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호

‘음식 셔틀’은 껌…학교폭력 잔혹사 24시

더 교묘해진 교내 폭력 실태 밀착취재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4-10-3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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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S 계정 팔고, 중고 물품 거래 강요해 돈 갈취

    • 가해 사실 알리면 ‘사실 적시 명예훼손’ 맞고소

    •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피해 급증, 대책마련 시급

    [Gettyimage]

    [Gettyimage]

    서울 강남구의 한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A양은 올해 3개월간 같은 반 B양과 C양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던 끝에 학교에 신고했다. B양과 C양이 A양이 사는 집 주소로 배달 음식을 자꾸 주문하는 식으로 ‘음식배달 셔틀’을 자행한 것. B양과 C양은 A양의 휴대전화를 강제로 가져다가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면서 대면결제를 요청하고 A양에게 값을 치르게 했다. A양은 “용돈이 부족하니 음식을 그만 주문하라”고 매번 사정했지만, 두 사람은 “친구 사이에 밥도 못 사주냐”며 같은 짓을 반복했다.

    이는 명백히 학교폭력에 해당한다. A양이 학교폭력으로 신고하자 B양, C양과 그 부모들은 사과는커녕 곧바로 변호사를 선임해 A양에 대해 학교폭력이라며 맞신고했다. “A양이 B양과 C양 사이에서 이간질하며 따돌림을 주도했다”는 주장이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가 열렸지만 “배달 음식 대리 결제와 학교폭력 맞신고 둘 다 입증이 어렵다”면서 아무런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정신적 충격을 받은 A양은 전학을 결심하고 학교를 떠났다.

    맞고소 불사하며 책임 떠넘기는 가해자

    이 사례는 여러 면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학교폭력 가해자가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수법으로 피해자를 교묘하게 괴롭힌다는 점,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가해자 측이 사과 대신 적반하장으로 맞고소를 불사한다는 점에서다.

    최근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한 전국 초·중·고교생 비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교육부는 17개 시·도교육청이 올해 4월 15일부터 5월 14일까지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재학생 398만 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2024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전수조사)’와 2023년 9월 18일부터 10월 17일까지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 재학생 가운데 표본 4%(19만 명)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3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표본조사)’ 결과를 9월 25일 발표했다.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1년에 두 차례 시행되며 1차는 전수조사, 2차는 표본조사로 각각 이뤄진다.

    2024년 1차 전수조사 응답자의 2.1%(6만8000명)는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답했다. 4년 전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이 0.9%(2만7000명)에 그쳤을 때보다 1.2%포인트(4만1000명) 급증했다. 학교급별 피해 응답률은 초등학교 3.9%, 중학교 1.3%, 고등학교 0.4%로 조사됐다. 전년도 대비 각각 0.1%포인트, 0.4%포인트, 0.1%포인트 증가했다. 피해 응답률과 응답 인원 모두 처음 조사를 시작한 2013년 2.2%(9만4000명) 이후 11년 새 최고점을 찍었다.

    학교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학생이 늘어나는 추세는 교육부에 접수된 학교폭력 신고 건수와 학폭위 심의 건수 추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4만4444건이던 신고 건수는 2023년 6만1445건으로 38%나 증가했다. 학폭위 심의 건수 역시 같은 기간 1만5653건에서 2만3579건으로 상승했다.

    솜방망이 처분이 폭력 습성만 키워

    푸른나무재단 직원들이 7월 24일 서울 서초구 푸른나무재단에서 열린 전국 학교폭력 및 사이버폭력 실태 조사 발표 기자회견에서 학교폭력을 멈출 것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푸른나무재단 직원들이 7월 24일 서울 서초구 푸른나무재단에서 열린 전국 학교폭력 및 사이버폭력 실태 조사 발표 기자회견에서 학교폭력을 멈출 것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더 큰 문제는 학교폭력의 유형이 날로 교묘해지고 흉포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학교폭력 피해 유형은 언어폭력이 39.4%로 가장 높았다. 이 밖에 신체 폭력과 집단따돌림, 사이버폭력 비율이 각각 15.5%, 15.5%, 7.4%를 기록했다. 특히 집단따돌림과 사이버폭력은 학교급이 높아질수록, 즉 중·고교로 올라갈수록 응답률이 높게 나타났다. 반면 과잉 접근 행위(스토킹), 신체 폭력은 학교급이 높아질수록 응답률이 낮게 나타났다. 성폭력 증가세도 두드러졌다. 성폭력은 전체 피해 유형의 5.9%를 차지, 전년(5.2%) 대비 0.7%포인트 증가했다. 8가지 피해 유형 가운데 비중이 다섯 번째로 높았다.

