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는 고통
종일 연습만 해서 얻은 것과 잃은 것
‘최고 조력자’ 김재민 캐디와 만남은 운명
지금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 다하자
모든 선수가 ‘라이벌’이자 깨달음 주는 ‘스승’
서울에서 KTX를 타고 3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경남 창원시는 수도권 신도시처럼 깔끔하고 시원시원했다. 2021년 인근 마산, 진해와’ 통합해 거주하는 인구도 100만 명이 넘는다. 지방의 한적한 소도시와는 거리가 먼 창원시처럼 이곳에서 만난 프로골퍼 김영수(34)도 기자의 예상을 빗나갔다.
김영수 프로는 지난해 최고의 골프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를 결산하는 무대인 ‘2022 KPGA 제네시스 대상’ 시상식에서 3관왕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제네시스 챔피언십에 이어 시즌 최종전인 LG 시그니처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하며 가장 높은 제네시스 포인트(5915점)를 쌓아 생애 처음 대상을 받고, 누적 상금 7억9132만 원으로 상금왕에 올랐다. 골프 기자단이 선정하는 기량 발전상까지 거머쥐었다.
고백컨대 김 프로는 운 좋게 왕좌에 오른 신데렐라인 줄로만 알았다. 찾아보니 그는 아마추어 선수 시절 천재 소리를 듣던 유망주였다. 골프 입문 3년 차에 국가대표 상비군이 됐고, 4년 차이던 2007년에는 송암배와 익성배, 허정구배 등 대한골프협회(KGA)가 주관한 아마추어 대회에서 모두 우승 트로피를 휩쓸었다. 이듬해인 5년 차엔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이렇게 촉망받던 그가 10년 넘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까닭이 뭘까. 그동안 그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오랫동안 존재감이 없던 그가 재기에 성공한 비결이 뭘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궁금증이 그가 태어나 자란 곳, 창원까지 가게 했다.
김영수는 “올해 DP월드투어를 1년간 뛰면서 시드를 1년 더 연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조영철 기자]
잇단 우승에 8억 원 상금 거머쥐어
창원에서 사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태어났을 때부터 창원에서 성장했고 운동을 여기서 배우다 보니 다른 곳에서 지내는 것보다 편하다. 안정감을 주는 곳이다. 타지에서 경기가 있을 땐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경기가 없을 땐 편안하게 운동할 수 있어서 주로 여기서 지낸다. 서울 근교에서 경기가 있을 땐 형 집에 머문다. 친형이 2~3년 전부터 서울에서 살고 있다.”
지난해 데뷔 후 처음으로 코리안투어에서 잇따라 우승했다. 비결이 뭔가.
“비결을 안다면 좀 더 쉽게 빨리 우승했을 것이다. 굳이 비결이라고 한다면 우승이라는 목표를 향해 흔들리지 않고 부단히 노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승 후 김재민 캐디에게 공을 돌렸다. 캐디의 역량이 경기에 영향을 미치나.
“캐디의 역량이 무척 중요하다. 경기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조언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캐디밖에 없다. 김재민 프로(김영수 선수의 캐디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골프를 배워 2년여 전 KPGA 프로 테스트를 통과함)가 많이 도와준다. 서로 알고 지낸 시간이 상당히 길고, 내 성격이나 골프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경기하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내 기분이 어떤지 가장 잘 파악하고 있다.”
캐디는 어떤 역할을 하는 직업인가.
“선수의 기분을 파악해 컨디션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도움을 주고 비거리나 방향을 파악해 선수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보조해 준다. 지금 이 순간은 이런 선택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하는 식이다. 또 경기 상황에 따라 격려해 주기도 하고, 긴장을 풀어주기도 한다.”
제네시스 대상 시상식에서 3관왕에 오른 후 달라진 것이 있나.
“골프를 대하는 면에선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좋은 성과를 내다 보니 주변에서 나를 많이 알아보더라. 올해 DP월드투어에 나갈 수 있는 시드(출전 자격)도 받았다. 더 큰 무대에서 좋은 선수들과 경쟁해보고 내 실력과 가능성을 다시 점검할 기회가 생겼다.”
8억 원에 가까운 상금은 어디에 썼나.
“일단 부모님에게 선물을 하나씩 사드리고 맛있는 거 먹는 데 썼다. 앞으로 세금도 내야 할 거고, 올해 같은 경우는 DP월드투어를 비롯해 해외에서 경기가 많아 경비로 쓰려고 한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몸이 안 따라
중학교 때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원래 꿈이 골프선수였나.“아주 어릴 때부터 밖에서 뛰어놀고 공 차는 걸 좋아했다. 스포츠를 다 좋아해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반대하셨다. 그러다 중학교에 들어간 후 골프선수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부모님도 골프를 취미로 치셨다. 그래서인지 방과 후에 배우는 걸 전제로 허락하셔서 저녁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 중1 때 3~4개월 배우다가 중2 올라가면서 골프선수가 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부모님에게 보여드리고 골프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경기에 나갔다.”
