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악마화했던 野의 딜레마
사퇴가 묘수이자 신의 한 수?
李는 ‘센 캐’에 속하기에…
‘싸워서 이기는 남자’의 카드
다가올 또 다른 체포동의안‘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가운데,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고 있다. [뉴스1]
22일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 말이다. 27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두고 정치권이 뜨겁게 달아오른 가운데, 이 정국을 돌파할 수 있는 가장 ‘화끈한’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기왕 체포동의안 정국이 펼쳐진 김에, 이를 회피하지 말고 정면 돌파해서 민주당에 대한 국민적 불만과 불신을 단번에 반전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검찰을 이기는 길?
‘정면 돌파’를 강조하는 관점은 박지현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역시 이재명에게 ‘결단’을 요구한 바 있다. 그는 19일 페이스북에 ‘내가 만약 이재명이라면? 정치검찰을 이기는 길’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체포동의안을 국회 표결하는 것이야말로 ‘정치검찰’이 바라는 바이므로, 차라리 자발적으로 법원에 출두해 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영장실질심사를 받으면 당장 구속될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떻게 이재명에게 이득이 될까? 조기숙의 논리는 이렇다. “혼자서 조용히 법원에 출석해 영장실질심사를 받음으로써 세 과시보다는 탄압받는 모습과 당을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모습을 연출”해 동정표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체포동의안 표결은 나쁜 수다. “국회에서 표결한다면, 국회가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 불구속수사를 받게 되면 1)자신을 위해 당을 희생시켰다는 비난 여론은 피할 수 없고, 2)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자신의 정치생명도 담보할 수 없다”고 한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또한 이재명에게 ‘정면 돌파’를 요구하고 있다. 20일 라디오에 출연한 그는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될 것이라 전망하면서 “(당대표직을 내려놓는 것이) 이재명 대표가 할 수 있는 묘수이고 신의 한 수”라며 “당대표직을 내려놓는 모습에 스스로 힘을 갖게 하는 ‘사즉생 생즉사’ 논리가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 사람의 주장은 그 내용과 강도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공통점이 더 두드러진다. 이재명에게 ‘사즉생 생즉사’의 ‘결자해지’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야 민주당이 살아날 가능성이 생길 뿐더러, 이재명의 정치적 부활 역시 가능해진다는 논리다.
과연 그럴까? 이재명이 스스로 법원에 출석하거나, 당대표직을 내려놓거나, 민주당이 이재명 체포동의안을 가결시키면, 이재명도 살고 민주당도 살아날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그럴 리가 없다. ‘나를 잡아가라’고 외치는 것이 정치적으로 득 되는 일이었다면 누가 권하기 전에 이재명 스스로 당대표직을 내려놓고,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본인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가결시키라고 서명을 받고 다녔을 것이다. 생명은 생명이고 죽음은 죽음이다. 박지현, 조기숙, 박영선의 주장을 따르면 이재명은 확실히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민주당 지지층의 세계관
박지현의 주장부터 따져 보자. 당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가결시키는 이변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당대표의 권위를 능가하는 특정 인물이나 세력이 이미 당을 장악하고 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도편추방을 당했던 인물이 10년의 추방 기간이 끝나고 돌아와 사회적 위신을 회복하는 일이 없지 않았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민주당이 체포동의안 가결을 통해 이재명을 감옥에 보낸다면, 이재명의 정치적 생명은 바로 그 시점에 끝난다고 봐야 한다.이렇게 자기 당대표를 감옥에 보낸 정당이 내년 총선에서 부활하고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한국 정치의 역동성을 놓고 볼 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희망찬 미래가 있다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후 새누리당은 극심한 혼란을 겪었고 선거에서 연전연패했다. 지금도 국민의힘 내에서는 ‘배신자’ 프레임이 판을 친다. 탄핵 이후 몇 년이 흘렀지만 ‘탄핵의 강’을 완전히 건넜다고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이 미칠 영향도 그와 유사하다. 또한 민주당과 그 지지층이 지금껏 검찰을 악마화해왔던 것도 큰 부담으로 작동한다. 민주당이 검찰을 악마 취급하지 않았더라도 체포동의안 가결은 당대표를 사법 절차의 대상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지지층에게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민주당과 그 지지층 상당수에게 검찰은 살아있는 악마 그 자체다. 체포동의안이 가결된다면 그런 선택을 한 이들은 로마 병정에게 예수를 팔아넘긴 가롯 유다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검찰은 범죄자를 수사하고 기소하는 일을 담당하는 국가 기관일 뿐이다. 물론 때로는 잘못된 수사나 기소가 있을 수 있고,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검찰 그 자체를 악마화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공유하는 사법 시스템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문제는 민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이후 그 삐뚤어진 세계관을 공유하고, 확장하며, 심화시켜 왔다는 점이다. 오늘날 민주당에서 검찰의 요구에 순응하거나 타협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종교의 문제가 돼있다.
