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호

홍상수·김민희의 혼외자 그리고 아내의 선택

[알쓸잡법-알아두면 쓸 데 있는 잡스러운 법]

  • 이지훈 변호사

    입력2025-04-06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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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륜은 부부간 신뢰 산산조각 내는 행위

    • 위자료 고작 2000만~3000만 원, 현실화 시급

    • 혼외자에 혼생자와 똑같이 상속 받을 권리 보장

    민법상 부부는 동거 의무가 있기 때문에 아내는 집 나간 남편을 상대로 동거 심판청구를 할 수 있다. 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권한이 없지만 혼외자는 혼생자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뉴시스

    민법상 부부는 동거 의무가 있기 때문에 아내는 집 나간 남편을 상대로 동거 심판청구를 할 수 있다. 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권한이 없지만 혼외자는 혼생자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뉴시스

    2017년부터 연인 관계를 이어온 영화감독 홍상수와 배우 김민희의 불륜이 올해 초 김민희의 임신 사실이 알려져 다시 한번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다양한 사건을 일상으로 접하는 이혼 전문 변호사에게 불륜으로 혼외자를 출산하는 것이 더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나 자신에게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타의에 의해 언론에 오르내려야 하는 홍상수 감독의 법률상 배우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리고 법은 그녀를 어떻게 보호해 줄 수 있을까. 결국 내밀한 가정사라도 분쟁이 생긴다면 우리는 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이 결혼을 유지하게 해주는 힘이 사랑이라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법이 훨씬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다. 법률혼은 엄연히 남녀 결혼 당사자 간 계약이다. 남녀가 혼인신고를 하는 순간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민법 친족편의 규율을 받으며 결혼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혼인 서약처럼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해로하면 좋겠지만 현실의 부부관계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가득 차 있다. 그 속에서 불륜은 수많은 부부 갈등 중 가장 빈번하고 가장 파급력이 큰 갈등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는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고, 우리는 마땅함을 척도로 나아갈 뿐이다. 불륜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마땅한지 따져보기 위해서는 먼저 불륜의 폐해부터 살펴봐야 한다.

    유책배우자는 이혼 청구 못 해

    법원은 혼인 생활의 본질을 애정과 신뢰로 설명한다. 즉 애정과 신뢰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을 연결해 같은 방향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게 결속해 주는 고리인 것이다. 참고로 만일 애정과 신뢰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할까. 단연코 애정이다. 결혼 생활을 오래 한 부부를 보면 별다른 애정 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이들이 가정을 꾸려나가는 데는 큰 지장이 없지만 신뢰가 없다면 그 가정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혈족이 아닌 인척에 불과한 부부에게 신뢰는 그만큼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불륜이란 부부간의 중요한 연결점인 신뢰를 산산조각 내는 행위다. 일찍이 지인(知人·사람의 됨됨이를 잘 알아봄)을 강조한 공자는 사람이면서 신뢰가 없다면 지인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신뢰는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이자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요소다. 불륜이 이 정도로 부부관계를 무너뜨리는 배신행위라는 점은 알겠는데,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정리하는 것도 녹록지 않다.

    민법은 이혼에 대해 기본적으로 유책주의를 채택해 법률혼 자체를 보호하고 있다. 그 때문에 혼인을 파탄에 이르게 한 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 극히 예외적으로 배우자가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거나, 유책배우자가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뤄진 경우 등에만 유책배우자의 이혼이 ‘윤허’된다. 부부관계가 무너졌음에도 법이 결혼 파탄의 책임이 있는 사람의 이혼청구권을 박탈한 이유는 축출 이혼을 막는 한편 혼인의 부양적 요소를 고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쨌건 민법상 부부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한 유책배우자는 상대 배우자가 원할 때까지 이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편이 바람을 폈다고 가정할 경우 유일하게 이혼을 선택할 수 있는 아내는 바로 그 권한을 행사할까. 아내는 이혼으로 관계를 정리하고 싶어도 당장 경제적 이유, 사회적 시선, 자녀의 정서적 안정 등이 우려돼 이혼을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이혼하면서 받는 고작 2000만~3000만 원의 위자료만으로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구축할 수 없다. 이 경우 이혼은 사회적 계층의 강등을 의미할 뿐이다.

