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호

90년 전 누드 자화상 찍은 사진작가 정해창의 女人

[명작의 비밀] 카메라 프레임에 담으려 한 예술 향한 욕망

  • 이광표 서원대 휴머니티교양학대학 교수

    kpleedonga@hanmail.net

    입력2023-03-1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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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최초 예술사진 작가

    • 전통적 분위기에 현대적 ‘여인’

    • 자연스러움이 한국인 특성?

    • 160년 전 사진도 포즈는 21세기形

    정해창의 ‘여인’(1929년 작 추정). 흰 저고리를 입고 흰 두건을 두른 여인은 단아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언주라운드]

    정해창의 ‘여인’(1929년 작 추정). 흰 저고리를 입고 흰 두건을 두른 여인은 단아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언주라운드]

    ‘한국사진사(韓國寫眞史)’라는 이름의 단행본은 현재 두 권이 나와 있다. 1999년 출간된 최인진(1941~2016)의 ‘한국사진사 1631-1945’와 2021년 출간된 박주석 명지대 교수의 ‘한국사진사’. 최인진의 책은 한국 사진사 연구에서 기념비적인 저작물로 꼽힌다. 이러한 사실은 박 교수의 책에서도 잘 드러난다. 박 교수는 머리말 맨 앞에서 “먼저 한국 사진사 연구를 처음 개척하고 기본 사료를 모아 정리해서 후학들로 하여금 한국 사진을 역사적으로, 학문적으로 고찰할 수 있도록 해주신 고(故) 최인진 선생님께 깊은 존경과 추모의 정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오늘날 다양한 한국 사진 연구는 선생님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물론 이 책도 그렇다”고 적었다.

    한국 사진사에 관한 두 권의 책. 그 내용이나 관점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표지에 등장하는 사진이었다. 최인진의 저서 표지에는 민충식의 1910년대 사진 ‘신식 결혼’이 들어가 있다. 1910년대 급변하는 일상 문화와 카메라와의 낯선 만남을 상징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22년 뒤 책을 낸 박 교수는 표지에 여인의 초상 사진을 등장시켰다. 사진작가 정해창(1907~1968)이 1929년에 촬영(추정)한 ‘여인’이다. 민충식의 사진이 기록의 성격이 강하다면 정해창의 사진은 미학적 성격이 강하다.

    표지에 어떤 사진을 쓸 것인지는 전적으로 저자와 출판 편집자의 주관적인 선택이다. 그럼에도 두 표지 사진을 언급하는 것은 두 사진의 분위기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왜 이 사진을 책 표지에 등장시킨 것일까. 22년 시차를 두고, 근대 사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사진史, 정해창에 집중

    우리 근대기 사진을 수집하고 연구 전시해 온 한미사진미술관이 최근 서울 삼청동에서 ‘뮤지엄한미 삼청’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를 기념해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이 열리고 있다. 그런데 제목이 흥미롭다. 왜 1929년일까.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사진전이 이때 열렸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정해창이었다.

    정해창은 그해 3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 네거리 인근 광화문빌딩 2층 화랑에서 ‘예술사진 개인전람회’를 열었다. 사진 문화의 초창기였던 1920년대에 ‘예술사진’이라는 개념으로 사진 작업을 한 사람은 정해창이 처음이었다. 이른바 예술사진은 그 용어부터 파격적이고 신선했다. 예술로서의 사진은 이렇게 정해창의 1929년 개인전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런 관점이 뮤지엄한미 삼청 개관 전시에 반영된 것이다.



    이 개관기념전에 출품된 200여 점의 근현대 한국 사진 가운데 특히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사진이 있다. 박 교수의 저서 표지에 등장한 바로 그 사진 ‘여인’이다. 이 전시를 관람한 사람들이나 근대기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사진 애호가들이 이 사진을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유하고 향유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이 사진은 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까. 이 사진에는 대체 어떤 매력이 있을까.