골프는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이다. 집안 형편이 넉넉했나.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만큼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내가 운동에 전념할 수 있게 부모님이 최대한 지원해 주려고 노력했다.”
아마추어 시절 촉망받다가 프로로 전향하면서 몸 고생, 마음고생이 심했던 걸로 안다. 원인이 뭔가.
“골프를 또래 선수들보다 늦게 시작한 편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첫 경기에 나갔는데, 골프를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 주니어 선수로 자리 잡은 아이가 많았다. 그 친구들과 경쟁하려면 내가 더 열심히 해야 (실력 차를)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종일 연습했다. 골프는 주로 한쪽만 쓰는 운동인데 몸 관리에 소홀한 채 연습만 많이 하다 보니 프로로 전향하는 시점에 허리가 많이 아팠다. 허리디스크가 생기고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침대에 누웠다 일어나기가 힘들 정도였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골프를 못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하고 싶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운동을 못 하니까 너무 속상하고 힘들었다.”
그때가 언제인가.
“2012년에서 2016년까지, 그러니까 군대 가기 직전부터 전역 후 1~2년까지가 많이 힘들었다. 특히 스물네다섯 살 때가 가장 힘들었다.”
어떻게 극복했나.
“몸을 재정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급함을 버리고 그 시기에 군대를 다녀오고 재활 치료에 힘썼다. 수술하지 않고도 몸이 좋아지도록 노력했다. 계속 재활 치료를 하면서 스트레칭을 꾸준히 했다. 그랬더니 몸이 풀리면서 운동을 병행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은 통증이 있거나 아프지 않다.”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은 어떻게 추스렸나.
“골프를 하고 싶어도 몸이 안 따라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속상했지만 운동을 그만둘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차근차근 다시 준비하자는 생각으로 모든 욕심을 내려놨다. 아마추어 시절에 잘나가긴 했지만 딱히 이룬 것은 없기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각오로 마음을 다잡았다.”
성격이 낙천적인가.
“원래는 그렇지 않았는데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낙천적인 성격으로 변한 것 같다. 당장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생겨도 지나면 아무 일도 아니더라. 그래서 아등바등하지 않고 느긋하게 생각하며 마인드컨트롤을 하게 됐는데 그런 변화가 다시 선수로 복귀했을 때 큰 도움이 됐다. 마음을 편히 먹어선지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다.”
힘들고 지칠 때 마음을 다잡아 준 인생의 나침반 같은 좌우명이 있나.
“어릴 때는 좌우명이 있었는데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그 한 가지만 생각하며 지내진 않았던 것 같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매 순간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는 각오로 살아왔더라. 그게 내 좌우명인 셈이다. 점심시간조차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김영수 선수가 2022년 KPGA 코리안투어 ‘제네시스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공을 치고 있다. [한국프로골프협회]
차근차근 느긋하게, 그러나 허투루는 안 돼
재활에 성공하도록 도와준 조력자가 있나.“골프장 바로 건너편에 있는, 지금도 나를 후원해 주시는 더큰병원 원장님이 그런 분이다. 골프를 정말 좋아하신다. 내가 처음에 병원에 갔을 때는 환자 대 의사로 만났다. ‘골프선수인데 아프지만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니 재활 프로그램을 직접 짜주시고,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후원하며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리고 김재민 프로가 없었다면 이만큼 좋아질 수 없었을 것이다. 김재민 프로는 원래 군대 후임이다. 군 생활할 때부터 내가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모습을 다 봤다. 스트레칭조차 몸이 아파서 하지 못하니까 그런 나를 도와주려고 김재민 프로가 부단히 애썼다. ‘형, 스트레칭부터 시작하면 된다’면서 ‘옆에서 재활에 성공하도록 도와주겠다’고 자청했고 정말 1년 가까이 내 몸을 풀어줬다. 그게 습관이 돼서 지금도 스트레칭만큼은 매일 빼놓지 않고 한다.”
김 프로와 김재민 캐디는 네 살 차다. 동고동락한 세월만큼 신의와 우애가 쌓여 친형제처럼 돈독한 사이가 됐다.
김재민 캐디가 물리치료를 배웠나.
“물리치료사 자격증이 있는 건 아니고 내가 재활 프로그램을 혼자 수행하기엔 의지가 너무 약해져 있으니 자청해서 도와줬다. 김재민 프로가 당시 운동을 다방면으로 배운 터여서 운동센터 선생님들에게 조언을 구해 내 재활 치료 효과를 최대한 끌어올려 주려고 했다.”
그가 일방적으로 김재민 캐디의 도움만 받은 건 아니다. 그 역시 김 캐디가 KPGA 프로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도록 기꺼이 ‘스승’ 노릇을 했다.
