재소설이라 독자들 호응을 얻기 위해서 일부러 그랬지만…. 제2부인 4~5권에서는 섹스보다 섹슈얼리티에 무게중심을 더 두었고요. 주인공 오유미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성이 지닌 깊은 뜻은 무엇인가 깊숙이 파고들었죠. 저는 성욕, 물욕, 권력욕의 한 형태가 섹스라고 봐요. 오유미는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미모와 아름다운 몸매를 지닌 여성으로 물욕을 채우기 위해 몸(섹스)을 무기로 유혹하는 전략을 펼치죠. 그렇다고 남자만 만족시키기 위한 섹스가 아니라 그녀 스스로도 섹스를 즐기는 여성이에요.”
장편소설 ‘유혹’은 주인공 오유미를 통해 ‘여자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가진 것 하나 없는 여자가 자본으로 풀칠되어 있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드러낸 작품이다. 작가 권지예는 “오유미의 태생과 그 주변 인물들에게 얽힌 맥락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닌 모순과 욕망을 드러낸 소설이 ‘유혹’”이라고 정의한다. 이 말은 곧 가난한 여성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은 유혹뿐이라는 뜻으로도 들린다.
▼ 섹스를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 많은 사람의 입에 올랐는데요.
“소설은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하잖아요? ‘유혹’은 처음 쓸 때부터 섹스를 생동감 있고 다양하게 그리자 생각했어요. 사실, 순수문학에서는 섹스를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낸 소설이 없었던 것 같아요.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을 따질 필요도 없지만요. 저는 이 소설에서 이왕이면 섹스를 정공법으로 다루자, 소설에서 ‘눈 가리고 아웅’하지 말고 제대로 묘사해보자고 마음을 꼭꼭 다졌어요. 사실, 현실사회에서는 섹스를 하는 행위가 더 적나라하잖아요.”
흔히 ‘섹스’라는 말을 입에 올리면 대다수 여성은 얼굴을 살짝 붉히거나 말꼬리를 슬며시 다른 쪽으로 돌리려 애쓴다. 그러나 권지예는 “여성작가라고 해서 섹스를 은근슬쩍 넘어가지 말고 용기 있게 묘사하되 문학적 비유나 상징을 많이 쓰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