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으로 중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영화 분야에서도 중국 영화, 특히 중국 무협영화(또는 시대극)는 우리나라 관객에게 친숙한 편이다. 중국 무협영화에는 어떠한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코드가 내재할까.
최근 국내에 개봉되는 중국 무협영화와 시대극은 크게 두 가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첫째는 고대 중국(주로 춘추전국시대부터 진·한 교체기)을 배경으로 실제 사건이나 역사 소설을 각색한 작품들이다. 둘째는 근대 중국을 배경으로 실존한 무술 고수들을 다룬 작품들이다.
전자를 대표하는 최근 작품들로는 병법가 손빈을 다룬 ‘전국 : 천하영웅의 시대’(금침, 2011)나 유비와 항우의 대전을 다룬 ‘초한지 : 천하대전’(이인항, 2010)이 있다. 후자의 예로는 견자단 주연의 ‘엽문’ 시리즈, 조문탁 주연의 ‘소걸아 : 취권의 창시자’(원화평, 2010)’ ‘타이치 0(풍덕륜, 2012)’가 있다.
전자의 영화에서는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이 주로 주연을 맡았다. 후자의 영화에서는 무술 고수들이 주연으로 발탁됐다. 또한 전자의 영화들은 개인주의를, 후자의 영화들은 중화민족주의를 이데올로기적 특성으로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개인주의 혹은 중화민족주의
중국이 세계 자본주의에 편입되면서 중국인들 사이에선 세속적 욕망의 충족을 중시하는 개인주의가 득세했다. 중국이 G2의 위상에 오르면서부터는 중화민족주의가 강화됐다. 최근의 중국 무협영화는 이러한 중국 사회의 양대 특성을 이야기 구조 속에 반영하고 있다.
중국의 고대사를 다룬 ‘전국’과 ‘초한지’는 권력투쟁과 권모술수, 남녀 간의 사랑을 이야기의 중심 소재로 삼는다. 이는 우리가 TV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이다. TV 사극은 방영기간이 길기 때문에 다양한 인물과 사건, 반전을 끊임없이 제시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극장용 영화는 2시간 안팎의 제한된 시간에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한다. 이야기와 등장인물의 생략, 요약 및 압축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그래서 고대사를 다룬 중국 무협영화(시대극)는 중요한 사건이나 한두 건의 전투에 집중하고 나머지 부차적인 사연은 생략해버린다. 이때 관건은 대규모 전투 장면을 얼마나 화려한 스펙터클로 재현하는지다.
중국 무협영화는 결말에서 ‘통일’이나 ‘대업’같은 대의를 좇는 이들의 비극적 최후를 보여준다. 이어 이들이 지닌 가치관의 허망함을 강조한다. 이는 실패한 로맨스 또는 비극적 사랑 이야기와 결합한다. 중국 무협영화는 외적으로는 남성성이 두드러져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로맨스를 부각해야 하므로 여성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고대사를 다룬 중국 무협영화는 이렇게 전투 장면과 대의라는 두 축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므로 영화가 주는 시각적 즐거움 역시 ‘대의를 구현하기 위한 거대한 전투 장면’에 집중된다. 중국 사극의 이러한 재현 방식은 장이머우가 연출한 ‘영웅’(2004)에서 본격화했다.
영화 ‘전국’은 귀곡자의 제자인 방연(우진위)과 손빈(쑨훙레이)의 경쟁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원래 역사책에선 방연과 손빈이 병법의 전수, 정치적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갈등을 빚는 것으로 서술했다. 그런데 ‘전국’은 여기에 멜로드라마의 갈등요소를 추가한다. 영화에서 방연과 손빈은 전석(징톈)이라는 여성을 사이에 두고 연적 관계를 형성한다. ‘전국’은 위나라에 끌려간 손빈을 돕는 인물로 위나라 왕의 애첩 완(김희선)을 배치한다. 방연, 손빈, 전석, 완, 위나라 왕, 제나라 왕 등 여섯 인물 간 암투가 영화의 주된 흐름이다.
글로벌 자본주의 편입 이후엔?
위나라와 제나라 간 계릉 전투와 마릉 전투는 축약돼 계릉 전투는 아예 생략되고 마릉 전투는 원래 역사와 다르게 변형된다. 방연과 손빈의 갈등이 연적 관계로 설정됨으로써 고사에서는 기회주의자이자 악당으로 묘사된 방연이 영화에선 악당의 성격이 약화된다. 영화에서 손빈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하고 자폐적인 천재로, 방연은 이상을 구현하려다 점점 권력에 눈이 어두워져 타락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대신 전면에 부각되는 것은 전석과 완의 활약이다. 두 여성은 기지를 발휘하고 강인한 의지를 보여준다. 이들이 손빈, 방연과 맺는 관계는 단순한 남녀 간 로맨스라기보다는 로맨스를 매개로 한 사적 욕망의 분출에 가깝다.
홍콩 반환 이전의 중국 영화들은 개인의 욕망을 표현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개인주의를 다루는 작품도 거의 없었다. 개인을 다루는 것은 국가 건설 과정과 관련된 개인의 이야기(‘붉은 수수밭’), 역사의 흐름에 휘말린 개인의 이야기(‘패왕별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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