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이 저절로 굴러들어 온 호박인가
홍준표가 얻은 표=이준석이 꿔준 표
이념 매몰된 보수정당에 변화 준 인물
청년 가장한 정치꾼 아첨에 휘둘려서야
2022년 4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민의힘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검수완박’ 법안 강행처리 저지를 위한 당대표-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이준석 당시 대표(왼쪽)와 주호영 의원(현 원내대표)이 참석한 모습.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신동아 2월호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인터뷰 기사.
실제로 국민의힘에 대한 청년층의 지지는 2021년 4·7 재·보궐선거를 기점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국민의힘 당원 중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율도 17.2%나 된다. 더군다나 3월 8일 열리는 전당대회가 100% 당원 투표로 진행되는 만큼 당 지도부로서는 이들의 민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준석 사태 이후 국민의힘을 지지하게 된 2030도 많다”는 주 원내대표의 발언은 기본적인 사실관계부터 틀렸다. 한국갤럽이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부·여당에 대한 청년들의 여론은 ‘이준석 사태’를 거치며 급격히 나빠졌다. 지방선거가 있던 2022년 6월까지만 해도 국민의힘 주요 지지기반인 이대남(만 18~29세 남성) 중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 직무 수행을 ‘잘하고 있다’라고 답변한 사람은 60%에 달했다. ‘못하고 있다’라는 답변은 18%에 불과했다.
이 전 대표에 대한 징계가 본격화한 같은 해 여름 이후에는 ‘잘하고 있다’는 답변이 20%대 초반으로 주저앉았다. ‘못하고 있다’는 답변은 70% 가까이 치솟았다. 정당 지지도의 경우 2022년 6월까지 이대남의 48%가 국민의힘, 14%가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했다. 하지만 ‘이준석 사태’를 거치며 국민의힘 32%, 더불어민주당 19%(2022년 11월)로 격차가 줄었다. 30대 남성들의 여론은 이대남과 비교해 국민의힘에 더 부정적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적잖은 2030세대가 당원으로 가입했을 순 있다. 그렇다고 그게 위안의 근거가 돼선 곤란하다. 보유한 주식이 반토막 난 상황에서 어쩌다 10% 올랐다고 “내 주식은 떨어지기도 하는 반면 오를 때도 많다”고 하지는 않는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예외 사례를 갖고 희망을 품기보단 비상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고 대응 방법을 찾아야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 구성원들은 자당을 지지하는 2030세대가 저절로 굴러들어 온 호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준석 때문에 대선에서 질 뻔했다”던 김기현 의원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착각은 개인의 자유라지만 착각이 조직을 운영하는 판단 근거가 돼선 곤란하다.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처방으로 이어진다. 왜 지지하는지를 모르니 제대로 된 정책과 메시지가 나올 리도 없다.
일시적 연대에 불과했던 ‘세대포위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20대 대선 당시 ‘세대포위론’을 주장했다. 국민의힘 전통 지지층인 60대 이상과 새로 유입된 2030 남성들을 중심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4050세대를 포위한다는 취지였다. 표현의 적절성은 별개로 하더라도 세대포위론이라는 단어 자체가 당시 정치 구도를 잘 묘사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쪽 성별에 국한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상당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에 대한 2030세대 남성들의 지지율은 줄곧 민주당을 앞섰다. 심지어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호남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났다.2021년 4·7 재·보궐선거에서 소위 ‘이대남 현상’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두 달 뒤 국민의힘 당대표로 이준석이 선출되자 그를 지지하는 2030 남성들의 입당 행렬이 이어졌다. 2030 남성과 보수정당의 전통 지지층인 60대 이상의 정서는 달랐다. 이들은 ‘민주당 타도’라는 목표를 위해 일시적 연대를 한 셈이었는데, 그렇다 보니 늘 갈등의 시한폭탄을 안고 있었다. ‘한 지붕 두 가족’의 갈등은 그해 9월 2일, 한 여론조사(한국리서치 등 4개 기관)에서 홍준표 당시 대선 경선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수면으로 떠올랐다. 홍준표가 부상하자 “민주당 지지자들의 역선택”이라는 주장과 “MZ세대 표심”이라는 주장이 마찰을 빚었다. 청년층에서 인기를 누려본 적 없는 보수정당이 청년들의 지지를 역선택이라고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2월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청년 200여 명과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 등을 주제로 간담회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이때 홍준표가 “아무리 어려도 당의 제일 어른”이라고 이준석을 옹호하면서 그의 지지기반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홍준표가 얻은 표는 사실 이준석이 꿔준 표였던 셈이다. 이때부터 2030은 홍준표로, 6070은 윤석열로 대대적으로 결집했다. 그 반대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일례로 한 여론조사에선 윤석열 후보의 20대, 30대, 40대 지지율이 각각 3%, 9%, 8%를 기록할 정도였다. 청년층 사이에선 윤석열 후보를 두고 ‘398’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바닥을 기던 윤 당시 후보의 청년층 지지율은 2022년 1월 6일 의원총회에서 이준석 대표와 화해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반전했다. 이후 두 사람은 ‘한 줄 공약’ 등을 쏟아내며 선거판을 주도했다. 그 결과 보수정당은 남녀불문 청년층에서 역대 가장 많은 득표율을 올렸다.