    예술사진 작가 자의식, 누드 자화상에도 드러나

    정해창은 근대기 빼어난 사진가였고 매력적인 사진을 남겼다. 전문가나 마니아들의 평가는 높지만, 대중에게 그리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그의 이력은 좀 특이하다. 일본 도쿄외국어대학서 독일어를 전공했으나 유학 도중 사진에 심취해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했다. 이때 그림도 함께 공부했다. 귀국 후 사진작가로 활동한 그는 1929년 국내 첫 사진 개인전 ‘예술사진 개인 전람회’를 열어 인물 사진, 정물 사진, 풍경 사진 등 50여 점을 선보였다.

    첫 전시를 열 당시만 해도 그가 사진 작업을 한 기간은 10여 년에 불과했다. 1930년대 말까지 10여 년 동안 4차례의 전시를 열었으나 그 이후엔 카메라를 내려놓고 사진 작업을 하지 않았다. 서예 금석학에도 몰입했던 그는 1940년대엔 서예 전각 전시회를 열었으며, 고미술 조사 연구에도 열심이어서 광복 이후엔 대학에서 동양미술사를 강의하기도 했다. 사진에 관해 글을 쓰고 강의는 했지만 촬영 작업은 하지 않았다. 동시대 여타 사진작가들이 1970년대까지 줄기차게 사진을 찍고 전시한 것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정해창은 조선 화가의 자화상도 없던 시절, 사진으로 자화상을 남겼다. [일민미술관]

    정해창은 조선 화가의 자화상도 없던 시절, 사진으로 자화상을 남겼다. [일민미술관]

    이력 못지않게 정해창의 사진도 남다르고 독특하다. 기록이나 기념을 위한 사진이 아니라 예술적인 사진을 찍고자 했다. 자신의 사진을 예술사진으로 정의하고 미학적, 회화적 사진을 추구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의 사진은 다른 사진작가들의 작품과 많이 달랐다. 풍경 사진도, 인물 사진도 그랬다.

    정해창은 사진 작품으로 자화상도 남겼다. 우리의 근대 미술사에서 자화상이라고 하면 화가들의 전유물이었는데, 1930년대에 사진작가가 자화상을 찍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를 놀라게 한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상반신 누드 자화상 사진도 있다는 사실. 이 자화상 사진 속에서 정해창은 상의를 벗고 얼굴을 숙인 채 눈을 약간 치켜뜨고 먼 데를 바라보고 있다. 일반적인 모습과 많이 다르다.

    정해창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1930년대 예술사진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짙게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화가들이 그런 것처럼 정해창도 자아 성찰의 과정으로서, 촬영의 훈련 과정으로서 자화상을 찍었을 것이다. 그 목적이 어떠했든 정해창은 상체의 속살까지 드러내며 예술사진에 대한 열망을 사진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이 모든 것이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고, 이 대목에 정해창 사진의 존재 의미가 있다.

    문제작 ‘여인’

    정해창의 대표작 중 하나인 ‘부채와 여인’. [일민미술관]

    정해창의 대표작 중 하나인 ‘부채와 여인’. [일민미술관]

    자화상도 분명 문제적이지만 최근엔 ‘여인’ ‘부채와 여인’ ‘그네와 여인’ ‘창문의 여인’과 같은 여성 인물사진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1929년 작(추정) ‘여인’이 단연 두드러진다. 이 작품은 자화상보다 더 대중적이다. 은근히 매력적이면서 감상자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여성은 한복 저고리를 입고 머리엔 흰색 두건을 둘렀다. 젊은 여성 같기도 하고 다소 연륜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이마와 머리를 완전히 감싼 두건 때문에 그녀의 나이를 추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녀의 눈은 그리 크지 않지만, 투명하고 선한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도 약간의 우수와 긴장이 서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얼굴은 다소 평면적으로 보인다. 이마, 눈, 광대뼈, 코, 입 등의 윤곽이 선명하지 않다. 얼굴을 평면적으로 부각한 것은 조선시대 인물화의 전통을 자신의 초상 사진에 적용해 본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이것은 물론 나의 추정일 뿐이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단아한 자태가 전통적 여인상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 정도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래서 한국의 전통적 정서와 미감을 드러낸 작품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짙은 서정성과 전통적 미의식” “절제를 통해 기품을 만드는 조선 여인의 미학”과 같은 평가가 대표적이다. (박주석, ‘한국사진사’)

