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호

곽상도 아들과 조국 딸은 촉법소년인가

[노정태의 뷰파인더] 기소조차 당하지 않는 특권 누리다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입력2023-02-18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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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제는 판사가 아닌 검사다

    • 곽 씨 父子 공범 기소하면 되거늘

    • 담당 판사의 당혹감 혹은 분노

    •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의 교훈

    • 법 감정 아니라 확립된 법리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50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2월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선고가 끝난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50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2월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선고가 끝난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이건 부모를 보고 부모 때문에 돈이 나간 거다, 저희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총장님 동의하십니까?”

    2019년 10월 15일,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전호환 부산대 총장을 향해 했던 말이다. 몇 년 전 일이므로 사실 관계를 상기해볼 필요가 있겠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 씨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재학 중 장학금을 받았다. 문제는 조민의 성적이 낮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학금 대상자로 선발되고 실제로 돈을 받았다. 이건 누가 봐도 조민에게 주는 장학금이 아니라, 조민의 아버지인 조국에게 잘 보이기 위한 돈, 다시 말해 뇌물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 발언이 새삼 주목받은 이유가 있다. 2월 8일 선고된 ‘곽상도 50억 무죄 판결’ 때문이다. 곽상도의 아들 곽병채 씨가 화천대유에서 약 6년 가까이 근무한 후 받기로 약속한 돈은 50억 원이다. 그 중 25억531만4526원 상당의 금품 및 이익이 실제로 제공됐다. 곽상도 본인의 말마따나 “이건 부모를 보고 부모 때문에 돈이 나간 거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해당 금품 수수에 대해 1심 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고 나니 일각에서는 ‘조국 가족은 도륙 났는데 곽상도는 왜 무죄냐’라고 항의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조국의 딸 조민은 장학금으로 ‘고작 600만원’을 받았을 뿐인데 조국은 유죄가 됐다. 곽상도의 아들 곽병채는 50억 원을 약속받고 실제로 25억 원을 벌었다. 그럼에도 곽상도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 또한 마찬가지다. 곽상도 1심과 조국 1심은 모두 잘못됐다. 곽상도는 유죄 판결을 받았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조국은 무죄인가? 그렇지 않다. 조국은 유죄다. 문제는 처벌받지 않은 누군가가 남았다는 점이다. 이 또한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우선 곽상도 사건으로 들어가 보자.



    판결문에 명시된 ‘뇌물죄’

    법원의 봐주기 판결인가? 그렇지 않다. 1심 판결문을 차분히 검토해보면 알 수 있다. 판결문에는 아들이 50억 원을 약속받고 25억 원을 실제로 받게끔 한 곽상도의 행동이 뇌물죄에 해당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 논리상 유죄가 될 수 없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로 잘 설명돼 있다. 곽상도의 무죄는 검찰의 기소, 더 나아가 수사가 처음부터 잘못된 방향으로 설정돼 있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곽상도는 제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2021년 3월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LH공사 직원들의 3기 신도시 사전 투기 의혹을 조사하는 부동산투기조사특위에 참여했다. 애초에 부동산특위는 민주당 소속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투기 의혹 등을 노렸으나, 대선 분위기를 타고 점점 불길이 커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이뤄진 대형 개발 사업인 대장동까지 번졌다.

    김만배, 정영학 등 화천대유의 주역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보험을 들어놨다. 국민의힘 부동산특위에 곽상도가 있던 것이다. 판결문은 바로 이 대목에서 곽상도가 화천대유로부터 돈을 받는 행위가 직무관련성을 지니는 뇌물수수가 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판결문의 한 대목을 읽어본다.

    “대장동 개발사업에 있어서 성남도시개발공사 임직원들과 민간사업자들 사이의 유착관계나 민간 사업자들이 부당한 이익을 취득하였는지 여부 등에 관한 의혹을 제기하고 이를 조사하는 등의 행위는 피고인 곽상도가 국희의원으로서 행하는 위 의정활동에 관한 직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곽병채가 피고인 김만배로부터 지급받은 돈과 얻은 이익을 피고인 곽상도가 직접 받은 것과 같이 평가할 수 있다면, 그와 같이 곽병채가 지급받은 돈과 받은 이익은 뇌물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여기서 관건은 “곽병채가 피고인 김만배로부터 지급받은 돈과 얻은 이익을 피고인 곽상도가 직접 받은 것과 같이 평가할 수 있느냐”다. 아버지와 아들은 몇 년의 세월동안 단 한 차례의 돈 거래도 하지 않았고, 아들이 진 빚을 아버지가 대신 갚아주는 등의 금전적 이익을 제공하지도 않았다. 이른바 ‘독립 생계’를 유지했다.

