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고도화는 주변국 군사력 강화 야기
韓美日 공조하더라도 베이징 배제 어려워
북핵 대응, ‘통합억제전략’이 현실적
100년 뒤 국제 역학관계 전망하고 전략 짜야
11년간 동아시아연구원을 이끌어온 하영선 이사장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구촌 관점에서 볼 때 평화와 공생은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말했다. [박해윤 기자]
2012년부터 동아시아연구원을 11년째 이끌고 있는 이는 하영선 이사장이다. 설명이 더는 필요 없는 국제정치학 분야의 대가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거쳐 미국 워싱턴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0년 서울대 외교학과(현 정치외교학부) 교수로 부임해 2012년까지 32년간 봉직했다. 현재는 명예교수다.
“동아시아연구원이 21세기 집현전이 되기를 소망한다”는 하영선 이사장을 2월 6일 서울 사직동 동아시아연구원 신사옥에서 마주했다.
정치권력·대기업으로부터 독립이 생명
설립 20주년을 맞이한 동아시아연구원의 발전 원동력은 무엇인가요.“2002년 연구원을 처음 시작할 때 3대 기본 원칙을 확립했습니다. 3가지 권력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권력(勸力)·금력(金力)·지력(知力)입니다. 한국 싱크탱크의 수명이 길지 못한 이유가 특정 정치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권력과 수명을 함께하는 데 있습니다. 금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구소 설립·운영에는 재정이 확보돼야 하는데 특정 대기업집단과 연계될 경우 연구의 자율성을 보장받기 힘듭니다. 지력도 문제입니다. 특정 연구 주제를 선정하며 그 분야 최고 연구자를 선정할 때 특정 지역 및 대학 출신이나 학문적 배경을 가진 사람으로 쏠리는 것은 신경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습니다.”
비대면 회의가 보편화하면서 동아시아연구원의 존재감이 커진 듯합니다.
“처음부터 ‘싱크탱크(Think Tank)’가 아니라 ‘싱크네트워크(Think Network)’를 운영하고자 했습니다. 지식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연구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죠. 특정 권력이나 금력으로부터 자율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운영 경비를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이 되기 쉬운 대규모 국제회의 등은 지양했습니다. 대신 한국과 한반도, 나아가 동아시아의 미래를 바라보며 반드시 해야 할 연구 활동을 수행해 오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회의가 보편화됐는데 동아시아연구원은 이미 해오던 일이었습니다.”
동아시아연구원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지난해 개원 20주년 기념행사를 하면서 앞으로 2050년 혹은 2100년의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상상하고 화두(話頭)를 고민하며 연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공생(共生) △민주주의 △민족주의 △공생을 위한 첨단기술 혁신 등 4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우선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 넓게는 지구촌 관점에서 볼 때 평화와 공생은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민주주의 문제도 미국과 중국 간에도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어떠한 민주주의로 가야 하는지가 중요한 의제가 될 것입니다. 주지할 점은 ‘한국식 민주주의’ 모델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근대 이후 민족주의는 중요한 화두입니다. 다만 오늘날 민족주의는 반(反)세계화 경향이 강합니다. 민족주의와 세계주의가 결합된 이른바 지구적 민족주의 혹은 재(再)세계화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과 인류의 공생입니다.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가 아닌 기술이 인간의 공생에 기여하며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제들을 연구하고 전략을 모색하는 국내외 학자, 전문가 노력의 출발점이 동아시아연구원 사이트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현실을 비추는 작은 등대가 동아시아연구원의 꿈이라고 하겠습니다.”