    ‘여인’은 어디를 보고 있을까

    그런데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이 사진을 보면 약 100년 전에 촬영한 사진인데도 그리 옛날 것 같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진 속 여성의 시선(視線)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사진 속 여성의 시선은 카메라를 향하지 않고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그림으로 치면 화면 밖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관람자와 눈이 마주치지 않는다.

    이 사진은 전체적으로 전통적 분위기를 지니고 있지만 시선은 낯선 것이다. 낯설기에 의미심장하고 동시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사진과 그림과 전통미술을 공부한 정해창이 시선의 의미와 효과를 모를 리 없다. 이 시선 처리에 분명 정해창의 의도가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는 없다. 정확히 알아낼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흥미롭다는 것이 중요하다. 저 여인은 나(관람자)의 시선을 피해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 시선 처리는 여성(모델)의 자발적인 판단이었을까, 정해창이 요구한 것이었을까. 생각해 볼수록 이러저런 궁금증이 몰려온다. 이 대목에서 최인진의 글이 적잖은 도움이 된다.

    “(정해창의) 인물 사진은 도식적이고 일반화된 형식에 얽매인 얼굴이 아니었다. 상식을 뛰어넘는 표현 방법으로 카메라를 과감하게 사용하여 개성이 살아 있는 인간의 표정을 찾아내려고 했다. 대담하게 얼굴만을 클로즈업하고 배경을 아웃 포커싱한 화면 처리는 관람객들에게 낯설었지만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얼굴만을 클로즈업한 표현은 기존의 초상 사진에 대한 틀을 거부하고 실존하는 인물의 진실한 모습을 표현하려는 실험적인 시도였다. …(여인 초상 사진들은) 사진가가 요구하는 포즈를 최선을 다해 취하려는 모델들의 노력이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서양화가의 화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사진적인 분위기로 전환하여 은근한 자태를 추구했다.”(최인진, ‘한국사진사 1631-1945’)

    처음 찍는 사람 같지 않은 자연스러움

    이 글을 통해 판단하건대, 최인진의 문제의식은 매우 적극적이다. 시선에 그치지 않고 포즈까지 나아갔다. 이 대목에 이르니 ‘여인’의 주인공의 시선이 그리 단순해 보이지는 않는다. 무언가 좀 더 복잡해 보인다. 우리(감상자)에게 또 다른 고민과 상상을 요구한다. 더 흥미로운 질문을 하게 만든다. 저 여성은 사진 촬영을 요청한 주문자인가, 아니면 정해창이 고용한 모델인가. 이런 질문까지 해볼 수 있다.

    정해창의 여성 인물 사진 가운데 ‘그네와 여인’이라는 작품이 있다. 최인진의 문제의식으로 한발 더 다가가 보니, 포즈가 다소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자연스러운 동작이라기보다는 포즈를 위한 연출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 또한 나의 짧은 생각이지만, 좀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물론 최인진의 문제의식이 정답일 수는 없다. 그러나 정해창의 사진을 좀 더 고민하도록 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된다. 그러한 고민과 의문들이 정해창 사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초상 사진 ‘여인’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초상 사진 ‘여인’의 매력이다.

