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호

“이건희 생각법으로 산 덕에 오늘의 내가 있다” [+영상]

[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㊷] 한용외 前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이 말하는 ‘미래와 심리를 꿰뚫어 보는 눈’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3-12-0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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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 세상을 1987년에 예언하다

    • 앞으로는 ‘공기’가 중요해진다

    • 핵심은 본질이다, 본질을 파고들어라

    • 아픈 것도 서러운데 침대 차별 마라

    [+영상] 반도체 전쟁 중인 지금은 '이건희' 다시 읽을 때



    서울 송파구 잠실의 사무실에서 만난 한용외 전 삼성문화재단 사장(현 인클로버재단 이사장)의 하루는 분주해 보였다.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와 행사 참석 요청으로 시간을 쪼개 살고 있는 듯했다.

    은퇴 후 다문화가정을 지원하는 인클로버재단을 만든 그는 ‘다문화가정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할아버지’로 통한다. 한 달에 두 번씩 지방을 다니며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어준 것이 14년째. 지금까지 6500여 가구가 넘는다. 박사 논문도 다문화가정 관련 주제로 썼다. 다문화가정 청소년 교육, 장학 및 연구사업도 한다. 2000년에는 대통령표창, 2006년에는 국민포장을 받았다.

    한 이사장은 1974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제일합섬을 시작으로 그룹 비서실과 삼성전자 생활가전부문 사장, 삼성문화재단·삼성사회봉사단·삼성복지재단 사장을 지낸, 뼛속까지 ‘삼성맨’이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경리 감사 업무에 주력하다 이후 삼성문화재단, 호암재단, 언론재단을 총괄했으니 대기업의 재단 운영에 관한 한 국내에서 가장 많은 경험을 가진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장애인체육진흥회 수석부회장도 지냈다.



    그는 삼성에서 평생 한 일을 통해 복지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것이 은퇴 후 삶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말한다. ‘이건희 생각법’으로 산 것이 오늘의 자신을 있게 했다면서 말이다.

    한용외 인클로버재단 이사장은 ‘이건희 생각법’으로 산 것이 자신의 오늘을 있게 했다고 말한다. [박해윤 기자]

    한용외 인클로버재단 이사장은 ‘이건희 생각법’으로 산 것이 자신의 오늘을 있게 했다고 말한다. [박해윤 기자]

    디지털 세상을 예언하다

    그와 마주 앉았다.

    이건희 회장을 처음 만난 것이 언제인가요.

    “1980년에 비서실로 발령받아 재무팀, 감사팀, 운영팀에서 일하다 1987년 1월에 삼성전자 수원공장 관리담당으로 옮깁니다. 그해 말 호암 창업회장께서 돌아가시고 이건희 회장님이 취임하신 직후 첫 번째 사업장 방문으로 온 곳이 수원이었습니다.

    호암께서 살아 계실 때에는 부회장 자격으로 비서실 회의에 참석해 늘 호암 옆자리에 배석하셨을 때 뵈었습니다. 하지만 말씀이 전혀 없으셨고 개인적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앉아 계신 그 자체만으로 강한 오라(aura)라고 할까, 존재감이 있으셨지요. 그러다 수원공장에서 만나 육성으로 지시 사항을 들었습니다.”

    무슨 말을 했나요.

    “‘앞으로 세상이 ‘디지털’로 갈 것이니 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전제품도 디지털 아니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저는 대학교 다닐 때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서 그 말씀의 뜻을 어렴풋하게나마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디지털’이란 단어를 이야기한 사람이 없었어요.

    그 단어는 미국 실리콘밸리나 인텔 같은 기업에서나 나올 수 있는 얘기였지 우리나라에는 전혀 개념이 없던 시절이죠. 저는 ‘회장님이 기술적으로 깊이 알고 앞을 내다보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속으로 놀랐습니다. 그날 회장님 말씀 이후 삼성전자 내에 ‘디지털 연구팀’이 만들어졌습니다.

