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호

손병두 서강대 총장 & 유화선 파주시장

삼성에서 키운 리더십으로 대학, 지자체에 새 바람

  • 권주리애 전기작가, 크리에이티브 이브 대표 evejurie@hanmail.net

    입력2007-07-04 17: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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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병두 서강대 총장과 유화선 파주시장은 1974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에서 조사팀 과장과 신입사원으로 처음 만났다. 같은 직장에서 일한 건 7년밖에 안 되지만 두 사람은 30년 넘게 인연을 이어왔다. 대학에 새 바람을 일으킨 손병두 총장과 파주시를 탈바꿈시키고 있는 유화선 시장은 각기 대학과 지자체에 비즈니스 마인드를 도입했다는 점이 꼭 닮았다.
    손병두 서강대 총장 & 유화선 파주시장

    손병두 총장(오른쪽)과 유화선 시장.

    로버트 풀검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라는 책이 있다. 유화선(柳和善·59) 파주시장은 “내가 인생에서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직장 상사로 만난 손병두 총장에게서 다 배웠다”고 말한다.

    아직도 손병두(孫炳斗·66) 총장이 어렵기만 하다는 유 시장은 1974년, 당시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과장이던 손병두 총장을 처음 만난다. 청년 유화선은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학훈장교 출신을 우선적으로 뽑는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지원해 합격했다. 당시 삼성그룹 회장비서실엔 전국의 우수한 두뇌들이 모여 있었다. 서울대 법대와 상대 출신이 주를 이루는 회장비서실에서 사회학과를 나온 키 작은 신입사원 유화선은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러던 그에게 임무가 맡겨졌다. 비서실 내에서 새로 홍보업무를 담당하게 된 손병두 과장이 직원간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기획한 ‘사내 직원간 커뮤니케이션’ 프로젝트가 그에게 떨어진 것.

    “프로젝트를 기획했는데 일을 맡길 만한 적임자가 없었어요. 대부분 법대, 상대 출신이니 설문지를 만들고 여론조사를 해본 사람이 있어야죠. 그런데 새로 입사한 똘똘하게 생긴 유화선이 마침 사회학과를 나왔더군요. 그래서 초짜 신입사원에게 큰일을 맡기게 됐죠. 사실 큰 기대를 하진 않았어요.”

    손병두 총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엄하고 지독한 양반’

    “과장님이 저를 부르시고는 대학 다닐 때 여론조사 방법론을 배웠냐고 물으시기에 리포트도 작성해봤다고 대답했지요. 그랬더니 열심히 해보라면서 프로젝트를 던져주셨어요. 제가 봐도 아주 중요한 일이었는데….”

    그는 사내에서 ‘지독한 양반’이라고 소문 나 있던 손 과장을 대하는 게 어려웠다. 어떻게 하면 마음에 들게 일을 해 낼까 고심하며 설문지를 작성하고, 직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취재해 보고서를 만들었다. 하루 한 시간만 자면서 만들어낸 보고서지만, 손 과장에게 제출해놓고는 노심초사했다.

    “보고서를 받아 보고는 깜짝 놀랐어요. 거의 완벽하게 처리했더군요. 여관에서 작업하며 혼자 끙끙대더니 결국 ‘작품’을 만들어 왔어요. 유화선을 다시 봤죠. 유화선은 그렇게 첫 테스트에 합격, 저와 많은 일을 함께 했어요.”

    상사가 유능한 부하 직원을 만나는 것도 복이고, 부하 직원이 유능한 상사를 만나 일을 배우면서 성장하는 것 또한 큰 복이다.

    “그때는 기회를 잘 잡아서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해야겠다 하는 생각은 없었어요. 오로지 어떻게 하면 과장님한테 야단 덜 맞고, 잘했다고 칭찬받을까 고민하면서 열심히 했을 뿐이죠. 그래서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과장님이 일에 있어서 얼마나 엄격하고 지독하셨나 몰라요.”

    당시 삼성비서실 분위기는 딱딱하고 엄숙했고, 그 정점에 손병두 과장이 있었다.

    그 시절 야근을 밥 먹듯 했는데, 그와 손 총장이 함께 저녁을 먹을 때면 메뉴는 어김없이 김치찌개였다. 두 사람은 밥을 한 알도 안 남기고 싹싹 긁어 먹으며 학창시절 도시락밥이 김치국물로 얼룩졌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손 총장은 그에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고학했던 과거도 들려줬다.