    그렇다고 아들 곽병채가 받은 25억 원을 곽상도에 대한 뇌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앞서 이 글을 시작하면서 인용한 발언을 통해 엿볼 수 있듯, 심지어 곽상도 본인조차 자식이 받은 돈이 부모에 대한 뇌물이 아닐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논리가 조국 일가에 적용될 경우 신랄하게 비판하는 반면, 본인과 아들에게 적용돼 무죄 판결이 나올 경우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서너 차례 잘라서 너를 통해서 줘야지”

    법원은 곽병채가 김만배로부터 지급받은 돈을 곽상도가 직접 받은 것과 같이 평가하지 않았다. 화천대유에서 2015년 6월부터 2021년 3월까지 근무하며 단순 사무 보조 업무 등을 했을 뿐인 곽병채가 50억 원의 퇴직금을 약속받고 그 중 25억 원 상당을 실제로 받았는데, 곽상도가 국회의원으로서 부동산특위 소속이었다는 것과 연결 지을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도대체 이런 판결이 나오게 된 이유가 뭘까?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을 접한 독자들은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이라는 표현을 한번 정도는 들어보셨을 것이다. A와 B가 주고받은 대화 속에서 C의 발언이 인용되고 있는데, C의 내용이 범죄에 대한 것이라고 해보자. 여기서 A와 B가 주고받은 대화를 전문증거라고 부른다. 이를 근거로 C에 대한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을 넓게 인정할 경우, A와 B가 서로 짜고 가짜 역할극을 통해 C를 감옥에 보내는 일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전 세계 모든 나라의 형사소송법은 전문증거를 증거로 유죄 판결을 내리기 어렵게 짜여 있다.

    대한민국의 형사소송법상 전문증거는 A, B, C가 동일한 사건의 피의자인 경우 유의미한 증거로 판사가 따져볼 수 있는 대상이 된다. 같은 범죄를 저지른 자들끼리 주고받은 이야기인 만큼 그 속에서 다른 피의자가 거론될 경우 그것을 증거로 살펴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혹은 전문증거를 남긴 자가 사망, 질병, 외국거주, 소재불명 그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경우, 범죄를 묻어버리기 위해 진술자의 입을 영원히 막아버림으로써 법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게 하게끔, 증거능력을 인정한다.

    화천대유로 돌아와 보자. 여기서 A와 B는 각각 김만배와 정영학이다. 문제는 C다. 정영학 녹취록 대로라면 곽상도는 김만배와 정영학에게 직접 돈을 달라고 하지 않고 아들을 통해서 달라고 했다.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 중 이 사건의 핵심적인 대목은 이렇다.

    “병채 아버지는 돈 달라 하지. 병채 통해서, 며칠 전에도 2000만 원 *** 그래서 ‘뭘? 아버지가 뭐 달라냐?’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주기로 했던 돈 어떻게 하실 건지’ 그래서 ‘야 인마. 한꺼번에 주면 어떻게 해? 그러면 양 전무보다 많으니까 한 서너 차례 잘라서 너를 통해서 줘야지. 그렇게 주면 되냐.’”

    녹취록 대로라면 곽상도는 곽병채를 통해 김만배에게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 사실이 법적으로 인정돼 처벌을 받으려면 곽병채가 이렇게 말했다더라, 라고 김만배가 말한 내용의 증거능력이 인정돼야 한다. 이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이 인정받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참고인’ 곽병채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아들 곽병채 씨가 2021년 10월 8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경찰청에서 조사를 받은 뒤 나오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아들 곽병채 씨가 2021년 10월 8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경찰청에서 조사를 받은 뒤 나오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복잡한 이야기지만 결론은 단순하다. 곽병채는 살아있고 증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남은 길은 단 하나, ‘아버지가 돈 달라고 합니다’라고 말을 전한 자, 그 아들을 뇌물죄의 공범으로 기소하는 것이다. 그 경우 앞서 이야기한 전문증거의 법리상 곽상도‧곽병채 부자는 C로 단일화된다.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은 무리 없이 인정받을 수 있고, 뇌물을 요구한 아버지와 뇌물을 대신 받은 아들이 각자 저지른 죄의 무게에 따라 처벌받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 사건에서 정말 놀라운 대목은 지금부터다. 검찰은 곽병채를 피고인으로 세우지 않았다. 곽병채는 힘 센 아버지 덕분에 재벌 임원급의 퇴직금을 받았다. 녹취록에 따르면 ‘아버지가 돈 내놓으라고 한다’는 말까지 전달했다. 그렇다면 본인이 어떤 행위에 동참하고 있는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고 그 혜택을 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곽병채의 신분을 ‘참고인’으로 유지했다.