“처음 만났을 땐 김재민 프로가 골프선수는 아니었다. 유학 생활을 하며 방과 후 골프를 배워 칠 줄은 알고 있었다. 전역 후 뭘 할 거냐고 물었더니 미국으로 돌아가서 지내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김 프로에게 ‘골프를 칠 줄 아니까 한국에서 프로 자격을 취득해 선수 생활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 내가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다. 얘기가 잘돼 나와 지내며 KPGA 프로선수 자격증을 따냈다. 시즌이 시작되면 잘할 거라 믿는다.”
삼시 세끼와 ‘1일1팩’의 힘
고통의 시간을 이겨낸 김영수 프로는 2018년 KPGA 챌린지투어에서 상금왕의 영예를 안으며 코리안투어 출전 자격을 얻었다. 이듬해인 2019년 코리안투어에 복귀해서는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다. 상금 순위가 그해 62위에서 2020년 27위, 2021년 18위로 상승하고 페어웨이 안착률과 그린 적중률도 점점 높아졌다. 그러더니 지난해에는 시즌 중반까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의 역사를 썼다.골프선수로서 철칙처럼 지키는 생활신조가 있나.
“아무리 바쁜 일이 생겨도 골프클럽을 손에 쥐려고 한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연습한다. 그것만큼은 꼭 지킨다.”
하루 연습량은 어느 정도인가.
“골프 연습과 스트레칭 같은 체력 관리를 위한 운동을 포함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골프를 위해 시간을 쓴다.”
체력 관리를 위해 챙겨 먹는 보양식이나 건강보조식품이 있을 법한데.
“별도로 챙겨 먹는 건 없다. 식사를 제때 잘하되, 이왕이면 몸에 좋은 음식 위주로 먹으려고 한다. 삼시 세끼가 보약인 셈이다.”
가만 보니 피부가 참 곱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있나.
“골프가 햇볕을 많이 쐬는 운동이니만큼 야외에선 마스크를 꼭 착용하려 하고 자외선차단제도 잘 바르려고 한다. 마스크팩도 웬만하면 매일 하려 한다. 1일1팩이 피부에 좋다(웃음). 시중에서 유통되는 제품을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쓴다.”
롤 모델이 누군가.
“좋아하는 선수는 있지만 롤 모델을 딱히 정해 두진 않았다. 매 경기에서 만나는 선수들을 보면서 ‘정말 잘 치네’ 감탄도 하고 그런 부분을 배우려고 한다.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하거나 멋진 플레이를 하는 선수를 만나면 겸허한 마음으로 배우려고 노력한다. 나와 경쟁하는 선수뿐 아니라 다른 모든 선수에게 배울 점이 있다. 그래서 경기할 때뿐만 아니라 관람할 때도 플레이어가 공을 치는 모습을 열심히 관찰한다.”
라이벌로 여기는 선수나 경기할 때 더 긴장하게 만드는 선수가 있나.
“특정인이 있진 않다. 경기마다 같은 위치에서 경쟁하는 모든 선수가 라이벌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경쟁자로만 보는 건 아니다. 라이벌인 동시에 함께 뛰는 동지라고 생각한다.
일단 시드 연장이 목표, 언젠간 우승할 것
김영수는 올해 국내보다 해외에서 바쁜 일정을 보내게 됐다. 지난해 코리안투어 우승과 제네시스 대상을 받은 덕에 코리안투어 5년 시드뿐 아니라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제네시스인비테이셔널, PGA투어와 DP월드투어가 공동 주관하는 제네시스스코티시오픈, DP월드투어 1년 시드를 따냈다.곧 미국에 간다고.
“지난해 코리안투어 제네시스챔피언십에서 우승해 PGA투어 제네시스인비테이셔널 시드를 얻었다. 그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일주일 정도 먼저 미국에 가서 현지 적응도 하고 연습도 할 계획이다. 또 제네시스대상을 받아 DP월드투어 시드도 얻었다. DP월드투어를 최대한 많이 뛰려고 있다. 미국에서 PGA투어 제네시스인비테이셔널에 출전한 후 뉴질랜드로 가서 아시안투어를 한다. DP월드투어는 그 뒤에 이어진다.”
올해는 코리안투어에 참가하기 어렵겠다.
“그래도 일정이 안 겹칠 때는 한국에 와서 뛸 생각이다.”
지난해 좋은 성적을 내면서 팬이 많이 생겼다. 인기를 실감하나.
“예전보다 나를 알아보고, 응원해 주는 분이 많더라. 그런 분이 점점 늘고 있어 더 잘해야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든다.”
앞으로 결혼하고 싶은 이상형이 있나.
“딱히 없다. 연애 경험은 있다. ‘모태솔로’는 아니다(웃음).”
골프선수로서 올해 이루고픈 소망이 뭔가.
“지금은 매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 강하다.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이게 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 당장 목표는 DP월드투어를 1년간 뛰면서 시드를 1년 더 연장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시합을 잘해 우승도 하면 좋겠다.”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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