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국민의 노후 대비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준비해왔다. 1988년부터 국가가 운영하는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제도가 실시됐고, 2005년 12월에는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생활 보장을 목적으로 민간이 운영하는 사적연금인 퇴직연금이 도입됐다.
기존 퇴직금 제도는 이직이나 중간정산을 통해 퇴직 전에 퇴직금을 사용할 수 있고, 기업이 도산하면 근로자가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기존 퇴직금 제도에 대한 세제 지원을 축소하고 퇴직보험이나 퇴직신탁의 신규 가입을 금지하면서 새로 도입된 퇴직연금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 결과 기업이나 개인이 금융회사에 맡겨 운용하는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3월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68조7000억 원에 달한다. 퇴직보험이나 퇴직신탁에 추가 납입이 금지된 2010년 말 29조1000억 원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었다.
퇴직연금 가입자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1월 말 전체 상용근로자의 50%에 가까운 472만2000명이 퇴직연금에 가입해 있다. 퇴직연금을 도입한 사업장은 전체의 13.6%인 20만7000개다. 가입자 비중에 비해 가입 사업자 비중이 낮은 것은 규모가 큰 기업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도입했기 때문이다. 종업원 500인 이상 사업장은 96.4%가 퇴직연금을 도입했지만, 10인 미만 사업장의 도입 비율은 9.7%에 불과하다.
DB형 대다수, DC형 증가세
퇴직연금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근로자들이 받는 퇴직급여가 기존 퇴직금과 같은 확정급여형(defined benefit plan·DB형)의 비중이 높다. 지난 3월 말 기준 전체 적립금에서 DB형의 비중은 72.1%에 달한다. 한편 확정기여형(defined contribution plan·DC형)이 19.1%, 개인퇴직계좌(individual re-tirement pension·IRP형)는 8.8%에 그친다.
DB형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평균임금과 근속연수에 따라 퇴직급여가 결정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고 근속연수가 긴 대기업 근로자들이 선호한다. DB형의 비중이 높은 것은 퇴직연금 도입 역사가 길지 않아 그동안 대기업 중심으로 퇴직연금이 도입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DC형은 일정한 부담금을 퇴직연금에 적립하는 것으로, 기업의 책임이 국한되고, 퇴직연금 운용성과에 따라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퇴직급여가 달라진다. DC형은 이직이 빈번하고 연봉제를 도입해 임금상승률이 높지 않은 기업에 근무하는, 상대적으로 젊은 근로자에게 유리하다. 퇴직연금 도입이 점차 중소기업으로 확산되면서 앞으로는 DC형의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12년 이후 전체 적립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DB형은 낮아지고 DC형은 높아지는 추세다. 2011년 말 75.2%를 차지하던 DB형 비중은 2013년 3월 72.1%로 3.1%p 감소한 반면, DC형은 16.2%에서 19.1%로 2.9%p 증가했다. 같은 기간 IRP형은 0.3%p 증가하는 데 그쳤다.
국제적으로 살펴봐도 DB형 퇴직연금 의 비중이 높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속한 18개국의 퇴직연금 중에서 DB형이 차지하는 평균 비중은 67.2%에 달한다. DB형은 구조가 단순하고 선진국에서는 기업이 운영을 책임지면서 종신연금으로 지급되는 경우가 많아 근로자들이 DB형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이나 호주와 같이 DC형에 유리하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일부 국가에서는 DC형의 비중이 훨씬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