    돈 받은 아들이 피고인이 아닌 상황에서, ‘내 아들에게 돈 주라’는 말을 그것도 아들을 통해서만 전달한 아버지가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판결문을 읽어보자.

    “피고인 곽상도는 뇌물수수의 단독범으로 기소되었고, 곽병채는 피고인 곽상도의 뇌물수수 범행의 공동정범 내지 교사·방조범으로 공소제기된 바 없으며, 검사는 이 사건 공판과정에서 곽병채가 피고인 곽상도의 뇌물수수 범행의 공범임을 전제로 수사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볼 수 있는 진술을 하기도 하였다.”

    판사의 당혹감을 넘어서는 분노가 느껴질 정도다. 어쩌면 이번 무죄 판결은 국민적 공분을 이끌어내 담당 검사와 수사팀을 교체하고 사건을 다시 끌고 가기 위한 판사의 ‘살신성인’은 아닐까 하는 ‘소설’을 쓰고 싶어진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검찰의 수사와 공소는 비합리적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아버지 대신 뇌물 달라는 말을 전하고 그 뇌물을 실제로 받기까지 한 아들이 뻔히 있는데, 검사는 수사 단계부터 아들을 뇌물죄의 공범에서 배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검찰이 곽상도, 아니 곽 부자의 유죄를 입증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는지부터 의심스러울 정도다.

    김어준 유튜브에 등장한 조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가 2월 6일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직접 얼굴을 드러내고 공개인터뷰를 했다. [김어준 유튜브 채널 화면 캡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가 2월 6일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직접 얼굴을 드러내고 공개인터뷰를 했다. [김어준 유튜브 채널 화면 캡처]

    조민의 어머니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는 조민의 대학 입시,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와 관련된 서류를 조작하고 위조한 혐의로 현재 감옥에 가 있다. 아버지 역시 같은 범죄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가까스로 법정구속은 면한 상태다. 그런데, 왜 조민 본인은 아무런 범죄 혐의로 기소되지 않은 것인가? 어째서 그는 법적으로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은 채 김어준 유튜브에 출연하고 본인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홍보할 수 있는가?

    곽상도가 뇌물을 요구한 것이 곽병채를 위한 것이었듯, 조국과 정경심이 서류를 위조한 것은 조민을 위한 것이다. 곽상도가 돈 달라고 요구한 말을 곽병채가 전달했듯, 조민은 부모가 위조한 서류를 본인 스스로 대학에 제출했다. 곽병채가 뇌물죄의 공범이듯 조민 역시 문서위조를 비롯해 부모가 그를 위해 저지른 죄의 공범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마땅히 수사 받고 기소됐어야 한다는 소리다.

    이것은 단지 국민적 법 감정에 따른 주장이 아니다. 판결로 확립된 법리다. 소위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이 그렇게 전개됐다. 시험 문제를 유출한 아버지 뿐 아니라 그 정답을 외워 높은 점수를 받은 두 딸 역시 처벌받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고등학생 나이만 돼도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다. 형사미성년자가 아니다. 자신이 주범으로, 혹은 공범으로 저지른 범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힘없는 자의 자식은 부모와 같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함께 치른다. 그런데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에게 적용된 이 당연한 법리는 왜 곽병채와 조민을 피해 가는가? 곽상도의 아들과 조국의 딸은 촉법소년인가? 도대체 무슨 근거로 기소조차 당하지 않는 특권을 누리는가?

    “새로운 검찰에서 끝까지 제대로 수사해서 밝혀내야 한다.”

    2월 15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한 말이다. 온 나라에 분노가 들끓고 있다. 윤석열 정권의 성공뿐 아니라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달린 문제다. 모든 범죄에 상식에 맞는 처벌이 내려지기를 희망한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신동아 3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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