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알파걸’의 미래는 ‘알파맘’? 미국 여성의 고민과 선택

  • 김수경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사회학 kimsk@stanford.edu

    입력2008-12-03 13:5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여성을 타고난 이유로 정해진 삶을 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볼 수 없었고 들을 수 없었으며 배우거나 일하는 것도 허락받지 못했다. 긴 불평등의 터널을 지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여성은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가장 큰 문제는 출산과 육아의 짐이 여전히 여성의 어깨 위에 있다는 것. ‘과정의 불평등’에 지친 미국의 페미니즘은 지금, 새로운 방향을 모색 중이다.
    ‘알파걸’의 미래는 ‘알파맘’?  미국 여성의 고민과 선택
    미국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는? 미국 수준의 월급으로, 영국식 저택에서, 중국인 요리사를 두고, 일본인 아내와 사는 남자.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남자는? 중국 수준의 월급으로, 일본식 아파트에서, 영국인 요리사를 두고, 미국인 아내와 사는 남자.

    미국 여성이 ‘드세다’는 선입관은 비단 한국 사람들만 갖고 있는 게 아닌가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매들린 올브라이트, 콘돌리자 라이스, 힐러리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미국 여성은 모두 ‘여장부’다. 이들은 사실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남성으로 키워진 인물들이다.

    여권 신장을 논하면서도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는 남성의 문화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 미국에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인 듯하다.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뉴햄프셔 예비선거를 앞두고 흘린 눈물에 대해 정치적 쇼라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녀가 거쳐왔을 힘든 시간들에 더 공감이 갔다.

    사실 통계로 나타난 미국 여성의 지위는 생각보다 높지 않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성(性) 평등지수(Gender Gap Index)에 따르면 미국은 2007년 현재 128개국 가운데 31위를 차지했다.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나라로는 에스토니아(30위)와 카자흐스탄(32위)이 있다.

    물론 97위를 차지한 한국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지만 경제수준이 비슷한 서유럽 국가에 비하면 한참 낮다. 성 평등지수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도, 교육수준, 건강 및 생존율, 정치적 권한 등 4개 사항을 토대로 작성되는데, 미국의 경우 여성의 교육수준은 76위, 정치적 권한은 69위에 그쳤다.



    미 의회에 진출한 여성은 전체 의원 수의 16%로 한국의 13%와 비교해 별반 차이가 없다. 국제의회연맹이 추산한 전세계 평균 18%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참고로 성 평등지수 1위에 오른 스웨덴은 의회 내 여성의 비율이 47%에 달한다.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하는 500대 기업 중 여성 CEO가 있는 경우도 2007년 현재 단 13곳에 불과하다. 그중 상위 50대 기업의 여성 CEO는 단 한 명뿐이다.

    ‘거세된 전사’

    직장 내 여성에 대한 처우도 개선의 여지가 많다. 지난해 미국 하버드대학과 캐나다 맥길대학이 공동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는 놀랍다. 세계 173개국 가운데 여성에게 유급 출산휴가를 제공하지 않는 나라는 고작 5개국. 아프리카의 레소토, 라이베리아, 스와질랜드, 오세아니아의 파푸아뉴기니, 그리고 미국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00여 개국이 여성 근로자의 모유수유권을 법적으로 보장해 하루 한 시간 이상을 모유수유에 할애하도록 허가하고 있지만 미국은 역시 예외다. 반면 고용기회의 측면에서는 성차별이 없다고 하니, 여성의 지위는 그 어떤 경우에도 남자와 동일한 강도로 일한다는 전제 아래서만 보장되는 듯하다.

    출산과 육아처럼 여성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특수한 사정에 대해 냉정한 미국의 제도적 현실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평등’의 불합리성을 보여준다. ‘기회의 평등’이 보장된다 해도 생물학적 차이가 ‘결과의 불평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성공한 여성들은 한결같이 여성성이 거세된 ‘전사’의 이미지를 갖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한편,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 부통령후보였던 새라 페일린은 앞서 열거한 여성 정치인의 이미지와는 대조적이다. 미녀대회 출신으로 알래스카 지역 방송국에서 리포터로도 일했던 그녀는 열심히는 살았을지언정 전문성은 결여돼 보인다. 부통령후보 지명 이후 자질 논란에 휘말렸고 각종 인터뷰에서 드러난 무지함이 조롱의 대상이 됐다.