    일부 학교폭력 전문가들은 학교폭력 범죄가 갈수록 흉포해지는 요인으로 솜방망이 학교폭력 징계처분을 꼽는다. 현행 학교폭력 징계처분은 총 9단계로 나뉜다. 1호(피해 학생에 대한 서면 사과), 2호(신고자와 피해자에게 접촉금지 및 보복 금지), 3호(교내 봉사), 4호(사회봉사), 5호(전문가를 통한 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 6호(출석정지), 7호(학급교체), 8호(전학), 9호(퇴학) 등이다.

    초·중등교육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라 학교폭력 가해자의 가해 사실은 초·중·고교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다. 학교폭력 가해 및 처분 기록을 보존하는 최장기간은 ‘졸업 후 4년’이다. 학폭위에서 출석정지(6호), 학급교체(7호), 전학(8호) 처분을 받은 경우가 중대 학교폭력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출석정지, 학급교체 처분은 졸업 전 교내 심의위원회를 통해 기록 삭제를 요청할 수 있지만 반드시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2026학년도부터는 대학 입시에도 학교폭력 관련 기록이 의무적으로 반영돼 학교폭력 가해자는 입시에서 불이익을 입을 수 있다.

    서울시내 경찰서 소속의 한 학교폭력전담경찰관은 요즘 학교폭력 유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학교폭력을 저지른 가해자는 ‘어차피 피해자가 학교폭력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으니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대놓고 말한다. 그 이후로는 학교폭력 학습효과가 생겨 교내 학폭위가 열려도 겁먹지 않고 피해자 측이 선임한 변호사를 만나도 위축되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가 되레 학교폭력 피해자라며 친구들에게 떠벌리고 다닌다. 학교 분위기를 주도하는 가해자의 행동에 일부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가해자의 가해 사실이 인정된 학폭위 통지서 또는 자신이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사실이 기재된 문건을 학급 카카오톡 채팅방에 올린다. 그러면 가해자 측이 ‘사실 적시 명예훼손’을 운운하며 ‘맞고소’를 일삼아 진흙탕 전쟁으로 비화한다.”

    후배 개인정보로 SNS 계정 만들어 팔아

    이 경찰관은 “어린 나이에 상대를 괴롭히는 ‘맛’을 본 가해자는 학교폭력 예방 대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날로 교묘해지는 학교폭력에 대한 처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폭력 습성만 키우는 꼴”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요즘 학교폭력의 새로운 유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3월 말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앞에서 중학생 D군은 같은 학교 육상부 선배 E군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빼앗겼다. E군은 SNS 계정을 팔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D군의 휴대전화를 강제로 가져가 구글플러스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캐물었다. 그러곤 D군 명의로 새로운 SNS 계정을 만든 뒤 업자에게 팔아 돈을 챙겼다. D군은 며칠 뒤 가입하지도 않은 트위치, 트위터 앱에서 계정이 만들어졌다는 알림을 받았다.

    신종 학교폭력은 범죄에 연루되기도 한다. 가해 학생은 피해 학생을 무리에 끼워주겠다며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인스타그램 계정을 빼앗아 업자에게 개당 10만 원 정도 받고 팔아버린다. 이렇게 넘겨진 개인정보는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만든 대포폰(다른 사람 명의로 가입하는 휴대전화)에 악용된다.

