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1만2000명 감원, 돈 안 되는 사업 정리
MS 챗GPT 성과에 위기감 느낀 듯
빅테크, 대화형 AI 개발에 총력 다해
말로 컴퓨터 조작하는 시대 초읽기
[Gettyimage, Google]
최근 구글에서 해고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잭 볼링이 틱톡 계정에서 해고 사실을 털어놓고 있다. [TikTok]
구글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잭 볼링(Zac Bowling)은 1월 20일 트위터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아직 정리 중”이라며 이같이 썼다. 그는 7년 동안 구글의 사물인터넷(IoT) OS(운영시스템)인 ‘푸시아(Fuchsia)’를 주로 개발해 왔는데 갑작스럽게 모든 기기에 접속할 수 없게 됐고, 그제야 해고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트위터에 올린 그의 해고 소식을 60만 명 이상이 읽었다. 해고 사실을 영상으로 털어놓은 소셜미디어 틱톡(TikTok) 게시물은 1만 개 넘는 ‘좋아요’를 기록했다. 사전 고지 없이 갑자기 해고하는 구글의 방식이 비인간적·비합법적이라는 댓글도 많았다. 볼링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근로자 보호를 위해 캘리포니아주 민주당 대의원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혔다.
비단 볼링만의 사례가 아니다. 구글에서 16년 넘게 엔지니어링 매니저로 일했던 저스틴 무어는 소셜미디어 링크드인(LinkedIn) 게시글을 통해 “새벽 3시에 회사 계정이 자동으로 비활성화된 것을 보고 해고 사실을 알았다. 회사와 집을 오가며 일만 하는 건 인생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며 허탈감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구글 같은 빅테크는 직원을 언제든 처분할 수 있는(disposable) 일회용품 정도로 취급한다. 일이 아니라 삶을 살라”고 덧붙였다.
출근 후 카드키 먹통에 해고 확인
웬만한 경기둔화에는 눈도 깜빡하지 않던 구글이 이처럼 강도 높은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한 배경은 무엇일까.‘디인포메이션’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실리콘밸리 전문 매체에 따르면 이번 감원 대상에는 관리자인 매니저급 직원도 다수 포함됐다. 일부 직원은 연간 5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약 12억4000만 원)의 수입을 올리는 고(高)성과 직원으로 알려졌다.
해고 발표 당일에는 해고 사실을 모른 채 출근한 직원들이 사무실 앞에서 대기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리콘밸리 마운틴뷰에 위치한 구글 본사에 근무하는 A씨는 “평소 근무 시간에 로비 출입문을 열어두는데 1월 20일에는 모든 출입문이 잠겨 있었다”며 “출근할 때 로비 밖에서 담당 매니저를 기다리는 사람도 봤다. 카드키가 작동하지 않아 들어가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같은 날 뉴욕 맨해튼의 구글 오피스 앞에서는 카드키 테스트를 하려는 구글 직원들이 줄을 늘어서는 장면이 연출됐다. 뉴욕의 암호화폐 전문 매체 ‘디크립트’의 대니얼 로버츠 편집장은 “테스트 결과 표시등이 빨간색이면 해고됐다는 뜻이고, 녹색이면 그렇지 않았다”며 오전에 벌어진 일을 전했다.
출근하기 전 공지 e메일을 확인하지 못한 직원들은 출근한 뒤 카드키를 테스트하고 나서야 해고 사실을 인지했다는 설명이다. 로버츠 편집장은 “정리해고 e메일은 당일 오전 7시에 전송됐다”며 “미처 e메일을 확인하지 못한 직원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던 상황”이라고 했다.
피차이 구글 CEO “책임지겠다”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 CEO가 대규모 해고 발표 후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 [Google]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구글 모회사)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을 통해 전 직원의 약 6%인 1만20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는 구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다.
