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인야구 15년 경력의 용인중(46) 씨가 6월 22일 난지야구장에서 분당조기야구팀 소속으로 봉황기대회에 출전했다.
6월 28일(금) 새벽. 아직 어스름이 남아 있는 이른 시각에 용인중(46·경기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 씨는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탄천야구장으로 향했다. 어둠을 걷어내고 동이 터오자 스무 명 남짓한 야구 동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그들이 익숙하게 야구 경기 준비를 서두르는 사이, 용 씨는 “○○○은 지각이냐?” “△△△는 아예 ‘양치기’(무단 결석)냐?” “부상당한 아우는 어때?”…목청을 높였다. 걸쭉한 입담은 용 씨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는 젊은 선수도 꺼리는 포수 자리를 척척 소화해내는 야구 경력 15년의 베테랑이다. 그런 용 씨가 이날만큼은 누가 봐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들, 잘 던져봐!” “아버지, 빵빵 받아줘요!”
이날 마운드엔 용 씨의 아들 석환(20·대학생) 씨가 올랐다. 부자가 야구를 함께 즐긴 지 몇 해가 됐지만 투수와 포수로 마주한 것은 처음이다. 석환 씨가 첫 공을 던지자 내 팀, 네 팀 가리지 않고 한마디씩 축하의 말을 건넸다.
“부자 배터리, 기네스 신청!” “부포자투(父捕子投) 파이팅!”….
#2 경기 성남시 백현야구장
7월 6일(토). 용 씨 부자는 주말리그에서 함께 뛴다. 성남시 사회인야구 토요일 3부 리그 소속이다. 야구팀 이름은 인터넷베어스. 용 씨는 1998년 창립된, 오랜 전통과 구력을 자랑하는 강팀으로 자기 팀을 소개한다. 특정 프로야구팀을 응원하던 팬들이 모여 ‘OB사랑’이란 이름으로 야구팀을 만들었는데, 나중에 프로팀 이름이 바뀌자 ‘OB사랑’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용 씨가 야구를 하는 것을 보고 아들 석환 씨는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비록 프로선수가 아닌 사회인야구 선수지만. 사회인 야구선수에게는 특별한 자격이 필요치 않다. 누구든 팀을 찾아가서 가입하면 선수로 뛸 수 있다. 다만 성인에게만 참여를 허락한다. 석환 씨가 팀에 정식으로 가입한 것은 2010년 겨울. 이듬해 대학 입학을 앞두고 서둘러 야구선수가 됐다. 이날 경기에서 석환 씨는 좌익수로 선발 출장해 6회까지 풀타임 출장했고, 아버지는 마지막회에 1루수로 수비에만 참여했다. 용 씨는 팀원들에게 출전 기회를 고루 주려고 자신은 한발 물러나 있을 때가 많다.
성남시 시설관리공단이 외부업체에 위탁을 맡긴 성남시 사회인야구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루키, 3부, 2부로 나눠 리그를 진행한다. 시에서 관리하는 리그는 대개 일반 사설 리그보다 환경이 훨씬 좋다. 야구장 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무엇보다 도심에 있어 가깝다. 운영 비용도 비교적 저렴할 뿐 아니라 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시장배 대회 같은 이벤트도 이따금 열린다.

6월 22일 난지야구장에서 벌어진 봉황기 사회인야구대회.
7월 7일(일). 용 씨 부자는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야구를 하게 됐다. 팀은 같지만 다른 리그다. 토·일요일에 각기 다른 리그에 가입하는 것은 리그 하나만으로는 40명이나 되는 팀원이 모두 게임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리그 역시 전형적인 3부 리그로, 연간 25회까지 게임을 할 수 있다. 리그는 2월 중순에 시작해 12월까지 매달 2게임 이상, 많게는 매주 경기가 편성된다.
이날 경기에서 용 씨 부자는 자랑할 만한 기록 하나를 세웠다. 석환 씨가 주말리그에서 투수로 정식 데뷔하고 첫 승까지 따낸 것. 6이닝을 5실점으로 완투해 승리를 낚았다. 용 씨는 이날도 출전은 하지 않고 아들을 응원했다.
#4 서울 난지야구장
6월 22일(토). 이날은 용 씨가 15년 야구 인생에서 가장 벅찬 감격을 맛본 날이다. 봉황기전국사회인야구대회에 출전해서 짜릿한 승부 끝에 본선행을 확정지은 것. 용 씨는 분당조기야구회(분조야) 팀으로 봉황기대회에 참여했다. 이 대회는 전국에서 400여 팀이 참여해 3월부터 9월까지 경기를 치러 우승팀을 가린다. 선수들의 눈빛에는 비장한 결의가 서려 있고, 경기장엔 여느 주말 리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른다. 이른바 ‘전국대회’라 부르고, 토너먼트로 한 번 지면 바로 탈락하는 경기 방식이 주는 압박감 때문이다.
용 씨가 받은 오더는 포수. 이전부터 포수를 봐오던 주전 선수가 갑작스러운 일로 빠져 오롯이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됐다. 주말 경기가 겹치는 팀원 여러 명이 진작부터 불참 통보를 해와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이럴 때 용 씨는 자신이 맡아야 할 역할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나이는 괜히 먹은 게 아니고, 구력은 말로만 자랑하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