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호

생식기에서 비롯한 욕이 많은 이유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22-05-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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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가 사랑에 빠졌다. 생식은 본능이다. [Gettyimage]

    남녀가 사랑에 빠졌다. 생식은 본능이다. [Gettyimage]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날에 어울리지 않는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쓴소리 좀 해야겠다. “말은 그 사람의 인품”이라는 도덕책에 나올 법한 얘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분위기에 맞는 적절한 욕은 웃음이나 인정을 자아내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정도가 심해서는 안 된다. 간혹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때 젊은이들의 대화를 무심코 듣다 보면 입에 밴 듯 감탄사처럼 터져 나오는 비속어나 욕설에 화들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욕을 마치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접속사처럼 쓰는 것 같다.

    과연 그들은 사용하는 욕의 어원에 대해 알고는 있을까. 미국인들은 ‘바보’ ‘머저리’ ‘똥’ 같은 뜻을 담은 욕설을 많이 사용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유독 생식기와 성행위에서 비롯된 욕설이 많다. 예를 들어보겠다. 인간은 누구라도 어머니의 자궁에서 잉태돼 질(膣)을 통해 세상으로 나온다. 그리고 생명이 잉태되려면 여성의 질(膣)에 정자가 투입돼야 자궁을 지나 나팔관에서 기다리는 난자를 만날 수 있다. 비속어 가운데 ‘씹’이라는 말은 ‘씨의 입’이 준 것이라고 봐야 한다. 결국 ‘씹’이라는 것은 성교의 시작이자 성교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상하지 않은 비속어로 쓰이고 있다.

    좀 더 깊게 들어가 보자. ‘씨팔’은 ‘씨(정자)를 타인에게 팔’이며, ‘씨발’은 ‘씨(정자)를 받을’이라는 의미에서 시작됐다. 전자는 남성, 후자는 여성에 해당하는 성적 상황인 셈이다. 씨를 주거나 받는, 그야말로 자식을 잉태하기 위한 사랑 행위가 상대로 하여금 모욕과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상스러운 욕이 됐다. 이유가 뭘까. 여기에는 한민족의 역사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씨를 함부로 팔 놈’이라는 말이 그저 외도를 일삼는 ‘바람둥이’를 나무라는 말이 아닐 것이다. 섹스와 성기를 내포하고 있지만 상황별로 다양하게 사용되는 미국의 대표적 욕설 중 하나인 ‘fuck’과는 다른 의미라고 봐야 한다. 백의민족 순혈주의라고 자부하는 한민족만의 독특한 고집이 욕에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외세 침략에 순결을 잃은 여성들에게 ‘환향녀’라는 모멸적 표현을 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만 해도 양반가 며느리가 불임일 때 자손을 얻기 위해 씨받이를 들이는 제도가 있었는데, 그 대상이 되는 여성을 ‘씨받이년’이라고 했다. 집안의 혈통을 이을 아이를 대신 낳아주는 일을 도맡은 여성에게 최악의 비하적 표현을 한 셈이다. 결국 욕에서조차 한민족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자신의 씨(정자·난자)는 함부로 줘서도 받아서도 안 된다는 뿌리 깊은 정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순혈주의가 만든 욕설

    난임 전문의로서 ‘씨’는 위대하다. 정자와 난자는 새 생명을 잉태하는 근원인데, 상대방을 한없이 비하하고 천시하는 욕설 속에 등장하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출산 장려를 위해 온갖 제도와 정책을 고민하는 시점에서 다른 건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건만 유독 난자와 정자 공여 문제만큼은 바늘구멍도 허락하지 않는 이유를 욕의 문화에서 엿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 운영되는 정자은행(비배우자 정자 공여)은 전 세계적으로 최악·최저 수준이다. 이유가 어쨌든 간에 씨를 파는 행위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마땅한,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는 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비배우자 정자 제공을 받으려는 수요(난임 여성) 폭증으로 인해 시애틀의 한 정자은행이 인터넷에 ‘파란 눈에 검정 머리, 잘생긴 대졸자’ 광고를 새벽에 올리자 3시간 만에 예약분이 다 찼다는 뉴스가 있었다. 한국인들은 정자 기능을 서슴없이 하는 미국 남성들을 마치 쌍놈 보듯이 했을지 모른다. 미국에서는 연 3만~6만 명의 아기가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다.

