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이에 비해 마음은 다소 모호한 개념입니다. 일반적으로 마음은 인간 정신 활동의 모든 것이라고 정의됩니다. 하지만 마음은 의식보다 넓은 외연을 가졌고 정신보다 개인적인 주관성을 강조합니다. 분명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가 마음이 육체와 대립되는 인간의 주요한 속성이라는 점이라면, 다른 하나는 이 마음을 통해 타자들과 구별되는 자신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리스인’ 엘 그레코
이런 마음의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숙고해온 분야는 종교입니다.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종교가 기본 가정으로 삼는 것은 인간의 불완전성입니다. 인간이란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이고, 삶은 영원한 게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라는 가정을 대부분의 종교는 공유합니다. 이러한 삶의 불완전성은 우리 인간에게 불안을 안겨주는데, 종교는 이 삶의 불안을 해소하고 평화를 주는 기능을 합니다. 예를 들어, 불교는 자기 수양과 도(道)를 깨우치는 것을 통해, 기독교는 하나님이라는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통해 삶의 평화와 안식을 선물해줍니다.
종교는 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서양에서 기독교가 미술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습니다. 기독교가 절대적이던 중세 미술은 곧 기독교 미술이었고, 르네상스로 시작된 근대 미술에서도 기독교는 한 중심을 이뤘습니다.
기독교가 서양을 대표하는 종교로서 갖는 정치·사회·문화적 영향이 컸다는 게 일차적인 배경입니다. 동시에 인상주의 이전의 미술 생산방식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근대 초기 미술가에게 중요한 이들 중 한 사람은 작품 제작을 주문하는 후원자였는데, 가장 중요한 후원자 그룹은 교황을 위시한 성직자들이었습니다. 성직자가 미술가에게 요청한 작품은 당연히 기독교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리고 싶은 작품도 기독교와 관련된 미술입니다. 16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인 엘 그레코(1541~1614)의 그림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엘 그레코는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태어나 스페인에서 활동한 화가입니다. 벨라스케스, 고야와 함께 스페인 근대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힙니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16세기에도 널리 알려졌지만, 20세기에 들어와 새롭게 재평가되면서 명성이 더 높아진 화가입니다. 그의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Domenikos Theotokopoulos)입니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활동하면서 ‘그리스인’이라는 뜻의 엘 그레코(El Greco)라고 불렸습니다.
지상계와 천상계
엘 그레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The Burial of the Count of Orgaz·1586~1588)’입니다. 그는 그림의 화면을 지상계와 천상계, 둘로 나누었습니다. 아래 지상계에선 지금 막 장례식이 시작됐습니다. 장례식의 주인공은 14세기에 선행을 많이 베푼 것으로 알려진 오르가스의 백작 루이스 곤잘레스입니다. 이 그림이 그려진 톨레도의 산토 토메 성당 아래에는 백작의 실제 무덤이 있다고 합니다. 엘 그레코는 백작을 매장할 때 성 스테파누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나타나 시신을 옮겼다는 전설을 지상계의 그림 중앙에 표현해 놓았습니다.
천상계는 백작의 영혼이 승천할 때의 광경입니다. 천국의 한가운데는 그리스도가 앉았고, 그 아래는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이 지킵니다. 왼쪽에는 천국의 열쇠를 든 베드로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래 지상계가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를 띤다면, 위 천상계는 화려한 색채와 함께 밝고 경건한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엘 그레코가 이 작품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사후 영혼의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지상계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을 보여주는 반면, 천상계는 그 죽음에도 그리스도에 의한 영혼의 구원을 상징합니다. 엘 그레코는 지적이고 신앙심이 깊은 화가였다고 합니다. 비록 주문 받아 제작한 작품이지만, 지상계와 천상계로 상징되는 현재의 불안과 미래의 안식을 화폭에 담아 신앙의 의미와 중요성을 계몽하고 있습니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에서 흥미로운 것은 엘 그레코가 지상계의 장례식에 참여한 톨레도의 유력 인사들 가운데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는 점입니다. 중앙에서 왼쪽으로 가는 도중 정면을 똑바로 응시한 사람이 엘 그레코입니다. 그리고 왼쪽 아래에 있는 소년은 그의 아들로 알려졌습니다. 화가가 이런 식으로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 것은 서양 미술의 오랜 전통입니다. 이 작품을 볼 때마다 저는 정면을 응시하는 엘 그레코가 감상자들에게 전하려는 말의 의미를, 다시 말해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메시지를 생각해보곤 합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그림이 매너리즘 화풍의 그림이라는 것입니다. 엘 그레코는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매너리즘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에 놓인 예술양식으로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성취한 조화와 균형이라는 르네상스의 이상을 넘어 더는 앞으로 나갈 수 없었을 때 화가들이 모색한 새로운 표현방법이었습니다. 매너리즘 화가들은 불안정한 구도, 공간의 왜곡, 길게 늘어진 인물, 현실과 비현실의 공존 등을 통해 자아의 불안과 의식의 위기를 캔버스에 담았습니다. 엘 그레코는 폰토르모, 브론치노, 파르미자니노, 틴토레토와 함께 이 매너리즘을 대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