北 핵 능력 강화는 自繩自縛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은 “독자 핵 개발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박해윤 기자]
“대한민국은 ‘3중 복합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첫째, 세계체제가 당면한 위기입니다. 둘째, 한반도 차원의 위기입니다. 셋째, 한국 체제 내부 문제입니다. 중대한 위기 3가지가 겹쳐서 온 형국이죠. 근대 이후 약 500년 동안 세계체제는 약 100년을 주기로 주도 세력이 바뀌어오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부터 미국 주도 세계질서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시기는 1945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동서 냉전체제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두 번째 시기에 당면했는데 미국의 리더십에 도전하는 중국이 부상했습니다. 미·중 전략 경쟁이 격렬해지는 양상인데 그 결과에 따라 앞으로 세 번째 시기가 좌우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치열한 각축만 지속되면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공생 질서를 모색하면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겠죠. 남북한 문제는 냉전적 요소와 탈(脫)냉전적 요소가 공존합니다. 구소련이 해체된 1991년 전후로 지구촌에서는 냉전 질서가 해체됐지만 한반도는 이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열전(熱戰)은 아니지만 회색전, 복합전 등 새로운 양상의 전쟁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한국 내부 문제입니다. 좌우 혹은 보수-진보파는 자기중심적인 인식과 사고방식에 기반한 주관적 문제 해석으로 위기를 심화시키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것이 국제정치학자로서 제가 21세기 전반부에 한반도라는 공간에서 바라보는 국제 안보 문제 요약이라 하겠습니다.”
북한은 실질적인 핵 보유국이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국입니다. 전력 비(非)대칭 상태에서 한국은 어떤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할까요.
“최근 북한의 핵능력 강화를 둘러싼 국내외 논란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논의의 출발점이 잘못됐다고 진단합니다. 북한 핵문제 논의의 출발점은 ‘북한의 핵무력 증강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인데, 지난 50년 가까이 국제정치학을 연구한 관점에서 핵문제를 보자면 북한 핵무력 강화는 중장기적으로 새로운 문제를 낳게 될 것이라 전망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북한의 핵무력 증강 문제는 3가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생존권 △발전권 △통합억제 시스템입니다. 우선 생존권 차원에서 보자면 북한은 핵능력을 고도화할수록 생존 문제에 당면할 것입니다. ‘핵강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 현실에 부딪히는 것이죠. 핵무기만으로 생존을 보장받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미국이 최근 강조하는 통합억제력을 보면 이 사실은 명백합니다. 발전권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핵 개발을 고집해서는 국제사회의 제재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경제발전을 이룰 수 없는 것도 자명하고요. 마지막으로 북한 핵 능력 강화는 한미일 공동의 통합억제 확장으로 이어집니다. 중국과 러시아도 변수고요. 동북아시아에서 군비경쟁이 심화할 것이고 그 속에서 북한이 ‘핵 자위력(自衛力)’을 기반으로 독자 생존하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한국, 일본 등 핵확산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고요.”
이 대목에서 하영선 이사장은 “북한이 핵 능력을 강화할수록 더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北 핵무기 사용=수뇌부 즉시 제거
대안을 제시한다면요.“북한 핵 능력 고도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안은 다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한국 독자 핵 개발, 둘째 미국 전술핵무기 재배치, 셋째 미국 통합억제전략의 한반도 확장 적용, 넷째 북한 핵 보유 인정 후 군비통제 및 군축 협상입니다. 다만 제 관점에서 3번째 대안을 제외한 나머지는 비현실적입니다.”
어떤 면에서 비현실적이라는 건가요.
“독자 핵 개발 문제는 지난날 경험을 반추해 봐야 합니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은 자체 핵 개발을 추진했습니다. ‘독자 핵 개발’을 선언하고 실행에 옮겼죠. 미국은 3가지 방법으로 대응했습니다. 당시 건설 중이던 고리2호기 원전에 대해 미국 수출입은행의 차관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경제제재입니다. 모든 단계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Atoms for Peace)’ 관련 기술이전·협조 중단이라는 기술제재도 천명했습니다. 그래도 핵 개발 의지를 굽히지 않자 ‘안보 문제도 스스로 해결하라’며 주한미군 철수 등을 시사했죠. 결국 박 대통령을 핵무기 개발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은 20기 이상의 상업원전을 운용 중인데 기술제재를 받을 경우 발전소를 가동할 수 없습니다. 원전은 글로벌 분업 체계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니까요. 경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기 단계 경제제재만 받아도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이 올 것입니다. 핵무기를 독자 개발해서 이른바 ‘공포의 균형’을 통해 안보 문제를 단독으로 해결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고요.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는 것도 실질적인 억지력을 갖기 힘듭니다. 북한의 비핵화를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을 잃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마지막으로 일부 진보 인사들이 ‘핵 보유국 북한’의 현실을 인정하고 군축 협상을 하자는 주장도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통합억제전략이 현실적이라는 이야기인가요.
