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십 경영과 빠른 의사결정 강점
토레스 사전판매 첫날 계약 대수 1만2000대
“전문성 살리고, 기술 투자 늘려야”
후속 베스트셀러 나와야 경영 안정화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전경. [쌍용자동차]
가성비의 힘
회사 측 설명에 따르면 반도체 관련 부품 수급 문제 등 업계의 전반적인 경영 제약에도 쌍용차의 자동차는 판매 상승세가 이어졌다. 그 중심에는 지난해 7월 5일 정식 출시된 토레스가 있다. 토레스는 사전판매 첫날인 지난해 6월 13일 계약 대수가 1만2000대를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이전까지 역대 사전판매 첫날 계약 대수는 2005년 액티언이 3013대로 가장 많았고 2001년 렉스턴 1870대, 2017년 G4 렉스턴이 1254대로 그 뒤를 이었다. 토레스가 액티언보다 4배 높은 성과를 올린 것이다.토레스는 레트로 감성을 더한 정통 SUV(다목적스포츠차량)로 월등한 가성비가 매력적인 모델로 평가받는다. 가격이 2690만~3040만 원으로 현대차나 기아의 중형 SUV보다 800만 원 가까이 저렴한 수준. 쌍용차가 만든 정통 SUV 무쏘와 코란도의 DNA를 계승한 차량이라는 이미지도 토레스의 장점으로 꼽힌다. 토레스는 내수시장에서 지난해 11월 3677대, 12월 2974대가 팔리며 4분기 쌍용차가 생산한 차량 중 가장 높은 판매 실적을 올렸다.
자금력을 갖춘 한국 기업이 쌍용차를 인수한 것도 판매 호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쌍용차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쌍용차의 회생절차가 종결돼 고객의 신뢰를 회복했을 뿐 아니라 KG그룹이 지난해 구조조정 없이 100% 고용을 승계해 노사 간에 화합이 잘되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쌍용차의 만성 적자가 흑자로 바뀌자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KG그룹 창업주인 곽재선 회장의 매직이 이번에도 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곽 회장은 오늘날의 KG그룹을 일궈낸 주인공으로 재계에서 ‘미다스 손’으로 불린다. KG그룹은 2020년 자산가치가 5조 원을 넘어섰고, 현재 계열사가 20개에 달한다.
매주 회의 챙기는 오너
곽 회장은 부실기업을 인수·합병(M&A)해 경영 정상화를 이뤄낸 사례가 많다. KG스틸(옛 동부제철)이 좋은 예로 꼽힌다. 동부제철은 오랜 적자 경영에 허덕여 기업 청산까지 거론될 정도였지만 KG그룹의 가족이 된 지 1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또 2003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경기화학도 곽 회장이 이끄는 KG그룹이 인수한 후 KG케미칼로 사명을 변경하고 6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서는 쾌거를 이뤘다.쌍용차도 지난해 6월 KG그룹 컨소시엄이 최종인수예정자로 확정된 후 4분기 흑자를 냈다. 쌍용차 관계자는 “곽 회장이 지난해 9월 1일 쌍용차 회장에 취임한 후 매주 한두 번 경기 평택공장을 방문해 현장을 직접 진두지휘하는 스킨십 경영을 했다. 또 임원회의를 주재하면서 빠른 의사결정을 내려 업무를 추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한국 정서를 잘 모르는 외국계 기업이 경영하다 보니 소통에 어려움이 많았고,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하고 까다로워 최종 답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덧붙였다.
쌍용차는 올해 수출 물량을 늘리기 위해 자동차 부품 포장(KD) 사업 등 신규 시장을 공략해 나갈 방침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1월 현지 조립공장 착공식을 가진 사우디아라비아 SNAM과 연간 3만 대 규모의 KD 사업을 올해 말 착수한다. 2016년 이후 7년 만에 베트남 시장에 다시 진출하기 위한 KD 협력 사업도 벌인다. 올해 완성차 1000대를 시작으로 앞으로 5년간 30만 대 물량을 수출할 계획이다.
2022년 7월 5일 곽재선(오른쪽에서 두 번째) KG그룹 회장 겸 쌍용자동차 회장이 토레스 신차 발표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토레스 돌풍에만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후속 모델을 선보이려고 노력하는 점이 고무적”이라며 “다양한 차종을 개발하려면 막대한 자본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만큼 SUV에 강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살리는 것이 경영 안정을 꾀하는 지름길”이라고 분석했다. 조 연구위원은 “다만 수십 년간 사용한 쌍용차라는 이름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KG모빌리티로 사명을 바꾼다는 계획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며 “쌍용차가 경영 악화로 고전했지만 1960년대부터 견고한 차를 만든 자동차 전문 회사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무시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하이브리드·전기차 투자 나서야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토레스 돌풍에 따른 분기 흑자만 놓고 쌍용차의 부활을 논하기엔 이르다”며 “지금은 수명 연장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그의 부연 설명은 이렇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차에 들어가는 비용과 낭비 요소를 줄인 것은 잘한 일이지만 연속성을 가지려면 신차를 두세 개는 더 성공시켜서 서로 시너지가 나도록 운용해야 한다. 지금까지 쌍용차는 한 가지가 간신히 생명을 이어가는 형국이었다. 신차도 앞뒤 형태나 옵션을 좀 바꾼 페이스리프트(부분 변경)가 많다. 지속 가능한 경영 안정화를 추구한다면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하이브리드나 전기차 생산이 가능하도록 미래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페이스리프트가 아닌 ‘뉴카(신차)’ 두세 가지를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야 진정한 부활이라고 말할 수 있다.”이전에 쌍용차를 경영한 외국계 기업 상하이자동차와 마힌드라그룹은 신차 개발에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다. 신차 개발에 막대한 자금이 드는 것이 부담스러워서다. 김 교수는 “쌍용차의 평택공장 부지를 매각해 신차 개발에 투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쌍용차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사내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노사 간 소통이 잘 이뤄지고 있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충만하다. 업계 전문가들은 “신차를 내놓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소비자의 눈높이와 만족도를 채울 수 있을 만큼 완성도도 높아야 한다”며 “단기적으로 흑자가 난 것에 만족하지 말고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기술력이 회사 안에 없으면 외주라도 줘서 완성도를 높이는 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곽 회장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설날을 앞두고 전 임직원에게 소고기 바구니를 명절 선물로 돌린 일이 지금껏 훈훈한 감동을 안긴 미담으로 회자된다. 노사 화합 무드에 이어 지속 가능한 경영 안정은 이제 곽 회장의 의지와 능력에 달렸다. 곽 회장이 앞으로 비용을 절감하며 전문성을 키우는 데 집중할지, 막대한 자금 투자를 감수하며 미래 기술을 장착한 신차 개발에 박차를 가할지 지켜볼 일이다.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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