    1863년 1월 중국 베이징 아라사관(俄羅斯館·러시아공사관)에서 촬영한 이항억 등 조선 연행사(燕行使) 일행 16명 사진. [동아DB]

    1863년 1월 중국 베이징 아라사관(俄羅斯館·러시아공사관)에서 촬영한 이항억 등 조선 연행사(燕行使) 일행 16명 사진. [동아DB]

    여기서 160년 전 어느 사진이 떠오른다. 1863년 1월 중국 베이징의 아라사관(俄羅斯館·러시아공사관)에서 촬영한 이항억 등 조선 연행사(燕行使) 일행 16명의 사진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른 사진가는 러시아인이었다. 연행사 일행은 며칠 뒤 다시 아라사관을 찾아 자신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직접 보았다. 갓 쓰고 도포 입은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때 찍은 사진 6장이 현재 영국 런던대 동양 및 아프리카 연구학교(SOAS)에 소장돼 있다. 한국인과 사진의 첫 만남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진이다.

    이 사진을 보면 특이하고 흥미롭다. 그들의 시선이나 포즈가 놀랍도록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지금이야 사진이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160년 전엔 무척이나 낯선 문물이었다. 지금도 카메라에 서면 긴장하기 일쑤인데 그 옛날 어떻게 저리도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할 수 있었을까. 모델들의 자연스러운 포즈를 이끌어낸 러시아 사진사의 노련한 기술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연행사 일행이 카메라 사진술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카메라 촬영이라는 것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오히려 긴장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 시선과 포즈의 자연스러움에 대해 2010년 최인진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2010년은 최인진이 연행사의 경로를 답사하고 베이징의 러시아공사관 터를 조사하는 등 한국인과 사진의 첫 만남의 과정을 추적 연구할 때였다.

    “한양을 출발해 베이징까지의 여정에서 이들이 사진에 관한 정보나 지식을 접한 적이 있는지 모두 추적해 봤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이항억 일행의 놀랄 만큼 자연스러운 포즈는 한국 사진사 연구에서 하나의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흥미로운 문제의식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최인진이 말하는 포즈에는 당연히 시선도 포함된다.

    연구할 측면 아직 많이 남은 ‘여인’

    정해창의 사진 ‘여인’의 시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1863년 연행사들의 시선 못지않게 저 여인의 시선도 한국 근대 사진사에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중요하기에 문제적이고 그렇기에 더 궁금해진다.

    정해창의 ‘여인’은 아름답다. 전통적·예술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런데 그건 단순히 한복 차림의 아름다운 여성을 카메라에 담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예술적 분위기는 여인의 시선이 아니었다면 성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화면(사진) 밖으로 향하는 시선은 새로운 시도였다. 정면을 응시하는 전통적 관점, 즉 기존 관행을 벗어나려는 정해창이 지닌 욕망의 발로였을 것이다. 결국 저 여인의 시선은 정해창 자신의 시선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사진은 한국의 전통미를 표현하는 듯하면서 그렇지 않다. 그 모순적인 분위기가 절묘하게 공존한다. 낯선 것들이 만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런 점이 이 사진을 보고 또 보게 만드는 숨겨진 요인이다. 보고 또 보면서 서로 다른 생각과 상상력을 발휘하게 된다. 대체 저 시선은 무엇인가. 화면 밖을 내다보는 여인의 시선을 통해 정해창은 어떤 메시지와 미학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파고들면 들수록 더욱 오묘해진다. 물론 이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렇지만 여전히 화제적이고 논쟁적이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다.

    정해창에 관한 연구와 전시는 1990년대 들어 본격화되었다. 자료 발굴, 연구와 전시 등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정해창은 존재감을 드러냈다. 급기야 2021년 박 교수의 ‘한국사진사’ 표지, 뮤지엄한미 삼청 개관기념전 등과 맞물리면서 정해창의 ‘여인’에 대한 언급이 부쩍 많아졌다. 대중과의 만남이 빈번해지면서 대중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정해창의 ‘여인’은 지금 중요한 순간을 지나고 있다.


    이광표
    ● 1965년 충남 예산 출생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 고려대 대학원 문화유산학협동과정 졸업(박사)
    ● 前 동아일보 논설위원
    ● 저서 : ‘그림에 나를 담다’ ‘손 안의 박물관’ ‘한국의 국보’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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