    가령, 외교 분야의 경험을 묻는 질문에 “알래스카에서는 러시아도 보인다”고 응수하거나, 미국 행정부가 지난 6년간 추구해온 ‘부시 독트린’에 대해 단어의 의미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식이다. 선거 막판에는 한 코미디 프로그램의 장난전화에까지 속아 넘어가면서 백치미의 이미지가 더욱 굳어졌다. 이 때문에 공화당 내에서조차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한탄이 흘러나왔다.

    페일린은 ‘하키맘’(자녀 교육에 열성인 엄마), ‘월마트맘’(대형할인점에서 쇼핑을 하는 엄마) 등 평범한 가정주부의 이미지를 내세워 여성 유권자의 표심을 잡으려고 애썼다. 특히 힐러리가 경선에서 탈락하면서 그녀를 지지했던 여성 유권자의 표를 흡수할 것이라 내심 기대했지만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여성계는 미국의 2인자 후보 자리에 여성이 지명됐다는 사실은 마침내 ‘유리천장’이 깨지고 있다는 신호라며 환영했지만 그것이 왜 하필 페일린 같은 여성에 의해서인지 당혹스러워했다. 그는 여성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한 노력은커녕, 성폭력과 근친상간의 경우에도 여성의 낙태 권한을 반대하는 등 여성계가 그동안 투쟁해온 사안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을 해왔기 때문이다.

    미국 최대 여성인권단체인 전미여성협회(NOW)는 페일린이 후보에 지명되자 성명을 발표하고 페일린을 지지하지 말도록 촉구했다. 협회는 “우리가 힐러리를 지지했던 것은 그녀가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의 권익을 위해 싸워왔기 때문”이라며 “매케인 진영은 (여성이 무조건 여성을 뽑을 것이라는) 큰 착각을 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페미니즘의 보수화

    힐러리의 이미지는 미국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전형이다. 미국 페미니즘의 시작은 19세기에 시작된 여성 참정권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9년 여성에게 선거권을 인정한 헌법 수정안이 통과되면서 이후 40여 년간 휴지기를 갖는다. 1960년대에 들어 부활한 2기 페미니즘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에 초점을 맞춘다.

    짧은 단발머리, 무채색 계열의 바지 정장, 단호한 표정과 말투 등 중성적 이미지의 전문직 여성은 미국 페미니즘이 표방하는 역할모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이들은 마치 여성이 남성과 같아질 수 있고, 그렇게 되길 원하며, 또 그렇게 되기를 원해야 한다고 강요한다는 것이다.

    남성을 닮아가는 것에서 여성해방의 가능성을 본다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이들은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사회적으로 성공해야 하며 집에서 가사를 돌보는 일을 통해서는 자아실현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 여성들에게 이런 주장은 공허하다. 그들은 차라리 가사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남성과 동등해질 것을 요구하는 기존의 페미니즘에 대항해 1980년대 중반에는 포스트페미니즘이 등장했다. 포스트페미니즘 세대는 페미니즘 세대가 거두어 놓은 성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제 양성평등을 이뤘으니 더 이상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보자면 포스트페미니즘은 앞선 세대가 투쟁해온 역사를 역행하는 셈이다.

    1947년생인 힐러리와 1964년생인 페일린은 각각 페미니즘과 포스트페미니즘을 대변한다. 힐러리가 경선에서 탈락했을 때 많은 미국 여성은 “힐러리가 못하면 도대체 어떤 여자가 할 수 있단 말이냐”며 낙담했다. 그러나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라프’는 페일린의 등장이“(힐러리처럼)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바지 정장을 입지 않아도 여성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최근 미국 사회는 페미니즘의 측면에서 보수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미국 여성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전환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것. 미국 인구조사(US Census)에 따르면 자녀가 있는 여성이 직업을 갖는 비율은 2000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가사와 육아의 부담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어쩔 수 없이 일터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퓨 연구소가 2007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성년 자녀를 둔 전업주부 가운데 “일하지 않고 집에 머무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답한 사람은 48%로 1997년의 39%에서 9%p 증가했다.

