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호

월급 88만 원 받는 26세 사장 김치로 세계 정복

매출 15억 ‘짐치독’ 노광철 대표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2-04-20 16: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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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급 88만 원 받는 26세 사장 김치로 세계 정복
    벤처(venture). 사전상으로는 ‘사업상의 모험’을 뜻하지만, 요즘은 IT를 기반으로 한 소규모 사업을 의미하는 말로 통용되는 듯하다. 풀무원, 대상 등 대기업과 홍진경, 장윤정 등 연예인 브랜드가 장악한 김치 산업에 겁도 없이 뛰어든 ‘짐치독’ 노광철(26) 대표는 “김치 산업은 아직 세계적으로 불모지이지만 한국 전통음식의 부가가치를 높여 이익을 창출하는 가장 벤처다운 벤처”라고 말했다.

    2009년 설립된 짐치독은 지난해 매출 15억 원을 달성했다. 대기업 김치보다 가격은 20~30% 비싸지만 강남 주부들 사이에서는 큰 인기다. 국내 광고 한 번 없이 입소문으로만 퍼진 결과다. 짐치독 매출의 51%는 미국, 일본, 대만 등 해외 수출에서 나온다.

    매출 15억 원, 51%는 해외 수출

    노 대표는 군 복무 중이던 2008년 기생충 알이 발견된 중국산 김치가 국산 김치로 둔갑돼 판매됐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우리 전통음식인 김치를 누구나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첫 자본금은 그가 아르바이트로 틈틈이 번 700만 원이었다. 서울에서는 1평짜리 사무실 얻기도 힘든 돈이었기에, 그는 연고도 없는 광주로 내려가 김치 만들기에 몰두했다. 처음 담근 김치는 스스로도 못 먹을 정도로 맛이 없었다. 배추 수만 포기를 버리며 계속 시도했다. 재료를 분석하고 한식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지방마다 다니면서 맛있는 김치 비결을 연구했다. ‘조선왕조실록’ ‘동의보감’ 등에서 김치라는 단어가 나오는 대목을 꼼꼼히 읽었다. 모든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밤에는 대리운전, 과외 등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나 중소기업청, 한국벤처협회, 신용보증기금에서 제공하는 ‘벤처육성자금’은 한 번도 못 받았다. 신청할 때마다 “김치 산업은 이미 성장했고 더는 발전 가능성이 없다. 김치 산업은 벤처 산업이 아니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는 “정부조차‘벤처’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큰돈을 벌기 위해 큰 위험을 무릅쓰는 게 벤처인데, 요즘은 마치 IT 기반 사업의 동의어처럼 그 의미가 편협하게 정의됐습니다. 그러다보면 IT 기반 벤처에만 정보가 모이고 돈이 쌓여 결국 다른 벤처는 사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벤처육성자금을 못 받은 게 성장 기반이 됐다. 밑바닥부터 치열하게 시작했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짐치독은 레드오션 김치 산업에 정공법으로 승부를 걸었다. 바로 맛과 재료다. “모든 사람의 입맛은 16세 이전에 형성된다”는 믿음으로,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는 김치 맛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대량 생산하는 대기업 김치는 재료 비용을 줄이기 위해 화학조미료를 많이 쓰지만 짐치독은 조미료를 일절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직원 모두가 ‘내 아이가 먹을 김치’라는 생각으로 음식을 만든다. 그래서 인지도가 전혀 없는데도 까다로운 강남 주부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06학번인 노 대표의 월급은 88만 원이다. 그는 “돈을 벌려고 사업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월급을 많이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10억 원대 매출을 올리는 회사 대표지만 월세 30만 원대의 반지하방에서 자취를 한다. 건국대 기계공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학자금은 대출로 마련한다. 88만 원 이외 수당은 모두 김치를 담그는 데 쓰고 이 김치를 고아원, 양로원 등에 기부한다. 2011년 1년간 그의 이름으로 기부한 금액만 3억 원 가까이 된다. 그 역시 처음 사업이 잘됐을 때는 외제차를 사고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급 빌라에 월 200만 원씩 월세를 내며 살았다.

    “당시에는 내 또래들과 비교하면서 ‘나는 벌써 이만큼 왔으니 조금 즐겨도 돼’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하지만 나를 남이 아닌 어제의 나와 비교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안주하는 삶을 벗어나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다행입니다.”