    유 시장과 손 총장은 직장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쳤을 뿐 아니라 집도 가까웠다. 둘 다 신림동의 18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삼성 사우촌에 살았기 때문이다. 유 시장은 그 시절 부인과 손을 꼭 잡고 산책하는 손 총장을 부러워했고,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한다.

    ‘의리 있는 사람’

    손병두 서강대 총장 & 유화선 파주시장

    유화선 시장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손병두 총장을 알아온 터라 지금도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손 총장을 찾는다.

    그와 손 총장은 7년 남짓 한솥밥을 먹었다. 유 시장은 비서실 과장을 지내고 1980년 말 삼성전자로 옮겨 전략기획부장까지 올랐다. 그해 손 총장은 제일제당 이사로 승진한다. 그런데 탄탄대로를 걷던 손 총장이 2년 뒤 돌연 삼성을 떠난다. 손 총장은 부인에게 빵집을 차려주고 혼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나이 마흔둘에 청바지 입고서 혼자 유학을 떠나는 총장님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남들은 잘 나가던 총장님의 인생이 끝장났다고 말했지만, 더 큰 세계로 모험하듯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오리라는 확신이 들었죠.”

    당시 상황을 회고하는 손 총장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사람은 의리가 중요해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요즘 세태와 달리 유 시장은 의리 있는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발걸음도 하지 않은 우리 빵가게를 자주 들여다봤다고 아내가 말했어요. 사과 상자를 들고 오기도 하고, 선물보따리를 들고 나타나기도 했대요.”

    손 총장은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한국생산성본부 상무이사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엔 유 시장이 일을 저질렀다. 삼성전자 부장 자리를 차버리고 ‘한국경제신문’ 중견 기자 모집에 덜컥 응시한 것이다.

    사실 언론인의 꿈은 오래전부터 그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빚이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서울대 신문대학원에 입학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공부를 계속하려고 휴학했는데, 제대 후 곧장 삼성에 입사하면서 대학원 공부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는 오랜 꿈을 이룰 마지막 기회라고 여겼지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들은 그가 높은 연봉의 안정된 직장을 버리는 것을 극구 말렸다. 그는 결국 손 총장을 찾아갔다.

    “유 시장에게 왜 신문사에 가려 하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여태껏 사기업에서 일했으니 이젠 공공부문인 언론계에서 한번 일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해보라고 용기를 주었죠.”

    유 시장은 손 총장의 명쾌한 격려에 힘을 얻어 12년간 몸담았던 삼성과 이별하고, ‘나이 많은 신입기자’로 언론사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이들의 인연은 손 총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몸담으면서 공적인 관계로 이어진다.

    “더 잘하려면 유학 가라”

    유 시장은 마흔 가까운 나이에 신문사에 입사해 10년 이상 터울이 지는 어린 기자들을 ‘선배’라고 부르며 어렵게 자리를 잡아갔다. 기사 작성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토요일과 일요일엔 좋은 기사를 골라 원고지에 베껴 쓰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다. 히토쓰바시대에서 2년간 초빙연구원으로 지낼 기회를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일본 알기 열풍이 불었는데, 그가 이런 주제와 관련된 기사를 쓴 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는 또 손 총장을 찾아갔다. 손 총장은 자신의 2년여 유학생활 얘기를 들려주며 “더 잘하려면 가라”고 조언했다.

    손 총장의 격려에 힘입어 유 시장은 1990년 일본 유학을 떠났다. 2년간 공부 열심히 하고 책도 내고 번역도 하면서 학자로서의 생활에 충실했다. 그리고 귀국해 ‘한국경제신문’ 경제부장이 됐다. 김영삼 정권이던 당시 관료사회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한국의 경제관료’라는 기획 시리즈를 기획해 경제계와 언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8년 편집국장 자리에 오른 그는 ‘알기 쉽게, 읽기 쉽게’를 신문제작 방침으로 내건다. 가로쓰기 편집을 시작하고, 국내 신문으로서는 처음으로 ‘Money’ 섹션과 ‘Cyber ’섹션을 발행했다.

