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
배터리 핵심 요소 양극재 ‘4대 천왕’ 주목
[Gettyimage]
박순혁 금양 홍보이사의 진단이다. 박 이사는 1995년 대한투자신탁 애널리스트로 시작해 여의도 증권가에서 30여 년 동안 테크놀로지 기업들을 분석해 왔다. 2022년 1월 2차전지 상장사인 금양의 기업홍보(IR) 이사로 취임한 뒤 외부 강연과 유튜브 방송을 통해 줄곧 “배터리 산업이 향후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질 먹거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이때 그에게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 ‘배터리 아저씨’다.
2월 말에는 배터리 시장 투자 전략을 담은 ‘K 배터리 레볼루션’이라는 책도 출간했다. 2차전지 사업이 탄소중립 실천을 견인할 친환경 혁신 기술로 불리면서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관련 업계에 투자금도 몰리는 분위기다. 정부가 지원책을 내놓고, 회사가 배터리 관련 사업만 영위해도 주가가 치솟는다는 우스개까지 나온다. 박 이사를 만난 이유다.
인터뷰에 앞서 2차전지 관련 자료를 찾아봤다. 2차전지와 배터리 사이의 연관성이 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지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한 번 사용하면 방전돼 더는 사용이 불가능한 배터리를 의미하는 1차전지, 다른 하나는 충전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를 뜻하는 2차전지다. 요즘 시장의 주목을 받는 배터리는 2차전지를 일컫는다.
全 세계 압도하는 K배터리 기술력
2차전지 산업을 이해하기 위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개념이 또 있다. 단위 무게 또는 부피당 저장된 에너지양을 의미하는 ‘에너지 밀도’다. 이를테면 배터리 1㎏ 혹은 1㎥에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배터리 기술 발전은 곧 에너지 밀도 향상을 의미하기에 국내 배터리 기업은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작업에 전력을 쏟는다. 아울러 에너지 밀도는 가속도를 결정짓는 요소로, 전기차 성능과 직결되는 핵심 작업이기도 하다. 박 이사를 만나 국내 배터리 산업 현황과 유망 배터리 기업에 대해 들었다.최근 배터리 분야에 대한 투자자의 주목도가 높아졌다. 현장에서 변화를 느끼나.
“물론이다. 기후 위기에 따른 산업 패러다임과 사회적 가치의 변화로 탄소중립이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대변하는 과제로 부각되면서 배터리 산업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는 사람이 많다. 정부의 관심도 커졌다. 탄소중립 과제는 산업 전반에 위기인 동시에 배터리 업계에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 배터리 업계에서 한국의 위상은 어떤가.
“국내 기업의 배터리 기술력이 전 세계 기업을 압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세계를 쉽게 제패할 것이라고 낙관할 수만은 없다. 배터리 산업은 구조적으로 광물 의존도가 높은 분야다. 자원의 안정적 확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자원 큰손’인 중국에 비해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한국은 국내에 리튬, 코발트, 니켈 등 2차전지 부존자원이 전무해 이 원료를 정·제련된 가공품 형태로 중국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배터리 업계 전망을 조명한 기사 가운데 자원 문제를 거론하는 내용이 유독 많은 것이다. 자원 확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광물 가격과 배터리 가격, 전기차 가격 상승을 고려할 때 내연기관차가 다시 경쟁력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가능성이 매우 낮다. 2035년까지 세계 주요 국가에서 내연기관차 퇴출을 공언한 데다 이를 이미 법제화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전기차로의 전환은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시작된 것이 아니라 지구 온난화를 극복하기 위한 글로벌 탄소 저감이라는 세계적 합의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사안이다.”
LG에너지솔루션 본사. 탄소중립이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대변하는 과제로 떠오르면서 배터리 산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뉴스1]
배터리 제조는 완성차 제작과 전혀 달라
내연기관차가 아니더라도 전기차 대신 다른 대안을 찾게 되지 않을까.“남은 대안은 수소 전기차가 될 것이다. 수소 전기차는 배터리 전기차에 비해 촉매에 사용되는 백금 외에는 광물에 의존적이지 않은 것이 장점이다. 현재는 가격이 비싸 배터리 전기차와 경쟁하기가 쉽지 않지만 광물 가격 상승으로 배터리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면 수소 전기차의 가격경쟁력이 확보될 거다. 그때 수소 전기차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것이다.”
그 시점은 언제일까.
“2027년에서 2030년 사이에 가능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우리 정부가 수소 전기차에 투자를 계속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기차만이 아닌 수소 기술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2020년 9월 테슬라와 2021년 3월 폴크스바겐이 배터리를 자체적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자동차 회사들이 결국 배터리를 직접 만들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테슬라가 4680 원통형 배터리(지름 46㎜·길이 80㎜)를 직접 생산해 픽업트럭 전기차 사이버 트럭을 2021년 말 내놓을 예정이었으나 그 시기를 2023년 말로 연기했다. 지금은 2023년 말 출시될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이다. 그사이 국내 배터리를 탑재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픽업트럭(pick-up truck·뚜껑이 없고 측판이 운전대와 일체인 소형 트럭)이 속속 출시됐다. 이는 테슬라의 아성을 위협했고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폴크스바겐의 사정도 여의치 않다. 물론 2022년 들어 급상승한 세계 금리와 얼어붙은 자금시장이 큰 영향을 끼쳤다. 자금시장이 얼어붙은 영향이 크다.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겠나? 자동차 제조사들의 배터리 내재화 계획도 마찬가지다.”