李는 어떻게 2030 남성 지지 얻었나
문재인 정부 임기 초만 해도 20대 청년들은 남녀 불문 정부·여당의 가장 큰 우군이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 취임 직후 실시된 직무수행평가(한국갤럽)에서 각각 94%(20대 여성), 87%(20대 남성)가 ‘잘하고 있다’고 답변했을 정도다.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건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단일팀 논란, 조국 사태 등 각종 불공정·내로남불 이슈가 불거지면서다.이 사안들은 분명 보수정당에 유리한 이슈였다. 정작 보수정당은 지나치게 둔감했다. 풀어내는 방식도 너무 구닥다리였다. 예컨대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남북단일팀 구성을 놓고 불공정 논란이 이는 와중에 “김영철의 방남을 막아야 한다”며 통일대교로 가서 드러눕는 식이었다. 청년들은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불공정 논란에 분노했지만, 그렇다고 보수정당이 대안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이준석도 처음부터 청년들에게 인기가 많은 인물은 아니었다. ‘박근혜 키즈’로 등장한 그는 그저 하버드대 출신 젊은 엘리트였을 뿐이다. ‘더 지니어스’나 ‘소사이어티게임’처럼 청년층이 주로 보는 예능에 얼굴을 비춰 인지도가 있긴 했지만, 스스로도 청년의 대변자를 자처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2010년대 중반부터 청년층을 중심으로 젠더갈등이 격화되기 시작했다. 2018~2019년에는 원래 진보 성향을 띠던 ‘남초 커뮤니티(남성들이 주로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도 하나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서 돌아서기 시작했다. 사실 이러한 조짐은 2016년부터 나타났다. 예컨대 정의당에서는 소위 ‘메갈리아 사태’로 당 지지율이 거의 반토막 나고, 심상정 당시 대표가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거대 양당의 그 누구도 군소 정당의 내홍에 주목하지 않았다. 기성 정치인에게 젊은 층의 인터넷 문화는 별나라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준석은 자신 또한 동 세대였던 까닭에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성별 전쟁에 주목했다. 그는 그것이 가져올 파괴력을 충분히 인지했다. 혹자는 그가 성별 갈라치기를 조장했다고 비판한다. 필자는 그가 갈등을 만들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정확히는 이미 격화될 대로 격화된 갈등 구도 속에서 편들어 주는 정치인이 없던 2030 남성을 대변하면서 지지세를 모은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지금은 아득해진 택시 문제처럼, 그는 이념에 매몰된 보수정당이 놓친 민생 이슈를 발굴하고 그걸 논쟁의 중심에 세우기 위한 시도를 거듭했다. 특유의 태도나 공격적 화법 탓에 이준석이라는 인물에 대한 비호감도가 적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보수정당의 흐름에 변화를 줬던 건 부정할 수 없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서 총선 참패 직후 부정선거 논란이 대두될 당시 “부정선거는 불가능하다”며 당내 주요 인사들과 맞섰던 게 대표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20대 대선에서 보수정당의 단골 메뉴 중 하나인 북한 이슈가 등장하지 않은 점, 전남 신안군 흑산공항 추진 등 거듭 호남의 문을 두드렸던 점도 이전엔 볼 수 없던 모습이다. 그 덕분에 보수정당은 호남에서 역대 최다 득표율을 올렸다.
최근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 문제도 다르지 않다. 이준석이 전장연을 대하는 방식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낙인과 배제라는 논란은 있었지만, 이 이슈를 정치 영역에서 공론화한 건 그의 공이다. 적어도 책임감 있는 정치 세력이라면 문제를 제기한 이준석을 향해 혐오와 차별의 낙인을 찍고 휠체어 퍼포먼스를 선보이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가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 국회에서 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게 됐다.
세상 제대로 보지 못하면 바꿀 수 없어
2021년 이후 2030세대는 명실공히 캐스팅보터로 자리매김했다. 2030세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인구수도 적고 투표율도 낮은 편이다. 다만 투표 성향이 고정되지 않은 까닭에 이들의 표심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가 달라진다. 선거 승리를 위해선 2030의 여론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여론조사로 파악하는 청년 민심은 낮은 응답률로 인해 온전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대개 주변에 있는 청년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정무적 결정을 내린다. 사실 이 경우 표본 자체를 잘못 선정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공천 한번 받아보려고 권력에 충성하는 이들이 보편적 청년들의 정서를 온전히 대변할 거라고 기대하긴 어려운 이유에서다. 결국은 정치인들 스스로 국회 울타리 밖 평범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하는 수밖에 없다. 이준석처럼 인터넷 문화에 해박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최소한 자기 주변에 있는, 청년을 가장한 정치꾼들의 아첨은 걸러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정치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정치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가장 크다. 판사를 하면서 익힌 균형감으로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겠다는 생각에 정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세상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바꿀 수 있겠나. 그가 진영과 계파의 이익을 떠나 당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할 때, 청년들도 이준석이 떠나 있는 국민의힘을 다시 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동아 3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