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행·구속·고문… “상상 못 할 언론 탄압”
언론 위상 추락 원인=사회 다원화
권력 견제가 언론 使命
해답은 결국 正論直筆
대장동 사건 자성 기회 삼길
조선 500년 버틴 비결은 言官
1월 31일 김학준 인천대 이사장은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언론의 사명은 권력 견제”라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1월 31일 경기 용인시 단국대 죽전캠퍼스에서 만난 김학준 인천대 이사장은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 듯했다. 김 이사장은 1943년 1월 28일 당시 만주국 선양에서 태어났다. 광복 이후 한국으로 왔다. 6·25전쟁, 4·19혁명, 유신 시대, 광주 민주화운동 등 한국 근현대사 주요 사건을 목도했다. “그토록 많은 일을 겪은 사람으로서 시대적 요구에 맞게 말하고 행동해야 옳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게 ‘회한’의 이유다.
김 이사장은 지식인의 길을 걸어왔다. 걸출한 정치학자이자 언론인이다. 한때 정치를 하기도 했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로 일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피츠버그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엔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국회의원(12대·민정당),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 겸 대변인, 인천대 총장, 국가기록연구원장, 한국정치학회장, 세계정치학회 부회장, 단국대 이사장, 아시아기자협회(AJA) 이사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동아일보 회장 등을 역임했다.
김 이사장은 자신의 빼곡한 이력 가운데 시작을 장식한 ‘기자’에 대한 애정이 크다. 기자로 일하던 때를 “긍지와 사명감으로 권력에 맞서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뛰어난 기자였다. 그가 조선일보 기자 시절 부장이던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김학준이 쓴 기사는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출고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이사장은 인터뷰하는 동안 언론의 위상과 신뢰도가 떨어져 가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1월 16일 글로벌 홍보컨설팅사 에델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28일 온라인을 통해 28개국 3만2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인의 27%만이 ‘언론을 신뢰한다’고 답해 영국(37%), 일본(34%)에 이은 최저치로 꼴찌를 기록했다.
김 이사장은 “언론 스스로 자성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언론이 힘을 가진 까닭은 과거 언론인들의 권력에 맞선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언론의 사명은 권력 견제다. 정론직필(正論直筆·바른 주장을 펴고 사실을 그대로 전함)의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시대의 옳고 그름 論하고자
고(故) 천관우 전 한국사상사학회 회장. 김학준 이사장은 “조선이 500년을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언관이라는 글에 기자가 됐다”고 말했다. [동아DB]
“고등학교 3학년 때 4·19혁명, 대학에 입학한 지 한 달 보름 만에 5·16군사정변을 겪은 경험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 대학 시절 정치학과라서 문리대 소속이었는데, 문리대는 분위기가 다소 독특했어요. 출세, 재물 등 영리를 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고 할까요. 이런 곳에서 4년을 보내다 보니 공무원, 회사원이 되기보다는 시대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논객이 되고 싶었어요. 당시 존경받던 언론인 고(故) 천관우 선생처럼 되길 바랐습니다. 천 선생이 쓴 글이 기억에 남습니다. ‘조선이 500년을 버틴 비결은 언관(言官)·사관(史官)의 힘’이라고요. 그들이 늘 정론직필로 군주를 보필해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게 이끌었으니 이 문화가 한국에도 계승돼야 한다고 하셨죠. 그 말에 감복해서 언관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기자 생활은 어땠습니까.
“그땐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의 힘이 막강했습니다. 국가 곳곳에 지배력을 행사했고, 언론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중앙정보부가 간섭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중앙정보부원이 편집국에 들어와서 신문 대장(臺帳)을 검사할 때가 많았습니다. 동료 기자들과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분개하곤 했죠.”
지금 그랬다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1966년엔 기사 하나로 트집을 잡혀 3박 4일을 중앙정보부에 잡혀 있었습니다. 이듬해엔 아예 구속됐어요. 서대문 교도소에 40일 동안 있었습니다. 가족도, 변호사도 만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조사받을 때는 남산으로 끌려가고, 그날 조사가 끝나면 다시 교도소에 잡아두고…. 고문도 당했습니다. 나중에 주변 이야길 들어보니 제가 당한 건 고문 축에도 못 들어간다는군요. 탄압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이 가죠. 이런 일을 당하고 나니 언론인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사명감 없인 버티기 어려웠을 듯합니다.