    개인적으로뿐 아니라 짐치독 회사 이름으로도 상당한 기부를 한다. 월 1회 이상 결식아동에게 무상 급식을 제공하고 어린이재단 ‘초록우산’과 MOU(양해각서)를 체결해 도움이 필요한 곳에 김치를 무료로 기부한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큰 사회 환원은 직원 행복이다. 짐치독의 직원은 70명. 평균 연령은 42세다. 그의 직원 복지 목표는 “삼성이 하면 우리도 한다”다. 올해 초 삼성그룹이 성과급을 지급했을 때 짐치독 역시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줬다. 작은 회사지만 직원 결혼기념일과 직원의 부인, 자녀 생일은 꼭 챙긴다. 노 대표는 “한 직원이 매일 아침 머리를 덜 말리고 오기에 드라이기를 선물한 적도 있다”며 웃었다.

    “직원 70명의 생계가 흔들리면 그 부양가족까지 200여 명의 삶이 어려워지는 겁니다. 중소기업 직원은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중소기업도 삼성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고아원에 몇 백만 원 갖다주는 것보다 우리 회사를 직원이 행복한 일터로 만드는 게 진정한 사회 기여라고 생각합니다.”

    “나만의 자서전을 위해…”

    유난히 직원 복지를 중시하는 것은 그의 유년시절 경험 때문이다. 공기업 임직원이던 노 대표의 아버지는 보증 때문에 집을 잃었다. 다섯 식구가 단칸방을 전전했고 그는 공부에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그는 “유년시절 우리 아버지는 내가 가장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족을 책임진 영웅이었다”며 “우리 직원들도 가족을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그 역할을 회사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레드 오션’이라며 고개를 저었던 김치 산업. 하지만 노 대표는 김치 산업이야말로 21세기 한류 열풍을 이끌 중요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내수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 김치 담그는 과정이 복잡해 집에서 담가 먹는 사람이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내수시장만으로는 발전이 없다. 그는 “김치의 부가가치를 높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가가치 높은 김치를 개발하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도전한다. 지난해에는 유통과 보관이 편한 ‘건조 김치’를 개발했고 요즘은 소금기 있고 매운 음식을 못 먹는 환자를 위한 ‘환자용 김치’를 개발하고 있다. 갓김치 특유의 톡 쏘는 맛을 살리기 위해 김치에 홍어를 넣기도 했다.

    짐치독은 설립 초기부터 해외시장을 적극 공략했다. 노 대표는 “현재 대기업 중 해외시장을 선점한 업체가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해외를 공략한 짐치독으로서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전망했다. 각국에서 판매되는 김치는 각각 특징이 있다. 일본에서 판매하는 김치는 맵거나 짜지 않고 달다. 미국으로 수출하는 김치에는 고춧가루 대신 파프리카를 넣는다. 샤브샤브를 많이 먹는 대만에서는 국물내기용 김치가 많이 팔린다. 피자를 즐겨 먹는 유럽인을 공략하기 위해 피클과 같은 백김치나 피자 토핑용 김치를 개발 중이다. 노 대표는 “현재 세계 김치시장을 본토인 한국이 아닌 일본이 장악한 이유는 일본 김치가 외국인 입맛에 맞아서”라고 분석했다.

    “김치를 수출할 때 무조건 전통만 고수해선 안 됩니다. 현지인 입맛에 맞춘 김치를 개발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전통은 고정적인 게 아니라 변형되는 겁니다.”

    사업을 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는 요즘 학교로 돌아와 수업을 듣는다. 공부만 하던 친구들은 그를 부러워한다. 그는 “학생은 정말 뭐든 할 수 있는 신분임을 깨닫는다”고 말했다.

    월급 88만 원 받는 26세 사장 김치로 세계 정복
    “요즘 반값 등록금이 문제인데, 등록금 500만 원을 250만 원으로 깎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잖아요. 그 대신 500만 원을 학교에 내고 그만큼의 가치를 얻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친구들을 보면 건대 영문과 민병철 교수님 영어학 수업은 안 들으면서 민병철어학원 다니면서 토익 공부하고, 법대 주경복 교수님 수업은 청강 한 번 안 하면서 그분 트위터만 보며 존경한다고 말해요. 대학 전공수업으로 18학점을 들으면서 남는 시간에 18학점을 청강하고, 학생자치회에 가입해 정치도 배우고 응원단, 동아리 등을 통해 취미 활동을 하면 500만 원 등록금이 아깝지 않을 것 같아요. 취업 준비하는 친구들 보면 자기를 공산품화해요. 그러다간 이 나라에 단 한 권의 자서전밖에 안 나올 것 같아요. 큰 열매를 맺기 위해 많은 위험을 무릅쓰는 ‘벤처 정신’은 20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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