    최근 들어 중고 거래 플랫폼을 활용한 학교폭력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서울 강남구의 한 중학교에 재학 중인 F군은 경계선 지능장애를 앓고 있는데, 올해 학기 초부터 같은 반 남학생들로부터 상습적으로 학교폭력을 당했다. 당시 F군 어머니가 담임교사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F군이 경계선 지능장애 판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했는데, 교무실에 있던 같은 반 남학생 G군이 이 사실을 우연히 엿듣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G군을 비롯한 남학생들은 이를 빌미로 F군에게 고가의 샤프나 신발, 바람막이 재킷을 중고 물품 거래 앱에 강제로 올리도록 요구했다. F군은 “내 물건을 팔지 말라”고 애원했지만 남학생들은 오히려 “반 친구들에게 네가 경계선 지능장애라는 사실을 알릴 것”이라고 협박하며 중고 거래가 성사되면 그 돈을 빼앗았다고 한다.

    피해자 있지만 가해 입증 어려운 딥페이크 범죄

    9월 24일 서울 서초구 푸른나무재단에서 열린 학교폭력 실태조사 기자회견에서 학교폭력 피해자 어머니가 발언하고 있다. [뉴스1]

    9월 24일 서울 서초구 푸른나무재단에서 열린 학교폭력 실태조사 기자회견에서 학교폭력 피해자 어머니가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사건 발생 한참 뒤, F군의 부모는 학교에 가기 싫다는 아들의 말에 뒤늦게 해당 사실을 인지했다. 학교에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피해를 입증할 수 없어 결국 유야무야돼 버렸다. 이후 가해 남학생들은 F군에게 계속 중고 거래 앱에 빼앗고 싶은 물건을 올리게 한 다음 거래대금은 주지 않고 물건을 빼앗는 식으로 괴롭힘을 이어갔다. F군의 부모가 “이것은 명백한 갈취”라고 주장하자 가해 학생들은 “중고 거래 앱을 활용한 합법적 거래이고 F군이 마음을 바꿔 우리에게 무료로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종 학교폭력 유형에는 딥페이크(기존 사진이나 동영상을 다른 사진이나 동영상에 겹쳐서 실제처럼 만들어내는 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기술)를 활용한 괴롭힘도 있다. 같은 학교 여학생들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캡처한 뒤 야한 사진이나 야한 동영상 속 이미지에 겹쳐 남학생들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올려 관전하는 식이다. 서울 송파구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언제 누가 처음 딥페이크 이미지를 제작했는지 파악하기 힘들어 사실상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9월 30일 발표한 ‘학교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피해 현황 4차 조사결과’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9월 27일까지 교내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피해자는 총 833명(학생 799명, 교원 31명, 직원 3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누적 피해 신고는 초등학교 16건, 중학교 209건, 고등학교 279건 등 총 504건이다. 접수 건수 중 417건은 수사 의뢰했고, 218건은 해당 영상물 삭제 지원을 연계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문정복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17개 시·도교육청에서 받은 딥페이크 관련 학폭위 처분 현황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4년 8월 말까지 딥페이크 관련으로 내려진 학교폭력 징계 처분 총 629건 중 단 2건(고교생)만 퇴학 처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을 꼬드겨 불법 게임이나 불법 도박에 빠지게 한 경우도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일진회 소속 G군은 올해 초 SNS에 올라온 바카라(카드를 이용한 도박) 홍보 게시물을 접했다. 게시물에 적힌 접속 링크를 동급생 H군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내 가입하게 했다. G군은 도박 소개비 명목으로 수수료를 받아야 한다며 H군이 도박으로 딴 금액의 50%를 가져가 밥을 사 먹거나 옷을 구매하는 데 썼다. H군은 G군의 강요로 도박을 시작했지만 돈을 딸 때 느낀 쾌감에 중독돼 도박에 빠졌다. 이후 G군은 더 많은 소개비 수수료를 받아내는 한편, H군의 도박 자금이 부족하면 돈을 빌려주며 지속적으로 돈을 상납하게끔 유도했다.

    이렇듯 교묘하고 잔혹해지는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근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휴대전화 앱을 이용한 괴롭힘의 특성상 장소와 시간 상관없이 24시간 이뤄져 피해 학생이 그로 인한 고통에서 헤어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라며 “학교폭력 처분 강화와 함께 교권 강화, 청소년 학교폭력 예방교육, 제도정비 등 국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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