체포동의안 가결이 ‘산뜻한’ 결말을 맺고 민주당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민주당은 유권자의 약 30~40%에 해당하는 지지층에게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주입하며 그들을 결집시켜 왔다. 이재명 체포동의안 정국은 그 세계관이 스스로의 발등을 찍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센 캐’와 ‘부드러운 캐’
2022년 5월 19일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왼쪽)과 박지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인천 계양역 광장에서 열린 인천 선거대책위원회 출정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당대표직 사퇴가 ‘묘수’이며 ‘신의 한 수’라는 박영선의 주장도 이재명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27일로 예정된 체포동의안이 투표에서 부결된다 해도, 이재명은 앞으로 최소 두 번 정도 더 같은 상황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에는 큰 부담이다.
이재명은 대선 직후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하고 순식간에 당대표가 됐다. 그 모든 행보가 오늘날의 방탄 국회 정국을 위한 것이라 말할 수야 없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 이재명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그가 지닌 당대표직에서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로서는 내년 총선 공천권을 틀어쥐고 있는 이재명에게 감히 맞설 수가 없다는 소리다.
여기서 이재명이 당대표가 아니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장 이번 체포동의안은 부결될지 모르지만,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체포동의안은 가결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한 사람의 국회의원, 정치인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사건 중 하나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정치의 룰(rule)은 동일하다. 내 편을 늘리고 상대편을 줄이는 것이다. 자기편이 돼줘야 할 같은 정당 구성원들이 등을 돌리고 체포동의안을 가결시키는 모습은 당사자에게 정치적 사망 선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앞서 논의했듯 민주당은 그 후로 엄청난 내홍에 휩싸이겠지만, 어떤 차원에서건 체포동의안 가결이 이재명에게 반전의 기회가 될 수는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체포동의안 가결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기 전에 법원에 자진출두 해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조기숙이 제안한 방안은 어떨까? 그것은 이재명이 살아날 수 있는 반전의 계기가 될까? 부당한 검찰 권력 앞에 ‘희생자’가 되는 것이 이재명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그렇게 보기 어렵다. 정치인 이재명이 갖고 있던 캐릭터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을 ‘센 캐’(센 캐릭터)와 ‘부드러운 캐’(부드러운 캐릭터)로 나눠보자면, 이재명은 단연 ‘센 캐’에 속했다. 약자와 함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아니라, 울고 있는 약자를 위해 고함을 치고 싸우는 그런 종류의 캐릭터다.
반대의 경우라면 문재인 전 대통령을 떠올려볼 수 있다. 그가 민주당에서 구심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건 세월호 동조 단식 이후부터다. 광화문에 세워진 세월호 유족 텐트에서 턱수염이 기른 얼굴을 하고 ‘약자와 동행’하는 모습이 정서적 호소력을 발휘했다. 전형적인 ‘부드러운 캐’의 접근법이다.
반면 이재명은 ‘센 캐’였다. 그것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작동해왔다. 민주당 내에서도 비주류였던 이재명이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거쳐 순식간에 대선주자로 성장할 수 있던 건 그가 지닌 ‘센 캐’가 민주당 지지층에게 소구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권력은 잔인하게 써야 한다’며 억강부약을 외치던 이재명을 보며 민주당 지지층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문제는 ‘센 캐’가 지니는 양면성이다. ‘센 캐’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결국 ‘강함’ 그 자체에 있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소금이 아니듯, 센 캐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더 이상 ‘센 캐’일 수 없다. 만약 이재명이 ‘부드러운 캐’였다면 검찰 수사의 희생양으로 동정표를 얻는 전략이 통할 여지가 없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센 캐’다. 민주당 지지층을 열광시킨 이재명은 ‘싸워서 이기는 남자’다. 지켜주고 싶고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그런 유형이 아니다. 다소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약한 모습을 보인 이재명은 더 이상 이재명이 아닌 것이다. 홀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가는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는 순간, 대선후보이자 당대표인 이재명의 정치적 영향력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단 하나의 조언
프랑스어 속담에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해가 뜨거나 지는 무렵, 사물의 형체는 보이지만 자세하게 알아보기는 힘든 시간,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이 나를 지켜주는 개인지 나를 공격할 늑대인지 알 수 없는 판단유예의 시간을 뜻하는 표현이다.27일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둔 민주당의 상황이 그렇다. 첫 번째 체포동의안은 부결될 것으로 예상되나, 문제는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체포동의안들이다. 이런 식으로 정국이 계속될수록 민주당은 ‘개와 늑대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면서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과 지지자들을 위해 필자가 할 수 있는 조언은 단 하나 뿐이다. 검찰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사법 시스템을 통째로 악마화하는 세계관을 버려야 한다. 그러한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한 이재명 체포동의안 정국이 원만하게 수습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