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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하도급계약서 준수 공정한 하도급 입찰

하도급사 생존 위한 2대 선결과제

표준하도급계약서 준수 공정한 하도급 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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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못 본 땜질 처방”

전문건설사의 도산이나 부도가 급증하는 배경에는 이처럼 하도급계약에 포함된 ‘추가비용이 수반되는 특약’이 도사리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정부 대책에는 계약 체결 단계에서 공정성을 보장하는 근본적 처방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게 전문건설업계의 하소연이다. 정부 종합 대책은 부당한 조항이 계약 내용에 포함됐을 때 이를 무효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문건설업계로부터 ‘사후약방문식 땜질 처방’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6·14 대책 발표 이후 건설업계가 또 하나 아쉬워한 대목은 불공정 하도급 입찰에 따른 저가 수주 문제 해결방안이 빠졌다는 점이다. 종합대책은 하도급대금이 제때 지급되도록 ‘저가 낙찰공사 발주자 직불 의무화’와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제도 강화’를 제시했다. 그러나 업계는 “이 정책이 하도급대금 체불 방지, 하도급대금 보호 효과는 얻을 수 있겠지만 불공정한 하도급 낙찰에 따른 저가 수주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일한 만큼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불공정한 저가 하도급 낙찰 관행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조치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S건설 P대표는 “6·14 대책은 주로 하도급대금 지급과 관련돼 있어 원청사가 유찰과 재입찰을 반복해 초저가 수주를 유도한 뒤 하도급사에 일한 만큼 돈을 주지 않으려는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원청사가 일방적으로 하도급 단가를 깎아내리지 못하도록 하려면 하도급 입찰 시스템부터 정비해야 한다는 것.

전문건설업계는 “하도급 저가 수주 문제의 중심에는 투명하지 못한 하도급 입찰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한다. 원청사의 자의적인 기준과 판단에 따라 하도급업체가 선정되고 금액이 결정되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는 얘기다. 일례로 하도급 입찰 때 원청사가 정한 예정 하도급 공사 금액을 넘으면 고의로 유찰시키고 재입찰을 반복해 하도급 금액을 낮추는 사례가 흔하다고 한다. 다음은 한 전문건설사 대표의 말이다.



입찰 결과 즉시통보 법안 기대

“원청사가 하도급 입찰을 자꾸 유찰시키는 건 자신들이 정해놓은 예정가에 맞추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원청사가 발주처로부터 200억 원에 공사를 수주했다고 치자. 그러면 현장소장과 공무팀장 등이 현장실행계획서를 작성해 180억 원에 공사를 하겠다고 본사에 보고한다. 그런데 본사에서는 170억 원으로 예정가격을 좀 더 낮춰 통보한다. 하도급사 처지에서는 공사를 제대로 마치려면 185억 원 정도가 든다며 이 금액을 내걸고 입찰에 참가한다. 하지만 원청사는 본사가 통보한 170억 원 아래로 낙찰가액이 내려갈 때까지 하도급 입찰을 계속 유찰시켜 재입찰을 유도한다.”

L전문건설 임원도 “하도급 입찰 때 낙찰가액을 써내면 원청사 임원으로부터 ‘우리가 책정한 금액보다 높으니 (입찰금액을) 내려라’는 전화가 걸려온다”며 “결국 2~3회 유찰시켜 예정가액 밑으로 내려가야 비로소 낙찰이 이뤄진다”고 전했다.

L건설의 사례는 건설현장에서 원청사가 재입찰제를 악용해 어떻게 하도급 단가를 후려치는지(깎아내리는지) 잘 보여준다. 2011년 3월 L건설이 실시한 최초 하도급 입찰에서는 35억7000만 원에 최저가 낙찰이 이뤄졌다. 그러나 L건설은 뚜렷한 이유 없이 다음 날 재입찰을 실시했고, 낙찰가액은 33억2000만 원으로 2억5000만 원 낮아졌다. 다시 그 다음 날 세 번째 입찰을 실시해 4000만 원을 더 낮췄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L건설은 이틀 뒤 네 번째 입찰에 부쳐 최종 하도급 낙찰금액은 31억9000만 원으로 결정됐다. 원청사들은 하도급 금액을 떨어뜨리기 위해 L건설처럼 정당한 사유 없이 재입찰을 수시로 실시한다는 것.

전문건설협회 조사 결과 하도급 전자입찰 때 64.9%가 2회 이상 투찰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청사들이 재입찰을 반복하는 이유는 ‘원도급 실행가보다 높아서’라는 응답이 65.2%로 가장 많았다. ‘하도급사의 저가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는 응답도 27.8%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원청사들은 자신들이 정한 실행가보다 낮은 금액에 맞추기 위해 최소 1차례 이상 하도급 입찰을 유찰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그 결과 하도급 금액은 원도급 금액의 80%에도 못 미치는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공사는 원도급 금액의 61% 수준에서 하도급 금액이 결정됐고, 공공공사는 52%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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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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