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희의 영화’는 네 개의 장으로 나뉘어 흘러간다. ‘주문을 외울 날’에는 진구, 즉 이선균의 지리멸렬한 하루가 흐른다. ‘키스왕’에는 옥희, 즉 정유미가 등장한다. 옥희는 진구와 ‘썸 타는’ 중인데 예전에는 송 교수, 즉 문성근과도 인연이 있어 보인다. ‘폭설 후’로 넘어가면 문성근의 순서다. 그는 지금 이 시대에 이중적으로 살아가는, 아니 허위의식 안에서 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다. ‘옥희의 영화’의 마지막 장 ‘옥희의 영화’는 정유미의 시선에서 두 남자가 교차한다. 옥희, 즉 정유미는 두 남자와 서로 다른 시간대에 서울 동부의 아차산에 간다.
정유미의 시선에서 마무리되는, 이 세 사람의 돌고 도는, 물고 물리는, 꼬리가 머리가 되고 머리가 꼬리가 되는 이야기는,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고 서로가 서로의 기억에 침입하고 서로가 서로의 기억을 자기 것인 양하는 가짜 기억과 진짜 기억 사이의 따스한 위선과 날카로운 진실 사이의, 허위의식과 진정성 사이의, 그 모든 기억 속에서 서성거리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신선이 노니는 풍광
영화의 끝부분, 겨울 아차산 풍경에서 옥희는, 그리고 두 남자는, ‘잘생긴 나무’를 바라본다. 사실 그 장면에 보이는 나무는 무성했던 잎을 다 떨어뜨리고 추위에 떠는 별 볼일 없는 나무였지만 영화의 주인공들에게 그 나무는 ‘잘생긴 나무’였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겨울나무를 보러 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선유도공원으로 갔다.
매서운 추위가 갑자기 몰아쳤다. 12월이 시작되는 첫날, 추위가 예고되더니 다음 날 진짜로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거기에 무서운 바람까지 몰아쳤다.
한강 둔치 선유도공원 주차장에 들어서는데, 주차 관리하는 분이 왜 오셨냐? 묻기까지 했다. 공원 구경 왔어요, 대답했더니, 정말인가 하는 의아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주차장은 텅 비었고 그래서 나는 아무렇게나 차를 세운 후 묵묵히 걸었다. 내 앞에서, 또 한참 후에는 내 뒤에서 두꺼운 외투에 모자를 깊게 눌러쓴 사람들이 이 칼바람에도 자전거를 타면서 지나갔고 나는 그 자전거길을 버리고 선유도로 넘어가는 다리 위에 올라섰다.
한강을 종횡무진하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쳐서 하마터면 눌러쓴 모자를 저 창공 위로 날려 보낼 뻔했다. 아무도 없었다. 아니, 공무 때문에 그리고 공원 안에서 카페를 운영하느라 오가야 하는, 결국 몇 사람을 보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영하의 날씨에 구경 삼아 선유도공원에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다.
봄가을처럼 계절이 참 좋은 때는 산책하는 사람, 나들이 나온 가족, 데이트하는 연인, 사진 찍으러 몰려나온 아마추어 사진가 등으로 선유도공원은 늘 북적이는데 오늘은 아무도 없다.
신선이 노닌다는 ‘선유(仙遊)’라는 이름처럼 수려한 풍광의 섬이다. 양녕대군이 이곳에 영복정(榮福亭)을 지었다고 한다. 양천 현감으로 재직하면서 양화도, 선유도 일대를 많이 그린 겸재 정선과도 인연이 깊다. 일제강점기의 대홍수와 여의도 비행장 건설을 위한 건설 자재 충당 등으로 인해 겸재의 그림에 나오는 선유도의 정취는 오래전에 사라졌으며 정수장이 들어서 있었다.
정수장은 1978년 완공돼 2000년 12월까지 시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했다. 그 시설의 규모가 상당했다. 탁한 강물을 마실 수 있는 물로 정수하는 작업은 고도의 기술과 집약된 노동과 상당한 장비를 요구한다. 게다가 일의 강도와 조건도 힘들었다. 수도 서울의 식수를 책임지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기술적 집중과 긴장이 요구됐으며, 그 위치 또한 한강의 한복판이면서도 도심의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외딴 섬에 들어섰다. 그 선유정수장에서 수많은 사람이 늘 맑은 물을 만들기 위해 고되게 일했고 때로는 홍수 같은 비상 상황에 대처하고자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