    가전제품을 설계하는 설계실도 둘러보셨는데 ‘제도판을 다 치우라’고 하셨어요. 지금은 상상도 못 하겠지만 그때는 제도판 위에 연필과 자를 놓고 설계 도면을 그리던 시절 아닙니까. ‘이제부터는 모든 걸 컴퓨터로 하라’며 없애라고 하신 거죠. 부랴부랴 직원들에게 캐드(CAD), 캠(CAM) 교육하고 장비 도입하고 그랬죠. 현장에서는 처음부터 익숙해질 수가 없죠. 한쪽 구석에 제도판을 놓고 일하다 대표이사한테 들켜서 혼이 난 일도 있었습니다.”

    한 이사장은 ‘이건희 생각법’의 두 가지 키워드로 ‘미래를 보는 눈’과 ‘심리를 꿰뚫어 보는 눈’이라고 했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눈

    “사람을 관리하는 능력은 여러 가지가 있죠. 지식일 수도 있고, 미래를 보는 안목일 수도 있고, 상대방 심리를 꿰뚫어 보는 능력도 있고요. 그중에서도 회장님은 특히 미래를 보는 눈과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는 눈이 뛰어나셨던 것 같습니다. 미래를 이야기할 때 그냥 말로만 ‘10년, 20년 후에 뭘 먹고살 것인지 준비하라’는 막연한 지시가 아니라 진짜 10년, 20년 후에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당신 스스로 엄청나게 연구하고 공부하셨습니다. 미국과 일본 지사에서 보내오는 비디오테이프들을 보느라 밤에도 안 주무시는 날이 많았고, 그것도 한 번만 보는 게 아니라 수십 번씩 보는 거 같았어요.

    특히 일본에서 온 각종 다큐멘터리 영상물, 비디오테이프, 해외 기술자료를 보면서 ‘10년 후, 20년 후 서울, 한국 더 나아가 세계는 정치·경제·사회·기술 면에서 어떻게 변할까? 10년 후 삼성은 어떻게 돼 있을까?’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고민하고 상상하셨습니다.”

    그 예측 중에 ‘디지털’도 있었던 거죠.

    “맞습니다. 앞으로 세상은 기술이 더욱 지배할 것이고 사람들은 더 편리한 것을 원하며 욕구도 바뀔 것이다, 10년 후에는 디지털 세상이 될 것이고 시대 흐름에 따라 전자제품도 디지털화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신 거죠. 이런 예측은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삼성이 결국 반도체라는 업종을 선택하고 집중해서 지금의 엄청난 성취를 이룬 것이 그 증거이고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산업의 판이 바뀔 것이라는 예측을 무려 36년 전에 하셨으니 대단하다는 말조차 부족하죠. 어떻든 회장님은 미래를 보는 눈이 보통 사람과는 달랐고, 이게 그냥 혼자 머릿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엄청난 공부에서 비롯됐다는 걸 많이 경험했습니다.”

    이 회장이 미래를 내다보는 선지자적 통찰을 가졌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증언이 있다.

    배종렬 전 제일기획 사장도 “1993년에 휴대폰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회장이 ‘잘되냐’ 물으시더니 ‘앞으로는 휴대폰을 전 세계 사람들이 제각각 하나씩 손에 쥐고 장남감처럼 갖고 노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하셨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처럼 이 회장과 가까이서 일했던 삼성의 퇴임 임원들을 만날 때면 늘 생각의 축이 ‘미래’에 있었다는 것이 공통된 전언인데 한 이사장 말에서는 그것이 엄청난 몰두와 공부에 있었다는 것이어서 다시금 새삼스럽게 들렸다.

    앞으로는 ‘공기’가 중요해진다

    2001년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만든 공기청정기를 한용외 이사장이 보여주고 있다. [허문명 기자]

    2001년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만든 공기청정기를 한용외 이사장이 보여주고 있다. [허문명 기자]

    한 이사장은 이 회장의 미래를 보는 안목이 담긴 전자제품 사례 중 하나로 ‘공기청정기’를 소개했다.

