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미국인들이 끝까지 수긍하지 않는 사안이 하나 있다. 바로 민족주의에 대한 것이다. 9·11테러에 뒤이은 이라크전쟁,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는 정치권의 수사들이 민족주의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강하게 부인했다.
“9·11테러는 민족주의의 충돌이 아니라 인류보편의 가치에 대한 도전이었고, 이라크전쟁은 세계평화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이라크전쟁에 대한 지지는 민족주의의 분출이 아닌 애국주의의 표현이었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뚜렷한 답을 하지는 못했다.
민족주의를 정의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학자가 나름의 정의를 내렸지만 반론에 반론이 꼬리를 물어 어느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다. 민족주의 연구자인 어네스트 겔너에 따르면 민족주의는 “정치적 단위체와 민족적 단위체가 일치해야 한다는 하나의 정치원리”다. 그의 이러한 정의는 민족주의가 영토분쟁을 야기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금 모으기 운동’
학자들이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구분 지으려 노력했지만, 그 현상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세계 80여 개국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에서 2000년 당시 자신의 국적에 자부심을 갖는다는 응답자의 비율이 미국의 경우 72%였다. 이는 민족주의가 강하다고 알려진 아일랜드(74%)와 유사하다. 이에 비해 서유럽 선진국의 경우 영국이 49%, 프랑스가 40%, 네덜란드가 20%로 매우 낮았다.
민족주의는 일반적으로 자신이 속한 민족에 대한 강한 애착을 함축한다. 사람들은 민족주의가 마치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사실은 근대화와 함께 필요에 의해 발명된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정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민족과 민족주의를 ‘상상의 공동체’ 혹은 ‘만들어진 전통’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민족주의라는 단어가 긍정적인 함의를 갖는 편이다. 단일민족에 대한 자부심은 국가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큰 버팀목이 돼주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를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민족주의 덕분이라고 믿는다.

미국의 민족주의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한편 “미국만 가능하다”는 예외적 성격을 띤다.
반면 서구에서 민족주의는 많은 경우 부정적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민족주의란 민족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위험한 요소일 수 있다. 미국인에게 “당신은 민족주의자야”라고 말한다면 굉장한 실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한국에서 동일한 말을 한다면 사람에 따라서는 자랑스러워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지난해 4월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조승희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했을 때,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다. 보복테러가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한국 언론은 온통 한국 이민자들의 안전을 염려하고 심지어 이 범죄에 대해 한국인이 도의적으로 사과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 같은 한국 언론의 반응을 미국 동료들에게 전하자 그들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첫째로, 범인은 한국에서 온 이민자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미국사회가 떠안은 영주권자이니 미국사회가 책임질 일이라는 것이었다. 둘째로, 국가와 개인은 다르며 이 범죄는 개인이 저지른 것이니 국가나 국적과는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개인으로 국가나 인종 전체를 판단하는 나쁜 버릇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라는 생각에 왠지 부끄러웠다. 만약 비슷한 사건이 외국인 학생에 의해 한국에서 발생했다면 그 반응은 훨씬 더 감정적이었을 것이라는 자성적인 목소리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