구글 측은 해고 대상자에게 16주치 임금과 6개월간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한다고 밝혔지만, 직원들은 즉시 반발했다. 구글 노조는 이날 대규모 해고와 관련 즉각 성명을 내고 “수십억 달러 규모의 이익, 막대한 경영진 보상이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우리 일자리가 도마 위에 올라서는 안 된다”고 규탄했다. 이에 피차이 CEO는 자신의 연봉을 삭감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피차이 CEO는 “결정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채용 담당 등 핵심 업무 분야와 거리가 있는 부문은 다른 부문보다 인원 감축 규모가 더 클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엄격한 검토를 수행, 직원의 역할이 회사의 최우선순위에 부합하는지 확인했다”며 “그동안 전 세계인과 기업을 돕기 위해 열심히 일해 온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AI 분야는 구조조정 비껴가… 구글의 선택과 집중
구글이 AI 개발 방향을 밝힌 블로그 내용. [Google AI Blog]
반면 AI 연구를 전담하는 구글 브레인(Google Brain) 팀은 상대적으로 이번 구조조정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현재 구글 브레인은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기반의 새로운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인간과 비슷한 답변을 제공할 수 있는 AI를 내놓는 것이 목표다. 구글 브레인 팀은 이를 위해 제품 개발 그룹과 긴급히 협력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그간 일반 소비자(B2C) 대상 AI 퍼블릭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을 공개하는 걸 꺼려왔다. 대신 고객사를 대상으로 하는 기업 간 거래(B2B) 서비스를 주로 공개해 왔다. 구글이 갑자기 일반 소비자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인력을 움직이는 건 실리콘밸리에서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오픈AI가 공개한 ChatGPT 학습 및 작동 원리. [오픈AI]
VR 플랫폼 ‘알트스페이스’ 서비스 종료
AI 연구 및 응용 분야의 최강자로 불려온 구글로서는 이런 상황이 상당히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지난 2017년 ‘AI를 회사의 미래’로 선포한 구글은 AI 분야 기술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강력한 목적을 가지고 이른바 ‘선택과 집중’을 위해 이번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으로 풀이된다.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구글 경영진은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래리 페이지와 비공개 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CEO 역할에서 물러난 창업자를 9년 만에 회사로 불러 향후 출시할 AI 기반 제품에 관해 논의한 것이다. 구글이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말해 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특정 프로젝트, 부서 전체를 폐쇄하는 구조조정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월 20일 가상현실(VR) 플랫폼 ‘알트스페이스VR(AltspaceVR)’ 서비스를 3월 10일 종료한다고 밝혔다.
알트스페이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 2017년 인수한 소셜 VR 플랫폼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번 결정은 B2B VR 플랫폼 메시(Mesh)에 무게를 싣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비용 절감을 위해 X박스,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등 B2C 사업 분야에서 일하던 직원들을 다수 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트스페이스VR은 발표문에서 “알트스페이스VR을 처음 출시했을 때 우리의 비전은 전 세계인을 실시간으로 연결하고 교류하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었다”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메시에서 구동될 몰입형 경험을 지원하는 데 집중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단기적으로 기업 대상 서비스 제작에 집중하고, 시간이 흐른 후 일반 소비자 대상 서비스로 확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설명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10월 메타(페이스북)와의 협업을 발표하며 기업 및 업무용 몰입형 도구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밝힌 바 있다. 메타의 VR, MR(혼합현실) 기기인 메타 퀘스트를 사용하는 VR 플랫폼 ‘호라이즌’에 마이크로소프트 협업 플랫폼 팀즈를 추가하는 식이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1월 18일 발표한 성명에서 “우선순위에 기반한 조치를 취해야 할 때”라며 “비용 구조를 매출과 고객 요구 사항에 맞게 조정하고, 미래를 위한 전략적 영역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MS, 오픈AI에 12조 원 투자… 빅테크 경쟁 과열
실리콘밸리 전문가들은 효율적 기업 경영, 데이터 기반 경영을 위한 인프라로 자리 잡은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네트워크·서버 대여)와 검색엔진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경쟁하던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제너레이티브 AI 분야에서 다시 한번 주도권 싸움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양사는 구조조정으로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AI 분야 투자에 집중하는 모양새다.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가 대규모 투자를 단행, 지원하고 있는 챗GPT가 구글 검색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구글은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챗GPT 기능을 자체 검색엔진 ‘빙(Bing)’, e메일 애플리케이션 ‘아웃룩(Outlook)’ 및 문서 작성 도구 ‘워드(Word)’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품에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구글의 주 매출원 중 하나가 검색 광고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마이크로소프트의 시도는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1월 23일 오픈AI에 100억 달러(약 12조4000억 원)를 추가로 투자하고, 자사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인 애저(Azure)에 챗GPT를 통합하겠다고 밝히며 AI 전쟁에 불을 질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00억 달러라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이유는 생성 AI 고도화에 큰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픈AI가 개발한 GPT 같은 거대 언어 모델(LLM)을 학습하고 실행하려면 대규모의 GPU(그래픽처리장치), NPU(신경망처리장치), TPU(구글의 인공지능 전문 칩), 메모리 반도체 같은 하드웨어와 컴퓨팅 파워가 필요하다.
속도도 중요하다. 파라미터(매개변수) 1750억 개를 갖춘 GPT3에 이어 올해 공개될 GPT4에는 파라미터 100조 개가 사용됐을 것으로 추측되면서 초거대 AI 모델의 사이즈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 싸움에서 경쟁우위를 차지하려면 선제적인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구글도 2월 6일 AI 챗봇 ‘바드(Bard)’ 출시를 공식화했다. 지난해 5월 구글 AI 개발자가 “사람과 같은 지각 능력을 가졌다”고 주장할 정도로 강력한 언어 생성 능력을 갖춘 것으로 파악된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이와 관련해 “AI의 발전과 컴퓨팅의 다음 주요 물결이 태어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 CEO 역시 감원 결정 사실을 밝힌 회사 블로그에 “AI 분야 초기 투자 덕분에 우리 앞에 엄청난 기회가 있다고 확신한다”며 “이 기회를 완전히 포착하려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