    “제가 생활가전 담당 사장을 할 때 이야기니까 2001년쯤 됐을 거예요. 어느 날 직접 전화를 하셔서 ‘공기청정기를 만들어보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건강’ 문제가 될 것이다. 건강에 제일 중요한 게 뭔가? 공기다. 그렇다고 모두 시골 가서 살 수는 없으니 도시 생활을 하면서도 공기를 맑게 해주는 게 필요한데 바로 ‘공기청정기’다.

    지금이야 공기청정기가 필수 가전제품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공기를 실내에서 깨끗하게 할 수 있는 전자제품을 상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죠. 저희는 곧 제품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마침내 ‘야심 차게’ 만든 샘플 제품을 이 회장 집으로 보냈다.

    “그게 바로 이겁니다.”

    한 이사장은 말하다 말고 앉아 있던 소파 옆에 원목으로 마감된 사각 형태의 전자 기계 하나를 가리켰다. 소형 냉장고 정도의 크기였다. 전원 버튼을 누르니 바람개비 모양의 디스플레이가 켜졌고 환기구를 통해 바람이 나왔다. ‘앤티크 공기청정기’인 셈이다.

    시제품을 본 이 회장 반응이 어땠나요.

    “꾸중만 들었습니다. 저희들은 당시만 해도 실내 공기를 깨끗하게 하는 제품을 살 정도의 소비자라면 생활의 여유가 있을 테니 고급지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봤어요. 가구 개념으로 생각한 거죠. 그래서 바깥 면을 고급 원목으로 마감하고 사람 가까이에 있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소파나 침대 옆에 놓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전화기도 얹어놓고 스탠드도 놓을 수 있게 하고요. 그런데 회장님 첫 반응은 ‘촌스럽다’는 거예요. 기능이 아니라 디자인을 먼저 지적하셔서 당황스러웠죠.”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요.

    “저희한테 지시하기 전부터 디자인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등을 생각하고 계셨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아파트나 주택에 사는 도시인들의 생활공간이 좁다는 것을 먼저 염두에 두신 듯 자리를 많이 차지하면 안 된다는 거였죠.

    회장님은 방구석 코너에 둘 수 있도록 길이는 길게, 폭은 좁게 만들어서 스페이스를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모던한 스타일을 생각하셨던 거예요. 요즘에 에어컨이나 공기청정기가 다 그런 식이잖아요. 그걸 20여 년 전에 이미 생각하셨죠. 10년, 20년 후에는 건강이 지대한 관심사가 될 것이고 그래서 깨끗한 공기가 중요해질 것이라는 생각도 그대로 맞아떨어졌죠.”

    한 이사장은 “회장님은 ‘생각하는 사람’ ‘질문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생각을 해도 아주 깊게 하는 분이었죠. 저희들에게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그것은 질문을 통해 여러 잡생각을 거두절미하고 본질로 바로 들어가라는 가르침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계속 “왜” “왜” 하는 회장님 질문을 처음 받을 때는 당혹스러워서 쩔쩔매지만, 나중에 곱씹어 생각하면 ‘아 이런 말씀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옵니다. 그리고 지시대로 일을 하다 보면 공기청정기 사례처럼 생각의 폭과 깊이에 감탄하는 경험이 많았습니다.”

    한편 배종렬 전 사장은 이런 이 회장의 본질에 대한 천착이 어릴 때부터 몸에 밴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회장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긴데, 초등학교 때부터 라디오는 물론 새로 나온 전자제품이 있으면 다 뜯어보고 심지어 손목시계도 분해해서 뜯어봤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원리가 어떻게 돼 있는 건지, 제품의 본질은 뭔지, 그만한 가격을 주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이런 걸 생각했다는 거죠.”

    이건희 회장은 어릴 적 라디오는 물론 손목시계까지 분해해 볼 정도로 기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동아DB]

    이건희 회장은 어릴 적 라디오는 물론 손목시계까지 분해해 볼 정도로 기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동아DB]

    20년간 호암 회의 배석하며 쌓인 내공

    다시 한 이사장에게 눈길을 돌려 물었다.