“요약하자면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는 미래는 없다’라는 것을 기정사실화해야 합니다. 킬체인, 한국형 미사일방어, 대량응징보복 등 3가지로 구성된 ‘한국형 3축 체제’에 미국의 통합억제력을 더해야 합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는 ‘북한에 대한 맞춤형 통합억제력 강화’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맞춤형이라는 것은 만에 하나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 사용할 경우 ‘실행 이전’과 ‘실행 이후’ 모두 첨단기술로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결정권을 가진 수뇌부를 즉시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북한 수뇌부 입장에서 ‘핵무기 사용=죽음’ 등식이 성립하는데 목숨을 걸고 핵무기 실전 사용을 할 유인을 제거하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죠. 또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핵 능력을 강화할수록 비용이 커지고, 핵이 없어질수록 이익이 커진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합니다.”
중국과 공존은 宿命
한국 정부의 4강(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외교 전략 기조는 어떠해야 할까요.“복합 정책 기조가 필요합니다. ‘주변 4대 강대국의 역량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문제가 중요합니다. 근래 한미일 3국을 중심으로 ‘자유’ ‘평화’ ‘번영’ 등 공동 가치 기반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새로운 네트워크 참여를 주저하는 양상입니다.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의 외교안보정책 기조 설정의 기준점이 되는 것은 2050년 혹은 2100년이라는 ‘미래’에서 각국의 국력(역량)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라고 하겠습니다. 미래 각국이 지구촌에서 혹은 동아시아에서 얼마만큼 역량을 지닐지를 예측하고 이를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추세를 보면 미국의 쇠퇴 속도는 예상보다 늦습니다. 중국이 국내총생산(GDP)이나 국방력에서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 전망했던 시점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중국이 세계경제나 군사 부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 다음으로 높은 것은 기정사실이기 때문에 중국을 배제한 세계질서는 고려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은 한미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중국을 보완재로 한 외교안보 전략을 짜야 합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중국과 어떻게 공존을 추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 포인트입니다. 한미일 네트워크를 강화하면 중국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저의 관점은 다릅니다. 냉전적 시각에서 보면 충돌할 수밖에 없지만 충돌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합니다.”
최근 설문조사 결과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중국을 싫어하는 국가로 나타났습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주한미군 사드(THAAD) 배치 당시 보인 중국의 태도 때문이라고 봅니다. 중국이 2010년대 들어 표방한 이른바 ‘신형대국관계’에서 중국의 핵심 이익에 위배되는 일에는 강력 대응하겠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드 문제도 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한한령(限韓令)’으로 대표되는 대(對)한국 제재 조치를 취했습니다. 문제는 한국인, 특히 중국에 반감이 큰 것으로 나타나는 젊은 세대는 사드 배치가 한국의 핵심이익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죠. 안보 차원에서 사드를 배치한 것인데 중국이 이중잣대를 들이댄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중국이 비(非)강대국 혹은 비대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사드 문제에 투영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패러다임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보수권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중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규범이나 가치는 복합적인 요소를 지녀서 칼로 베듯이 일방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미국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이 대안인가?’ 등의 질문도 잘못이라 봅니다.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은 간단치 않습니다. 미국의 우위가 점쳐지지만 중국도 무시할 대상이 아니죠.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기 힘들다면 미국을 우선순위에 두고 차순위로 중국을 두어야 합니다. 양국 간 역량이나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력에 따라 정책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합니다. 중장기적 안목을 바탕으로 국가 간 역학관계를 고려해 우리의 생존전략을 짜야 합니다.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미국의 힘만으로 중국의 도전을 뿌리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동맹이나 파트너십을 활용해 미국의 리더십을 유지할 수밖에 없죠.”
