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지망생이 연출한 영화일까
지나치게 허술한데
때로 너무 완전한
영화의 주제가 슬픔이라면
나의 고요는
반지하 화장실에 오래 놔둔 살구 비누이기를
더운물에 불려서
꼭 필요한 일에만 녹여서 쓰는
살구가 아니라
살구를 가까스로 따라 한 냄새
따라잡으려 하기에
따라가려 하기에
오로지 인간의 것
오롯이 인간의 길
영화처럼
싸구려 핀조명으로 터지는 아침 햇살
동틀 녘,
창유리를 여닫는 골목의 소리
발걸음 소리가 뺨을 스치며
아침이 느리게 내 볼에 머물 때
내가 지난 새벽을 많이 돌려본 까닭에
남한산 동네의 골목이 더욱 길어지고 있다
백마흔 번은 돌려본 장국영의 비디오처럼
한 칸씩 늘어지는 막다른 길의 끝자락
삶의 마지막 비디오를 꺼내야 할 때
그 버튼은 스스로 누르기 위해
내가 연출하고
내가 닫은
숱한 시의 마무리 신(scene)처럼
암전
어둠을 헤아리며 검은색이 된 비디오테이프의 필름이 되어
● 1990년 성남 출생
● 2021년 ‘문학동네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