LG에너지솔루션, 명실공히 세계 최고 배터리 기업
그게 무슨 뜻인가.“자동차의 근본은 기계 기술인데 전기차에는 엔진이 없다. 엔진 자리를 배터리와 모터가 대신한다. 배터리는 기계 기술이 아니라 화학 기술의 결정체다. 애초에 화학 기술 기반이 없는 자동차 회사들이 배터리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화학 기술과 기계 기술의 차이는 농구와 야구의 차이보다 훨씬 크다. 테슬라와 폴크스바겐이 아무리 대단한 회사라 해도 배터리 산업에서는 초보에 불과하다. 화학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LG에너지솔루션조차 십수조 원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30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이만큼의 기술력을 축적한 것이다. 아무리 세계적인 기업이 막대한 자원을 들인다 해도 배터리 산업에 뒤늦게 뛰어들어 화학 기술의 격차를 단숨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대한민국 배터리 산업은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까. 배터리 산업을 반도체 산업에 견주는 건 과하지 않나.
“그렇지 않다. 글로벌 시장정보업체 HIS마켓에 따르면 향후 2차전지 시장은 2025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전기차용 배터리는 2000조 원(1억 대×2000만 원) 규모까지 시장이 커질 전망이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약 200조 원)의 10배 규모에 달한다는 의미다.”
세계 배터리 산업을 주도하는 국내 유망 배터리 기업을 꼽는다면.
“LG에너지솔루션은 명실공히 세계 최고 배터리 회사다. 현재 배터리 시장점유율 1위는 중국의 CATL이지만, 향후 2~3년 안에 LG에너지솔루션이 이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LG화학이라는 정통 화학회사에서 시작한 만큼 기술이 탄탄하다. 특히 2차전지 핵심 구성 요소인 양극재는 배터리 원가의 50%를 차지하는데, LG에너지솔루션이 이 양극재를 LG화학으로부터 안정적으로 조달받고 있다. 전기차에 사용하는 배터리 셀의 폼팩터(기기 형태)는 파우치형, 각형, 원통형 등 세 가지로 나뉜다. LG에너지솔루션은 파우치형과 원통형 모두 생산이 가능해 다양한 고객 욕구에 대응이 가능하다. 이를 바탕으로 이 회사의 2022년 매출액이 2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투자자가 눈여겨볼 만한 배터리 양극재 기업을 꼽는다면.
“에코프로비엠, LG화학, 포스코케미칼, 엘앤에프 등 양극재 4대 천왕을 추천한다. 이들 기업은 울트라 하이니켈 등 다양한 양극재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양극재 이외 소재는 국내 업체들이 해외 기업을 압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양극재 기업들의 위치는 향후 3년에서 5년은 유지될 것이기에 양극재 생산업체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볼 것을 권한다.”
배터리 투자 전문가 박순혁 금양 홍보이사는 “배터리 산업은 대한민국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국가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지호영 기자]
염호에서 리튬 추출하는 기술 보유한 포스코홀딩스
배터리업체가 세계 최고 기술력을 동원해 제품을 개발했다 한들 광물과 소재를 공급받지 못하면 쓸모없는 일이 되고 만다. 원자재 관련 유망 배터리 회사를 꼽는다면.“에코프로와 포스코홀딩스를 주목할 만하다. 에코프로그룹은 지주사 에코프로 아래 양극재 회사인 에코프로비엠을 비롯해 자회사가 다수 포진해 있다. 그중 에코프로이노베이션은 라틴아메리카 등에서 저순도의 탄산리튬을 들여와 자동차용 고순도 수산화리튬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영위한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양극재 전 단계인 전구체를 생산하는 회사로, 국내 최대 생산 규모를 자랑한다. 폐배터리 리사이클 사업을 담당하는 에코프로CNG도 현재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포스코그룹의 정점에 위치한 기업으로, 아르헨티나 움브레 무에트로 염호(鹽戶)와 그 염호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박 이사는 인터뷰 내내 “배터리 산업은 대한민국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국가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사명감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 구실을 하는 기업들을 널리 알리겠다는 각오도 내비쳤다.
“요즘 사람들이 ‘한국 증시는 장기 투자하면 안 된다더라’는 말을 쉽게 내뱉는다. 그런 말에 공감한다면, 수익을 낼 수 있는 종목은 일찍 팔고 그렇지 않은 종목은 매도 타이밍을 놓쳐 물리는 바람에 ‘비자발적 장기투자’를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들이 과연 제대로 장기투자를 한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잘못된 투자 습관을 국내 증시와 기업 탓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진정한 장기투자’로 국내 배터리 기업의 성장에 동참해 대한민국이 미래 산업을 주도하는 시대를 함께 만들어가기 바란다. 그렇게 하면 투자 성공의 묘미를 맛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