문재인 정부 시절 한일관계도 악화일로였습니다. 징용공 문제 등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한일 문제를 양자(兩者) 간 문제로 해결할 시점은 지났습니다. 국제질서 재편에 따라 한일관계는 재정립돼야 합니다. 징용공 문제, 위안부 문제 등 역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상호 노력은 필요하겠죠. 한일관계를 남북관계보다 풀기 어려운 과제라고 지적하지만 국제 현실 변화, 한일 간 국력 차이 변화 등을 고려하면 관계 개선은 불가피합니다. 궁극적인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한일 양국 모두 ‘일국중심민족주의’에서 진화해야 합니다.”
하영선 이사장은 한일 양국의 1인당 국민소득, 국방비 등이 대등한 수준이 됐다는 것도 중요한 시사점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 전략적 유연성 필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이 장기화 양상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대만해협 문제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이라 보시나요?“강대국이 약소국을 상대로 자국의 핵심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무력 수단을 사용한 일이 유럽에서 발생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대만 침공을 상정할 수 있겠죠. 모두 현대 국제정치체제의 한계나 딜레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를 중국-대만 사태에 대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사국의 객관적인 국력 차이를 고려해야 합니다. 러시아와 중국은 국력 면에서 1대 1로 비교할 상대가 아닙니다. GDP는 물론이고 국방비 면에서도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러시아는 냉전 시기 구소련이 아닌 것이죠. 한국은 관념적으로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이 비슷한 국력을 지녔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을 자각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파장입니다. 승패를 떠나서 이번 전쟁은 러시아에는 마이너스, 미국에는 플러스가 될 것입니다. 푸틴이 어떤 노력을 하건 러시아의 정치·경제적 위상은 하락할 것이고, 미국은 세계질서 주도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을 얻을 것입니다.”
중국의 대만 무력 침공론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2027년 등 구체적인 시기를 언급하는 경고도 존재합니다.
“중국이 아시아의 러시아가 될 가능성이 존재하기는 합니다. 다만 쉽사리 전면전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합니다. 중국이 전쟁의 길로 가는 과정에는 여러 단계가 존재합니다. 단계별로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능전, 회색지대전, 하이브리드(복합)전 등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전쟁 수단을 먼저 사용할 것입니다. 대만 국민 여론도 변수입니다. 다수의 대만인이 양안 현상 유지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정치전·심리전 등을 전개할 필요성이 높아진다는 의미입니다. 무력 수단을 사용해도 무력시위 등 초보적 수단이 우선 고려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이 대만을 전면 침공해 점령할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임기가 4년여 남은 윤석열 정부에 외교안보 분야에서 조언한다면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안교안보 정책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주원인은 한국 외교안보 환경이 놓인 ‘시공간’의 복잡성을 간과하고, 지나치게 단순화해 이를 기반으로 정책 대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공간적 차원에서 한반도 중심으로 남북한 문제를 우선적으로 접근했습니다. 현실은 냉전 상태인데 탈냉전 사고를 바탕으로 남북관계 개선에만 전력투구하면서 기타 변수를 복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야 합니다. 외적 변수 중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미·중관계입니다. 향후 30~50년간 한미일 공조가 불가피하다면 ‘중국’이라는 상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강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전략적 투명성·모호성보다는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한미일에 중점을 두고 ‘어떻게 중국을 진화시켜 공생의 길로 끌고 가는가?’가 핵심 과제입니다. 남북한 관계에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하나의 과제입니다. 북한 핵무기 억제는 남한의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사실 북한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비핵화 해법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3중 복합 위기 속에 국내 여론과 인식이 이념에 따라 양극화돼 있습니다. 이질화·양극화된 인식 기반에서는 효율적인 정책 모색이 어렵습니다.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추후 4년간 과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