“그렇죠. 게다가 그때는 언론사도 많지 않았습니다. 유튜브, 인터넷신문은 당연히 없었고, 또 지금이야 방송국의 영향력이 크지만 당시엔 KBS는 정부 산하기관, MBC는 정부 출연기관이라고 해서 온전한 언론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주요 일간지 6~7개가 언론 일체나 마찬가지였죠. 기자들 사이에서 ‘한국 언론을 우리가 지켜나가야 한다’ ‘언론의 기능을 우리가 수행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매우 컸습니다. 그럼에도 중앙정보부가 툭하면 트집을 잡고 연행해 대니 쉽지 않았죠. ‘임의동행(수사기관이 피의자의 동의를 얻어 피의자와 수사기관까지 동행하는 것)’을 명분으로 영장도 없이 마구 잡아가 대니…. 비난 여론이 일면 ‘본인이 동의해서 데려간 거다’라고 거짓말하고요.”
권력의 탄압이 심했던 대신 대중의 응원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하지만 국가가 누군가를 체포할 때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을 구실 삼은 게 문제였습니다. 이른바 ‘빨갱이’니까 잡혀간다고 인식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지금과는 사회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저도 결국 기자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 했지만 여권이 나오지 않았어요. 당시 편집국장이던 고 선우휘 선생이 많이 도와줬습니다. ‘이 사람 절대 빨갱이 아니다. 젊은 사람이 공부 좀 하겠다는데 왜 막느냐’고요. 그분이야 워낙 반공인사로 여겨졌으니 보증이 되지 않습니까. 덕분에 결국 여권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김학준 인천대 이사장은 “언론 역할은 권력 견제에 있다”고 강조했다. [지호영 기자]
언론 자유는 투쟁 산물
현재는 언론의 위상이 그때만 못한 것 같습니다.“사회 다원화가 원인이라고 봅니다. 큰 기업도 몇 개 없던 과거에야 언론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죠. 사회가 점점 다원화하면서 세계적 기업이 여럿 생겨나다 보니 사회적 영향력이 분산된 거죠.”
매체 다변화 영향도 있지 않겠습니까. 예컨대 수십~수백만 명이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도 언론사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영향력을 미치곤 합니다. ‘가로세로연구소’나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이라거나….
유튜브 이용자가 늘어나며 수십만~수백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를 보유한 뉴스 채널이 생기고 있다. 이들은 자체 뉴스 콘텐츠를 방송한다. [유튜브 캡처]
김학준 이사장은 “바람직한 언론의 역할은 권력 견제다. 권력이란 정치·경제·문화 권력을 모두 일컫는다. 사회에서 영향력과 지배력을 행사하는 존재를 견제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직 언론의 영향력은 크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론의 힘이 줄어들긴 했지만 권력이 언론을 통제할 수 있는 영역도 줄어들었습니다. 이는 과거 언론인들이 투쟁을 통해 얻은 산물이라고 봅니다. 엄혹했던 유신·군사독재 시절에도 언론인들은 언론 자유를 위해 싸웠어요. 저는 아직 그 기백이 언론계에 남아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권력, 예컨대 대통령 혹은 집권 세력은 여전히 언론을 경계하고 있죠.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정치인이라면 늘 자신을 반성해야 해요. 공자께서 ‘일일삼성(一日三省·하루에 세 번씩 자신의 행동을 반성함)’을 강조하셨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언론 권력은 어떻게 견제해야 합니까. 2003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국회 국정연설에서 “언론은 또 하나의 권력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언론인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합니다. 늘 자신을 돌아보며 독자의 눈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저 역시 과거 제가 쓴 기사를 보면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런 글을 썼나’ 싶을 정도로요. 마찬가지로 지금 기자들도 자신의 글을 다시 보면서 잘못한 점이 있다면 되풀이하지 않도록 늘 자성해야 합니다.”
제도를 통한 견제는 어떻습니까. 2021년 더불어민주당이 시도한 언론중재법 개정안 입법처럼요.
“입법으로는 개혁이 안 됩니다. 1964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도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서 똑같은 시도를 했어요. 결국 실패했죠. 언론 탄압임이 명확하니 국제사회의 비난이 만만치 않았거든요. 언론 개혁은 언론 내부에서 시행돼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죠. 하지만 외부로부터, 특히 어떤 법으로서 강제하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효과를 거두지도 못합니다.”