    반면 일하는 여성 가운데 “상근직(full-time)으로 일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21%에 불과했다. 이는 1997년의 32%에서 11%p 줄어든 수치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전업주부들의 만족도는 높아지고 일하는 여성의 만족도는 낮아진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연히 가정보다는 일을 중요시할 것이라 예상되는 고학력 여성의 경우에도 전업주부를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2년 미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자녀를 둔 박사학위 및 전문직 학위 소지자 여성의 41%가 아예 일을 하지 않거나(23%) 비상근직(18%)에 종사한다. 자녀가 6세 미만의 영·유아일 경우에는 그 비율이 54%로 증가한다.

    ‘알파걸’의 미래는 ‘알파맘’?  미국 여성의 고민과 선택
    전업주부는 상류층의 특권?

    ‘뉴욕타임스’는 이 같은 현상을 일터로부터의 ‘(자발적) 이탈 혁명(opt-out revolution)’이라 칭했다. 여성들이 능동적으로 직장을 거부할 뿐 직장이 이들을 버렸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는 것이다. 기사에 소개된 한 여성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하고 컬럼비아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우수한 인적자원이지만 현재 애틀랜타에서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아가고 있다. 평일에는 이웃들과 차를 마시고 독서토론회를 열면서 여가를 즐긴다.

    그는 “많은 사람이 좋은 직업을 갖고 승승장구하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며 “(일과 가정이라는) 덫에 걸린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선택에 의해 집에 머물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하버드대학 MBA과정을 마친 1981년, 1985년, 1991년 졸업생 가운데 38%만이 상근직에 근무하고 있었다.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성공만이 자아실현의 길이라 믿었던 여성들에게 이 같은 연구결과는 말 그대로 ‘혁명적’이다.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훨씬 편하게 살 수 있었는데 왜 이렇게 전투적으로 살아왔을까, 억울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성공을 거두지 않아도 인생은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미국의 여성학자 린다 허쉬만은 2005년 시사 월간지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에 기고한 글에서 “엘리트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일터에서 물러나 전업주부가 되는 것은 자신은 물론 사회를 위해 나쁜 일”이라며 “이들의 행위는 많은 여성에게 모방효과를 낳으며, 일을 그만두지 않는 여성에게는 (가정에 대한) 죄책감을 불어넣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 기고문은 직장여성과 전업주부 사이의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이른바 ‘엄마 전쟁 (Mommy war)’을 촉발시켰다. 전업주부들은 주로, 아이가 엄마를 절실히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입장이다. 가정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뤄야 할 중요한 가치는 없다는 것이다.

    사실 아이 문제는 일하는 엄마에게는 아킬레스건과 같다. 여성의 자아실현도 좋지만 그것이 자녀의 불행으로 이어진다면 다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허쉬만은 “통계적으로 봤을 때 직장여성을 어머니로 둔 자녀와 전업주부를 어머니로 둔 자녀의 행복지수는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일하는 엄마’ 지지자들은 전업주부의 자녀가 오히려 독립심이 적은 아이로 자랄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예일대 역사학과 신시아 러셋 교수는 이 현상에 대해 “오늘날의 여성들이 점차 현실적이 돼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성운동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여성들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일과 가사를 완벽하게 해낼 거라 자신했지만 실제 해보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2005년 138명의 예일대 재학 여학생에게 설문한 결과 85%의 학생이 아이가 생기면 일을 그만두거나 비상근직에 종사할 것이라 답했다.

    엘리트 여성들의 전업주부 선언은 단지 아이의 장래를 위한 것이거나 현실적인 타협만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있다. 다니엘 부치노 존스 홉킨스 의대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오늘날 전업주부가 된다는 것은 ‘돈이 많아서 맞벌이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상류층의 특권처럼 인식되고 있다”며 “전업주부가 하나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알파맘 vs 베타맘

    실제로 최근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각종 언론에는 직장으로 돌아가는 전업주부들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한 샌디에이고 지역언론에 소개된 그린씨 부부의 경우 최근의 경기침체로 전업주부이던 아내는 다시 일터로 돌아갔고 남편은 본업인 교사 이외의 부업으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다. 이들은 “당장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른바 ‘모성운동(Mother-hood movement)’은 허구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여성의 경우 직장에서 해고당해도 “가정을 위해 일을 그만뒀다”는 좋은 핑계거리가 있기에 마치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일터를 떠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권신장 운동을 통해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지만 동시에 남성과 동등하게 해고될 위험도 갖게 됐다.

