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인성의 작품 속 계산성당 감나무
선비의 고고한 정신 품은 달성공원 회화나무
청라언덕에 심긴 원조 ‘대구사과’의 3세목
조선 영조 탄생 설화 깃든 파계사 느티나무
고려 건국 밑바탕 된 신숭겸 장군 유적지 팽나무와 배롱나무
심지대사 창건 설화 간직한 동화사 오동나무
김굉필 선비 정신 살아 숨 쉬는 도동서원 은행나무
퇴계 이황 강학 정신 살아 숨 쉬는 고산서당 느티나무

‘영조임금 나무’라 불리는 대구 파계사의 느티나무.
“사람은 백 년, 나무는 천 년, 바위는 만 년을 산다”는 얘기가 있다. 천 년, 때로는 더 오랜 시간을 우리와 함께하며 역사의 현장을 묵묵히 바라보고 슬플 때는 위로를, 좌절할 때는 용기를 주기도 했다. 나무를 ‘역사의 산증인’이라며 귀하게 대접한 이유 중 하나다.
대구에 심긴 나무들 가운데 ‘역사의 산증인’ 구실을 하는 나무가 제법 있다. 지역에 자생하면서 지역민의 정서와 애환을 품고 여전히 동고동락하고 있다. 나무가 품은 오랜 시간을 따라가는 것은 우리 역사를 찬찬히 되짚어보는 타임머신을 타는 일과 같다. 감나무, 사과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에 깃든 대구의 긴 역사를 톺아본다.
중구
화가 이인성의 작품 속 감나무 - 계산성당

계산성당.
서양화가였던 이인성은 다양한 소재와 색채를 활용, 새로운 양식과 기법을 도입해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 우리나라 근대 화단의 핵심 인물이다. 1950년 취중에 시비가 붙었던 경찰이 잘못 쏜 총에 맞아 요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시에서는 대구를 빛낸 이인성 화가의 공적을 기리고, 치열했던 예술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인성 미술상’을 2000년 제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다.

‘이인성 나무’로 불리는 감나무.
선비의 고고한 정신 품은 회화나무 - 달성공원

조선 전기 문신 서침의 선비 정신을 기리기 위해 심었다고 전해지는 ‘서침 나무’.
이뿐 아니다. 회화나무는 예로부터 악귀를 물리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궁궐 마당이나 출입구 부근에 많이 심은 이유다. 집 안에 심으면 행복이 찾아온다는 믿음도 전해져 회화나무 사랑이 유별났다. 꽃은 배롱나무처럼 일제히 피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시차를 두고 피어 오랜 시간 꽃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달성공원 회화나무는 ‘서침 나무’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 전기 문신이던 ‘서침’의 선비 정신을 기리기 위해 회화나무를 심고 ‘서침 나무’라 칭했다는 이야기로부터 유래한다. 당시 달성 서씨가 거주하던 달성 지역은 군사적 요충지였다. 서침이 자신의 거주지인 달성을 나라에 헌납하자 나라에서는 포상하려 했다. 그러나 선비인 서침은 포상 대신 고을 사람들에게서 거둬들이는 환곡 이자를 줄여달라고 건의해 허락받았다. 은덕을 입은 이들이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구암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서침 나무는 2003년 대구시 보호수로 지정됐다.
‘사과의 고장 대구’의 첫 사과나무 - 청라언덕

대구 사과 3세목 세 그루.

대구 사과나무 2세목 열매.
1899년 계성학교 설립자인 선교사 아담스와 동산의료원을 설립한 존슨 박사가 미국에서 3개 품종의 사과나무 72그루를 들여와 사택 뜰과 인근 동산에 심은 데서 ‘대구 사과’가 유래했다고 한다. 두 선교사는 교인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사과나무를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두 선교사가 들여온 나무 중 남아 있는 것은 없다. 다행히 이 사과나무 씨앗에서 발아한 ‘2세목’이 잘 자라나 대구 사과나무의 효시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대구가 사과의 본고장이 된 것은 선교사들이 사과나무를 들여와 청라언덕에 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2018년 고사한 사과나무가 바로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온 서양사과나무의 자식이라 할 수 있는 ‘2세목’이다. 2000년 ‘대구시 보호수 1호’로 지정해 생육환경을 개선하는 등 관리에 나섰지만 결국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했다. 다행히 2007년 2세 나무를 접붙여 3세 나무를 대구 수목원에서 육성했다. 이후 3세목은 사과나무의 전통과 명맥을 잇기 위해 2012년 청라언덕으로 옮겨 심어져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다.
동구
조선 영조 탄생 설화 깃든 느티나무 - 파계사

파계사 진동루.