    ‘이건희 생각법’의 또 다른 키워드인 ‘심리학적 눈’이란 건 무슨 의미인가요.

    “상대방 마음을 꿰뚫어 보는 거죠. 예를 들어 누구와 얘기를 하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면서 내 얘기를 듣고 있구나, 무슨 생각으로 저런 대답을 하는구나를 아는 것 같았어요.”

    생각나는 에피소드라도 있다면.

    “한번은 임원 회의를 하는데 갑자기 한 명을 지목하면서 ‘A전무! 밖에 나가서 정신 차리고 들어와’ 하시는 거예요. 모두 온 신경을 집중해 회장 말씀을 듣는 중이어서 우리가 보기에는 A전무가 졸거나 딴청을 피우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런 말씀을 하셔서 놀랐죠. 나중에 회의가 끝나고 A전무가 우리에게 말하길 ‘집안에 일이 있어서 집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딴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아셨지?’ 하는 거예요.

    회장님은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듣고 있는 것 같아도 표정이나 눈동자만 봐도 당신이 하는 말에 집중하는지 아닌지 살피신 거죠. 열심히 당신 이야기를 하면서도 참석자들 의중을 꿰뚫고 있다면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웃음).

    이러니 감히 누가 앞에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혹여 변명이나 거짓말을 하면 ‘당신, 지금 이러이러한 일 때문에 뭔가를 감추려고 하는 거지?’ 하실 때도 있었어요.

    그럴 때는 상대방 마음에 들어앉아 계신 것 같았어요. 무수히 많은 사람과 대화하고 그들을 관찰하면서 그 사람이 말하는 것과 실제 마음을 계속 대비시키고, 나중에 그 사람이 반성하는 것이 있으면 반성하는 내용까지 포함해서 그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으니까요.

    밑에서부터 올라가면서 일을 배우신 것도 아니고 현장을 직접 경험하신 것도 아닌데 현장에 있는 사람보다 현장을 더 잘 알고 계신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그런 상상력이 결국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 일로 이어졌다고 한다.

    “결국 비즈니스의 알파요 오메가는 소비자 심리를 파악하는 거잖아요. 회장님은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항상 생각하셨어요. TV도 보고, 연속극도 보고, 다큐멘터리도 보면서 ‘아, 물건을 살 때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구나. 물건 보는 눈도 남자와 여자가 이렇게 다르구나. 물건을 살 때 남자가 주도권이 있을까? 여자가 더 있을까?’ 이런 식으로 늘 궁리하고 공부하셨어요.”

    이번에는 다시 배 전 사장 말이다.

    “회장님은 보고를 받을 때에도 보고서만 보시는 게 아니라 왜 이런 보고를 할까, 뭘 생각하는 걸까, 이런 걸 읽으신다고 하셨어요. 마치 큰 홀 2층에서 1층 무대를 내려다보는 느낌이랄까. 저는 이 역시 오랜 단련과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봐요. 거의 20년 동안 호암 창업회장님과 홍진기 회장님이 주재하시는 회의에 들어가 한마디도 안 하고 배석하셨잖아요. 회장님은 제게 ‘내가 많은 걸 봐왔다’고 직접 말한 적이 있어요. 거의 20년 동안 말씀 한마디도 하지 않고 회의에 참석한 사장들의 보고를 들으셨으니 보고하는 사람의 말투, 표정 이런 것을 다 느끼지 않았겠어요. 그런 점에서 누가 보고하면 왜 이런 보고를 하는지에 대해 대략 짐작이 간다고 할 수 있겠죠.”

    배 전 사장은 이어 호암 창업회장도 그랬지만 이 회장에게 보고할 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종의 불문율이 하나 있었는데 ‘변명’과 ‘거짓말’이었다고 한다.

    “변명도 싫어하셨지만 거짓말은 정말 용납되지 않았어요. 사소한 실수에 대해서도 엄격하셨는데 ‘비서가 찻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