    특히 피해를 본 배우자가 여성이면 더욱 그렇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남편의 불륜으로 고통받는 아내들이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이혼에 이르게 될까 봐 남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심지어 상간녀 소송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관계 개선을 위해 전전긍긍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다.
    유책 배우자가 상간자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진심으로 용서라도 빈다면 눈을 질끈 감고 살아볼 명분이라도 생길 텐데, 어떤 부류의 인간들은 자기가 불륜한 것을 상대방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이혼을 안 하고 살기로 했으면 더는 불륜 얘기를 꺼내지 말라”며 적반하장으로 나온다. 아내는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하고 가슴에 큰 돌덩이가 얹어진 채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낸다. 또 다른 부류의 인간은 아예 집을 나가 상간녀와 살림을 차린다.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

    민법상 부부는 동거 의무가 있기 때문에 아내는 집 나간 남편을 상대로 동거 심판청구를 할 수 있다. 법원은 아내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가출한 남편에게 아내와 동거하라고 판결을 내리겠지만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금전채무는 그 이행을 강제할 수 있지만 사람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가출한 남편에게 아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또다시 위자료를 청구하는 것뿐이다.

    그러다가 가출한 남편이 이번에는 상간녀와 혼외자를 낳는다. 아내 입장에서는 천인공노할 짓이지만 민법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막아놨을 뿐 혼외자와 혼생자를 차별하지 않고 있다. 생부가 인지만 한다면 혼외자 역시 남편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이름이 올라가고 혼생자와 동등한 상속권을 갖는다. 조강지처인 아내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누구나 다 그러고 산다’는 체념의 법칙을 위안 삼아 혼인 관계를 지속하는 것에 절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민법이 보장하는 법률상 배우자로서의 상속권이 그것.

    훗날 남편이 죽는 그날은 이 모든 굴욕과 멸시를 보상받는 날이다. 하지만 남편이 재산을 탕진했거나 여기저기 재산을 빼돌린 경우 혹은 화병으로 아내가 먼저 죽는다면 이 역시 ‘도로 아미타불’이 될 뿐이다. 혹여 ‘나이가 들면 남편이 기적처럼 모든 잘못을 회개하고 개과천선해 부부가 함께 안락한 노후를 보내게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기적이란 말 그대로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다. 결국 부부관계의 근간을 흔드는 불륜이 발생했을 때 민법은 그다지 큰 무기가 되지 못한다. 이혼할 생각이 없으면 그저 참고 살 것을 일방에게 강요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아마도 위자료의 액수 때문이리라. 유책이란 사실은 재산분할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고 오로지 위자료의 자료로만 평가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위자료가 터무니없이 소액이다. 필자가 맡은 사건 의뢰인 가운데 남편이 직장 동료 여성과 모텔에 1회 간 것을 입증한 아내가 있었다. 그녀는 결혼 4년 차로 3살짜리 아이 때문에 남편과 이혼을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당시 재판부는 부부가 이혼에 이르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상간녀에게 고작 700만 원의 위자료를 물게 했다. 이 상황에서 경제력이 없는 배우자는 상대 배우자가 혼인 생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불륜을 저질렀어도 이혼을 선뜻 선택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 결혼 생활이 억지로 유지되지만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나날이 펼쳐진다. 결혼 생활이 더는 행복한 삶이 아닌, 신이 내린 십자가 내지는 극악무도한 형벌과 같아진다.

    결국 상대 배우자가 경제적 고민 없이 이혼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더는 결혼을 벌을 주는 제도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불륜에 따른 위자료 금액의 현실화가 시급하다. 지난해 8월 우리 법원은 축출 이혼의 전형을 보여준 모 재벌 회장 사례에서 피해자에게 위자료 20억 원을 지급하라는 고무적이고 전향적인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불륜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의 크기가 부자의 것과 빈자의 것이 다르지 않다면, 향후 불륜으로 인한 위자료 금액도 현실적으로 조정돼야 할 것이다. 끝으로 탈무드의 명언인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를 명심하자. 인생의 의미는 나의 성장에 있는 것이지 이혼 안 하는 것에 있지 않다.

    이지훈
    ‌● 1977년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 현 법무법인 로앤모어 대표 변호사
    ● 저서 ‘공부 이래도 안 되면 포기하세요’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 ‘지금을 살지 못하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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