    성관계 시 욕을 해야 훨씬 더 흥분된다며 평소에 욕을 정리해서 연습한다는 부부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욕설로 인해 이혼 위기에 놓였다. “화살은 몸에 상처를 내지만 험한 말은 영혼에 상처를 남긴다”는 말이 있듯이 욕이 선하고 좋을 수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례다. 욕이 습관화되면 일상생활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다가 자칫 물리적 다툼이 될 수 있다. 욕을 하면서 과격한 행동까지 일삼는다면 서로에게 상처를 줘서 돌이키기 어려운 불행을 겪을 수 있다.

    상대 부모 비하는 금기

    부부 얘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이야기해야겠다. 남성들은 ‘고자(鼓子)’라는 말에 병적으로 발끈한다. 요즘엔 ‘고자’라는 말이 성불구자로 인식되고 있는데, 의학적으로 잘못된 해석이다. 예로부터 생식기가 불완전한 남자를 두고 ‘고자’라고 했다. 고환에 문제가 있어서 씨(정자) 생산이 힘든 경우가 아니라 성기에 문제가 있어서 성교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란 얘기다. 고환에 정자가 생산되지 않는 비폐쇄성 무정자증은 고자가 아니다. 더구나 요즘은 보조생식술이 발전해서 무정자증일지라도 고환에서 정자를 한두 마리라도 찾아내면 IVF(시험관아기 시술)나 체외수정으로 얼마든지 임신에 성공할 수 있게 됐다.

    또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아내에게 ‘석녀(石女)’라고 해선 안 된다. 의학적으로 석녀는 질(膣)이 매우 좁아서 성행위가 힘들거나 평생 무월경으로 살아가는 여성이다. 정말 석녀라면 그녀 입장에서는 결혼생활이 일생일대의 지옥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의학적 근거 없이 배우자의 성적인 상황을 함부로 속단해서도 안 된다.

    전쟁을 겪은 세대 중에는 욕쟁이가 많았다. 어느 지역이든 구수한 욕을 하는 할머니가 주인인 식당이 있었다. 그들은 친근감의 표시이거나 사랑의 표현으로 ‘지랄한다’ ‘염병할’ 같은 걸쭉한 입담을 했지, 위에서 나열한 성기와 성행위를 내포한 혐오적 욕설이 아니었다. 특히 상대방의 부모에 대한 비하적 표현을 금기시했다. 어머니를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듣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토록 어머니는 위대하고 거룩한 분이다. 세상 모든 여성은 어머니가 될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여성보다는 남성이 거친 말투와 농담에 익숙하다. 그 이유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연관이 있다.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활발한 청소년기와 청년기에는 욱하는 감정이 잦고 말투가 거칠 수 있다. 하지만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공격적 성향과 폭력적 언어가 점점 줄어들게 된다. 남성은 갱년기 이후가 되면 여성호르몬에 의해 눈물이 많아지기도 한다. 반면, 여성은 폐경 이후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은 고갈이 됐지만 테스토스테론에 영향을 받아서 씩씩한 말투로 바뀐다. 그토록 교양이 철철 넘치는 아내가 쉰이 되고 예순을 넘기자 입담이 예사롭지 않아질 수 있는 것이다.

    봄이다. 싱그러운 봄볕 아래 청춘남녀들이 손잡고 다니는 모습만큼 아름다운 게 또 있으랴. 봄이 되면 나이를 막론하고 연애 세포가 꿈틀거린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사랑에 빠지면 말투와 음색이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사랑에 빠지는 불과 0.2초 만에 뇌에서는 도파민, 아드레날린, 옥시토신과 같은 행복 호르몬이 분비된다지 않는가. 인지기능이 향상되고 고통도 줄어들 뿐 아니라 언어도 자연적으로 순화작용을 거치게 된다. 이른바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언어만을 사용한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언어와 표현으로 대화한다. 새 생명의 잉태가 삶에서 가장 환상적이고 부드러웠던 그 순간의 찰나에 완성된다는 것은 정말이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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