    미 상원 경제위원회가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까지 여성의 고용 비율은 경제침체 기간에도 줄어든 적이 없고 심지어 증가하기도 했지만 2000년 들어서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미 노동통계청에 따르면 경제침체 기간에 여성의 고용 비율이 줄어든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따라서 여성들 가운데 집안 형편이 넉넉한 사람은 구직과 취직의 험난한 길보다는 전업주부의 길을 택하고, 대신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정당화하기 위해 ‘모성’을 끌어들인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올해 초 나온 성격과 사회심리학 편람(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에 실린 한 논문을 이를 뒷받침한다.

    ‘성공한 여성에 대한 여성의 전략적 거부(Motivated to penalize: women?s strategic rejection of successful women)’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여성들은 자신의 경쟁력에 대한 열등감을 방어하기 위해 성공한 여성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출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실험에 참가한 여성들에게 “당신 역시 충분한 잠재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입시키자 성공한 여성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었다.

    아이를 둔 직장여성과 전업주부 사이의 논쟁은 요즘 한국에서도 뜨거운 화두다. 이른바 ‘알파맘(Alpha mom), 베타맘(Beta mom) 논쟁’이라 불리는 이 사안은 일하는 엄마와 집에 머무는 엄마 가운데 누가 더 아이 교육에 좋은지를 묻고 있다.

    ‘알파맘’은 주로 중산층 이상의 고학력 전업주부로 아이를 일류로 키우기 위해 매니저를 자처한다. 반면 ‘베타맘’은 직장에 다니는 여성인 경우가 많으며 아이에게 가능한 한 많은 자유시간을 주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귀추가 주목되는 것은 ‘알파맘’에게서 자란 ‘알파걸(Alpha girl)’들의 미래다. ‘알파걸’은 모든 방면에서 또래의 남학생보다 앞서는 여학생을 지칭하는 말로, 하버드대학의 아동심리학자 댄 킨들론이 동명의 연구서를 내면서 알려진 신조어다. ‘알파걸’은 태어나면서부터 차별을 경험하지 않은 덕에 남성과 동등한, 아니 때로는 남성보다 우월한 능력을 보인다.

    ‘알파맘’은 분명 자신의 딸을 ‘알파걸’로 키울 것이다. 그러나 ‘알파걸’ 역시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해 일과 가정이라는 벽에 부딪히게 되면 결국 ‘알파맘’의 삶을 선택할지 모른다. 자신의 어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궁금해질 것이다. 숱하게 다녔던 각종 학원과 과외활동, 명문대 졸업장, 좋은 대우의 직장이 다 무슨 소용이었을까.

    집에서 가사를 돌보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지식과 교양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고등교육이 전혀 쓸모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무식하고 무례한 어머니 밑에서 훌륭한 자녀가 나올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의 교육이 결국은 훌륭한 자녀를 키우고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재생산하기 위해 쓰일 뿐이라면 이는 좀 슬픈 현실이다.

    ‘알파걸’의 미래는 ‘알파맘’?  미국 여성의 고민과 선택
    김수경

    1976년 서울 출생

    서울대 언어학과 졸업

    동아일보 문화부·사회부 기자

    現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알파맘, 베타맘 논쟁이 불편한 까닭은 ‘아이가 잘되고 못되고는 전적으로 엄마의 책임’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육아는 단지 사적인 가정생활의 일부가 아니라 미래의 노동력을 산출하는 공적인 일이기도 하다. 낮은 출산율을 걱정하고 출산과 육아를 기피하는 ‘요즘 젊은 여자들’을 탓하기 이전에 우리 사회는 여성들의 고민에 얼마나 귀 기울였는가.

    모든 사람이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제공받아야 하고, 업무 수행의 결과도 동일한 잣대에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육아를 철저히 여성의 사적인 일로 국한시키는 동안 ‘과정의 평등’이 무너지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