언론 中立, 선입견 버려야 가능
중립성 역시 언론의 사명 가운데 하나로 꼽히지만 언론의 중립성은 수시로 논란이 이는 문제다. 보수 매체 혹은 진보 매체로 언론사를 구분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10월 13일 국회에서 진행한 ‘언론자유·방송독립을 위한 언론인 간담회’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언론 자유의 핵심은 역시 중립성이고, 목표는 공정성이라고 생각된다”며 “모두가 언론의 자유를 위한 공정 보도 시스템을 말하지만 이상하게 공수가 바뀔 때마다 생각도 바뀌더라”고 말했다.언론의 중립성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중립을 지키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국제사회에서 중립국가로 살아남는 것이 이만저만 힘든 일이 아니듯이요. 중립이 어려운 까닭은 자신과 주변을 정확히 파악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중립성도 언론이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해야 가능합니다. 막연히 가운데에 위치하라는 게 아닙니다. 옳고 그름 사이에서 중간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죠.”
1961년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은 쿠바 카스트로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피그만 침공 작전을 시행했지만 실패했다. 당시 미국 언론은 해당 작전을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케네디 정권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도하지 않았다. [동아DB]
“그렇죠. 정향을 가질 순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해야만 합니다. 예컨대 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 등이요. 언론사가 어떤 정치 세력이 스스로와 비슷한 정향이라 해서 잘못된 점을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되죠. 존 F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이 떠올라요. 1961년 그가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을 붕괴시키겠다고 피그만 침공 작전을 벌이지 않았습니까. 당시 피그만 침공 작전 계획을 이미 알고 있던 언론사가 꽤 있었지만 국익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감췄습니다. 작전은 실패로 끝났고 케네디 정권은 국내외적 어려움에 빠집니다. 그때 케네디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차라리 당신들이 보도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으면 이 계획을 포기했을 것이고, 이런 꼴을 당하진 않았을 것 아니냐’라며 원망을 쏟아냈습니다. 언론이 정부를 봐주려다가 오히려 국가에 피해를 주게 된 거죠. 언론사가 정권과 결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중립을 지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국 정론직필입니다. 팩트에 근거한 저널리즘이 기본입니다. 사실이면 보도하고, 아니면 안 하면 됩니다. 특정 정치 세력과 그 인사에 대해 호불호를 표시할 순 있죠. 하지만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 판단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독선과 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 예컨대 한 대통령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니 그가 하는 일은 모두 지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는 겁니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언론은 언론인의 집합체다. 언론인 개인의 정향이 모여 언론의 정향을 형성한다. 정향이 드러나면 저널리즘의 객관성은 빛이 바라게 된다. 언론인의 정치참여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민경욱 전 의원, 윤창준 전 대통령 대변인, 김의겸 의원 등 언론인 출신 정치인의 정치 입문 당시 모두 논란이 일었다.
언론인의 정치인화(化)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 역시 언론인 출신 정치인으로서 말하기 민망한 문제입니다. 당시 교수로 있다가 광주 민주화운동에 얽혀 보름 정도 구속됐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정치에 입문했는데, 돌이켜 보면 참 부끄러워요. 그때 정치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 쭉 있었어야 했어요. 이러한 마음을 전제로 말하자면 언론인은 될 수 있으면 정치권으로 들어가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인으로서의 순수성을 지키는 게 더 바람직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人性
1월 27일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다수 중앙일간지 간부가 그에게서 금품을 제공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
“대장동 일당에 언론인이 끼어 있다는 게 언론인 출신으로서 참 부끄럽습니다. 대장동 사건을 살펴보면 언론인 출신 김만배 씨가 기업인, 법조인 등 사회 각계각층과 공모한 것 아니겠습니까. 재계, 법조계, 언론계 모두 부끄러운 일이죠. 그가 법원 출입을 한 바 있어 재판 거래를 했다는 말까지 나오는데, 사법부에도 큰 부담이 될 테고요. 언론계는 이번 사건을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언론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아진 듯합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객관적 보도, 사실에 근거한 저널리즘 등 기본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육계에도 오래 몸담았습니다. 언론인을 양성한다면 어떤 원칙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겠습니까.
“인성입니다. 제가 인성이 뛰어나서는 아닙니다. 팔십 평생을 되돌아보니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의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요즘 사람의 됨됨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다음으론 그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는 것이 중요하고요. 한국은 빠른 시일 내에 압축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다 보니 성취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문화가 형성돼 있어요. 물론 성취가 나쁜 건 아니지만 이와 함께 인성도 강조하는 교육이 병행돼야 합니다. 기자도 마찬가지예요. 먼저 사람이 돼야 합니다.”
김학준 이사장은 “언론사 역시 마찬가지”라며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원칙적 이야기지만 언론은 사명감과 책임감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이 사라지면 장사하는 기업이 되는 거예요. 언론사는 보통 기업과는 다르고, 달라야 합니다. 수익성만을 추구하지 말며 언론 본연의 역할이 무엇인지 명심해야 합니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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