    그가 한국경제신문에서 투자한 와우(WOW)TV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긴 것은 2000년 8월이다. 당시 와우TV는 누적된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경영자가 적자를 내는 것은 죄를 짓는 것과 같다”고 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원칙을 염두에 두고, 그는 우선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신용보증기금에 대출을 의뢰했다. 보증기금측은 사장인 그에게 직접 보증을 설 것을 요구했다. 그는 결국 자신을 담보로 내걸고 10억원을 대출받았다. 와우TV는 ‘합리경영, 투명경영, 윤리경영’을 모토로 노력한 끝에 6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섰고, 그는 그 후로도 ‘일등만이 살아남는 일류경영’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가 와우TV 경영에 한창 재미를 느끼고 있을 때인 2004년, 지인으로부터 고향인 파주시장 보궐선거에 나가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그는 이번에도 곧장 손 총장을 찾았다.

    “시장(市長) 하자보수는 내가”

    “제가 고향 가서 봉사하라고 말했죠. 같은 선출직이라도 국회의원과 달리 자신의 뜻대로 뭔가를 이룰 수 있고, 또 파주는 LG필립스도 들어서고, 앞으로 남북관계에서 큰 일을 할 수 있으니 장점이 많은 도시라고 말해줬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하고선 연락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전화를 해보니 부인이 결사반대한다는 거예요. 남편이 정치 한다고 나서는데 좋아할 아내가 없죠. 그래서 부인은 내가 책임지고 설득하겠다고 했어요.”

    결국 손 총장이 유 시장 부인을 설득했고, 선거사무실 개소식 땐 축사도 해줬다. 손 총장은 축사 도중 “여기 있는 유화선은 내가 보증한다. 만일 시장이 된 뒤에 하자가 발생하면 내가 하자보수를 책임지겠다”고 말해 유 시장에 대한 믿음을 과시했다.

    “삼성, 한국경제신문, 그리고 와우TV에서 최고가 됐으니 승부 근성은 증명된 거죠. 유 시장이 정치도 잘하리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파주시가 2005년 전국혁신보고대회에서 우수사례로 채택됐고,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후 받아본 가장 참신한 보고였다고 극찬을 했어요. 제가 선견지명이 좀 있지요.”

    유 시장은 자신을 신뢰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손 총장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33년이라는 긴 세월 중 제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총장님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무엇보다 제가 총장님을 존경하는 이유는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해보라고 권유하시기 때문이죠. 행여나 결과가 좋지 않아 자신에게 원망이 돌아오면 어쩌나 싶어 그런 과감한 조언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잖아요.”

    그가 제4, 5대 파주시장으로 재임한 지난 32개월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그는 시민을 고객으로 모시는 ‘시민주의행정’을 시정 철학으로 내세워, ‘민원처리 50% 단축’과 ‘깨끗한 파주 만들기’로 파주시를 민간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 결과 행정혁신대상(2005), 도시미관대통령상(2005), 도시종합평가대통령상(2006)을 수상했고, 전국 공무원들 사이에 파주 배우기 열풍을 일으켰다.

    신림동 사우촌에서 살던 시절, 손 총장은 신년이면 비서실 부하 직원들을 불러 떡국을 대접했다. 그러나 그날말고는 아무리 가까이 살아도 집에 발걸음을 못하게 했다. 인사 청탁을 거절하기 위해서였는데, 유 시장은 이를 보고 배워 시청 공무원들이 자신의 집에 찾아오는 것을 금했다. 유 시장은 인사 청탁을 해오는 사람에게, 과거 손 총장이 기업에서 그랬던 것처럼 도리어 불이익을 준다.

    모험을 즐기는 인생철학

    늘 조언을 받기만 하던 그가 2005년엔 손 총장을 떠밀었다. 손 총장이 서강대 총장 하마평에 오르내릴 즈음, 총장직에 도전하라고 부추긴 것. 손 총장이 서강대 총장으로 취임해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그는 “역시 손병두!”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 시장과 손 총장은 둘 다 농촌의 가난한 집안 출신이고, 지독하리만큼 최선을 다해 살자는 것이 인생철학이다. 공공부문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점도 같고, 모험을 마다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를 즐기는 것도 꼭 닮았다. 유 시장은 손 총장에 대해 ‘끊임없이 배우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보통사람은 무엇인가 배우면 처음에는 급커브를 그리며 발전을 이루지만 어느 정도 정상에 오르면 안주하는데, 손 총장은 다시 새로운 것을 향해 배우기를 마다하지 않고 행운을 얻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는 유 시장의 삶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서로 잘되기를 응원하는 이들의 인연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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