‘영조임금 나무’라 불리는 느티나무.
파계사는 조선 영조의 탄생 설화가 깃들어 있어 더 유명하다. 아들이 없던 숙종은 대궐 속으로 승려가 들어오는 꿈을 꾼 후 신하에게 숭례문 밖을 살피게 하니 정말 승려가 있었다. 팔공산 파계사에 주석(駐錫)하던 승려 현응이었다. 숙종은 현응 스님에게 왕자의 잉태를 부탁했다. 현응 스님은 100일 기도를 올렸다. 그래서 태어난 왕이 바로 영조였다. 이후 양반들도 파계사는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고 한다.
파계사 경내에는 ‘영조임금 나무’라 불리는 250년 된 느티나무가 늠름한 모습으로 서 있다. 영조가 심은 것은 아니지만, 후대에 영조와 현응 스님의 인연을 생각해서 붙여졌다. 영조는 정조와 함께 조선시대 중흥을 이끈 임금이었다. 파계사에는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영조대왕 도포’도 보관돼 있다.
고려 건국과 관련된 팽나무와 배롱나무 - 신숭겸 장군 유적지

‘태조 왕건 나무’라 불리는 팽나무.

‘신숭겸 장군 나무’라 불리는 배롱나무.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이바지한 인물이 평산 신씨 시조인 신숭겸(?∼927)이다. 궁예가 세운 나라 태봉의 장수였던 신숭겸은 복지겸, 홍유 등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했다. 신숭겸은 고려 태조 10년(927) 후백제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자 왕건과 함께 출전했다. 왕건이 팔공산 전투에서 후백제군에 포위돼 위기에 빠지자 신숭겸 장군 등이 죽음을 무릅쓰고 왕건을 지켜줘 목숨을 건졌다. 왕건은 신숭겸의 거룩한 죽음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지묘사를 세워 명복을 빌게 했다. 고려 멸망과 함께 지묘사는 폐사하고 후에 건립된 표충사와 순절단 등이 장군의 혼을 위로하고 있다.
대구시 기념물로 지정된 신숭겸 장군 유적에는 팽나무와 배롱나무가 있다. 대구시 보호수로 지정된 두 나무 모두 수령이 400년 정도 된 것으로 알려졌다. 팽나무는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을 기리기 위해 흔히 ‘태조 왕건 나무’라고 한다. 배롱나무는 왕건을 대신해 죽은 신숭겸 장군을 애도하는 뜻을 품고 있다. 배롱나무의 붉은 꽃은 신숭겸 장군의 우국충절을 상징한다.
동화사 창건 설화를 간직한 오동나무 - 동화사

‘심지대사 나무’라 불리는 오동나무꽃.
창건 설화에서 알 수 있듯 동화사 곳곳에 오동나무가 있고 그 모양새가 아름답다. 넓은 동화사 경내 칠성각 앞마당에 유난히 눈에 띄는 큰 오동나무가 있다. 이른바 ‘심지대사 나무’다. 수령 200년 정도의 이 나무는 심지대사 당시 나무는 아니지만 가장 크고 오래됐다. 파계사 등을 창건해 팔공산을 불국토로 만들고자 한 심지대사를 기리기 위해 이렇게 이름 지었다.
달성군
김굉필의 선비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은행나무 - 도동서원

‘김굉필 나무’라 불리는 은행나무.
도동서원은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568년 창건됐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다. 2019년엔 ‘한국의 서원’이란 명칭으로 다른 8곳의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이곳을 400여 년간 지켜온 은행나무가 있다. 달성군 출신 시인 신표균의 시 ‘도동서원 은행나무’로 널리 알려져 가을철만 되면 은행나무를 보러오는 관광객들로 서원이 북적인다. 이 은행나무를 통해 도학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힘쓰다 유배 후 사사(賜死)된 김굉필의 안타까운 생애와 겸허한 선비로서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된다.
수성구
선비의 강학 정신이 살아 있는 느티나무 - 고산서당

‘이황 나무’(오른쪽)와 ‘정경세 나무’.
느티나무는 우리나라에서 ‘회화나무’와 함께 대표적인 ‘선비나무’로 꼽힌다. 회화나무는 우리나라에 자생하지 않아 구하기 힘들었지만, 느티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지다. 회화나무보다 생장 속도가 빠른 데다 수명도 길다. 조선시대 서원에서 느티나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유다.
오랜 세월 고산서당을 지켜온 느티나무에는 사연이 있다. 이황 나무는 이황이 고산서당에 편액(扁額·현판)을 ‘고산(孤山)’으로, 문액(門額·문의 글씨)을 ‘구도(求道)’로 지어준 일을 기념해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진다.
‘정경세 나무’는 정경세가 대구 부사로 있을 때 고산서당에서 퇴계 선생의 뒤를 이어 강학했던 것을 기념해 붙여진 이름이다. 긴 세월 동안 고산서당을 지켜온 두 느티나무는 아직도 지역민과 함께 옛 성현의 학문 탐구 정신과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참고문헌
● 대구의 보호수, 대구시, 2014년 12월, ㈜아이컴
● 우리곁의 노거수 대구경북 노거수를 찾아서, 이지용, 2011년 6월, ㈜아이컴
●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 강판권, 2010년 2월, ㈜글항아리
● 대구 인물 기행, 이정웅, 2014년 11월, 학이사
● 대구역사문화대전
●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